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5)
세상의 신기한 일을 제법 많이 봤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루헬을 비롯한 몬스터 헌터 일행은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장벽…… 바람이 모래와 구름을 뒤섞어서 세상을 가로막는 것처럼 꾸며 놓은 거대한 벽이 하늘까지 닿은 광경에는 잠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가린 건가?”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 같은데?”
“흐린 날 구름 깔린 것도 아니고…….”
겨우 정신을 추스른 듯, 일행 속에서 들뜬 속삭임처럼 감탄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몬스터 헌터 일행을 향해 길잡이 노인이 혀를 차며 말한다.
“굴하람에서도 잘 보였잖아? 뭘 새삼스럽게…….”
조금 어색한 웃음이 일행 사이를 헤집었고, 루헬이 그 어색함을 고백하듯이 길잡이 노인을 향해 대꾸한다.
“설마 이렇게 금 긋고 쌓아 올린 모양일 줄은 몰랐으니까요.”
길잡이 노인도 이 말에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해했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언더섀도우로 진입하는 길목을 따라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고 풍경이 변화하는 것과는 완연히 다른 광경.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길 한복판에 줄 긋고 담벼락을 쌓아 올린 듯한 모양, 멀쩡하게 길을 따라오다가 갑자기 세상이 여기서 끝났다고 외치는 듯한 광경이었으니까.
그렇게 잠시 루헬 일행의 감상을 지켜보던 길잡이 노인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럼, 이제 준비하게나.”
루헬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일행도 곧바로 장비를 점검하며 태세를 가다듬었다.
길잡이 노인이 미리 경고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굴하람의 보급을 끝으로 마침내 의뢰지에 돌입한다는 것.
상대해서는 안 될 강력한 마물, 괴물의 이름은 이미 로즈벨에서 간략하게 들은 바가 있었고, 저 장벽을 넘어 진입하게 되면 만나게 될…… 비교적 가벼운 ‘것’들에 대해서도 굴하람을 거쳐 오며 들어 뒀다.
* * *
‘싸울 준비를 하네?’
멀뚱히 멀리서 몸을 숨긴 채로 구경하던 투란이 갸웃했다.
프로브를 이용한 관찰이었기에 그야말로 바로 곁에서 부스럭거리면서 장비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듣는 상황이나 다름없어서 오해도 착각도 아니었다.
―확실히…… 당장 맞붙을 준비를 하는 것 같군? 왜지?
드라고니아도 함께 의아해하고 있었다.
‘저 너머에 뭐 있다는 건데…… 저 먼지바람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면서?’
투란이 루헬 일행이 감탄했던 바람과 모래, 구름이 내려앉아 뒤엉켜 꾸민 누렇고 거뭇한 채로 하늘까지 치솟는 울타리, 그 경계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물었다.
―없다. 가까운 곳에 살아 움직이는 것도 없고 죽어서 움직이는 것도 없어. 그저 돌과 뼈다귀 잔해가 고작이야. 딱히 마력이라든가 특이한 힘의 자취도 없고. 당장 쳐들어가서 싸울 상대는 분명히 없어.
‘흐흠.’
투란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길잡이 노인이 괜한 짓을 시켰을 리가 없었고, 루헬 일행이 헛짓거리 하는 꼴로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한편으로는 프로브의 탐지를 회피할 수 있는 뭔가란 생각보다 많기도 하다 싶었다.
* * *
파앗!
먼지와 바람의 벽을 넘는 순간, 귓가를 살짝 누르는 압력이 있었다.
루헬 일행이 그 압력에 잠깐 흠칫하는 사이, 길잡이 노인은 성큼성큼 저만치 앞으로 가서 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찾는 듯한 손짓은 금방 거친 자갈이 가득한 바닥에서 뭔가를 집어 올리고 있었다.
일행 중에서 루헬이 먼저 경계를 넘으면서 길이 아래를 향해 길게 비탈진 것을 확인하고 뒤로 손짓하면서 길잡이 노인이 든 것을 주시했다. 그사이에 곁으로 다가선 쿨람이 주변에 경고하고 지시를 하는 중이었다.
