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2)
“늑대 고기? 그 육포라고?”
헌터들 사이에서 살짝 어이없다는 듯한 말이 나왔다.
앞장선 채로 거래를 하는 쿨람은 그런 낌새를 표정에 담지 않았다.
굴하람의 주민, 육포 항아리를 내놓으면서 이것이 이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최상의 여행용 식량이라고 말해 준 이는 그런 쿨람만 눈에 보인다는 듯이 외지인 중 누군가 뭐라 하든 상관없다는 담담한 표정과 태도로 가격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은화 열, 제국 은화로 열이고…… 고대 왕국의 은전이면 한 닢이면 되오.”
외지인이 어디에서 왔는가도 별 관심 없고, 자신이 파는 육포의 가격만 맞춰 준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말을 하는 셈이었다.
“먹어도 되는 거야?”
“늑대라면…… 가끔 몸에 독을 품지 않아?”
“음, 야생 늑대가 좀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뭔가 굴하람 주민의 상식에서는 납득할 수가 없는 웅성거림이 나오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이 서린 피를 지닌 늑대 따위는 여기 없소. 대삼림을 넘어오신 모양인데, 대삼림에서도 그건 마찬가지. 마물이 경계를 넘어 나돌아다닌다는 마경 산맥의 근방에서나 있을 거요.”
이 말은 쿨람 뒤에 늘어선 채로 구경하러 따라나온 몇몇 헌터가 입을 다물게 했다.
마경 산맥,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춤추는 산맥이란 호칭조차 낯설어진 곳, 여기 굴하람은 그런 지방의 작은 마을이라는 점.
로즈벨에서는 그래도 ‘춤추는 산맥? 아, 마경이라는 그곳 말이군.’이라든가 ‘마경인 그 이상한 산맥 말이군!’이라며 적당히 맞춰 주는 시장 분위기가 있었다면 굴하람에서는 ‘그게 어딘데?’라며 자신들의 삶과 완연히 격리된 다른 세상의 소문으로 여길 뿐이라는 것만 살갗 깊숙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쿨람은 그런 낯선 상황,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좀 빨리 결정하라는 재촉의 눈빛이 가득한 굴하람의 주민에게 간단히 되묻는 소리를 꺼내고 있었다.
“맛은 어떻소? 보존 기한은?”
여로에서 먹을 수 있는 육포라고 내놨지만 아직 구체적인 부분은 짚지 않았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동시에 이 늑대 고기로 만든 육포가 낯설다고 고백하는 말이기도 했다.
“소금간을 했고 일이 년은 문제없소.”
대답도 간결하게 나왔다.
쿨람이 다시 주민의 주변을 살피면서 묻는다.
“몇 항아리나 팔 수 있소?”
굴하람 주민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자신이 지닌 육포 항아리를 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진열한 항아리 모두를 팔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보였고, 쿨람이 항아리 수가 열다섯인 것을 세기가 무섭게 주민의 입에서 같은 숫자를 품은 답이 나온다.
“여기 있는 열다섯…… 하나는 반쯤 비었으니 열넷하고 반 항아리요. 음, 여행 중이니 항아리째로 가져갈 수는 없으실 테고…….”
조금 흐려진 말끝에 담긴 물음에 쿨람은 그대로 대답한다.
“적당한 배낭은 우리에게 있소. 그러면…… 이 정도 은전이면 되는 거요?”
달그락, 쿨람이 꺼낸 은전은 두 닢이었다.
처음 불렀던 가격과는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적은 수였다.
하지만 은전을 보는 굴하람 주민의 눈동자는 확 커졌다.
“어? 어…… 그런 은전이면…… 한 닢으로 다 가져가셔도 되겠는데.”
살짝 한숨을 쉬면서 망설임이 담긴 대답을 하는 주민이었다.
쿨람 뒤에서 지켜보던 헌터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춤추는 산맥에서 사용하던 은전이 산맥을 벗어나면서 은전(銀錢) 모양을 한 은괴(銀塊) 취급이란 것을 지켜봤지만, 한 닢이라고 말한 경우에는 무조건 통으로 한 닢 받는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얼뜨기라고 착각하고 이미 나온 한 닢이란 말을 우겨 보는 짓인데…… 이 굴하람의 주민은 잠깐 그런 욕심을 떠올리다가 스스로 억누르고 솔직하게 육포의 가격을 매긴 것이다.
대삼림을 거쳐 오는 와중에 들렀던 여러 마을에서 그리 좋지 못한 꼴을 봤던 탓인가, 이런 굴하람 주민의 정직한 태도는 헌터들에게 꽤 좋게 보였다.
그 호의를 담아 쿨람이 말했다.
“그러면 항아리 속 육포는 모두 사기로 하고, 은전 한 닢 더 벌어 보실 생각 없으시오? 이 근방의 일을 잘 몰라서 누가 이야기 좀 해 줬으면 싶은데, 이를테면 늑대 고기로 어떻게 이런 육포를 만드냐 하는 것부터 말이오. 낯선 곳에서 소소한 일이라도 우리에겐 아주 중요한 정보가 되는 일이 많아서 부탁드리고 싶소만.”
