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3)
―뭐지?
부스스하니 눈을 뜨는 투란에게 바로 드라고니아가 속삭이고 있었다.
굴하람 주민과 헌터 일행, 길잡이 노인이 간밤을 보내고 자러 들어가는 광경까지 확인한 다음에 뒤늦게 마을 한 귀퉁이에 몰래 꾸며 놓은 굴에서 잠들었다 깬 투란에게는 완벽하게 뜬금없이 이상한 말이었다.
‘왜?’
굴 안에는 뱀도 토끼도 없었다.
벌레도 매끈하게 다져 놓은 굴 벽을 뚫지 못해서 오롯하게 투란이 띄워 놓은 마법의 불빛만이 일렁일 뿐이었다.
―기사가 마을로 왔는데?
‘응? 기사? 배 타고 온? 왜?’
잠시 졸음이 덜 가신 머리를 흔들다가 투란이 맹하니 더듬으며 되물었다.
드라고니아도 갸웃하면서 다시 말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뭘 묻고 있는데? 음, 어디 보자…….
투란은 금방 프로브가 비춰 주는 광경을 보며 오가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 * *
“묘지에 대해 묻고자 한다, 자세히 아는 사람이 따로 있는가?”
위엄이 담긴 기사의 물음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에? 어, 따로 자세히는…… 그냥 다들 비슷하게 알…… 겁니다만?”
기사와 그 종자들의 무장한 모습에 굴하람 주민이 말을 더듬고 있었다.
기사의 종자들이 험악한 눈빛으로 대답하는 주민을 노려봤다.
주민은 찔끔하면서 ‘왜 나한테 이래?’라는 웅얼거림을 입가에 얹은 채로 기사 일행을 둘러보면서 슬그머니 뒷걸음치려 했다. 무장까지 하고 나선 기사와 종자들이랑 대거리하며 싸울 수는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시비라도 걸릴까 싶으면 재빨리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 지를 준비도 하며 숨을 고르는 모습이기도 했다.
기사가 그런 주민과 주변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굴하람의 다른 주민 몇몇을 둘러보면서 종자들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종자들이 일제히 한두 걸음씩 물러서면서 눈을 내리깔며 주민을 향해 압박하던 모습을 싹 지워 버렸다.
그 분위기는 오히려 주민을 한층 더 압박하는데, 기사가 말한다.
“해코지 따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오. 그저 알고 싶은 일이 있을 뿐이라 묻는 것이오. 혹시 이 마을에서 묘지에 대해 잘 아는 분이 계시오?”
“어, 그건…… 음, 마을에서 나이 든 어르신들도 묘지는 알려고 하지 말라 하니까…… 아! 어제 헌터 일행이랑 같이 온 길잡이 영감님이라면 뭔가 알지 모르겠군요. 몇 년에 한 번씩 마을에 들르는데, 세상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닌 영감님이라 아는 게 굉장히 많아요.”
주민은 열심히 대답했다.
그러나 말을 듣는 기사와 그 일행의 표정은 조금 굳어지고 있었다.
굴하람 주민들이 아는 길잡이 노인이 누군가 짐작할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함께 배를 타고 이틀에서 사흘 정도 함께 있는 사이에 결코 서로의 일을 묻지 말자 하고는 굴하람에 닿는 뱃길 말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노인…….
헌터에게 어떤 의뢰를 했는가에 대해 감추려 했는가 싶었는데, 이 상황이 되고 보니 기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상황을 짐작하고 미리 내뺀 듯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노인은 어디 계시오?”
그럼에도 기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러서기에는 너무 먼 길을 온 사람의 완강함이 드러나는 물음이었고, 마을 주민은 주춤거리면서도 그냥 길잡이 노인과 헌터 일행이 머무는 곳을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딱히 비밀인 것도 아니고, 기사와 노인이 어찌 얽힌다 해도 마을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일은 아닐 테니까.
기사 일행이 곧바로 길잡이 노인이 머문다는 곳을 향해 움직였고, 지켜보던 굴하람 주민들은 슬그머니 그 뒤를 쫓듯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모처럼 마을에 기묘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 * *
―음, 너 때문이겠지?
‘뭐? 내가 뭘! 나랑 뭔 상관있다고!’
드라고니아가 살짝 키득대는 말투로 중얼거렸고, 투란은 날렵하게 시침 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투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저 기사가 검은 바다를 건너서 여기까지 큰 배를 몰고 온 까닭이 묘지에 묻혀 있던 거대한 항아리, 그 안에 감금된 채로 일부분의 형체만을 드러내 항아리 꼭지 모양을 만들어 냈던 ‘정령기사’ 때문이란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굴의 입구를 닫으면서 투란은 가까이 있는 굴하람 장벽의 한구석으로 올라가 앉았다. 여러 프로브가 바쁘게 굴하람을 휘젓고 다니면서 별다른 일이 없는가를 살피면서 그 중심에 길잡이 노인과 기사 일행의 만남을 탐지해 줬다.
