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97
공방과 신비의 도시 (3)
해 질 녘에 가까워지고 사냥꾼들이 퇴근하기 시작할 무렵, 화약 공방에서 볼일을 끝낸 재환은 공방에서 얻은 물건들을 가지고 한사랑이 준비해 둔 거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반나절 가까이 화약과 폭연에 파묻혀서 일하던 그의 얼굴에는 거무죽죽한 검댕이가 묻어있었고, 온몸에서는 매캐한 화약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지만, 일을 끝내고 나오는 그의 발걸음은 그다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려서 다행이야. 한사랑 쪽에서 인맥을 알아봐 준 덕분에 기술을 비싸게 팔아치울 수 있었으니까. 그 여자 도움이 아니었으면 처음 가져온 물건들로 그냥 밤을 보내야 했겠지.’
현대 화기 만큼은 아니었지만, 화약 공방에서 얻은 폭발물은 현대의 수류탄 정도는 충분히 대체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화약 공방에서 개발한 ‘점착 폭탄’은 웬만한 건물의 외벽 하나 정도는 무너뜨릴 위력을 지니고 있었고, 날붙이에 폭약을 넣어 만든 ‘폭발 단검’ 같은 무기는 두꺼운 외피를 지닌 괴물에게 결정타를 넣을 때 쓸모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탄약도 충분하고, 폭약도 충분히 모아뒀지. 폭발 단검 같은 건 작대기에 끼워 쓰기도 좋고 말이야. 준비는 이만하면 됐어.’
거점을 향해 걸어가던 재환은 고개를 돌려 해가 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흘끗 바라봤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일상생활을 하던 시민들이 하나둘 귀가하고 있었고, 사냥꾼들은 근거지로 삼은 건물을 개조하는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밤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인 거야. 사람이 사는 거리는 사라지고… 괴물이 들끓는 거리가 될 때까지 말이야.’
화약 공방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외지에서 온 사냥꾼들이 쉴 틈 없이 분주하게 일을 하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샬롬에서 수십 년을 넘게 살아온 베테랑도 있었지만, 그런 베테랑도 땀 흘리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화약과 폭발물을 만드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 쉽지는 않을 거야. 닳고 닳은 사냥꾼들이 괜히 피땀 흘려서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아무리 내가 바깥에서 괴물을 많이 사냥했다곤 해도, 여기서 괴물을 사냥하는 걸 만만하게 봤다간 개죽음당하는 건 순식간이겠지.’
모든 사냥꾼이 밤이 올 것을 성실하게 대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리 곳곳에는 사냥꾼으로 보이는 자들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술을 마시거나 마약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아저씨도 한 대 필래? 와일드 헌트! 와일드 헌트가 오기 전에 미리 천국에 가 있어야지! 은화 두 닢이면 맛 좀 보게 해줄게.”
재환은 자신을 향해 마약을 권하는 약쟁이 사냥꾼 하나의 권유를 무시하며 거리를 걸어갔다. 그는 자신에게 마약을 권유했던 사냥꾼을 경멸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냥군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기억을 모호하게 해서 정신을 보호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지. 몇백 번 씩 죽고, 똑같은 곳에서 계속 되살아나는 건 맨정신으로 하기 힘든 짓이니까. 오히려 저런 반응이 더 사람다운 반응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 역시 수백 번을 넘게 죽은 사냥꾼이었기에 저런 사냥꾼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냥꾼일지라도 수십 년이 넘게 죽고 죽이는 사냥을 경험하다 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미쳐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런 식으로 망가지지 말라고 기억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그것도 완전한 건 아닌 모양이야. 여기가 사냥꾼 성자가 관장하는 영역이라고 가정하면… 사냥꾼 성자라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니라는 뜻이겠지. 이걸 좋은 소식이라고 봐야 할지 나쁜 소식이라고 봐야 할진 애매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화약 공방의 거리를 지나 한사랑이 말했던 거점에 도착했을 때, 재환은 반쯤 요새나 다름없이 개조된 숙소의 모습을 통해 이 숙소를 개조한 사냥꾼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건물의 외벽은 물론이고, 창문까지 철판을 깔아놓다니. 이 정도는 돼야 샬롬에서 안심하고 잘 수 있다는 건가 보군.’
한사랑의 말에 의하면, 숙소 개조를 담당하는 사냥꾼은 혈맹에서 지원을 받는 대신 다른 사냥꾼들이 사냥한 괴물의 피를 먼저 받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사냥꾼의 신체 능력은 회귀를 할 때마다 처음 샬롬에 왔을 당시의 수준으로 고정되기 때문이었다.
‘강한 사냥꾼은 그만큼 더 괴물을 사냥하고, 약한 사냥꾼은 사냥 대신에 일을 더 많이 하고…. 겉으로 봤을 때는 꽤 괜찮은 시스템이지만,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지.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는 조직일수록, 속은 썩어 있기 마련이니까.’
재환은 사냥꾼 혈맹이라는 집단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었고, 반쯤 불사나 다름없는 회귀자들 집단이 부패하지 않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깊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긴 하지. 사냥꾼 혈맹이 얼마나 썩어있든, 도움이 되는 집단인 건 사실이니까. 괴물의 피를 더 받을 수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이득이지. 나한테 먼저 적대적으로 구는 게 아니라면… 굳이 잘살고 있는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릴 필요는 없지.’
