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1)
Chapter 199. 굴하람, 그림자와 만나는 곳
“웃차, 이제 다 내렸습니다!”
배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짐을 받아 든 헌터가 루헬을 향해 외쳤다.
루헬이 곁에 선 길잡이 노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정리 끝났군요. 이제 움직이면…….”
“인사는 해야지.”
서두르는 루헬의 말투에 길잡이 노인이 빙긋 웃음과 함께 느릿하니 대꾸했다.
조금 낯을 구기면서도 루헬은 자신들의 일행을 둘러보면서 외치고 있었다.
“장비 점검하고,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
쿨람이 그 말에 따라 일행 사이를 돌면서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헌터 일행은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면서 곁의 동료가 제대로 준비가 되었는가도 서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 광경 속에서 길잡이 노인이 한 걸음 벗어나 배를 올려다보며 외친다.
“이제 작별이오, 잘 가시오!”
기사의 배 위에서 기사와 그 종자들이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두엇이 손을 흔들었다. 배는 누런 물 위를 흔들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바람을 움켜쥔 듯한 돛이 삐걱거리면서 방향을 틀었다.
길잡이 노인과 루헬 일행은 그 배가 슬슬 좁아지는 누런 강물을 거스르며 멀어지는 광경을 얼마 동안 지켜봤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쿨람이 일행을 대표하듯이 묻는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언제까지……?”
물음이 끝맺기도 전에 길잡이 노인이 대답했다.
“아직 우릴 보고 있거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저쪽 물굽이를 돌아가면서 시야가 막힐 거야. 저쪽은 물길이 기울어지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까. 갔다가 그대로 돌아 나가려고 하면 꽤 힘들겠지만…… 뭐, 꼴 보니 이 근처 지형이나 물길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사한 부분이 있어 보였으니…… 검은 바다로 빠지는 저편 강줄기를 타고 나가겠지.”
조금 길게 나오는 이야기에 루헬이 다시 묻는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는 곳을 감추려고 기다리는 겁니까?”
“이미 굴하람으로 간다고 말했잖아, 감추는 것은 아냐. 그냥…… 감추는 시늉만 하는 것이지. 푸후훗.”
심술궂은 웃음으로 마무리 짓는 길잡이 노인의 대답이었다.
루헬은 물론이고 헌터 일행이 어이없어 노인을 바라보니, 낄낄거리는 표정과 함께 길잡이 노인이 말을 잇는다.
“오는 동안 이래저래 봤잖나. 우리가 정말 굴하람으로 가는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었지. 그러니까 말만 그래 놓고 사실은 다른 곳으로 가는 시늉도 좀 해 줘야지. 응? 아, 괜찮아. 저치들은…… 절대로 굴하람에는 들러 볼 생각이 없어. 뭐, 하려는 짓이 굴하람에서 떠들 만한 일은 아니니까.”
“저 기사 팀이 뭘 하려는가 알고 있었던 겁니까?”
루헬이 어이없어 묻고 있었다.
오는 동안 배 안에서 이래저래 몸은 편했지만 기사 일행과 헌터 일행 사이에는 조금 팽팽하게 서로의 상황을 파악하느라 눈치 싸움으로 꽤 피곤했다. 헌터 일행이 기사 쪽을 신뢰하지 않는 만큼, 기사 일행도 헌터 쪽을 의심하는 눈초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탓이었다.
중간에서 길잡이 노인이 꽤 재치있게, 연륜을 이용해서 무마시키고 있었기에 직접 손발을 움직이는 충돌은 없었지만 몇 번 가볍지 않은 말다툼은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서로의 의도를 캐묻는 일은 서로 피하고 있었는데…… 이 엉큼한 영감님은 이미 기사 쪽의 목적을 훤히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니!
루헬과 헌터 일행이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짓는 분위기를 돌아보며 길잡이 노인이 어깨를 으쓱하는 몸짓과 함께 대답을 꺼낸다.
“여기 찾는 기사가 저치들이 처음이 아니니까. 저렇게 배까지 몰고 온 경우는 없으려나? 뭐, 대형 마차로 캐러반을 만들어 온 경우는 있었다니까. 굴하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고 귀찮고, 짜증 나는 방문이었다더군.”
“왜 기사들이 굴하람의 묘지란 곳을 찾아옵니까?”
루헬이 물을까 말까 하는 사이, 쿨람이 냉큼 묻고 있었다.
헌터 일행은 대부분 ‘그래, 대체 왜?’ 하는 표정으로 길잡이 노인을 가볍게 노려보는 중이었다. 제 발로 걸어오는 수고를 덜기는 했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피곤한 뱃길 여행이 짧았어도 긴 것처럼 언짢았다고 시위하는 분위기였다.
서서히 저편에서 배의 형체가 물굽이를 돌아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길잡이 노인이 느긋하게 고개를 돌려 그 분위기를 확인하고는 혀를 차며 말한다.
“말하자면 긴 이야기가 되기 쉬운데…… 혹시 정령기사라고 들어 봤나?”
