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
—그렇군. 분명히 인간다운 생각이고…… 맞아, 키린도 그렇게 생각했지.
웃음을 그친 드라고니아가 투란을 향해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말투는 투란에게 묘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널 나에게 넘겼어? 너 이렇게 마법도 쓰고 떠드는 것 보니까 그 계약인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왜 왕자님이 나에게 널 넘겼지? 파랑…… 블루 팽이 아무리 재밌는 몬스터 돌멩이라고 해도, 너랑은 비교가 안 되잖아.’
좀 전의 정리된 생각과 다르게 투란은 호기심 가득한 소년처럼 묻고 있었다.
별빛 무리는 그런 투란을 향해 한편으로 어둡고 한편으로는 밝아지는, 빛의 휘장을 흔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내 담담하고 깊은 울림이 담긴 물음이 빛의 잔잔한 파문을 보이며 흘러나온다.
—투란, 너에게 나와 키린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해졌지? 어째서 내가 에테온에서 난동을 부리게 되었다고 들었나?
‘응? 그거야…… 그냥 갑자기 미친 거 아니야? 원래 뭐든 미칠 때가 되면 그냥 미치는 거라던데……. 뭐, 이야기꾼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하긴 했지만.’
갸웃거리는 대꾸였고, 정확한 이야기 따위는 모르는 말투였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투란을 향해 다시 말한다.
—조금씩 다르다……라. 그래, 너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가장 납득이 되던가?
‘응?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그거야, 불꽃 왕을 해방시키기 위해 덤볐다는 건데…… 아, 넌 모르지?’
투란의 대답에 별빛 무리가 조금 세차게 맥동했다.
—해방?
‘어. 드라고니아는 불꽃 왕을 섬기는데, 그 불꽃 왕이 키린을 섬기는 걸 보고 왕을 해방시키기 위해 미쳐 날뛰었다는 이야기야. 불꽃 왕의 명령에 따르면 키린에게 덤빌 수가 없어서 미쳐 날뛰었다고…….’
—넌 그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은데?
조금 의아한 듯한 드라고니아의 물음이었다.
‘음, 그야…… 몬스터가 되어 날뛰는데 딱히 이유는 필요 없잖아. 가만히 멍하게 몇 달이나 꼼짝도 않던 바위 괴물이 느닷없이 날뛰는 것에도 이유가 없고…….’
—연금술사나 마법사가 들으면 널 산 채로 잡아먹으려고 할 소리구나.
‘헉! 아니, 왜?’
—세상의 섭리에는 인과율이라는 것이 있다. 섭리가 자리 잡은 순간부터, 그러니까 태어난 그 순간부터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말이지. 간단히 말하자면, 이유 없는 일은 없다.
‘쳇. 모르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네요.’
삐죽거리는 소년의 대꾸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되묻는다.
—그런 소리는 또 어디서 들었냐?
물론 투란은 그 출처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다들 아는 이야기야. 떠돌다가 찾아온 몬스터 헌터도 종종 그러던데, 세상에는 이유 없는 일도 많다고.’
—하하…… 하아…….
웃을 듯하던 드라고니아의 소리가 한숨으로 바뀌었다.
‘왜?’
삐죽거리는 소년의 의문이 바로 튀어나왔다.
잠시 후,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울려 나온다.
—섭리 안의 모든 일을 아는 것, 그런 전지(全知)는 섭리 안의 존재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인과를 다 알려 하지 말라고, 지혜로운 자는 그렇게 권한다. 네가 들은 말은 그게 꼬여서 잘못 전해진 거다.
‘진짜?어, 잠깐! 그러면…… 네가 왜 키린 왕자님이랑 계약하지 않았는지, 왜 거기서 날뛰었는지, 그런 이야기는 안 해 준다는 소리야? 몰라도 된다고?’
투란이 툭 꺼내는 말에 별빛이 잠시 산란하는 듯한 일렁임을 보였다. 이 광경은 투란에게 느끼게 해 줬다. 드라고니아가 망설이고 있다고. 그리고 이는 바로 소년의 감성을 자극해서 불쑥 한마디를 꺼내게 한다!
‘창피한 일이야?’
—……뭣?
‘그, 드라코 어쩌고 하는 데서 사절로 왔는데…… 미친 몬스터가 되어 날뛰다가 키린에게 잡혀서 삼켜졌잖아. 왜 그렇게 되었나를 말하기는 창피하냐고.’
—너에게는…… 그런 식으로도 이해가 되는 건가?
곤혹스러워하지만 신기해하는 듯도 한 기묘한 되물음이 흘러나왔다.
투란에게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드라고니아의 말투는 마치 창피함이 뭔가 모른다는 듯하잖은가.
