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93
사냥꾼의 무덤 (2)
용산에 도착한 재환은 차에서 내린 뒤 용산역을 올려다봤다. 용산역에서는 심해를 내려다볼 때 느껴지는 음침함과 사냥꾼에게서 느껴지는 역겨움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재환은 트렁크에서 짐을 챙긴 뒤 용산역의 입구로 걸어갔다. 용산역을 향해 다가가자 손등에 새겨진 ‘초대장’이 욱신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동아줄을 잡으러 온 거긴 하지만… 저기가 내 무덤이 돼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내가 헛것을 본 거 아니라면, 저기가 바로 사냥꾼의 무덤이자 종착역일 테니까.’
서울의 지하철에 초현실적인 존재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가 알고 있는 한 공간을 일그러뜨릴 정도의 능력을 지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사냥꾼들을 용산으로 불러모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상, 그는 성자에 대해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종착역이 될지. 환승역이 될지. 그건 들어가 봐야 알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게 이 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이니까.’
무기와 의약품 등이 담긴 배낭과 캐리어를 챙긴 재환은 용산역의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용산역에서 느껴지는 별의 기운에 이끌려 조명 하나 없는 지하로 내려가자 그는 음침한 기운이 한층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지하철이랑 비슷한 느낌이지만… 음침한 정도는 더 심하군. 농도가 더 진해진 느낌이야…’
재환은 한 손에 손전등을 쥔 채 어두컴컴한 지하를 향해 내려갔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뼈만 남은 망령들이 두 팔을 벌린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게 됐다.
‘무기도 없고, 움직임도 느려.’
예지력을 사용해 저들의 전력을 가늠한 재환은 총을 쓸 필요도 없다고 판단한 뒤 탈바꿈을 꺼내 한 손으로 쥐었다.
‘총알은 아끼는 게 좋겠지. 아무리 내가 강해졌다곤 해도,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은 게 좋으니까. 저 안쪽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만큼, 전력은 아껴둬야지.’
판단을 끝낸 재환은 탈바꿈을 쥔 채 망령들을 향해 다가갔다. 누더기를 걸친 채 뼈만 남은 망령들은 두 팔을 벌린 채 그의 앞을 막아섰고, 재환은 그들에게 탈바꿈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망령들을 모두 부숴버렸을 때, 그는 은연중에 느꼈던 위화감이 무엇인지 떠올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살기가 없었어.’
재환은 으스러진 망령의 잔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기 보단… 말리려고 다가온 느낌이었지. 딱히 이성이나 지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꺼림칙한 건 어쩔 수 없나.’
지하철에서 뼈만 남은 망령들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한사랑의 소개를 받아 지하철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 이후, 지하철에 들어설 때면 망령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망자라…’
재환은 부서진 뼛조각들을 지나 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별의 기운이 가까워질수록 바닥에 깔린 뼛조각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르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나도 결국은 사람이니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자연재해 수준인 악몽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는 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그곳에는 살롬의 사냥꾼들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보았던 그릇이 제단 위에 올려져 있었고, 제단의 주변에는 사냥꾼의 것으로 추정되는 해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가 결투에서 패배한 이후, 그의 몸을 차지한 샬롬의 사냥꾼들은 괴물을 닥치는 대로 사냥한 뒤 이곳에서 자살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명을 다하고 죽음을 택하는 순교자처럼 보였기에 재환은 그릇을 향해 다가가면서도 역겨운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살고 싶으면 사지로 걸어가야 한다니. 언제 봐도 지독한 아이러니야.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날로 먹는 인생 같은 건… 이제는 농담거리도 못 되는 거지.’
사냥을 하지 않고도 사는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설지훈이나 강북의 사냥꾼들처럼 사냥꾼의 힘을 활용해 삶의 질을 높이려 할 수도 있었고, 이미래처럼 마약과 음악에 의지해 영원토록 쾌락을 누리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런 삶을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괴물이 된 아버지를 처음 살해한 날 이후, 그에게 괴물을 사냥해 악몽을 끝내는 일은 일종의 ‘종양’이 되어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갈라 이 ‘종양’을 제거하지 않는 한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고, 그렇기에 그날의 기억은 그가 죽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어 그의 숨통을 움켜쥐고 있었다.
‘암브락사스… 암브락사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고 했지…’
재환은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그릇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릇을 향해 다가가자 그릇에서 느껴지는 역겨움의 정체가 죽은 사냥꾼들에게서 풍겨오는 죽음의 향기임을 눈치 챘다.
‘무의미한 건 아니야. 적어도… 나에게는 아직 의미가 남아있으니까···.’
그릇에서 풍겨오는 죽음의 향기는 매력적이었기에 기이했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본능적으로 죽음과 연결된 것을 꺼리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역겹게 느끼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릇에서 풍겨오는 냄새에는 악취와 향기가 공존하고 있었고, 그는 이 역겨우면서도 감미로운 기운의 정체를 기이하게 여기며 그릇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그릇의 앞에 마주 섰을 때, 그는 한동안 들리지 않았던 속삭임이 자신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을 듣게 되었다.