“불 켜! 귀를 기울여! 시야를 확보하고, 주의해라!”
경계를 넘는 순간, 느닷없이 흐릿해지며 어두워진 풍경과 만났다.
담대하고 경험이 많은 몬스터 헌터 일행이었지만 겨우 몇 걸음 사이에 달라진 풍경이 낯설기에 잠시 둔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허우적거리는 몸짓을 바로 억누를 수는 없었다.
거기에 함께 헤매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루헬이 기둥처럼 길잡이 노인과 사이를 잇는 역할을 했고 쿨람은 약속한 대로 지시받은 바를 외치는 중이었다.
할 일이 정해지자마자 헌터들이 빠르게 행동했다.
각자의 어깨에 빛을 흘려 내는 나무 열매가 얹혔고, 주변으로는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흩뿌려졌다. 흐릿했던 풍경이 그 빛을 통해 밝혀졌고 바람과 먼지의 장벽에 일행의 그림자를 흘려 냈다.
그저 몇 걸음을 들어선 다음의 급변한 풍경 속에서 루헬을 비롯한 몬스터 헌터들이 순식간에 자리 잡고 태세를 정비하는 모습을 길잡이 노인이 돌아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루헬은 그 손에 들린 작은 쇠 종을 보며 물었다.
“그겁니까?”
“그래, 이 그림자 아래에서만 쓸모 있지만 이게…….”
키익, 끼기이긱.
느닷없이 들려온 섬뜩한 음향으로 인해 길잡이 노인이 일행 쪽으로 몇 걸음 디디면서 하던 말은 금방 끊겨야 했다.
길잡이 노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루헬 일행은 당황하지 않은 채로 도끼와 망치를 들어 올렸다.
나무를 베고 못을 두드리는 목적과는 거리가 먼 도끼와 망치는 살을 가르고 뼈를 부수기에 더 어울리는 흉포한 모양이었다.
그 도끼와 망치의 무장에 상대가 되겠다는 듯, 자갈을 가르며 섬뜩한 삐걱거림을 흘리면서 뼈다귀들이 일어서고 있었다.
뼈다귀들은 네발짐승부터 두 발로 걷는 인간의 형태까지 꽤 다양했다.
심지어 뼈다귀뿐인 날개로 날려고 버둥거리는 새의 형해(形骸)마저 섞여 있을 정도였다.
* * *
―저 늙은이, 무슨 수작이지?
드라고니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맹하니 되뇌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저거 설마……?’
―그래, 저 쇠 종과 함께 묻혀 있던 압제(壓制)의 마도구가 해제되었어! 저 늙은이, 지금 자기 손으로 헌터들 앞에 스컬 데브리를 활성화한 거야!
드라고니아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꾸가 바로 튀어나왔다.
‘헤에…….’
투란은 한층 더 맹하니 목덜미를 어루만지면서 대꾸해야 했다.
몬스터 헌터 일행이 꺼내 든 망치나 도끼는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듯한 저 백골 뭉치들한테 굉장히 효과가 있는 도구였다.
으깨거나 쪼개거나!
즉, 저런 대응책을 준비시켰다는 점에서 보자면 해코지를 하려는 목적은 분명히 아닌 셈.
하지만 왜 저러는 걸까?
‘설마 무슨 연습이라도 시키려고?’
간신히 쥐어짜 낸 투란의 생각은 이 정도에서 버벅댈 뿐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이었다.
―연습은 무슨! 저기 묻혀 있던 압제의 마도구는 한번 해방하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저것들을 억누르는 효과를 낼 수 없어! 새로 만들어 오든가 해야 한다고! 저 스컬 데브리가 경계를 넘는다면, 어디로 갈지 전혀 알 수가 없단 말이다! 그걸 막기 위해 파묻어 둔 마도구일 텐데!
‘어, 그래…… 그래서 안으로 쳐들어가는 중인가?’
투란은 이어지는 상황을 엿보면서 웅얼거렸다.
