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92
사냥꾼의 무덤 (1)
네온사인으로 물든 거리에서 눈을 뜬 재환은 별빛이 전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별의 심장을 흡수해 지력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속삭임은… 아직도 안 들리는 건가…’
감각이 예리해진 것을 확인한 재환은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지력이 높아진 덕분인지 하늘에 드리워진 실타래가 구름처럼 몽글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안개 돔 자체가 성자의 작품이고, 이것 때문에 속삭임이 안 들리는 거겠지. 이런 식으로 방해받지 않으려면… 지력을 더 높여야 하는 거고.’
배움의 길에 끝이 없다는 말처럼, 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은 아연했다.
인지력을 끌어올려 이 세상에 대해 더욱 알아갈수록 이 세상에 내려온 별들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고,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인지를 뛰어넘는 초월자들의 인형극에 놀아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예 수확이 없는 건 아니야.’
재환은 자동차를 몰고 자경단의 본거지였던 중구를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력이 높아지면 예지력이 좀 더 예리해지고, 감지력이 더 강해진다는 건 이제 확실해졌으니까. 앞으로도 지력을 계속 높여두는 건 분명 도움이 되겠지. 문제는…’
그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준 채 안개 낀 거리를 노려봤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냐 이거겠지. 지금까지는 운이 어느 정도 받쳐준 덕분에 어떻게든 성공했지만, 앞으로도 이럴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성자를 사냥하는 일이 운만 있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지금까지 성자를 사냥하기 위해 쉴 틈 없이 괴물을 사냥해왔고, 지혜를 발휘해 집요하게 상대의 빈틈을 찾아내려 했으며, 몸과 정신의 힘을 길러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사냥을 이어나갈 수 있게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이 지금까지 성자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운이 어느 정도 따랐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처음 서울을 점거한 것이 사랑의 성자인 암브락사스가 아니었다면 그는 정신력이 바닥나 미쳐버렸을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 블레인이 추적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는 영원히 살해당할 운명이었으며, 강철우가 죄수들의 정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대신 자신을 쓰러뜨리려 했다면 그와의 싸움은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조금씩 허점이 있었던 성자들도 이 정도였는데… 데이드럼을 사냥하는 건 멀었지. 그 녀석의 직접 쳐들어가는 건 더 미친 짓이고.’
자경단의 본거지로 침입하면서 그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성자는 자신의 영역에서 초현실적인 힘을 더 강력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성자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지만 한낱 인간에 불과했던 강철우 역시 자신의 본거지에서는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능력을 사용했고, 데이드럼의 권속에 불과한 조율사 역시 하늘에서 쐐기를 떨어뜨리는 비상식적인 능력을 사용했다.
‘성자들이 자기 영역에서 강해지는 건 확실하지. 그러니까 성자들이 다들 자기 공방을 가지려고 하는 거고, 암브락사스는 영역을 넓히려고 했던 걸 테니까. 이걸 알면서도 무작정 성자들의 공방을 들쑤시고 다니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거지.’
종로를 지나 중구에 도착한 재환은 네온사인으로 물든 거리의 모습을 바라봤다. 목매달린 산송장들로 가득했던 거리는 이제 별빛처럼 빛나는 네온사인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결국 자경단은 없어졌군… 죄수들은 강철우가 처리했을 테고. 간수들은… 알아서 잘 살겠지. 그 사람들이 괴물이 되든, 자살을 하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대신…’
재환은 차에서 내려 가면을 쓴 괴물들이 기이한 조형물들을 설치하는 모습들을 훑어봤다. 사람들이 목매달려 있던 거리의 모습도 기이했지만, 괴물의 미학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조형물을 살펴보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자경단을 없앤 게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닌 건 확실하지. 사냥꾼을 마구잡이로 사냥한 건 문제지만, 적어도 자경단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활동했으니까. 선을 넘지만 않았더라면… 꽤 괜찮은 거리를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성자의 힘을 빌리고, 보편적인 도덕 기준을 넘어서 과도하게 형벌을 집행했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괴물의 소굴이 된 서울의 중심부에서 자경단은 ‘사람의 영역’을 유지하고 있었다.
만약 그 힘을 복수를 행하는 지옥이 아닌 복지를 베푸는 낙원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했더라면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는 도시가 세워졌을지도 몰랐다.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지. 그 정도의 집념이 있었으니까 성자의 힘을 버텨낸 걸 테고, 유지할 수 있었던 걸 테니까. 마약 같은 걸 쓰는 게 아닌 이상,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낙원 따위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기도 하고 말이야.’
거리의 모습을 살피던 재환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도 아깝게 됐어…’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씁쓸해했다.
‘잘만 하면 이보다 더 든든한 조력자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낙원을 만들 정도로 선량하진 않더라도, 적당히 현실과 타협할 줄 아는 성격이었으면 이런 결말이 나오진 않았겠지.’
지력이 높아진 덕분에 그는 강철우가 서울로 되돌아오지 못하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자경단은 강철우의 모든 것이었고, 자경단의 원동력이던 그릇이 부서졌다는 것은 그의 존재 자체가 부서진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중구에서는 더 이상 자경단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고, 강철우가 지니고 있던 별의 심장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선을 넘으면… 결국 이렇게 된다 이건가…’
재환은 한동안 강철우의 말로에 대해 생각하며 담배를 태웠다. 그가 맞이한 결말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수도 없는 게… 사냥꾼의 비참한 점이지… 포기해버리는 순간 사냥꾼마저 아니게 되는 게… 이 세상의 비참한 점이니까…’
서울에 괴물이 나타난 이후, 인간의 위치는 벌레보다도 못한 미물로 전락했다.
