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98
와일드 헌트 (1)
괴물로 변한 사냥꾼들을 상대하는 일은 사냥이라기보다는 청소에 가까울 정도로 간단했다.
아무리 괴물이 된 사냥꾼이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갓 괴물이 된 이들의 상태는 갓난아기나 다름없었고, 이에 반해 이들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은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집도해온 베테랑인 데다가 만전의 준비를 다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괴물이 된 사냥꾼이 위험하다곤 해도… 이런 식이면 별수 없는 거지.’
사냥이 끝나자 사냥꾼들은 괴물의 사체를 해체한 뒤 숙소를 청소하기 시작했고, 재환은 괴물을 사냥하는 시간보다 뒤처리를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는 사실에 아이러니를 느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괴물로 변한 상대를 상대하다 보면 괴물에 가까워지는 법이니까. 여기에서 오래 산 사람들 실력도 무시할 건 못 되겠어.’
사냥꾼들의 솜씨는 훌륭했다. 괴물의 급소를 정확하게 노리는 사격 실력은 명사수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재빠르면서도 정교하게 무기를 휘두르는 솜씨는 외과 의사의 수술을 방불케할 정도로 훌륭했다.
‘수십 년씩 괴물 사냥을 하다 보면 좋든 싫든 다들 베테랑이 되고 마는 거겠지. 돌이켜봤을 때는 이미 늦었을 정도로… 괴물이나 다름없어지는 걸 테니까.’
사냥은 순식간에 끝났지만, 한순간의 사냥을 통해 재환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사냥을 하다 보면 사냥꾼들 사이의 기량은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냥꾼들 간의 격차를 나누는 것은 사냥의 기술이 아닌 사냥 이외의 요소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사냥꾼도 대전차 로켓에 기습당하는 건 피할 수 없었지. 나처럼 예지력이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 만약 싸우게 된다면 결국 장비랑 신체 능력, 그리고 지형이랑 상황에 따라 승패가 갈리겠지.’
담배를 입에 문 재환은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창밖을 바라봤다. 실내에서 날뛰던 괴물들은 이제 바깥으로 나와 날뛰고 있었고, 그 괴물들 중에는 괴물이 된 사냥꾼 특유의 기괴함을 풍겨오는 괴물도 있었다.
아무리 사냥꾼들이 팀을 이뤄서 대처한다고 해도 실내에 있던 사냥꾼들이 모두 괴물이 되거나, 괴물이 된 사냥꾼의 숫자가 남은 사냥꾼의 숫자보다 많을 경우에는 저런 식으로 실내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막는 게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처음 일주일 정도는 사냥꾼들끼리 협력해서 거점을 지키는 것이 정석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괴물… 사방에 괴물이 널려있어… 사방에 괴물이 널려있는데…’
재환은 숙소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은 사냥에 필요한 소모품이나 장비를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에 전념하고 있었고, 그는 이런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괴물로 변한 사냥꾼들의 신선한 피를 마신 이후 몸속의 피에 활력이 돌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고, 이대로 가만히 피가 끓어오르는 감각을 억눌러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사냥꾼이란 작자들이 자기 안전만 챙기고 있다니. 이래서야 저 괴물들 쪽이 사냥꾼이란 말에 더 어울리겠어.’
재환은 사냥꾼들이 ‘정석’이라고 말한 작전이 ‘정답’에 가까운 선택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저들은 첫 주차에 괴물이 창궐하는 현상은 인구수가 줄어들수록 쇠락하게 되고, 와일드 헌트를 이끄는 괴물의 성질에 따라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만 버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주차로 넘어가는 기차에 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 말이 사실이라면 끝도 없이 나타나는 괴물을 사냥하러 나가는 것보다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선점한 뒤 최소한의 괴물만 사냥하며 체력과 물자를 보존하는 것은 분명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괴물이 된 사냥꾼들의 피를 나눠마신 이후, 그는 온몸의 피에 열기가 도는 감각과 함께 괴물을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가라앉는 것 같기는 한데… 이대로 가만히 둘 필요가 있는 건가…’
그렇게 새롭게 깨달은 감각에 대해 고뇌하고 있을 때, 그는 한 사람이 자신을 향해 창가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덫을 놓고 사냥감이 오길 기다리는 것도 사냥꾼의 덕목이죠.”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던 재환은 자신을 향해 말을 거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에게 샬롬을 안내한 사냥꾼인 한사랑이었다.