‘음? 사람들은 자기가 창피한 일을 잘 말하려 하지 않는데, 드라고니아는 다른가? 그래?’
—명예롭지 못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고, 그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겨지지. 드라코눔의 일족이라면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순간 투란은 이상한 광경을 ‘보고 겪는’ 느낌이었다.
드라고니아의 이야기 속에서 뭔가 뭉클거리며 떠오를 듯 말 듯, 묘한 심상이 스쳐 갔다. 마치 그 순간에 투란 자신이 거기 있는 것 같았고, 스스로가 드라고니아가 되어 겪은 일인 듯했다.
그 광경은 희미한 그림자처럼 보이는 드라고니아 둘이 마주한 채로 이야기하는 ‘과거’였다.
“제가 사절로요? 어째서 제가? 저는 아직…….”
“인간에게 가는 사절이라 했잖나. 인간과 교류하려면 그들을 이해하기 쉬운 이가 가는 것이 당연하지.”
“전 인간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딱히 제가 더 잘 이해할 리는…….”
“그래. 바로 그렇게 의문을 품는 너의 버릇, 그게 인간들의 감성이랑 닮았거든. 그들도 종종 그러니까, 너라면 조금 더 쉽게 그들과 교류가 될 거야.”
“네!”
—내 버릇이라고 해야겠지. 나는 내 자신의 명예롭지 못한 일을 꺼내는 것이 싫다. 내가 지닌 긍지가 망가지는 것이 싫어. 그래서 이야기하기 꺼리는 버릇이 있다. 드라코눔의 일족으로서는 조금 희귀한 경우가 나야.
‘아, 그래.’
투란은 자신이 방금 ‘겪고 본’ 광경과 드라고니아의 말이 어딘가 맞물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묻거나 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말하기 싫어하는 드라고니아의 낌새가 분명한 일이므로.
하지만 대신 투란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불꽃 왕인가 뭔가 하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네가 에테온에서 날뛴 이유가 키린과 관계가 있기는 한 거였구나. 그래서 키린과 계약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러니까 키린은 널 그냥 내게 넘겨서…… 혹시나 계약이 되면 널 드라코눔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겠거니…… 한 거야?’
조리 있게 정리된 이야기였다.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는 듯한 말투로 되묻는다.
—또 섀도 하트냐?
‘에잇! 그냥 나라고, 나! 어쨌든 정리하면 그런 이야기 아냐?’
—비슷하다고 해 두지. 거기에 덧붙여서, 키린은 너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남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당장 해 줄 이야기는 아니었지. 그래서 나를 통해, 적당한 때가 되면 너에게 전해 주려 한 것도 있어.
‘펴, 편지?’
갑자기 나온 말이 투란을 살짝 겁먹게 했다.
키린의 편지라면, 눈알을 지져 대는 그것? 아니면, 온몸을 불꽃으로 잡아 묶고 지글지글 볶고 끓이는 그것?
어느 쪽이든 투란에게는 그다지 유쾌하고 신나는 경험이라고는 할 수가 없잖나!
별빛이 뭔가 흥미롭다는 듯이 반짝거렸다.
—그렇게까지 억지스럽게 처박는 것은 아니야. 물론 전혀 다른 것도 아니지만……. 그저 네가 그 편지를 받을 수준이 되면, 그보다는 쉽게 견뎌 낼 수 있기는 할 거라 생각한다.
‘겨, 견뎌야 하는 거야!’
—그때가 오기 전에는 비밀로 해 둘 필요가 조금 있어서 내 마법으로 감춰 둔 거다만…… 내가 딱히 키린의 말대로 할 필요도 없기는 하군. 어때, 지금 당장 편지를…….
‘하지 마!’
투란은 벼락처럼 반대했다.
* * *
그르륵.
땅을 긁는 덩굴줄기의 소리는 꽤 크고 웅장했다.
거리를 두다가 멈춰 버린 듯한 덩굴줄기의 모습에 살짝 다가오려 하던 흙도마뱀 무리가 놀라서 멀어져 갔다. 아무래도 앞서 나섰다가 줄기 꼬챙이에 꿰이고 바싹 말라서 으스러진 채로 잡아먹힌 흙도마뱀의 일을 기억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덩굴줄기는 그렇게 흙도마뱀을 꿰어 버리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대했던 형상을 더 세차게 조이면서 오그라들고 있었다. 마치 그 안에 두껍게 감싸고 있던 것이 더 이상 그 크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듯이.
굵고 거대했던 넝쿨의 알은 그렇게 계속 크기를 줄이면서 얄팍하고 촘촘한 형상으로 변해 갔다. 이윽고 사람 하나 정도를 담아 둔 듯한, 사람의 형상을 휘감은 고치처럼 뭉쳐진 형상만이 남게 되었다.