덤으로 길잡이 노인과 이야기를 나눴던 청년이 시장의 헌터 일행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여행 장비를 챙기는 시늉을 하며 슬그머니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도…….
* * *
“흐흠? 이런 이른 아침에 볼 얼굴이 아닌데?”
길잡이 노인은 막 얼굴을 씻은 듯이 수건으로 물방울을 닦아 내며 말했다.
이른 아침이라 말했지만 노인 역시 바쁜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기사가 방 문턱을 넘지 않고 노인의 주변을 훑어보는 채로 말한다.
“묻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 노인을 찾게 되었소.”
“흐음? 서로 볼일은 끝난 줄 알았는데? 딱히 내가 브로큰 킹덤의 기사에게 해 줄 말도 없다 생각하오만?”
수건을 내려놓고 곁에 둔 경갑을 집어 올리면서 노인은 담담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기사를 무시하는 태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러러보며 존중하는 태도일 수도 없었다. 그나마 기사의 배를 타고 오는 사이에는 배의 주인이기에 조금 더 대접해 준다는 태도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낌새조차 없었다.
그저 머나먼 곳에서 스쳐 지나다가 얼굴이나 익힌 모험가끼리 만났다는 듯한 태도와 분위기, 길잡이 노인이 드러내는 그 모습에 기사는 별로 곤란하거나 놀란 표정 따위는 띄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용건을 그대로 입에 담아 꺼내 놓고 있을 뿐이다.
“이 마을 사람들의 소개로 왔을 뿐이오. 묘지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에 대해 물으니, 귀하를 소개해 주더군요. 굴하람에서 사는 이들이 짐작조차 못 할 일이라도 모험가 노인이라면 알 것이라 하며 소개해 줬소.”
길잡이 노인이 담담한 기사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아는 얘기라…… 밤에는 묘지에서 해골이 무장한 채로 일어나고, 묘지기라고 불리는 바위 괴물이랑 치고받고 싸운다는 것? 언제부터 그랬는가는 굴하람 사람들조차 모르니 외지에서 간혹 들러 보는 내가 알 일도 아니고…… 고작 이 정도인데?”
갸웃하면서도 줄줄이 몇 마디 늘어놓으며 길잡이 노인은 경갑을 입고 자신의 장비를 하나둘 갖추고 있었다. 할 말은 다했으니 이제 자기 볼일에 집중하겠다는 노련한 태도였다.
하지만 기사는 그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우리 가문에는 이 묘지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 있소. 바위 묘지기를 만들어 냈다는 요정족의 이야기가 담긴 기록이오. 그 기록에 따르면 이 묘지에는 바위 묘지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정령기사가 매몰되어 있다 했소. 고대의 유물이며, 악령에 오염된 존재이지만 굴하람의 북방에서 밀려오던 언데드의 침공을 막아 낸 것이라고도 했소. 수백 년이 흐른다 해도, 묘지에서 해골 병정이 일어서는 한 정령기사는 존재하는 것이고도 기록에 전해지오. 한데…… 없었소이다. 귀하라면 정령기사가 묘지 어디에 매몰되어 있는가, 무슨 일이 생겼는가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되오. 내 일을 도와주지 않으시겠소?”
“음, 도움이 될 수가 없겠군. 정령기사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전혀 모르겠고, 내 일정도 옆으로 새도 될 정도로 여유롭지 못하니.”
길잡이 노인은 기사의 진지하고 신중한 요청을 단숨에 거절했다.
기사의 등 뒤에 서 있는 그 일행들이 그런 길잡이 노인을 향해 이를 가는 시늉을 했지만, 기사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침착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줬으면 좋겠소. 그 정령기사는…… 먼 옛날 가문의 선조와 사연이 있는 존재요. 우리 가문에서는 오랫동안 그 흔적을 좇았소. 겨우 그 단서를 먼 길을 찾아왔는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잖겠소? 사례를 원한다면…….”
“내 말을 오해하는군. 알면서 감추거나 귀찮아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네.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까 해 줄 말이 없다는 것이야. 내게는 그 정령기사니 뭐니 하는 이야기부터가 낯설다는 말이지. 내게 묻는 것보다 이 마을의 늙은이들을 찾아가 보는 쪽이 훨씬 나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네. 나는 그저 이 마을을 스쳐 지나다니는 길잡이에 불과하니까.”
휘휘 손을 저으면서, 고개도 저어 보이면서 길잡이 노인이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며 대답하고 있었다.
완고한 노인의 모습은 기사의 표정을 살짝 굳게 했지만, 그 일행은 격노하게 했다.
“저, 저 늙은이가 끝내……!”