“에피타이저로 배를 채웠다간 메인 디시를 먹을 여력이 없을 거예요. 재환 님도 예언자라면 알고 있겠지만, 괴물의 기준으로도 괴물 같은 괴물은 있기 마련이거든요. 성급하게 굴었다간, 굶주리고 지쳐있는 틈에 괴물들의 노리개가 될 테니까요. 저 사람들처럼… 비참하게 말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창문 너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곰을 닮은 괴물에게 끌어안겨서 질식당하고 있는 샬롬 시민이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죽어가는 샬롬의 시민에게서 처음 괴물에게 살해당했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요. 괴물을 이끄는 괴물이 여기에도 있다는 것도 알겠고요. 한사랑 씨 말대로, 함부로 나갔다가 괴물들에게 둘러싸이면 그대로 끝장이겠죠.”
그는 저 시민의 죽음이 자신의 첫 번째 죽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 시민은 괴물에게 허파를 압박당해 숨을 쉬지 못해 죽었고, 그는 허그베어의 괴력에 의해 장기가 파열되어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환은 샬롬의 시민이 괴물에게 끌어안겨 죽은 것을 본 뒤 자신의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괴물을 사냥하는 것은 설령 몸이 원하지 않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냥꾼은 사냥을 해야죠. 사방에 사냥감이 널려있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죠. 괴물을 무서워하면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 되는 거니까요.”
그는 샬롬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냥꾼은 사냥을 할 때 가장 빛나는 법이었고, 불나방은 불길 속에 뛰어들 때 가장 밝게 타오르는 법이었다.
설령 온몸이 전부 불타올라 한 줌의 뼛가루만 남게 될지라도, 불길 속에 뛰어들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사냥꾼의 존재 이유였다.
“저는 지금부터 바깥으로 나갈 겁니다.”
재환은 담배를 창틀에 비벼 꺼트리며 말했다. 사냥꾼은 사냥을 외면하는 순간 사냥꾼이 아니게 되는 법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괴물을 사냥할 여력이 있음에도 괴물을 놔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덫을 깔고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사냥할 수 있을 때 사냥해두는 게 내 스타일에 맞거든요. 중간에 와일드 헌트를 이끄는 괴물이 나오더라도, 사냥꾼이 사냥을 멈출 수는 없는 거죠.”
샬롬에 익숙해진 사냥꾼들이 거점을 지키려는 이유는 겁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와일드 헌트를 이끄는 존재는 괴물의 모습을 한 재앙이었고, 이들이 지닌 힘이 자연재해나 다름없을 정도로 강대했기 때문이었다.
“와일드 헌트를 이끄는 괴물은 여러 이름으로 불려요. 가장 신비한 자. 폭풍의 기수. 기어오르는 악몽. 만물의 수집가. 괴물들의 괴물. 살점의 서커스. 이름도, 형태도, 성질도 모두 제각각이고, 나타나는 시기랑 활동 반경도 제각각이죠.”
한사랑은 그렇게 말한 뒤 두루마리 하나를 재환에게 던졌다. 역대 사냥꾼들이 와일드 헌트에 대해 기록한 문서였다.
“신비 공방의 기술로 만든 두루마리에요. 시간이 되돌아가도 내용이 변하지 않는 종이에 적은 거죠. 저는 다 외워뒀으니, 재환 님한테 더 쓸모 있을 거예요.”
두루마리를 펼쳐내 내용을 훑어본 재환은 이 두루마리가 피와 살점으로 만든 물건임을 눈치챘다. 높아진 지력이 사람의 감각으로는 알아차리기 힘든 부분까지 인지할 수 있도록 도운 덕분이었다.
‘회귀자로 만든 책인가… 어떤 식으로 만든 건지는 몰라도,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저 여자도 정상은 아니라는 뜻인 거겠지.’
하지만 그는 한사랑이 준 두루마리를 품 안에 넣었고, 자신이 그녀와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한 뒤 바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와일드 헌트의 우두머리를 부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호러라고 불러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죠.”