고치는 서서히 윤곽을 잡으면서 변해 갔고, 사람의 팔다리, 목, 몸의 형상을 드러내며 그 살갗 안으로 넝쿨의 가닥이 모두 녹아 사라졌다.
“푸아핫!”
얼굴을 덮었던 넝쿨의 실그물이 사라지면서 투란이 숨통을 터뜨리듯이 입을 열고 소리 냈다.
“아, 겨우 풀었네!”
손발을 꼼지락거리고 팔다리를 뻗어 보면서 투란은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러 몽거를…… 해체했나?
조금 어리둥절하고 살짝 놀란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뇌리에 울렸다. 먼저 투란은 주변을 둘러봤고, 아주 낮게 웅얼거리는 말로 대답한다.
“여태 풀어내고 있었잖아. 너랑 이야기하는 사이에 끝난 거지, 뭐.”
—꽤 빠르군. 한 열흘은 걸릴 줄 알았는데.
“켁! 여, 열흘?”
투란은 식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오러 몽거 한번 잘못 꺼내면 열흘씩이나 돌덩이 노릇을 해야 한다고 태연하게 지껄이다니!
“그런…… 아니, 잠깐.”
투란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하늘을 보며 가늠했다.
문장의 풍경, 심상 속에서 나눈 이야기가 꽤 길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다. 느릿느릿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했으니까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다 쳐도…….
‘하루도 안 지났는데?’
투란의 의문을 품은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대답해 준다.
—두 시간쯤 흘렀을 뿐이다. 아…… 인간의 시간 계측은 낮과 밤을 십이 등분으로 더한 것을 하루로 치던가?
‘그래,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다. 뭘 그리 꼬아서 묻냐!’
—그걸로 계측해서 두 시간 정도 지났다고.
‘잘도 알아차린다? 마법이야?’
—그래, 너…… 네 안에서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법이지.
‘음…… 날 훨훨 날게 해 주거나, 어딘가로 슝 보내 주거나 하는 거는 안 돼?’
—안 된다.
‘그럼 힘이 세게 만들어 주거나…….’
—안 돼! 불을 뿜는 것도, 얼어붙게 하는 것도, 벼락을 내리꽂게 해 주는 것도…… 전부 안 돼!
슬그머니 이것저것 다 물으려는 낌새를 눈치챈 듯, 드라고니아가 먼저 늘어놓는 말이었다.
‘쳇.’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투란은 두 손을 깍지 끼어 위로 높이 치켜 올렸다.
어깨가 꿈틀거리고 뱃가죽이 꿈틀거리면서 찌뿌둥한 몸이 풀리는 느낌이 찾아왔다.
‘아오, 이놈의 오러 몽거! 나도 오러를 쓰게 되었는데, 대체 왜 손발도 제대로 못 움직이냐고! 이 몬스터 녀석은 오러를 어떻게 쓰는 거야? 오러 쓰니까 오러 몽거인 거 맞나?’
투덜거리는 생각이 재빠르게 투란의 뇌리에 스쳐 갔다.
그리고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는 느낌이 분명하게 전해졌다. 방금까지 마법을 탐내다가 순식간에 딴생각으로 빠져 버리는 투란이 드라고니아에게 정말 신기하고 어처구니없는 모양이었다.
‘안 되는 일에 뭐 하러 매달려?’
그런 드라고니아의 표정을 마주 보고 말하듯, 투란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상큼하게 웃어 줬다. 그러고는 다시 팔다리를 움직여, 키린에게 배운 육왕의 궁정 무술 동작을 따라 해 봤다.
몸이 한참 굳어 있었던 탓인지 뿌득거리는 느낌이 억세고 짜릿하게 일어났다.
‘어라?’
투란의 가슴 깊은 곳에서 고동치는 악마의 심장이 돌연 ‘생각’을 전했다.
드라고니아와의 이야기, 그 종잡을 수 없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정리해 주던 것처럼 냉정하고 정밀하게 투란이 느끼는 감각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이었다.
‘오러가……?’
육왕의 비전이라고 투란이 배운 궁정 무술은 근본적으로 오러를 단련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때문에 그 움직임을 반복하다 보면, 오러가 특정한 흐름을 만들며 몸을 순환하는 것을 투란이 느껴야 한다고 했다.
한데 키린이 가르쳐 줄 때와 다른, 기묘한 흐름이 투란의 오러 속에 나타나고 있었다. 분명히 키린이 알려 준 오러의 방식과는 다른…….
‘이게 뭐지?’
투란은 이 새로운 오러의 흐름이 ‘낯익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왜 ‘익숙’하다고 느끼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런, 이건 오러 몽거의……!
투란보다 먼저 드라고니아가 눈치를 챈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