굴하람 주민이 눈을 번뜩이면서 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 일이라면, 기꺼이 말동무가 되어 드리리다. 음, 그러면…….”
이렇게 거래가 마무리되었다.
우적우적.
투란이 육포를 씹으니, 바로 드라고니아가 묻는다.
―그러고 보니 넌 독이 있냐 없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처먹고 있었네? 으흠, 너 너무 부주의한 것 아니냐?
살짝 놀리는 말투가 또렷했다.
한적한 골목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육포를 뜯어 먹으면서 길잡이 노인과 헌터 일행을 살피는 투란이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고 핀잔이라도 하고 싶은 듯한 낌새가 담긴 말이기도 했다.
서쪽의 가득한 구름, 하늘을 가득 채우며 치솟은 방벽 탓에 굴하람은 빠르게 해가 저물었고 늦은 밤의 풍경을 드러냈다. 그런 밤이 오면 재빨리 마을의 문이 닫히고 짧은 낮 동안에 오가지 못했던 사람들의 거래가 이뤄졌다. 때문에 어둑할 무렵에 굴하람에 당도한 헌터 일행이 화톳불과 횃불 사이를 움직이면서 마을 밤 시장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낯선 곳이었지만 저리 재빠르게 돌아다닐 수 있는 까닭은 길잡이 노인이 미리 이야기해 둔 때문인 듯했고, 아침이 밝으면 바로 주변을 살피고 출발할 수 있다고 말한 탓에 느긋하게 쉴 틈이 없는 모양인 듯했다.
얼핏 봐도 바로 보급을 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출발이라도 할 듯한 분위기가 헌터 일행 사이에 맴돌고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이야기 들을 수 있을 때 재빨리 챙겨 들으려 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듯 보이고…….
‘뭐, 나야…… 먹어도 안 죽는다는 거 아니까. 여기 사람들 다들 잘 먹고 있는 것 봤는데 뭔 문제가 있겠냐고.’
웬만한 독 따위는 통하지 않는 몸이란 것을 짚지 않고 투란은 오로지 굴하람 주민들을 살피고 내놓은 결론인 듯이 드라고니아에게 대꾸하고 있었다.
―죽지야 않지……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오래 먹어서 체내에 저항성을 갖춘 경우이고, 저 헌터들은 저걸 먹었다가는 며칠 고생할 텐데?
‘응? 뭐…… 내가 걱정해 줄 일 아니잖아? 게다가 다들 튼튼하니까 배탈 나는 정도야 잘 버틸 수 있을걸? 뭐, 길잡이 할배가 모를 일도 아니고…… 알면서 배탈 나게 두려는 것일 수도 있을까?’
―이모저모로 수상하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왜 그래야 하는가는 전혀 짐작도 못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게, 대체 지금 저 할배 뭐 하려는 걸까?’
투란은 갸웃했다.
쿨람을 비롯한 몇몇은 굴하람에서 구할 수 있는 보급품을 챙기는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적당히 믿을 수 있어 보이는 마을 상인에게 이런저런 주변 이야기를 탐문하는 중이었다. 그와 별개로 루헬과 함께 나눠진 다른 헌터 몇몇은 마을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살피고 있었다. 마을의 방어 상태, 마을 사람들의 대비책을 통해서 이곳에서 필요한 수준을 가늠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길잡이 노인…… 그는 미리 약속한 일이 있다면서 따로 굴하람의 아는 사람을 만난다고 했는데, 그 아는 사람은 투란이 나흘 정도 지켜본 굴하람에서 제법 튀는 인물이었다.
애들조차 ‘그 아저씨 못됐어!’라고 외칠 지경인 굴하람의 불량배…….
어디든 빨리 가 버리라고 굴하람에서 여러 사람이 얼굴 볼 때마다 으르렁거리면, 기꺼이 떠날 거라면서 이깟 작은 마을에는 미련이 없다 마주 으르렁거리는 불량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정작 떠나려 하면 가야 할 곳이 없어서 홀로 덫을 놓고 사냥을 하는 듯했는데, 그 덫을 놓은 자리가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이라든가 그래서 더욱 못된 놈이라 평해지는 작자였다. 마을 사람들 다니는 길목이라도 짐승이 툭툭 튀어나오기는 하니까, 사람이면 덫 표식을 보고 피해가라고 되레 큰소리쳐 대니 말다툼이 금세 주먹다짐이 되는 경우를 나흘 동안 두어 번 넘게 보기도 했다.
그런 청년에게 길잡이 노인이 대체 무슨 볼일인가?
“준비는?”
차분한 노인의 물음에 청년은 눈을 번뜩이면서 대꾸한다.
“약속은 지키시는 거죠? 꼭 지켜야 합니다, 진짜로요!”
한숨과 함께 노인이 다시 묻는다.
“준비는?”
자신이 을러댄 것이 효과가 있다고 여긴 것처럼 청년이 사나운 표정으로 겨우 대답을 꺼냈다.
