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99
와일드 헌트 (2)
사냥을 시작한 지 수 시간이 지났음에도 괴물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괴물이 된 사람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재환은 이유가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님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괴물의 모습이 비슷비슷해지기 시작하면 사냥을 그만두라고 했지.’
재환은 머리가 거머리처럼 변해버린 괴수와 괴인들을 토막 내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는 마치 괴물을 잡아먹기 위해 태어난 짐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닥을 박차고 벽을 뛰어넘어 괴물을 사냥했다.
‘와일드 헌트의 기수, 호러가 나타날 징조라고 말이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조만간이겠군.’
그는 얼굴에 묻은 괴물의 피를 닦아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뜬 달빛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하늘에 드리워진 구름은 한 줌의 달빛만을 남겨 놓은 채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지자 샤롬의 거리는 한층 더 어두워졌다. 괴물들이 난동을 부린 여파로 곳곳의 등불은 부서져 있었고, 집 안에 있던 시민들은 괴물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등불을 꺼트린 지 오래였다.
여기에 더해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까지 겹치자 샬롬의 모습은 지하철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도 더 유령 도시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게다가 괴물만 문제인 것도 아니지.’
재환은 괴물을 사냥하는 동안 공방의 거리 곳곳이 약탈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부분의 약탈은 과격한 성향의 사냥꾼들이 도시가 혼란스러운 틈을 노려서 주도한 것이었다.
‘사냥꾼들이라고 해서 전부 다 온건한 건 아니니까. 오히려 사냥꾼 전체를 놓고 보면 저런 사냥꾼들 숫자가 더 많을 거야.’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과격파들의 선택은 정답에 가까웠다.
어차피 샬롬의 시민들은 회귀가 시작되면 약탈당했다는 사실을 잊게 될 것이고, 설령 운 좋게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회귀자이면서 사냥꾼인 자들에게 복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굳이 다른 사냥꾼들이 약탈을 하지 않는 건… 번거로워서 그런 거겠지.’
재환은 갈수록 늘어가는 거머리 형상의 괴물들을 사냥하며 주변을 살펴봤다. 아무리 괴물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나온 자리에는 괴물의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자원이나 물건 같은 건 나중에 얻어도 되는 거니까. 고일 대로 고인 사냥꾼들의 시점으로 보면… 약탈 같은 건 첫날에 준비를 제대로 못 한 얼간이들이나 하는 짓처럼 보이겠지.’
예지력이나 신비가 없더라도 숙련된 사냥꾼에게 괴물을 사냥하는 일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수의 괴물에게 둘러싸이지 않도록 계속 위치를 바꾸고, 몸체가 단단한 괴물은 급하게 처리하려 하지 않고, 몸이 언제 지칠지를 가늠해서 쉴 곳을 찾을 수만 있다면 사냥꾼은 단 하나의 무기만으로도 몇 날 며칠이고 괴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
‘결국, 조심해야 되는 건 와일드 헌트의 기수밖에 없어. 약탈자들은 대부분 삼류 사냥꾼이라고 봐야 할 테니까. 그러면 내가 해야 하는 건…’
그는 괴물을 사냥하면 사냥할수록 자신의 몸놀림이 가벼워지고, 몸이 튼튼해지는 것을 느끼며 괴물의 피를 사냥했다.
‘와일드 헌트의 기수, 호러가 나오기 전까지 괴물을 사냥해 두는 거지. 강화할 능력치를 선택할 순 없어도, 괴물의 마시면 신체 능력이 강해지는 건 확실한 것 같으니까.’
그는 수백 번이 넘게 회귀를 거치면서 신체 능력이 강해지는 감각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를테면 근력이 상승하면 몸놀림이 가벼워지면서 더 거칠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민첩이 상승하면 반사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더 신속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으며, 내구가 상승하면 피부와 근육이 질겨지면서 자잘한 상처에는 생채기마저 나지 않았다.
‘고를 수는 없는 대신, 전반적으로 조금씩 올라간다고 봐도 되겠지. 한사랑한테 들은 얘기대로면, 이게 일반적으로 사냥꾼이 강해지는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야.’
상태창의 존재는 샬롬에 모인 사냥꾼들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신의 계시나 유령의 환청 따위를 들은 사냥꾼의 숫자는 적지 않았지만, 그것에 ‘상태창’이란 형태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소문이나 농담거리 취급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태창을 못 보는 건 아쉽지만, 이 상황 자체는 사실 나쁘지 않아.’
재환은 팔이 여덟 개 달려있는 곤충 형상의 괴물이 거머리의 형태로 변형되는 것을 보며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덕분에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생긴 거니까. 괴물 사냥에 과몰입하지 않으려면, 적당한 명분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새롭게 깨우친 피와 살점의 신비는 분명 훌륭한 것이었다.
신선한 괴물의 피를 마셔서 피로와 체력을 회복할 수 이 능력 덕분에 그는 수 시간 동안 괴물을 사냥하면서도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덕분에 그는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고도 항상 전력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괴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
비록 신선한 괴물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지만, 새롭게 깨우친 이 신비만 있다면 그는 적어도 일주일은 넘게 밤을 새워가며 괴물을 사냥할 자신이 있었다.
‘사냥에 너무 몰입하면 정신이 이상해지기 마련이니까. 너무 강한 자극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괴물을 사냥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지도 모르는 거니까.’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뜬 이후, 괴물을 사냥할수록 느껴지는 이 ‘활력’은 그에게 쾌락과 보람을 선사했다.
괴물을 사냥하라고. 더 많은 괴물을 사냥해 몸과 정신을 살찌우라고.
온몸이 괴물의 피를 갈망하는 이 감각은 분명 사냥에 도움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괴물 사냥에 지나치게 몰입함으로써 평정심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사냥은 수단이야. 사냥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되지.’
