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
‘여기선 그런 걱정 없겠지…….’
조금 늦게 살짝 안도감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어떤 상황에 휩쓸릴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다시 그 안도감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이렇게 여러 생각을 두루 거치며, 투란은 열심히 쉬지 않고 절벽을 기어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몸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곳, 거의 정상에 당도한 순간이 왔다.
뿌득, 키이익.
바닥을 긁는 휘고 굵어진 손톱이 억센 손가락 힘으로도 박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손바닥을 활짝 펼쳐 꽉 누른 채로 몸을 당겨 올릴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뭉쳐서 단단하고 무른 절벽이었지만, 막상 올라오니 아주 단단한 돌바닥이 채워진 곳에 도달한 것이다.
투란은 안개 낀 풍경을 둘러보며 몸을 올렸고, 일단 드러누웠다.
위가 보이는데, 안개가 가린 흐릿한 광경인데도 위가 괴상하게 뚫린 구멍이 보이는 처마 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건…… 아까 물줄기에 뚫린 건가?’
자신이 휩쓸려 내려온 물줄기가 절벽의 저 불거져 나온 부분에 부딪쳐 구멍을 내고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보니, 절벽이 마주한 색다른 풍경이 훤히 보였다.
눈앞에 흐릿하게 맴도는 안개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 보이는 풍경이었다.
한쪽은 푸른 얼룩, 다른 쪽은 붉은 얼룩으로 곳곳에 꿈틀거리는 누릇한 줄기가 강인 듯도 보이고 그냥 엄청나게 거대한 무슨 넝쿨처럼도 보였다.
투란은 높은 절벽 틈새에서 내려다보이는 세상 풍경이 이토록 낯설고 이상할 줄은 몰랐다!
잠시 멍하니 안개 너머를 보던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춥잖아?’
살갗 속으로 스며드는 안개가 차가운데, 몸 곳곳에서 안개를 들이쉬는 느낌이 뼛속까지 전해졌다. 그 차가움이 몸을 시리게 했고, 조금은 따뜻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안개 때문인가?’
쉼 없이 옅은 안개가 바람결을 타고 주변을 맴돌며 몸을 에워싸는 느낌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안개가 살아서 그의 몸을 날름댄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에이, 그럴 리가.’
설마 하는 생각부터 들었지만, 투란은 그래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하는 느낌이 일어나면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좋다, 이는 샤오콴 마을에서 애들도 아는 상식이니까!
한데 지금 투란이 뭔가 조심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투란은 안개 너머, 절벽이 마주한 풍경을 보던 것을 멈추고 돌아섰다. 날개가 없는 이상 저리로 가서 정말 뭐가 있는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걸어서, 기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이 절벽의 파인 틈새뿐이고 갈 수 있는 곳은 위에 뚫린 구멍뿐이다.
―아니, 틈새 안에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에서 이런 의견도 나왔다.
‘그러네? 어, 추워서 손발이 시리다!’
냉정한 의견을 긍정하면서 투란은 더 빠르게,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심장의 박동을 가속화하려 해 봤다. 어느 몬스터 헌터가, 불을 지필 수도 없을 정도로 추운 곳에서는 숨을 깊고 빠르게 쉬면 심장이 세게 뛰면서 몸이 따듯해진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 낸 것이다. 실제로 심심할 때 해 보니 약간이나마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추울 때는 해 볼 만하다 생각했던 건데…….
‘왜?’
돌연 의문이 찾아왔다.
지금 자신의 가슴에 자리한 심장은 몬스터 로드이기 때문에 형성해 낸 몬스터, 악마의 심장이다. 굳이 숨쉬기로 심장을 빨리 뛰게 할 필요가 있을까?
투란은 가슴에 집중했다.
촤아아아아, 두근!
당연하다는 듯이 가슴속에서 세찬 격류와 함께 맥동이 느껴졌다.
강한 피의 흐름이 몸속을 누볐고, 투란은 곧 차갑고 시리던 느낌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절로 감탄해서 낮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되는구나!”
천천히 돌아서며 팔을 휘둘러 보면서 투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악마의 심장 투란은 이 상황을 납득하면서도 뭔가 갸웃하는 듯했다.
―이 정도 추위는 몸을 위협하지 않는다만?
‘싫다고, 추운 게.’
―싫은 것은 위험한 게 아니다.
‘그러네.’
자신과의 대화가 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투란은 기꺼이 응했다.
어쩐지 이것이 지금 필요하다는 묘한 ‘예감‘이 있잖은가?
이 ‘예감’이 다시 한 번 과감하게 투란의 입을 움직였다.
“정말 위험하지 않아?”
어쩐지 거리가 생긴 듯한 자신의 심장을 향한 물음이었지만,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안개 사이를 가르는 파문이 되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다른 소리가 반응해 왔다.