결론을 내린 재환은 사냥꾼 혈맹에 대한 생각을 접어둔 뒤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여섯 명 정도의 사냥꾼들이 숙소를 개조하는 것을 마무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재환이 들어오는 것을 흘끗 바라본 뒤 고개를 숙여서 간단하게 인사를 건넸고, 재환 역시 고개를 숙여서 그들의 인사에 대답했다.
저들은 이 숙소에서 살 예정인 사냥꾼이 아니라 숙소를 개조하기 위해 온 사냥꾼이었다.
‘저 사람들은 저 사람들 일에 집중하고, 나는 내 일에 집중해야지.’
숙소의 상층부에 준비된 자신의 방에 도착한 재환은 짐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여기가 어떤 곳이든, 어떤 사람이 사는 곳이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사냥꾼은 사냥을 잘하면 그만인 거야.’
짐을 내려놓은 재환은 몸을 씻으러 가는 대신 의자에 앉아 쪽잠을 취했다. 이제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괴물이 나타날 것이고, 온몸에 괴물의 피를 뒤집어쓰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떨어진 뒤 달이 떠오를 무렵, 그는 한사랑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 뒤 숙소의 1층으로 내려갔다.
괴물이 되는 것은 사냥꾼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집 안에서 괴물과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 * *
“미리 들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몇 분 정도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미리 본 미래가 반드시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저는 차라리 이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지금부터 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재환은 핸드캐넌을 꺼내 세 명의 사냥꾼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볼 수 있다는 건, 누가 괴물이 될지 미리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오늘 처음 본 세 분한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말이에요.”
괴물이 될 거라고 지목받은 세 명의 사냥꾼은 그 말에 난처해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재환의 말에 크게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괴물이 되는 일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한테도 예언자가 찾아왔구만.”
“처음부터 예지 능력을 가진 채로 오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긴 하지만, 부럽다기보다는 안쓰럽네요. 그만큼 고생했다는 뜻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예언자가 나왔던 게 거의 10년 전이었으니, 오랜만에 나오긴 했군.”
마지막으로 말한 중년의 사냥꾼은 재환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곧 괴물이 될 예정이라는 것을 들었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동요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자네 예언이 틀렸으면 하네. 괴물이 되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기도 하고, 예언자들은 보통 끝이 안 좋거든. 완전히 미쳐버리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거나. 지금까지 예언자가 여섯 명이나 있었지만, 예언자들의 말로는 언제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중년의 사냥꾼은 그렇게 말한 뒤 재환에게 악수를 건넸다.
“예언자인 건 조금 전에 이미 증명했다고 하니, 자네 예언이 틀릴 리는 없겠지. 무운을 비네.”
예언자인 것을 증명하는 것은 재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샬롬에는 여섯 명의 예지 능력자가 있었고, 덕분에 샬롬에서 사는 사냥꾼들은 예언자를 구분하는 절차를 만들어뒀기 때문이다.
앞으로 고르게 될 카드를 맞추거나, 하게 될 말을 미리 읊는 방식으로 재환은 자신의 예지 능력을 증명했고, 그 결과 세 명의 사냥꾼은 잠시 뒤에 괴물이 된다는 사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만에 하나 괴물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다행인 일이라는 생각 덕분이기도 했다.
“얼마 얘기는 못 나눴지만, 이런 식으로 해어져서 유감입니다.”
재환은 그렇게 말한 뒤 숙소를 같이 쓸 예정이었던 세 명의 사냥꾼들과 악수를 나눴다. 곧 있으면 예언이 실현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계탑이 저녁 9시를 가리키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 떠 있던 보름달이 푸르스름한 빛깔로 물들기 시작했고, 시계탑의 종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비명과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괴물이 되고, 괴물이 사람을 해치는 비극의 막이 오르자 재환은 미리 예지해뒀던 대로 악수를 하던 손을 뗀 뒤 괴물이 되기 시작하는 사냥꾼들에게 총을 겨눴다.
그가 총을 겨눈 방향에 모여있던 사냥꾼들은 모두 몸이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괴물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직이예요. 사람인 채로 죽게 두고 싶으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한사랑은 방아쇠를 당기려는 재환을 말리면서 말했다.
“완전히 괴물이 되면 죽여야 되거든요. 그러는 게 더 괴물에 가까운 피를 얻는 방법이라서요. 사냥꾼의 피만으로는 힘을 기를 수 없으니까요.”
그 말에 재환은 다시 한 번 예지력을 사용했고, 남은 사냥꾼들의 힘으로 괴물이 된 세 사냥꾼을 제압할 수 있음을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공방에서 오는 길에 와일드 헌트라는 말이 들리던데… 어원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어감 하나는 잘 붙인 것 같네요.”
재환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것을 멈추자 한사랑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와일드 헌트라는 건 일종의 백귀야행이에요. 괴물과 괴수들이 미쳐 날뛰는, 야성과 야수의 밤이라는 뜻이죠.”
한사랑은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가리켰다. 달빛이 내려앉은 샬롬의 거리는 괴물이 미쳐 날뛰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어있었다.
“샬롬의 밤이 혹독하다는 건 이런 뜻이었어요. 괴물이 되지 않은 사냥꾼도, 괴물이 돼야 괴물을 사냥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녀는 완전히 괴물이 되기 직전인 사냥꾼에게 총검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아직 메인 메뉴는 나오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 막 괴물이 된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애피타이저나 다름없거든요. 한마디로… 맛보기나 다름없다는 거죠.”
한사랑이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세 사람의 사냥꾼은 완전히 괴물이 되었고, 거점에 있던 사냥꾼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시계탑에서는 괴물 사냥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개막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