성자의 시점으로 보면 서울은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개미굴과 별로 다를 게 없었고, 개미들이 어떤 문명을 이룩하더라도 그들의 시점으로 보면 미물의 발버둥에 불과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성자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담배를 피우던 재환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가면을 쓴 괴인인 임현아였다. 그녀는 한 손에 자신이 끌고 온 캐리어를 쥔 채 재환에게 말했다.
“자경단이 없어진 게 신경 쓰여요?”
그 말에 재환은 말없이 임현아를 노려봤다. 눈알을 닮은 보석들이 깨알같이 박혀있는 그 가면은 그녀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할 정도로 흉물스러웠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요?”
재환은 사람 대신 괴물이 들어선 주변의 풍경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자경단을 없애면 그 자리에 괴물들이 들어서는 거 말이에요. 보아하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 알고 있었죠.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는 태연스럽게 대답한 뒤 괴물의 공방으로 변해가는 거리의 모습을 손으로 가리켰다.
“고여있는 것은 썩기 마련이고, 썩어가는 것은 악취를 풍기기 마련이죠. 자경단도 그런 거예요. 아무리 발효 식품이어도 너무 오래 묵히면 썩어버리는 것처럼,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된 거였죠.”
그 말에 재환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용산에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괴물에게 이용당했다고 느낌이 떠오르자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살벌한 표정 짓지 마요. 이것도 다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별에서 내려온 괴물을 죽이려면, 숨겨진 조각을 더 모아야 했으니까요. 게임으로 치면, 히든피스 같은 거 말이에요.”
사람의 죽음을 게임 취급하는 임현아의 말에 재환은 핸드캐넌을 뽑아들려는 충동을 간신히 억눌러야 했다.
저 가면 너머에 있는 얼굴이 사람의 것이든 괴물의 것이든 그 속내에 들어있는 것은 틀림없이 괴물의 내면이었기 때문이다.
‘아직이야. 아직은 저 여자를 죽일 때가 아니야.’
재환은 그녀의 발명품인 사혈이 자경단을 쓰러뜨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되새기며 핸드캐넌을 뽑으려던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저 여자의 진짜 목적이 뭐든지 간에, 아직은 이용할 여지가 더 있으니까. 나중에 어떤 게 더 모자랄지 모르는 데, 쓸 수 있는 건 최대한 남겨두는 게 맞아. 다 부숴버리는 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지만, 일단 부숴버리고 나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임현아가 지닌 지식과 기술은 경계할 만했지만, 그녀의 연구소가 지닌 전력이 자경단보다 나을 거라고 보긴 힘들었다.
만약 그녀의 연구소가 자경단을 압도할 수 있었더라면 굳이 자신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경단을 없앨 수 있었을 것이고, 만약 그런 게 가능했더라면 임현아는 별의 심장마저도 연구 재료로 사용했을 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쩔 겁니까? 보아하니 그쪽도 용산에 볼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용산이라도 부숴버릴 생각이에요?”
그러자 임현아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대답했다.
“너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나라고 해서 그렇게 폭력적인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대답한 뒤 자신이 끌고 캐리어를 재환에게 건넸다.
“괴물의 피를 나눠 담은 캐리어에요. 나름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구한 거니, 뒤탈 걱정 없이 마셔도 돼요. 앞으로 힘쓰는 일을 하러 갈 텐데, 몸 보신 좀 해야죠.”
그 말에 재환은 그녀가 괴물의 피를 건넨 이유를 눈치챘다.
“공짜로 주는 건 아닐 테고… 이번엔 무슨 꿍꿍이입니까?”
“아까 전에 히든피스 얘기를 했었죠? 그거에 관한 얘기에요. 이제 방해꾼이던 자경단이 없어졌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거든요. 용산에 뭐가 있을지 알아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죠.”
‘그래… 그랬던 거군…’
재환은 그녀가 하려는 말을 눈치챈 뒤 한숨을 내쉬었다.
‘용산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나 보고 대신 다녀와라, 이거였군. 처음부터 끝까지 속이 시꺼먼 여자란 말이지.’
용산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것은 그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용산에서 느껴지는 ‘사냥꾼 성자’의 기운도, 샬롬의 사냥꾼들이 용산으로 가서 자살한 것도, 위대한 피를 마신 사냥꾼들이 서울의 중심부로 향했던 것도, 자경단이 용산으로 가려는 사냥을 막아선 것도 모두 다 용산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재환은 그녀에게서 괴물의 피가 담긴 캐리어를 받으며 생각했다.
‘뭐가 있을지 모르는 곳에 뛰어드는 건 늘 내 몫이었으니까.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는 법이지.’
용산에 있는 것이 사냥꾼을 유혹하는 파리지옥인지, 아니면 이 악몽을 끝낼 실마리일지, 아니면 둘 모두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용산으로 가려 했던 다른 사냥꾼들처럼, 희미한 별빛을 따라 용산으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오직 그것만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생쥐의 신세에서 벗어나 온전한 사냥꾼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