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4)
투란은 눈을 번뜩였다.
‘정령갑옷? 그게 저 할배 몸 주변에서 맴돌던 이상한 마력이었어?’
드라고니아는 그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말한다.
―정령갑옷이 아니야. 저건 고대의 마갑이다. 제조법도 사라졌다는…… 뭐, 마력의 기묘한 흐름은 저것 때문이 맞는 것 같다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황에 투란이 한층 더 눈빛을 번뜩거렸다.
―응? 저 여자는?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럽게 딴말을 하고 있었다.
‘뭐? 뭔 여자?’
어리둥절해서 투란도 저편에 쏟아붓던 관심을 잠깐 멈칫했다.
―로즈벨에서 칼라드란 꼬맹이한테 쫓겼던…… 네가 이상한 것이 보인다던 그 여자 말이다, 이쪽으로 오는데?
‘어? 에…… 라카샤?’
맹하니 투란이 이름을 기억해 내니, 드라고니아가 바로 덧붙인다.
―그래, 그 오빠란 작자가 여전히 뒤를 쫓고 있군. 음, 이번에도 역시 멋대로 움직여서 따라붙는 모양이다만…… 저 여자, 널 감지하고 오는 분위기인걸?
‘나를? 어떻게?’
흠칫하며 투란이 드라고니아가 알려 주는 방향을 바라봤다.
꼬인 골목을 지난 저편에서 라카샤가 손에 원판을 든 채로 갸웃거리면서 다가오는 광경이 투란의 시야에 바로 비쳤다. 거리가 좀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잠시 후에 굴하람의 방벽 한구석에 멀뚱거리고 앉아 있는 투란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길로 느리지만 차분히 걸어오는 중이었다.
‘어떻게? 이번엔 내 근처에서 큰 마력 파동도 없었는데? 저 할배는…… 지금 난리 치는 중이라 아는 게 늦었다 쳐도…… 내 쪽으로 뭐 걸릴 거리가 없잖아?’
―네 말대로 좀 묘하긴 묘하군. 아, 저쪽은 대강 정리된 모양이다. 기사 쪽이 노인에게서 물러서는데.
‘어? 아, 정말…….’
투란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고 말았다.
다가오는 쪽에 관심을 두자니, 금방 호기심을 갖게 했던 저쪽이 얼렁뚱땅 정리된 꼴이라니…….
싸워서 한쪽이 이겨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기사 쪽에서 길잡이 노인의 마갑이 자신들이 찾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물러섰을 뿐이었다. 길잡이 노인은 그렇게 물러서는 기사 일행을 붙들고 늘어지며 싸울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을 뿐이고.
그렇게 한바탕 큰소리 냈던 상황이 정리된 것이니 더 보고 어쩌고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투란의 관심은 라카샤, 고대 유물인 원판을 들고 오는 소녀 쪽으로 확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데…….
“아? 역시 있었군요.”
라카샤가 굴하람의 담장에 걸터앉은 투란을 보자마자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반갑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탐색이 제대로 되었기에 기뻐하는 것인지 투란으로서는 알 수 없었고, 알 틈도 없었다.
라카샤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면서 으르렁거리는 그 오라비 때문이었다.
“네놈! 대체 왜 우릴 쫓아오는 거냐!”
“뭐?”
어이없어 투란이 맹한 대꾸를 하니, 바로 라카샤가 그 오라비의 어깨를 잡아당기면서 낮고 빠르게 소리친다.
“오빠! 우리가 찾아온 거잖아! 자꾸 이상한 말 하지 말라고!”
“그건…… 저놈은 대체 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있는 거지? 좋지 못한 속셈이라면…….”
움찔하다가 라카샤의 오라비는 다시 투란에게 뭔가 덧씌울 듯한 말을 하려고 했다.
투란은 더 듣고 싶지 않았기에 나직하게, 마력을 담아 속삭였다.
“잠이나 자라.”
기묘하게 엮인 마력은 금방 라카샤의 주변을 맴돌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원판의 마력 방벽을 회피했고 곧바로 그 오라비의 뒷머리를 덮쳤다.
풀썩.
가벼운 소리와 함께 라카샤의 오라비가 바닥에 늘어져 버렸다.
라카샤는 그 꼴을 보면서 한숨을 쉴 뿐이었다.
―흐흠, 해롭지 않은 수면 마법이란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나?
드라고니아는 라카샤의 태도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라카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깐 재운 것뿐이고…… 금방 깨어날 거야. 그런데…… 어떻게 날 찾았지?”
수상한 접근이란 점을 강조하듯 묻는 말이었다.
“어? 아…… 이거요.”