투란은 흠칫하고 몸을 긴장시키며 앞을 노려봤다.
철벙거리면서 바닥에 드문드문 고인 물을 박차는 뭔가가 발을 질질 끌며 뛰어오는 소리가 났다. 이 절벽 틈새에서 누가 소리를 냈냐고 따지러 오는 듯했다.
‘아, 이거 실수했나?’
뒤늦게 숲 깊은 곳에서 함부로 소리를 내거나 냄새를 풍기면 안 된다는 사냥꾼의 격언이 기억났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투란은 이미 두 번이나 숨소리 아닌 말소리를 낸 것이다!
‘어? 두 번?’
투란은 엉겁결에 한 번 더 입을 연 것을 깨달았다.
몸이 시린 것을 털어 버리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감탄!
지금 다가오는 것이 첫 번째 소리부터 반응한 것이라면 의외로 별 볼일 없는 놈일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물론 그런 희망을 품었다 해도 가능한 한 절벽에서 멀어지기 위해, 철벙대는 소리가 다가오는 안쪽으로 재빨리 몇 걸음 옮겼다.
작더라도 세게 부딪치거나 해서 뒤로 자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억울하잖나?
투란은 등을 기댈 수 있는 자리까지 움직이고 멈췄다.
위에 뚫린 큰 구멍 안쪽으로 계곡처럼 파여 들어간 틈새. 선반처럼 튀어나온 절벽 정상의 바로 아래층처럼 자리한 지점에서 긴장한 투란이 낸 소리에 반응해 나타난 것이 있었다.
‘물구리!’
“엥?”
턱이 불룩 튀어나온 개구리 같은 머리통에 물고기 꼬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고, 갈라진 꼬리에 튼튼한 지느러미가 달린 괴상하게 생긴 녀석이 크고 꺼풀 없는 눈알을 굴리며 뛰어나왔다.
크기가 고작해야 20센티가 되지 않는 녀석은 춤추는 산맥에서나 볼 수 있다는, 개구리랑 물고기 사이에서 태어난 듯한 애매한 놈이었다. 사는 방식도 애매해서, 강처럼 흐르는 곳을 피해 고인 물만 찾아다녔다. 그렇게 물웅덩이 사이를 뛰어다닐 때에는 입안에 물을 잔뜩 머금은 채였다.
이런 곳에서 설마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먹을 것이다!
‘날로 먹어도 되려나?’
―먹는다!
소년 투란의 의문에 악마의 심장 투란이 간결하게 확인해 줬다.
절대로 구워 먹어야 한다는 것이 마을에서 배운 상식이었지만, 이미 이빨거머리도 씹어 먹은 마당에 더 따지는 꼴이 우습기도 했다.
그래서 투란은 물구리를 덮쳤고, 물구리가 뱉은 걸쭉한 물줄기를 뒤집어쓰면서 미끄덩거리는 놈을 어쨌든 잡았다. 두어 번 멀리 폴짝이며 물구리가 피하려고 했지만, 투란도 나름 격하고 빠르게 움직여서 결국 잡아챌 수 있었다.
잡고 나서 보니, 새삼 투란을 감탄하게 하는 물구리였다.
넝쿨의 잔가시가 미세하게 돋은 손에서조차 미끈거리는 살갗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 허물이 벗겨진 꼴이 보였다. 물기를 머금은 물구리의 살가죽은 미끈거릴 뿐 아니라, 뭔가 박혀 긁는 것에 대항해 껍질을 한 겹 벗는 능력도 있는 것이다!
‘처음 본다, 이거…… 설마 몬스터였나?’
물웅덩이를 찾아 우르르 몰려가는 물구리를 보면, 샤오콴 마을에서는 그물을 들고 뛰어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물로 덮쳐서 잡아다가 매달아 물을 다 뺀 다음에 말리고 구워 먹는 놈이니.
‘알 리가 없는 일이었구나.’
그물로 물구리 잡으러 뛰어다니는 애들이 뭘 알 수 있겠는가. 미끌거려서 잡은 적도 없는데.
으적, 오드득.
투란은 손톱과 이로 물구리의 턱을 열고 물을 마신 뒤, 바로 물구리를 물고 뜯고, 뼈까지 씹어 삼켰다.
강하게 맥동하는 악마의 심장이 거침없이 피의 격류를 일으켰고, 입에 들어온 것은 아래편 창자로 내려가기 전에 목구멍과 위장에서 모조리 핏줄 속으로 흡수되었다. 물구리가 꽤나 영양가 있는 비상식량이 된다는 말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먹은 것을 바로 힘으로 바꾸면서 투란은 물구리가 나온 쪽으로 들어가 봤다. 물구리가 또 나올 수도 있고, 혹시 나갈 길이 있을지도 모르잖은가?
‘이런…….’
꽉 막혀 있었다.
대략 20여 미터의 희망은 그냥 작은 물웅덩이 하나를 놓고 끝났다.
