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90
만인의 지옥 (7)
심장을 향해 날아가던 핸드캐넌의 탄환은 강철우의 왼손에 가로막혔다. 재환은 핸드캐넌의 탄환이 강철우의 왼손을 감싼 강철 장갑을 꿰뚫은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심장을 노릴 걸 예상한 건가…’
심장을 노린 공격이 가로막힌 것에 불쾌함을 느끼던 그 순간, 재환은 강철우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왼손에서도 피가 흐르는 것과 함께 통증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걸 확인했다.
‘이건… 기분 탓은 아닌 것 같군.’
둔탁한 통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았다. 전투 자극제의 진통 효과 덕분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통증이 가라앉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대신 통증을 느껴지게 한 원흉을 노려봤다.
“눈에는 눈, 피에는 피. 함무라비 시절부터 이어진 복수의 철칙이자 기초지.”
강철우는 재환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를 향해 다가왔다.
“남에게 칼을 겨눌 때는 자기도 칼에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거야.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상처가 더 깊게 나는 법이니까.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그걸 몰랐고, 여기에 오고 난 다음에야 뼈저리게 알게 됐지.”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강철우를 바라보던 재환은 경기장의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출구는 전부 막혔군.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어도 나갈 땐 아니라는 건가.’
한 순간에 퇴로가 막혀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핸드캐넌을 재장전하며 어떻게 강철우를 상대할지 고민했다.
‘재생 능력에 피해 반사라… 사람 미치게 하기에는 딱 좋은 능력이지. 상처가 얕은 걸 보면 완벽하게 반사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쪽은 재생능력이 있으니까 상관없을 거야. 이론상으로는 사람을 상대할 때 절대 질 수 없는 능력이겠지.’
그는 강철우의 왼손을 두른 강철 장갑이 재생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동서울에 장갑차 수준인 사냥꾼이 있다더니. 그게 저 인간이었나 보군. 지금은 장갑차가 아니라 탱크 정도는 되는 것 같지만 말이야.’
핸드캐넌은 권총의 모습을 한 대포답게 웬만한 대물 저격총을 뛰어넘는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력을 지닌 핸드캐넌으로도 강철우가 입은 갑옷을 뚫는 것이 고작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숨통을 조여오는 기분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아직 기회가 없는 건 아니야. 적어도 블레인 때처럼 아예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이쪽에는 사혈이 있으니까 똑같이 상처를 입더라도 저쪽이 더 치명상을 입는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핸드캐넌을 재장전한 뒤 권총집에 꽂았다. 빈틈을 노려서 쏘는 게 아니라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냥감을 사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야말로 사냥당하기에 제일 좋은 법이니까. 사냥꾼과 사냥감의 관계라는 건 늘 그런 법이었지.’
강철우에게는 아직 전력을 다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만약 그가 전력을 다해 재환을 살해하려 했다면 저렇게 느린 걸음으로 여유를 부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더 숨겨 놓은 건지, 무슨 꿍꿍이를 더 품고 있는 건진 몰라도. 갑옷이 부서진 건 후회하게 해 줘야지.’
그는 예지력을 사용해왔던 경험과 괴물을 사냥해온 경험을 활용해 자신의 동선을 설계했다. 아무리 예지력이 제한되어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사냥을 해왔던 경험까지 사라지지는 않은 덕분에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인지는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었다.
‘덕분에 저 갑옷이 만능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어떻게든 통증만 이겨낼 수 있으면, 아직은 해 볼 만해.’
강철우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재환은 탈바꿈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는 눈앞에 있는 상대를 껍질이 단단한 괴물이라고 여긴 뒤 앞으로 달려들었다.
‘아직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 끝내자.’
탈바꿈의 곡괭이 부분이 강철우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그때는 무슨 수를 써도 못 이길 테니까. 진통 효과가 떨어지면 그때는 그대로 끝이야.’
그렇게 탈바꿈은 강철우의 머리를 향해 허공을 질주했고, 강철우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 올려 탈바꿈을 막은 뒤 철퇴를 휘둘렀다.
“사람이랑 싸워본 적은 별로 없나 보군.”
재환은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는 철퇴를 피하기 위해 황급히 거리를 벌렸고, 강철우는 그런 재환의 모습을 보며 조롱했다.
“공격이 너무 정직해. 그렇게 뻔해서야 사람을 죽이기에는 글렀다고 봐야지.”
재환은 자신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듯한 강철우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말 자체는 사실이었고, 그가 자신의 공격을 두 번이나 막아낸 것 역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진통제가 있으면 더 맞아 둬.”
강철우는 그렇게 말하며 재환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게 다 떨어지면 그때는 지옥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다.”
혼잣말에 가까운 강철우의 말에 재환은 품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전투 자극제를 꺼냈다.
‘이미 두 번이나 맞았지. 여기서 하나 더 맞으면, 그때는 쇼크사할지도 모르는 거고.’
하지만 재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맥을 찾아 전투 자극제를 꽂아 넣었다. 반사 신경을 더 날카롭게 가다듬고, 통증은 완화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감각과 함께 그는 주변의 풍경이 안개처럼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의 눈에는 표적인 강철우의 모습만이 또렷하게 보일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너무 뻔했지. 처음부터 숨통을 노리려고 했으니까. 욕심이 과한 걸 들키고 시작했으니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던 거야.’