“저렇게 거짓말을!”
그 모습에 길잡이 노인은 오히려 놀란 듯, 갸웃하면서 기사를 바라봤다.
어째 사람을 갑자기 거짓말쟁이 사기꾼 취급을 하고 있는가?
기사가 조금 쓴웃음과 함께 허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
“귀하에 대한 오해가 좀 있었소. 음, 아무래도…… 조금 거칠겠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내 입장을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아, 살짝 어지러울 수는 있어도 해롭지는 않으니 염려하실 것은 없소. 그럼…….”
말과 함께 기사가 꺼내 쥐는 아뮬렛을 보며 길잡이 노인의 표정이 괴상하게 꼬이면서 찌그러들었다.
디텍터라 불리는 마도구, 이름에 담긴 의미 그대로 감춰 둔 물건 찾는 마법이 걸린 아뮬렛이었다.
즉,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와서 뭔가 묻나 했더니 저 녀석들이 사람을 무슨 도둑놈 취급하고 있다는 것!
“이게 무슨…….”
어이없어 길잡이 노인이 몇 마디 하려 할 때, 기사가 아뮬렛을 내밀면서 말한다.
“디텍팅 아케인 펄스.”
“뭐?”
하던 말을 살짝 잊고 노인이 흠칫했다.
그 순간 아뮬렛으로부터 기묘한 빛이 살짝 반짝였다.
거의 순식간이었고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그런 반짝임이 있었나 하고 어리둥절하고 갸웃할 정도의 희미한 빛의 맥동이었다.
그러나 길잡이 노인이 선 자리 근처에서 그 맥동은 훨씬 강렬하고 선명한 반응을 이끌어 냈으니…….
키익, 키키킥.
쇳소리를 내는 두꺼운 강철 갑주의 형상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노인의 좌우로 선 채로 강철 갑주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갑옷을 입은 손을 들어 기사 쪽을 가리켰다. 둘이 한 팔씩 들어 두 손이 기사를 가리키는 그 순간, 기사는 자신의 두 팔을 교차하면서 외치고 있었다.
“물러서라!”
퍼억.
문턱을 넘어 충격파가 전해 오며 문 옆의 벽이 터져 나갔다.
둔탁한 소리와 흩날리는 흙먼지는 벽이 순수하게 흙을 쌓아 만든 것이며 돌멩이 한 조각 섞이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듯했다.
기사는 그렇게 벽을 부순 충격파를 정면에서 막아 내면서 자신의 주변으로 최대한 넓게 펼쳐지도록 막아 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기사의 몸 주변에는 흙먼지 속에서조차 흐릿한 빛의 여운을 간직한 오러 가드가 펼쳐진 채였다.
그렇게 충격파를 막아 낸 기사가 부서진 문턱 너머를 보니…….
일렁이던 강철 갑옷 둘이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길잡이 노인의 몸을 감싸며 두텁고 무거워 보이는 강철 갑옷이 잠깐 스쳐 가듯이 보였지만, 금방 사라졌다.
“저, 정령갑옷?”
“정령갑옷입니다!”
기사가 방벽처럼 막아 준 탓에 그냥 뒤로 밀려나기만 했던 종자들, 기사의 일행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외치고 있었다.
기사는 말없이 노인을 보며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고, 노인은 혀를 차면서 자신에게 살짝 번져 온 먼지를 털어 내면서 투덜거리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 내기 시작했다.
“뭔 지랄이야, 정령갑옷은 얼어 죽을…… 고대 유물 좀 캐본 시늉은 다 하더니, 마갑도 몰라보나? 멍청하기는…… 뭘 탐지할 거면 제대로 된 탐지형 마도구를 갖고 다녀야지, 덮어 놓고 메아리 효과만 이용하려는 멍청한 마도구를 탐지용이라고 들이대니 이 꼴이지! 고대 유적에서 그딴 짓 하다가는 불타 죽거나 얼어 죽을 수도 있어! 이봐, 멍청이 기사, 내 말 알아듣나?”
기사는 숨을 먼저 골랐고, 천천히 가슴 앞에 교차했던 두 팔을 내리면서…… 굽힌 채로 버텨 내기 위해 최대한 힘을 끌어내던 두 다리의 자세도 풀면서 심호흡하는 채로 대답을 쥐어짜 내야 했다.
“마갑이라 했습니까?”
“이 나이에 맨몸으로 이 험한 세상 돌아다닐까? 이 정도 장비는 있으니까 이십 명이 넘는 헌터들을 혼자 잘 끌고 다니는 거잖아, 안 그런가?”
길잡이 노인이 히죽 웃으면서 툴툴거렸다.
그 웃음은 기사의 일행을 얼어붙게 했다.
어쩐지 ‘이제 더러운 내 성질대로 해 보련다, 기대해라!’라며 윽박지르는 듯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