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94
사냥꾼의 무덤 (3)
열차의 내부는 비교적 평범했다. 객실의 실내장식이 19세기 유럽을 연상시킬 정도로 예스럽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증기 기관 열차가 여느 열차보다 특별하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재환은 한사랑을 따라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객실이 평범하다고 해서 승객까지 평범하지는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객실의 좌석에 앉아있는 이들은 모두 사냥꾼이었고, 이들은 승강장에서 보았던 사냥꾼들처럼 기이한 형상의 무기와 장비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샬롬으로 가는 전철은 용산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베이징, 도쿄, 뉴옥… 웬만한 대도시에는 다 있다고 봐야죠.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서울에만 괴물이 나타난 건 아닌 모양이더라고요.”
한사랑의 안내를 받아 빈자리에 앉은 재환은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서울만 이렇게 됐다는 것보다는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이건 이거대로 끔찍한 일이군…’
그는 한때 서울 바깥으로 나가 구조를 요청하려 했던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되새겼다.
‘구조 요청이 헛수고라는 걸 안 건 다행이지만… 이게 좋아할 일은 아니지. 저 말이 사실이면 괴물병이 나타난 게 전 세계적인 재앙이라는 뜻이니까. 최악의 최악까지 가정한다면… 서울의 성자들을 모두 사냥하더라도 다른 도시에 있는 성자들까지 사냥해야 되는 걸지도 모르지.’
생각만으로도 암담해지는 가정이었지만, 재환은 숨을 내쉬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 사실이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지금은 눈앞에 있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 서바이벌이라고 했던데… 그건 무슨 뜻이었어요?”
재환은 주변에 있는 사냥꾼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서바이벌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잖아요. 그냥 생존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도 있고, 서로 죽고 죽이면서 배틀로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분위기를 보면 전자에 가까운 것 같긴 한데… 경험자의 얘기를 듣는 게 확실할 것 같아서요.”
재환의 말에 한사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 사냥꾼들끼리 싸우진 않아요. 사냥꾼들끼리 경쟁을 하긴 해도, 제일 중요한 건 샬롬에서 살아남는 거거든요. 샬롬에는 괴물이 나오고, 괴물을 사냥해야 장비를 만들고 식량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것도 첫 주차에 한정된 얘기긴 하지만요.”
“첫 주자에 한정된 얘기란 건…”
“네, 맞아요. 특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무대가 변하고, 목표도 바뀌죠.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무대가 되는 샬롬이라는 도시가 여러 방식으로 변하는 거에 가깝죠. 시간대가 바뀌기도 하고, 평행세계의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어떻게 바뀔진, 그때그때 달라지는 거고요. 현대에서 온 사냥꾼들은 무대가 바뀐 횟수에 맞춰서 몇 주차가 지났는지 짐작할 수 있는 거죠.”
한사랑의 말과 함께 샬롬으로 가는 열차의 시동이 걸렸고, 재환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쪽 말을 정리하자면… 이 열차는 샬롬으로 가는 거고, 우리들은 샬롬에서 괴물을 사냥하고, 샬롬에서 살아남으면서 특정한 조건을 갖추면 새로운 샬롬으로 가는 걸 반복한다는 거죠?”
“네, 정확해요. 요약 잘하시네요. 배우는 것도 빠른 편이시고요.”
“…칭찬은 고마워요. 아직 제일 중요한 것들은 설명을 못 들은 것 같지만요.”
재환은 열차의 움직임을 통해 열차가 지하를 향해 출발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말을 이었다.
“사냥꾼들은 왜 여기에 모이는 거고, 여기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 거고, 이 모든 걸 주관하는 존재의 목적은 뭔지, 뭐 그런 것들 말이에요.”
“아… 그렇죠. 그게 제일 중요한 얘기였죠.”
재환의 말에 한사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재환 님 말에 전부 다 대답하는 건 어려워요. 사람에 따라서 대답이 전부 다 제각각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힘을 얻으려고 이곳에 모이고, 어떤 사람은 호기심을 채우려고 이곳에 모이고, 어떤 사람은 신적인 존재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모이거든요. 목적이 제각각인 만큼, 사람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질문인 거죠. 그러니까 제 입장에서 대답을 해 드리자면…”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 모든 게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주님께서 사람들한테 시련을 내리고, 마지막까지 시련을 이겨낸 사람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거죠. 천국에는 아무나 갈 수 없는 법이니까요.”
재환은 변함없이 기독교에 충실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는 것이 그녀의 신념을 비하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믿기 힘든 얘기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 여자를 무시할 순 없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건데, 적을 사서 만들 필요는 없는 거니까.’
세상에 괴물을 풀어놓은 것에 신적인 존재가 개입했다는 것 자체는 동의할 수 있었다. 그는 괴물들 위해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은 존재인 성자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런 성자들을 뛰어넘는 존재인 ‘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냥꾼들에게 시련을 내리는 ‘신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 ‘신적인 존재’에게 선량한 의지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만약 그런 존재가 정말 선량하다고 가정한다면, 사냥꾼들이 겪는 비극을 방관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그렇고. 강철우도 그렇지. 행복한 사냥꾼 같은 건… 무지하거나 무지해져야만 될 수 있는 거니까. 바보가 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이지.’