한사랑은 떠나려는 재환을 향해 충고했다.
“괴물들의 모습이 한 종류로 통일되기 시작하면 언제든지 돌아오세요. 그게 호러가 나오려는 징조거든요. 메인 디시는 그때부터가 시작이고, 혼자서는 다 못 먹을 테니까요.”
재환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철판을 덧댄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샬롬의 거리는 집 안에서 도망친 샬롬의 시민들과 시민들을 쫓아 집 밖으로 나온 괴물들로 인해 아비규환이 되어있었다.
‘사방에 괴물이 널려있고, 다들 괴물이 되기 마련이겠지.’
재환은 시민을 습격하려는 괴물의 뒤통수를 탈바꿈으로 내리치며 숨을 들이쉬었다. 사방에서 풍겨오는 피 냄새가 너무 짙은 나머지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고기가 물 밖을 떠날 수는 없는 거야. 아무리 물이 더러워져서 폐사할 것 같아도, 물 밖으로 떠날 수는 없는 거지.’
사람 크기의 괴물 하나를 반 토막 낸 재환은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 입가로 가져갔다. 진득하면서도 비릿한 핏물이 그가 사냥꾼으로서 살아있음을 증명해주었고, 그는 자신의 심장이 끓어오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다음 괴물을 향해 달려갔다.
괴물이 된 사냥꾼에게서 흘러나온 신선한 피를 마신 이후, 그는 자신을 거리로 이끈 감각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역시 나오길 잘했어. 저 안에 틀어박혀 있었으면, 별의 심장을 먹고 뭘 배웠는지 모르고 있었을 테니까. 속삭임이 안 들려도, 상태창이 안 보여도,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어.’
온몸의 피에 열기가 돌기 시작하자 재환은 괴물을 향해 뛰어올라 목을 내리쳤고, 그는 괴물의 목에서 튀어 오른 피를 입으로 받아 마셨다. 그리고 괴물을 사냥하자마자 괴물의 피를 마시면 피로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피는 생명의 근원이고, 피를 마신다는 건 생명을 마신다는 거지. 신선한 피가 가지고 있는 진가를… 이제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거야. 별의 심장과 위대한 피를 마시고…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뜬 거지.’
신선한 괴물의 피를 마시자 보관해둔 괴물의 피를 마실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활력이 느껴졌고, 그는 이 활력만 있다면 밤새 사냥을 나서도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정말 밤새 사냥을 해도 되는지 확인해 보자.’
그는 지력으로 깨우치게 된 피와 살점의 신비를 시험하기 위해 밤거리를 활보했다. 괴물과 사람으로 난장판이 된 거리에서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포식자로서 미쳐 날뛰고 있었다.
‘동이 틀 때까지 날뛰고 나면, 피로가 없어진 게 착각인지 진짜인지 알 수 있겠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각이 진실 된 것인지 입증하길 원했다.
별의 심장과 위대한 피로 깨우치게 된 이 새로운 감각이 그를 신세계로 이끌 동아줄인지 파멸로 인도하는 거미줄인지를 실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게 착각이면 몸이 지쳐서 안 움직일 테고, 제대로 느끼고 있는 거면 멀쩡할 테니까.’
그는 숨을 몰아쉬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다음 사냥감을 향해 달려갔다.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에는 어느새 리듬감마저 생겨나고 있었다. 괴물의 피를 마셔서 얻게 된 활력에 적응하고 있다는 징조였다.
‘마시고, 마시고, 계속 마시다보면…’
재환은 괴물이 늘어선 샬롬의 거리를 노려봤다. 안개 낀 거리에는 한때 사람이었던 괴물들이 기괴하게 뒤틀린 모습으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고 있었다.
‘언젠간 이 악몽이 끝날 때까지 날뛸 수 있겠지. 마지막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는 거지만 말이야.’
괴물의 피를 마셔서 얻은 고양감에 익숙해진 그는 리듬감을 유지한 채 괴물을 사냥하러 달려나갔다. 괴물이 미쳐 날뛰는 와일드 헌트 속에서 야성에 눈 뜬 사냥꾼은 다른 괴물들만큼이나 미쳐 날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