라카샤는 간단히 원판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 안에 완전히 쥐어지는 작은 원형,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마력이 선명했다.
하지만 투란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건 무슨 방패 만드는 마도구 아니었나? 그걸 사람 찾는 일에 썼다고?”
마력의 유동을 느끼게 해 주는 부분까지는 납득할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 투란처럼 마력 방출을 자제하고 숨은 듯이 머무는 와중에 찾아온 라카샤였다. 그러니 그 이상한 부분을 확실하게 짚을 수밖에 없었다.
“방패가 아니고, 그냥 마력으로 대상을 밀어내거나 당기거나 할 수 있어요. 그걸 방패처럼 쓴 것뿐이고…… 저기 기사분이랑 함께 온 지식이 많은 분이 그러는데, 아케인 포스 윌더라는 귀한 마도구라고 했어요. 요령을 잘 익히면 스카우트, 디텍트 같은 마법의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음, 그러니까 주변을 통찰해서 알려 주는 마법이라는데…….”
라카샤가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말하려 노력하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설명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게 뭔 얘기냐?’란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다.
―포스 윌더라고? 쉴더가 아니었어? 칼라드 녀석, 제대로 몰라도 좀 심하게 몰랐군.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며 말하고 있었다.
라카샤에게 들릴 리가 없는 말이었고, 투란에게는 살짝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폐허의 귀퉁이에 살던 소년 칼라드는 결국 뭘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드라고니아 역시 저 물건에 대해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
‘드라코눔의 아칸이란 녀석이이이이!’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지만, 투란은 담담한 표정을 꾸민 채로 라카샤를 향해 입을 열어 다시 묻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래서 왜 나를 찾아온 거지?”
“어? 아…… 낯익은 반응이 느껴져서 그냥 온 건데…….”
라카샤가 살짝 난감해하며 대답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드라고니아도 투란에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제대로 조사한 것도 아니고, 살짝 스쳐 가며 봤을 뿐인 고대의 유물이잖아. 그나마 쉴더라는 이름에 걸맞게 쓰이고 있기도 했고, 애초에 저 여자가 이상하다고 떠든 것은 너였잖아!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한구석으로 흘리고 밀어내면서 다시 라카샤를 향해, 여전히 기묘한 반짝임이 눈동자에서 온몸으로 번져 가는 듯한 광경을 보고 느끼면서 묻고 있었다.
“로즈벨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나는…… 몬스터 로드의 비전으로 굉장히 빨리 왔지만, 그쪽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지? 전혀 모르겠는걸?”
기사 쪽에 대해 알면서도 시침 뚝 떼는 물음이었지만 라카샤에게는 통한 듯했다.
“배를 타고 왔어요. 로즈벨에서 만난 기사분의 배요…… 유물에 대해서 나랑 오빠가 좀 아는 부분이 있고, 이것저것 미리 구한 것도 있으니까 도움이 될 거라고…… 기사분 일행은 여기 다른 볼일이 있다고 했고, 나는 오빠랑 이 마을 어딘가에 다른 유물이 있나 좀 돌아보는 중이었는데…… 음, 낯익은 사람의 반응이 있기에…… 그런데 어디에서 온 거예요? 몬스터 로드는 보통 춤추는 산맥에서 벗어나질 않는다던데…… 로즈벨이나 이 근처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다던데…….”
주섬주섬 이야기하면서 라카샤는 투란에 대해서도 살짝 궁금해하며 묻고 있었다.
그 눈치는 마치 라카샤 자신보다 투란이 더 수상하다고 살그머니 따지는 낌새까지 엿보이는 듯했다.
투란은 뒷머리를 벅벅 긁적이면서 어이없다는 표정부터 짓고 라카샤 곁에 푹 쓰러져 슬슬 코를 골며 자는 꼴이 되어 가는 오라비 쪽을 흘깃하며 당당하게,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대답을 한다.
“그야 의뢰를 받았으니까요. 알드바인에서 여기까지 올 수밖에 없었죠. 몬스터 헌터랑 비슷한 처지라서. 음, 알드바인이 어딘지 몰라요? 흐흠…… 브로큰 킹덤의 화이트 레이크라고 들어 봤어요? 거기 있는 도시인데…….”
“화이트 레이크! 들어 봤어요. 굉장히 아름다운 하얀 안개가 가득한 호수라고…… 그런데 거기 산맥 안쪽이라 위험한 곳 아니에요?”
“위험한 곳이라 몬스터 헌터들이 많이 몰려드는 도시이긴 해요. 뭐, 어쨌든 나도 거기 살면서 이런저런 의뢰를 받아 여기저기 멀리 다니는 처지란 이야기죠. 거기 유명한 거신목 그루터기에 여관이 있는데, 간판이 황금빛 매가 새겨져 있죠. 가 보면 금방 아는 곳이에요.”