그가 알고 있는 한 사냥꾼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첫 번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기만처럼 느껴졌으며, 그렇기에 그는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몸과 정신이 모두 무너질 수 있음에도 성자를 쫓아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에게는 오직 이 길만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끝을 볼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궁금한 게 더 있는데요.”
재환은 그렇게 운을 뗀 뒤 말을 이었다.
“한사랑 씨는 이 ‘서바이벌’이라는 거에서 어디까지 살아남아 봤어요? 아니면 이 서바이벌의 끝에 뭐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겁니까.”
“그건 아무도 몰라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그렇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입을 연 뒤 손에 쥔 십자가를 매만졌다.
“사냥은 끝이 없고, 새로운 무대가 나오면 밤은 더 가혹해지죠.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는,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당장 저만 해도 수백 번을 넘게 도전했어도, 아직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거든요.”
“…….”
재환은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들으며 창가를 바라봤다. 창가에는 심해처럼 새까만 어둠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고, 이 심연을 수백 번 넘게 보아왔을 그녀의 심정이 어떨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에 뛰어든다는 건 다들 똑같은 거지. 여기가 왜 사냥꾼들의 종착역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군.’
악몽이 끝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사냥꾼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약을 쓰거나 자해를 하지 않는 이상 회귀자들은 언젠가 이 악몽이 끝나길 원할 수밖에 없고, 악몽이 끝나길 원하는 회귀자들에게 샬롬이란 존재는 등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날벌레들이 등불에 가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앞서가던 날벌레들이 타오르는 걸 보더라도, 불빛에 이끌려버린 이상 되돌아갈 순 없는 거겠지.’
샬롬에 온 사냥꾼들의 처지가 등불에 이끌린 날벌레나 다름없음을 깨달은 재환은 나직하게 숨을 내쉰 뒤 한사랑에게 물었다.
“그러면… 만약에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보아하니… 페널티가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페널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페널티니까요. 굳이 하나가 있다면… 기억이 흐릿해지는 거? 그 정도겠죠.”
“기억이 흐릿해진다고요?”
“네, 말 그대로예요. 샬롬에서 죽고 나면, 그다음에는 정신이 살짝 몽롱해지라고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꿈처럼 느껴지고, 기억을 더듬어야 지난번에 있었던 일들이 흐릿하게 기억나는 거죠.”
대답을 끝낸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재환에게 말했다.
“저는 이것도 주님의 배려라고 생각해요. 죽은 기억이 계속 쌓이다 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언젠가 정신이 무너졌을 테니까요. 이 세상 자체가 우리들을 고문하려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증거죠. 꽤 그럴싸하지 않아요?”
그 말에 재환은 그녀가 어째서 아직까지 신앙심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상황이 지옥 같을수록, 의지할 만한 게 더 필요한 거겠지.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멘탈이 부서져 버릴 테니까. 그리고 보아하니…’
재환은 열차에 탑승했던 사냥꾼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에 들어온 이상, 나가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죽어도 여기에서 되살아나게 했을 리가 없지. 정말 여길 만든 신적인 존재가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거면, 서울의 외곽에서 부활시키는 대신 여기서 부활하게 했을 리가 없는 거니까 말이야.’
회귀자들에게 육신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에 불과했고,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란 정신의 죽음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죽을 때마다 회귀자들의 기억을 모호하게 한다는 말에서 싸늘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샬롬을 관리하는 ‘무언가’가 회귀자들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워할 것도 없지. 안식은 이제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게 됐으니까.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게 있으면… 알아서 낚아채는 수밖에 없는 거지.’
그에게 죽음이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익숙하기 짝이 없는 관념이었다. 이는 괴물이 된 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살해당했을 때부터 뼛속에 새겨진 저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등불이 보이네요.”
열차가 긴 어둠을 지나 한참을 내달렸을 때, 한사랑은 밝아진 창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개 너머에서 빛나는 게 샬롬의 등불이에요. 서울만큼은 아니어도, 저기도 꽤 번화한 도시죠. 지금은 안개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말이에요.”
그 말에 재환은 창가 너머에서 빛나는 등불을 바라봤다. 창밖에서 보이는 샬롬은 안개로 인해 낮임에도 불구하고 등불이 빛나고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으니, 지금 잠깐 눈 좀 붙이셔도 돼요. 내릴 때쯤에는 제가 깨워드릴게요.”
쪽잠을 권유하는 한사랑의 말에 재환은 의아해했고, 한사랑은 그 표정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낮에 자 두지 않으면 밤에 고생하거든요. 사냥꾼이 밤에 사냥하는 건 샬롬이든 서울이든 마찬가지지만, 샬롬의 밤은 유독 혹독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