사방의 생물이 거머리에 가깝게 변하는 모습을 훑어보며, 그는 자신을 덮치려던 거머리 인간을 탈바꿈으로 후려쳤다.
‘사냥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괴물이 없어졌을 때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거니까. 괴물 없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괴물을 사냥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면 그때는 자살하는 수밖에 없을 거야. 자살하는 게 아니라면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미친 듯이 괴물을 사냥할수록 괴물 사냥에 미치지 쉽다는 사실에 그는 아이러니함을 느끼며 괴물들의 숨통을 끊었다.
그가 탈바꿈을 한 번 휘두르면 대부분의 괴물은 그대로 토막 났고, 설령 숨이 붙어있더라도 그다음 공격에는 숨통이 끊기기 마련이었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지.’
어느새 대부분의 괴물이 거머리의 형태로 변했다는 것을 확신한 재환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낀 구름은 달빛이 새어 나올 구멍만을 남겨둔 채 시꺼먼 비구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와일드 헌트의 주인. 가장 신비한 자. 살아 움직이는 공포…..’
재환은 달빛이 새어 나온 구멍에서 시꺼먼 ‘무언가’가 응어리지고 있는 것을 보며 시선을 집중했다. 달빛을 받아 응어리지는 ‘무언가’는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날개 달린 도마뱀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호러. 공포 그 자체라는 뜻이었지.’
날개 달린 도마뱀을 한 ‘무언가’의 모습을 살펴보던 재환은 두루마리를 손에 쥔 채 근처에 있던 빈 건물에 들어섰다. 조금 전에 일가족 전부가 괴물이 되어 그의 손에 퇴치당한 건물이었다.
‘왜 그렇게 불리는 건지 이제야 좀 알겠어.’
그는 예지력을 사용한 덕분에 알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저 ‘무언가’가 괴물을 이끌고 날뛰기 시작할 것이고, 하늘에서는 거머리가 비처럼 쏟아져 내려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으려 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렇기에 재환은 샬롬에 적응한 사냥꾼들의 조언에 따라 근처의 건물로 몸을 피한 뒤 두루마리를 펼쳤다.
‘괴물의 모습이 비슷해지기 시작하면 안전한 곳을 찾아 몸을 숨기라고 했지. 그리고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가 떠 있을 때는 그나마 괴물들이 잠잠해진다고 하니까.’
두루마리에 적힌 ‘호러’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수백 명의 사냥꾼이 모여서 지혜를 모아 꾸린 원정대가 한순간에 전멸하는 가하면, 직접 바라보거나 가까이에서 비명을 들으면 실성해버릴 정도로 위험하다는 기록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호러에게는 불가사의한 수준의 재생 능력이 있었으며,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른 종류의 호러가 나타난다고 하니, 닳고 닳은 사냥꾼들에게도 와일드 헌트의 주인은 ‘공포’라고 불릴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사냥꾼들이 수비에 집중한 거겠지. 어차피 죽일 수는 없으니, 괜히 힘을 빼봐야 소용없는 거니까.’
두루마리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냥은 허사로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재환은 하늘을 향해 날아간 거머리 기수를 올려다보면서 사냥에 대한 의지에 불을 지폈다.
‘그래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몇 건 없기는 하지만, 이 두루마리에도 호러를 사냥했다는 기록은 있으니까. 아무리 저 괴물이 성자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죽일 수만 있다면 죽이지 못할 이유는 없는 거야.’
하늘에서는 거머리가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거머리에 물린 시민들은 거머리에게 피를 빼앗겨 말라비틀어졌으며, 시민들의 피를 마시고 몸을 부풀어 올린 거머리들은 사람의 머리를 대신 차지하여 다른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저 괴물에게 성자에 준하는 힘이 있다는 의미였지만, 그럼에도 재환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호러를 보며 괴물을 사냥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와일드 헌트가 끝나는 건 생존자들의 숫자가 극소수만 남는 시점이라고 했지. 그때가 되면 샬롬의 정거장에 다음 주차로 향하는 열차가 온다고 했고, 선착순으로 열차를 타고 가면 된다고 말이야.’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 중에는 와일드 헌트에 대한 대비책들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와일드 헌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어떤 식으로 살아남고, 살아남은 다음에는 어떻게 다음 기차를 타면 되는지 역시 적혀있었다.
두루마리에 적힌 사냥꾼들의 기록은 호러에게서 도망쳐서 몸과 정신을 보전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재환은 두루마리의 충고를 흘려보낸 뒤 집안으로 기어들어오려는 거머리를 밟아 죽였다.
‘그렇다고 해서 시도도 안 해보고 그만두는 건 아깝지. 흉측한 괴물일수록 성자의 힘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저 괴물한테서 느껴지는 기운이 착각이 아니라면…’
재환은 날개 달린 도마뱀의 모습이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을 보며 ‘거머리의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저 괴물한테도 위대한 피가 있는 건 확실하니까. 별의 심장처럼 영구적인 건 아니어도, 위대한 피를 마시면 지력이 높아질 테니까.’
예지력으로 살펴본 미래에 따르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머리의 비’에는 일정한 주기가 있었다. 이는 저 ‘거머리 드래곤’의 힘이 무한한 것은 아니고, 그 사실을 통해 재환은 하늘에 떠 있는 ‘거머리 드래곤’을 사냥할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저 괴물도 언제까지고 하늘에 떠 있을 수는 없겠지.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완벽한 괴물도 있을 수 없는 거니까. 하늘에서 내려오게 할 방법만 찾으면… 그다음에는 사냥하는 일만 남는 거지.’
한동안 거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던 재환은 하늘에서 거머리가 그만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었고, 그는 다시 비가 내리기 전에 괴물을 사냥하러 거리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