이 귀찮다는 듯한 되물음은 헌터 일행 사이에서 금방 반응을 이끌어 냈다.
“정령……?”
“어? 정령기사?”
“그 동화에 나오는 그거 아냐?”
“브로큰 킹덤 이전에 있었다던?”
“에아본, 고(古) 왕국 시절의 기사를 그리 부른다 하지 않았나?”
어리둥절한 것부터 두어 마디 들었던 시늉, 나름대로 이야기를 기억하는 모습과 함께 조금 섬세하게 옛날 역사를 뒤척이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 웅성거림을 잠시 귓가로 흘려보내는 듯하다가 루헬이 입을 다물고 눈살을 찌푸린 채인 쿨람에게 묻는다.
“뭐 아는 것 있나?”
길잡이 노인도, 웅성거리던 일행도 문득 갸웃하면서 조금 색다른 반응을 표정에 담은 쿨람을 바라봤다. 갑자기 자신에게 모인 눈길에 조금 전 길잡이 노인이 어떤 기분인가 짐작해 보는 듯한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쿨람이 말문을 열었다.
“엘리멘탈 피규어,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요. 수리학적 공예품이라고 불리는 기계 물품에다가 정령의 힘을 담았다고…… 아주 세심하게 수치화한 채로 정령의 힘을 발휘하는 고대의 마도구라더군요. 에아본이 브로큰 킹덤이 된 이후로는 사라졌다고……. 그 마도구를 간혹 정령기사라 부른다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건 춤추는 산맥에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호오? 꽤 잘 아는군? 맞아. 고대의 마도구 중에서 정령기사란 것이 있지. 하지만 에아본의 전유물(專有物)은 아니었어. 제국…… 평원의 제국에도 그 비슷한 유물이 옛이야기랑 함께 전해 오지. 이 땅을 지배했던 옛 왕국 이야기에도 정령기사의 전설이 몇 가지 있고 말이야. 그중에서 외지인, 춤추는 산맥이나 제국 귀족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전설은 에아본과 이쪽 사이에 거래를 통해 정령기사가 몇 기 이쪽으로 왔고, 유물로서 파묻혀 있다는 것이야. 그래서 가끔 저렇게 온다네.”
길잡이 노인이 제법이란 듯이 쿨람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헌터 일행은 대부분 ‘아, 그런 얘기였어’라든가 ‘귀족분들, 한가하구먼.’이라든가 ‘발굴이 아니라 도굴을 하러 왔나?’라며 혀를 찰 때, 루헬이 조금 전과 다른 날카로운 표정으로 길잡이 노인에게 묻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런 일을 굴하람 사람들이 좋지 않게 여기는 까닭이 뭡니까?”
싱긋, 웃음과 함께 자신의 짐을 챙겨 들고 돌아서면서 길잡이 노인이 느긋하고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채로 대답을 한다.
“굴하람에서는, 정령기사란 말 대신에 사령기사(死靈騎士)란 말을 쓰지. 언더섀도우, 검은 바다 너머의 북방 대륙에서 몰려 내려오는 마물(魔物)과 괴수(怪獸), 죽지 않는 자들을 막아 주는 수호신(守護神)이라 생각하고 말이야. 굴하람의 묘지 어딘가에 그런 사령기사가 잠들어 있기에 굴하람이란 마을이 아직 안전하다고 여기지.”
헌터 일행 사이를 지나가면서, 가야 할 곳을 향해 앞장서는 태도로 나오는 말은 루헬부터 시작해서 쿨람을 거쳐 헌터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차례대로 찌푸려지게 하고 말았다. 그리고 헌터 중 누군가가 중얼거림을 토해 모두의 마음을 표현했다.
“아니, 그러면…… 저 기사는 그 수호신을 훔치러 왔다는 얘기잖아?”
다들 입에 굉장히 쓰고 안 좋은 것을 담고 씹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니, 정령기사가 왜 이곳에서는 사령기사라 불린다든가를 따질 수가 없었다.
굴하람에 가서 말 잘못하면 그냥 수호신을 훔치러 온 도적 취급당할 상황이라니…… 기사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 좋을 듯싶잖은가. 함께 배를 타고 왔다는 것만으로 도적과 한패 취급당할 수도 있으니까!
만약 기사 쪽에서 일이 잘 풀려 그 수호신을 발굴해 가 버린다면, 그런 놈들이랑 함께 사이좋게 온 나쁜 놈들이라고 봉변을 당할 가능성도 있을 듯싶었다.
그렇다면 길잡이 노인은 그 상황을 피하려고 굴하람과 거리를 두고 배에서 내리면서 다시 볼 일 없기를 바란 것인가?
헌터 일행이 바쁘게 생각하고 웅성거릴 때, 앞장서서 나아가던 길잡이 노인이 흘깃 돌아보며 외친다.
“뭐 하나? 해 떨어지기 전에 마을에 들어가 잠자리 잡아야 하거든? 다른 사람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가깝다고 해도 두어 시간 거리야. 부지런히 가야 한다고.”