어쩐지 미묘한 그리움이 느껴졌기에 투란은 툴툴거리면서도 떠들고 있었다.
라카샤는 흥미롭다는 듯이 듣는데,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럽게 속삭인다.
―어라? 저놈 깨어나네? 뭐야, 아무리 살짝이라도 벌써 일어날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잖아?
끄응거리면서 라카샤의 오라비가 잠에서 깨고 있었다.
투란은 그 꼴을 보며 어이없는 것보다 흥미로웠다.
“마법에 강한 체질인가 봐요? 거기 오빠분…… 음, 라카샤? 이름이 라카샤 맞죠? 오빠는 뭐라고 불러요?”
적어도 한두 시간은 늘어져 있을 정도의 마력을 썼는데 벌써 일어나다니, 어떤 유물을 쓴 것도 아니고 타고난 항마력을 갖췄다고 봐야 했다. 이쯤 되면 누이만큼이나 오라비도 이상한 작자라 해야 할 것인가?
“라즈야, 오빠는 라즈야라고 해요. 그런데…… 당신은?”
라카샤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하며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놀리듯이 투란에게 속삭인다.
―이름 말하고 의심받겠는데?
못 들은 척하며 투란은 진지하고 담담한 말투로 라카샤에게 대답한다.
“투란, 본명이에요. 알드바인에 가서 물어보면 진짜라고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그 커다란 그루터기, 황금매의 간판을 건 여관…… 겸 퍼브에 말이죠.”
은근히 눈을 부릅뜬 채로, 절대로 가명을 대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말투가 라카샤를 웃게 했다.
“투란, 알았어요. 의뢰를 받고 알드바인에서 온…… 아, 그 의뢰라는 거 혹시 여기 온 헌터 일행이랑 함께하는 건가요?”
“헌터 일행? 그쪽은 잘 모르겠는데요? 으흠, 난 이미 사나흘 전에 와서. 볼일 거의 다 봤으니 금방 갈 거예요.”
시침 떼고 투란이 대답하는 사이, 끙끙거리던 라카샤의 오라비 라즈야가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 앉고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신이 무슨 여관이라든가 노숙을 위한 침낭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라즈야가 외친다.
“무, 무슨 일이야? 라카샤, 무슨 일이 일어났…… 저놈! 저 수상한 놈!”
투란은 재우기 전이나 깨어난 다음이나 한결같은 그 모습에 살짝 감탄할 지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기에 사람을 저리 수상하게 바라본단 말인가!
―아니, 좀 수상한 눈빛이기는 해. 뭐 이상한 것 보인다면서 네가 자꾸 저 여자를 이상하게 바라보기는 하잖아.
‘닥쳐.’
드라고니아가 슬그머니 놀리듯 하는 말에 짧게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고 투란은 담장에서 일어섰다. 담장을 밟고 서는 사이에 투란은 다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고, 라즈야는 완전히 몸을 일으켜 서기 전에 다시 풀썩 쓰러지고 있었다.
라카샤가 그런 오라비를 보며 어리둥절해서 투란에게 묻는다.
“몬스터 로드의 재주인가요? 마치…… 마법 같은데…….”
갸웃하는 그 모습에 투란이 방긋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세상에는 별 희한한 재주를 지닌 몬스터가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고블린 트릭스터라고 하는 녀석 말이죠. 아무튼 라카샤, 난 이만 가 볼게요.”
“알드바인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몸을 돌리는 투란에게 라카샤가 묻고 있었다.
투란은 잠깐 멈칫하다가 빙긋 웃음과 함께 말한다.
“아직은 아니지만, 돌아갈 거예요. 뭐, 가는 길이 머니까…… 일이 년 안에는 돌아가겠죠. 화이트 레이크에 관심 있어요? 나중에 알드바인에 들러 봐요. 헌터를 위한 대공방도 있고, 옛날 유물이 아닌 새로 만들어진 도구가 잔뜩 있으니까. 가는 길이 좀 위험하기는 해도 가 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무슨 뒷산 소풍 가는 길이냐? 가까운 곳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오라는 말을 턱턱 잘도 내뱉는다?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하며 중얼거렸다.
‘알 게 뭐야, 오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
투란은 뻔뻔하게 드라고니아에게 대꾸하면서 몸을 날리듯이 뛰기 시작했다.
저쪽에서는 길잡이 노인이 거처를 나서서 루헬 일행과 합류하러 움직이고 있었다.
그쪽으로 들러붙어 조금 더 관찰해야 할 때였다.
아직은 마석의 행방을 확인할 일이 남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