물웅덩이 안쪽에는 알이 깨진 껍질이 여럿 보였는데, 부화하지 못한 채로 껍질이 깨져서 뭔가 되다 만 살덩이가 괴상하게 흘러나온 꼴도 있었다.
사람으로서는 보기만 해도 토악질을 해야 할 듯한 광경이었지만, 투란은 거기에 살짝 손을 담갔다. 손을 에워싼 살갗에서 눈에 뜨일 정도로 굵은 실 가닥의 넝쿨이 돋아나 작은 물웅덩이의 걸쭉한 물을 삼켰다.
‘별로인가.’
산 채로 뜯어 먹은 물구리에서 느꼈던 활력이 없었다.
입으로 마셔 보자는 생각이 슬쩍 튀어나왔지만, 투란은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라면 피할 수 없겠지만 이미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다. 사람다운 점을 유지해야 몬스터가 아닌 몬스터 로드라 할 수 있잖은가!
투란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힘이 있을 때 얼른 더 위로 올라가야 했다.
저런 걸 삼키지 않으려면!
‘그래도 먹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악마의 심장이 던지는 이 유혹을 떨쳐 내려면!
“후아아아!”
커다란 구멍에서 작은 점 같은 머리를 밀어 올리면서 투란은 입을 열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몸은 축축했고, 팔다리는 힘을 잔뜩 쓰는 탓에 벌벌 떨렸다. 거의 거꾸로 매달리는 꼴이 된 마지막 부분이 특히 힘겨웠다. 아래쪽은 그나마 무른 구석이 있어서 어찌어찌 손가락을 꽂으며 올라왔는데, 위쪽은 단단해서 손톱과 넝쿨의 실 가닥으로 힘껏 움켜쥐고 매달려야 했다.
“후으읏!”
다시 숨을 요란하게 들이쉰 투란은 구멍으로 어깨를 내밀고 가슴을 밀어 올린 다음, 몸을 겨우 구멍에서 끄집어냈다. 구멍의 크기로 보자면, 아래편에 있던 조약돌 하나가 올라온 셈이었다.
혹여나 다시 구멍으로 굴러떨어지면 아래층이 아니라 아예 절벽 저 아래일 수도 있기에 투란은 잠깐 배를 깐 채로 기어 구멍에서 멀어졌다.
결국 지친 몸을 뒤집어 눕고 나서야 주변 풍경이 확 달라진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구멍 아래를 채웠던 안개가 정상에서는 아예 없어진 때문이었다. 모든 것의 색채가 뚜렷하게, 아주 먼 하늘의 구름이 지닌 그림자의 굴곡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어?’
이전에도 지쳐서 하늘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섬세하고 정밀하게 본 적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투란은 겨우 알아차렸다. 눈알에 번져 있는 넝쿨의 실 가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실 가닥이 무슨 팔다리의 힘줄처럼 눈알을 구기고 당기면서 투란의 시각에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더 멀리, 더 자세히 보도록!
‘오러 윌더가 한다는 감각 강화 같은 건가?’
어이가 없어 실실 웃음이 새 나왔다.
몸의 힘줄도 아니고 설마 눈알 속에서까지 이럴 줄이야!
그렇게 잠시 멍하니 하늘만 보던 투란은 곧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절벽이 마주 보는 저편의 뭔가를 노리고 가는 맹수처럼, 투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구름이 향하는 곳을 봤다.
기괴하고 이상하며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지각’과 ‘인식’이 투란을 휘감았다.
구름이 향한 곳으로 세상이 몰려가고 있었다.
안개가 가리고 있던 곳이 선명한 색채로 훤히 보이는 지점으로.
‘저게…… 뭐지?’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숨을 죽이는 듯 맥동을 거의 멈추는 것을 느꼈다.
새카만 뭔가였다.
텅 비어 있는 곳, 새카만 구름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 안에 벼락의 비를 쏟아부었다.
바위가 불길을 뿜어내며 그 빈자리를 채울 듯이 격돌했다.
너무 멀어 굵은 녹색의 이끼처럼 보이는 나무줄기들이 그 자리를 후려쳤다.
투란이 가까이서 겪었던 황색의 질풍이 꿈틀거리며 그 주변을 휘감고 덮쳤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뭔가를 짓누르려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새카만 빈자리는 그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뿐이었다.
투란의 마음이 심장의 고동과 함께 잠시 정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혼령의 깊은 곳까지 정적에 물들었을 때, 한 가닥 심상이 투란의 정신을 찔렀다.
‘허무……!’
순간 심장이 멎었고, 투란은 기절하고 말았다.
천천히 투란의 몸이 뒤로 넘어갔고, 거대한 고요의 격동이 새카만 뭔가로부터 뿜어져 나와, 몰려드는 것들을 한꺼번에 침묵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