“그림자 아래쪽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봤어요. 말씀하신 대로 늑대 뼈를 뿌려 놓으니까, 피를 바른 채로 뿌려 놓으니까 그림자 아래에서 스켈레톤 병정이 기어 나오더라고요. 그게 늑대 뼈를 노리고 나온 건지, 늑대 뼈에서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어요. 잘 봤지만, 나오자마자 늑대 뼈가 사라졌는데 분쇄된 건지, 그게 변한 건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무튼 그 근처의 스켈레톤 병정은 묘지의 것들이랑 달라요. 마을이랑 거리가 가까웠으면 마을까지 덮쳤을 거예요. 이거 들통나면 내가 또 누명 쓰고 욕먹는 일이라고요! 그러니까…….”
주섬거리면서 나오던 이야기가 다시 자신의 상황 쪽으로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노인이 손을 들어 그 마을 멈추게 한 다음에 묻는다.
“길은 외웠나? 길잡이 할 수 있겠어? 죽지 않고 살아서 갈 수 있겠냐고.”
꿀꺽, 청년이 침을 삼키고 숨을 고른 다음에야 대답을 한다.
“가 봤어요, 예. 갔다가 왔죠. 영감님 말한 중간 쉼터, 보고 왔어요.”
“호오?”
길잡이 노인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분명히 나름대로 놀랐다는 듯한 그 미묘한 표정에 청년이 한번 더 침을 삼키면서 말을 잇는다.
“영감님 대신할 건데, 처음 가는 길이라고 티를 내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혼자서도 배짱만 있다면 오갈 수 있다고 한 건 영감님이잖아요. 난 그 말을 믿었을 뿐이라고요.”
“그래, 그래도 언데드 틈새를 그렇게 지나가는 것은 겁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잘했어. 내가 한 말을 그렇게 잘 기억하고 실행하면, 넌 진짜 모험가가 될 수 있어. 그림자 아래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모험가라면 어디에서라도 인정받을 수 있고 말이지.”
“돈도 확실히 벌 수 있는 거 맞죠?”
“헌터들 못 봤나? 저 먼 산맥에서 여기까지 허탕 치러 온 것 같아? 금보다 귀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어서 온 거야. 너도 거기서 한몫 챙기면, 한 번의 모험만으로 평생 놀고먹을 수 있어. 모험에 취해서 계속 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영감님처럼 되기 전에 발 빼야겠죠?”
“그래, 현명한 생각이야.”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길잡이 노인이 청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부분은 없는, 둘 사이에 미리 이야기가 된 탓에 다시 거론되지 않는 대화였다.
‘답답하네.’
―저 녀석이 며칠 보인 행적을 되새겨 봐도 특이하지 않아. 아무래도 저 노인과 약속한 뭔가는 네가 여기 오기 전에 끝낸 모양이야.
‘그러니 답답하지!’
―굳이 미리 알 일도 아니잖아? 이제 아침이면 모든 상황이 밝혀질 텐데…… 뭘 그리 조급해하냐? 전혀 그럴 필요가 없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리는 투란을 핀잔했다.
‘늑대 고기, 늑대 가죽, 늑대 뼈로 꾸민 칼자루…… 늑대만 죽자고 잡아 굴러가는 마을이 지겹다고! 토끼도 있고 멧돼지도 있고 사슴도 있어! 조금만 가면, 묘지만 넘어가면…… 아니, 묘지 반대 방향으로도 사막은 멀고 평지가 많아! 그런데 밭은 마을 장벽 안쪽에 쪼그맣게 꾸며 놓고 줄곧 늑대만 처잡는 곳이라니, 괜히 거슬린다고!’
―늑대인 친구라도 있냐? 없잖아? 새삼 이쪽 풍속에 시비라도 거는 거야?
‘야, 시비 걸자는 말이 아니잖아! 대체 왜 늑대가 이리 많냐고! 토끼나 사슴 숫자보다 더 많으니까 괴상하단 말이야!’
―그걸…… 알려면 일이 년은 머물러 봐야겠지.
‘그럴 시간도 없고, 누가 늑대 목장이라도 갖고 있나 생각되잖아. 그래서 마을 사람들한테 잡으라고 계속 풀어놓는다는 생각까지 들어!’
―그건 좀 지나친 생각인데? 으흠, 늑대의 행적을 좀 더 멀리 알아볼까?
‘묘지 넘어 수십 킬로미터를 이미 봤다며?’
―옵저버라면 그 범위에 백 킬로미터를 추가할 수 있으니까.
‘헐? 너, 굉장히 오락가락한다? 험한 상황에서 막 굴릴 수 있는 프로브 같은 거라며? 그래서 사방 수십 킬로 넘으면 탐색 내용이 정확하지 못할 때가 많다며?’
―지금 정확한 것보다 대강이라도 알고 싶은 거 아니었어?
‘아니, 그건 또 그렇지만.’
투란은 조금 우울하게 대답했다.
솔직하게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고 이리저리 딴짓하는 길잡이 노인, 그 뒤를 졸졸 따르는 헌터 일행, 굴하람 주민들의 정직하지만 살짝 엉큼한 태도…….
그냥 지켜보기만 하자니, 슬슬 지루하고 답답하잖나.
어쨌든 시간이 흘러 밤이 지나가고 이른 아침의 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