[사냥꾼이다. 마지막 사냥꾼일까.] [마지막은 마지막에 정해지는 법.] [최후의 사냥꾼은 최후에 정해지는 것.]속삭임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그릇에서 핏물이 차올랐고, 차오른 핏물은 굳어지면서 단검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재환은 이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단검이 샬롬의 사냥꾼들이 자살할 때 사용했던 것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삶은 죽음이 되고 죽음은 삶이 된다.] [산 자라면 손등을, 망자라면 숨통을 노려라.] [산 자는 여명을 이끌고, 망자는 무덤에 잠들라.]재환은 핏물이 굳어서 만들어진 단검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손등을 바라봤다. 그의 손등에는 마지막으로 샬롬에 방문했을 때 새겨진 ‘초대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 이런 용도였구만… 이러려고 초대장을 준 거였나…’
그는 자신의 손에 새겨진 초대장이 살아있는 심장처럼 두근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찔러달라고 요동치는 것처럼 보였기에 재환은 이를 꺼림칙하게 여겼다.
‘이게 잘 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어.’
그는 단검을 집어 든 뒤 자신의 손등을 겨누며 생각했다.
‘사냥꾼들을 보면 기분 나쁜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거지. 괴물의 피를 마실수록, 괴물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게 사냥꾼의 운명이니까.’
단검이 손등을 찌르는 것과 동시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재환은 손등에서 흐르는 피를 그릇에 떨어뜨렸고, 그러자 그의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과 함께 그릇에서 수백 개의 손이 뻗어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왔다! 왔어! 드디어 왔구나!] [사냥꾼이야! 신선한 사냥꾼이 왔어!] [물씬 풍겨오는 피비린내! 두근거리는 별의 심장!] [마지막 사냥꾼! 최후의 사냥꾼을 위하여!]재환은 수백 개의 손이 자신을 감싸 쥐는 것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는 것은 예지력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이군.’
그는 자신의 몸이 그릇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했다.
‘이번엔 뭘 준비해 뒀을지, 어디 한 번 보자고.’
서울의 밑바닥에 잠들어있는 존재는 지금까지 보물을 미끼로 사냥꾼을 유혹해왔다. 이는 그 존재가 사냥꾼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증거였고, 그렇기에 재환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위험 속으로 내던질 수 있었다.
‘위험이 없으면 보물도 없는 거니까. 이쪽이 목숨을 걸었으면, 저쪽도 그 정도 준비는 해 뒀겠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과 함께 그는 마침내 의식을 잃었고, 그의 몸은 수백 개의 손과 함께 피가 차오른 그릇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다른 장비들은 사라지고 샬롬에서 얻은 장비들만을 지닌 채 낯선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했음을 알아차렸다.
* * *
‘여긴… 용산역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눈을 뜬 재환은 승강장의 주변을 살펴봤다. 승강장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었고, 그들은 저마다 흉흉한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그들에게서는 사냥꾼 특유의 악취가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생긴 걸 보면 서울 사람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온 거지?’
사냥꾼들의 모습과 복장은 저마다 각양각색이었다. 그들 중에는 백인이나 흑인도 섞여 있었고, 전신에 갑옷을 두르거나 가면을 쓴 사람도 섞여 있었으며, 자신의 키보다 커다란 총이나 날붙이로 무장한 사람도 있었다.
‘서울에도 외국인이 있기야 하지만… 이렇게 사냥꾼이 많은 건 좀 이상한 일이지. 어떤 인종이 특히 우월해서 사냥꾼 비율이 더 높다는 것도 웃긴 노릇이고 말이야.’
그렇게 그가 각양각색의 사냥꾼들을 보면서 의아해할 때, 그는 한 여자가 승강장의 저편에서 자신을 향해 말을 걸려는 것을 보며 시선을 옮겼다.
“재환 님? 윤재환 님 맞죠?”
재환은 기타케이스를 등에 멘 여자의 모습을 보며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그녀는 위대한 피를 마시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던 사냥꾼인 한사랑이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냈어요?”
한사랑의 서글서글한 태도에 재환은 표정을 굳혔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녀가 어떤 식으로 작별을 고했는지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상종하기 싫다고 할 순 없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런 상황에서 지인이 있다는 건 희소식이니까.’
그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해결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아무 이유 없이 마다하지는 알았다.
괴물을 사냥하려면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이용하는 것이 옳았고, 조력자 역시 있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마 하긴 했는데… 정말 여기서 볼 수 있을지는 몰랐네요. 그때 먼저 용산에 가겠다고 한 게 이런 식으로 들어맞을 줄은 몰랐거든요,”
“전부 다 주님 덕분이죠. 사냥꾼이 여기에 모여든 것도, 재환 님이 여기에 온 것도 ,전부 다 말이에요.
재환은 그녀가 여전히 개신교를 독실하게 믿고 있음을 되새기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좀 알 수 있을까요? 보아하니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사냥꾼인 것 같은데… 이렇게 사냥꾼들이 많이 모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재환이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승강장의 저편에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증기 기관으로 움직이는 구식 열차의 소리였다. 한사랑은 열차의 소리에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기 위해 뒤꿈치를 들어 올려 재환의 귓가에 직접 대답했다.
“서바이벌이에요. 강한 사냥꾼이 살아남는 건지. 살아남은 사냥꾼이 강한 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려내는 거죠.”
대답을 하는 사이에 증기 기관 열차는 승강장에 멈춰 섰고, 이와 동시에 한사랑은 그를 열차를 향해 안내했다.
“자세한 건 열차에서 알려줄게요. 첫 주차에는 사람이 많은 편이 낫거든요. 괴물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람이 많은 편이 좋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