재환은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던 이유를 되새기며 탈바꿈을 분해해 칼날의 형태로 만들었다. 잡다한 부품을 덜어내 칼날만을 남겨놓은 탈바꿈은 앙상하기 짝이 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가볍게. 이것보다도 더 가볍게 만들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저 갑옷의 틈새를 노리지 못할 테니까. 굳이 급소가 아니더라도 어디든 찌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면…’
재환은 탈바꿈의 칼날을 부러뜨렸고, 탈바꿈의 칼날은 길이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 정도 퍼포먼스는 해 줘야지. 이러다 남은 칼날까지 부러지면 무기가 없어지는 거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재환은 한없이 가벼워진 탈바꿈의 칼날에 사혈을 바르며 강철우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유효타를 한 번이라도 넣는 거랑, 한 번도 못 넣는 건 차이가 있는 거니까. 이대로 무시만 당하다가 지는 건… 성미에 맞는 일도 아니고 말이야.’
사혈을 바르는 것을 끝낸 재환은 반쪽짜리 칼날만이 남은 탈바꿈을 쥔 채 강철우를 노려봤다. 철갑을 두른 강철우의 모습은 이제 걸어 다니는 요새나 다름없어 보였고, 저 갑옷의 틈새로 칼날을 찔러 넣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어 보였다.
‘아직 숨이 붙어 있을 때, 후회 없이.’
각오를 끝낸 재환은 한 손에는 탈바꿈을, 다른 손에는 핸드캐넌을 쥔 채 강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철퇴를 앞으로 굴러서 피한 뒤 강철우의 뒤를 점했다.
‘그래야 죽는 날이 와도 미련이 없을 테니까.’
강철우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 재환에게 철퇴를 내리치려 했지만, 그가 등을 돌리려 했을 때 재환의 칼날은 이미 날아오고 있었다.
전신을 감싼 철갑옷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방어력을 자랑했지만, 아무리 뛰어난 갑옷일지라도 그것이 육중한 철갑옷인 이상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은 사냥꾼의 신체 능력을 지녔음에도 피할 수 없는 단점이었다.
“훌륭해… 이번 건 꽤 괜찮았어…”
탈바꿈의 칼날이 강철우의 오른쪽 어깨를 찌르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거리를 벌렸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강철우가 휘두른 철퇴에 머리가 쪼개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괴물 잡는 실력이 괜찮은 줄은 알았지만… 배우는 것까지 빠를 줄은 몰랐어.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망설이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 순간 재환은 강철우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생각보다 손 쉽게 유효타를 먹인 것은 그에게도 의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유를 부리고 있던 게 아니었나…?’
강철우가 여유를 부릴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 지옥을 자신의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상대를 봐 주면서 상대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랬던 건가…’
재환은 자신의 어깨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강철우의 상태를 확신했다.
‘사람의 몸으로 성자의 힘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 이 지옥을 혼자서 유지하는 건 더더욱 그랬을 테고. 몸이든 정신이든… 만신창이가 돼도 이상한 건 아니야.’
성자의 힘은 무한한 것도 아니고 전능한 것도 아니었다.
암브락사스는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대 일주일가량의 시간이 필요했고, 데이드럼 역시 카니발을 열기 위해 최대 수개월 가량을 서울의 중심부에서 준비해야 했다.
그만큼 온전한 성자들에게도 도시 하나 수준의 범위에 능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제약이 따르는 법이었고,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 성자가 아닌 인간이라면 그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절 그냥 보내주시죠.”
재환은 사혈로 인해 썩은 피를 흘리는 강철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나는 당신이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하든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내가 하려는 일도 따지고 보면 개인적인 복수니까요. 나나 당신이나, 하는 일 자체는 다를 게 없는 거죠.”
강철우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화를 시도하는 사이에도 전투 자극제의 약효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고, 약효가 끝나는 순간 그는 강철우가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 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환은 사람의 피를 보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고, 자신의 목적이 용산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경단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새로 들어설지 알 수 없는 이상, 자경단의 협조를 받아 용산으로 가는 길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철우의 대답이 들려오는 순간, 재환은 자신이 그에 대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안 돼. 안 되지. 그럴 순 없어. 그럴 순 없고말고. 사냥꾼을 밑바닥으로 보내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줄 수 없지.”
재환은 강철우의 말과 함께 경기장을 메운 스크린 인간들의 몸이 새까맣게 변하는 것을 보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악몽은 끝나면 안 돼. 이 악몽이 끝나고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갈 바에는… 차라리 다 같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편이 나아. 내가 없어지더라도… 이 세상은 여전히 지옥일 테니까…”
강철우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철퇴는 어느새 말뚝을 닮은 대못의 형태로 바뀌어 있었고, 주변에 있던 수만 명의 스크린 관객들 역시 자신의 오른손에 대못을 쥐고 있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자 재환은 자신이 무엇을 간과했는지 깨달으며 강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내가 너무 순진했지.’
그는 자신의 배를 향해 대못을 찌르려는 강철우의 오른손을 향해 핸드캐넌을 겨눴다. 오른쪽 어깨에 상처를 입은 탓에 강철우의 오른손은 평소보다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져 있었다.
‘말이 통할 인간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진 않았으니까. 제정신인 사람이랑 해도 힘든 게 협상인데, 미친 사람이랑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던 거지.’
나직한 후회와 함께 핸드캐넌의 총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고, 대못을 쥐고 있던 강철우의 오른손은 그대로 튕겨 나갔다.
곧이어 재환의 칼날은 강철우의 갑옷 틈새를 넘어 왼쪽 어깨마저 꿰뚫었고, 그렇게 자경단이 만든 지옥은 종막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