헌터 일행은 웅성거림과 툴툴거림을 흘려 내기는 했지만 길잡이 노인이 의뢰자란 것을 되새기면서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으적으적.
‘이 동네 고기 잘 말리네. 짭짤하고 맛있어.’
육포를 씹으면서 투란이 소리 내지 않고 웅얼거렸다.
한가한 햇살이 투란이 걸터앉은 담장 주변을 밝게 비추며 그늘을 드리웠다.
한 손에 육포를 감싼 주머니를 쥔 채로 투란은 조금 맹한 표정과 태도로 햇살을 즐기며 간식을 먹는 시늉을 하는 셈이었다.
―암염(巖鹽)이 꽤 풍부하니까. 늑대 고기를 살짝 조리해서 말린 것이라고, 이쪽 특산물이라고 자랑도 했잖아.
드라고니아도 왠지 한가한 말투로 투란에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산맥 남부, 춤추는 산맥 바깥쪽에서 개 잡아먹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늑대를 사냥해서 구워 먹는 동네는 또 처음인 것 같아. 사슴도 멧돼지도 토끼도 아니고 늑대만 전문적으로 사냥한다니.’
투란은 색다른 풍속을 감상한다는 듯이 다시 육포를 입에 넣고 씹었다.
굴하람이 자리한 인근 지역에는 바위가 많았는데, 그 지면을 뚫고 올라온 암반이 소금이 굳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형성된 암염을 굴하람 사람들은 꽤 여러 가지로 써먹고 있었다. 투란이 보기에는 주로 고기 말리는 일에 이용하는 듯싶었지만.
―음? 헌터 일행이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분위기를 바꾸듯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아아…… 이틀 넘겼지? 사흘 넘겼나?’
―나흘째다. 마을 사람들이 슬슬 너에 대해 이상하게 보고 있지. 멀리서 와서 대뜸 은 덩이를 내밀고 식량을 구하는 짓도 수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 뭘 하러 왔는데 멀뚱거리며 마을 방벽 위에 앉아 놀고 있냐고 말이야. 이쯤 되면 헌터 쪽으로도 몇 마디 새어 들어갈 것 같다만…….
‘뭐, 마주치지만 않으면 그냥 이상한 녀석이 오락가락하네 싶겠지. 그런데…… 배는? 기사 일당도 여기 볼일 있지 않았나? 굴하람까지 안내해 달라고 했잖아?’
심드렁하니 육포를 열심히 씹다가 투란이 갸웃했다.
―그게…… 아무래도 이 마을이 아니라 묘지 쪽에 목적이 있는 모양이야. 갈라지는 물길에서 저편으로 간 모양이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물이 있으니까 그 언저리에서 내려서 묘지에 바로 진입할 작정인가 봐.
드라고니아가 높이 띄운 프로브로 백여 킬로미터 너머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곧바로? 이쪽 사람들에게 뭐 묻지도 않고? 흐흠.’
투란은 눈가를 찌푸렸다.
마을에 들어와서 어영부영 쏘다닌 지가 나흘째, 밤에 길을 잘못 찾아서 해골들이 와그작거리는 광경을 엿보고 마을로 도망쳤다는 핑계를 대면서 이리저리 묘지에 대해 겁내며 묻는 시늉을 하며 알아낸 이야기가 있었다.
이 마을, 굴하람의 사람들은 낮에는 묘지 주변을 맴돌며 사냥도 하고 나름대로 관리도 하며 묘지를 진짜 묘지로 삼기도 하지만, 밤에는 수호신의 시간이라면서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바위 묘지기에 대해서도 굴하람 사람들은 직접 본 경우보다 건너고 건넌 소문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직접 바위 묘지기가 지는 해를 맞이하며 움직이는 꼴을 봤다는 녀석들은…… 담력 시험하려고 얼쩡대던 애들이었다.
철든 어른들은 결코 수호신의 시간에, 그 영역 근처에 머물지 않는 것이 굴하람의 풍속이라고 할 지경.
―묻는다고 해도, 아는 게 없잖아. 그 정도 정보는 어떻게 지니고 있었나 보지.
드라고니아가 굴하람의 상황을 짚듯이 말했다.
‘그야 뭐…….’
수호신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 시간과 영역에 대해 민감하면서도 굴하람의 주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그 실체에 대해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알면서 입을 다무나 싶었지만 입 싼 애들을 통해 ‘그냥 옛날부터 그랬다던데요.’라는 말을 듣고 나니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얻어들은 새로운 것이 있다면, 오래전에 굴하람의 방벽을 지어 줬던 은인…… 수호신의 영역이니 시간이니 하는 이야기의 근원이 되는 말을 해 준 이가 바위를 인형처럼 일으켜 세워 부리던 요정족이었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요정족이 묘지에 수호신이 머물고 있고, 밤은 수호신의 시간이니 가까이 가지 말라 했다나 뭐라나…….
으적, 으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