드라고니아는 이 또한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마갑은 왜 안 꺼내는 거야? 스컬 데브리에게 산 자는 무조건 적이다. 자기만 안전할 일은 없어! 저렇게 기립, 기동하면…… 저 헌터들이 더 들어갈 수 없다고! 도대체 뭔 생각인 거냐, 저 늙은이!
‘야, 저기 안쪽.’
―응? 저 녀석은…….
투란이 짚었고 드라고니아는 성난 와중에 어리둥절하고 의아해했다.
헌터 일행이 도끼와 망치를 휘두르면서 경계 안쪽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기 위해 움직일 때, 저 깊은 곳에서 껑충거리며 뛰어나오는 한 사람…… 길잡이 노인과 굴하람 여관에서 뭔가 쑥덕거리던 청년 아닌가.
무슨 모험을 찾네 어쩌네 했던 작자가 왜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가?
압제의 마도구가 작동하는 동안에 깊이 들어가 있었던 듯하다.
* * *
“이쪽으로!”
청년의 외침에 호응하듯 길잡이 노인이 바로 루헬에게 말한다.
“저리로!”
루헬은 갑자기 앞에 나타난 괴상한 청년에 대해 의문을 느낀 듯했지만 당장 따져 묻는 대신에 쿨람에게 손짓했다.
그 신호를 본 쿨람이 곧바로 일행에게 짧고 낮게 소리쳤다.
“전진, 대형 유지!”
퍼억, 콰직, 촤악!
뼈가 부서지고 뭉개지고 쪼개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헌터 일행은 곧바로 청년 쪽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청년과 헌터 일행이 합류한 것은 그야말로 잠깐 사이였다.
“병정이 와요!”
청년은 헌터 일행이 뭐라 하기 전에 길잡이 노인을 향해 외쳤다.
이미 알고 있는 사이란 것을 루헬 일행이 눈치채기에 충분한 표정과 말이었다.
그리고 길잡이 노인이 조금 당황했다는 말투로 대꾸했다.
“뭐? 병정?”
약간 높은 음성이 어딘가 꾸민 듯했다.
하지만 루헬은 뭘 꾸몄는가 묻기보다 먼저 짧은 한마디를 캐묻고 있었다.
“병정이 뭐요?”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나라의 병사를 의미하는 말은 분명히 아닐 터였다.
청년은 대답하지 않은 채로 빠르게 앞장서면서 나아갈 방향을 가리켰고, 길잡이 노인은 조금 서두르는 시늉만 하고 발걸음을 늦추면서 루헬 일행이 잘 듣도록 대답하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잘 안 나오는…… 언데드 전사.”
“우리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거요?”
루헬은 숨을 고르면서, 살짝 앙금이 어린 말투로 물었다.
나올 리가 없는 것이 하필이면 왜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자신들이 와 있는 날에 튀어나왔냐고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몬스터 헌터에게는 생각보다 흔한 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인가 아닌가.
이대로 돌아서서 도주해야 하는가, 무시하고 전진해야 하는가를 판단할 근거가 필요할 뿐이었다.
길잡이 노인은 빠르게 대답했다.
“무리야. 싸우면 몰살. 그러니…… 저 녀석이랑 먼저 가. 이걸 받게, 사용법은 저 녀석이 알 거야.”
청년을 가리키면서 루헬에게 쇠 종을 넘기는 채 나오는 말이었다.
어지간한 루헬이었지만 잠깐 당황한 낌새를 띄우면서 쇠 종을 받았다.
이 쇠 종이 길 찾는 도구란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넘길 줄은 몰랐고, 길잡이 노인의 태도는 자신들을 몰살할 수 있는 병정이란 것과 홀로 맞설 듯했으니까.
“무슨……?”
“가! 자네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은 내 역할이지! 내 이름 에스탄을 기억하고 어서 가라고! 앞으로의 길 안내는 저놈이 할 수 있어! 만약을 위한 내 조수이고 모험을 좋아하지!”
말과 함께 길잡이 노인, 에스탄의 좌우로 철갑을 두른 기사의 형상이 불쑥 솟구치며 형태를 드러냈다.
그 광경은 몬스터 헌터들을 흠칫하게 했고, 앞서 내달리며 긴 몽둥이를 휘두르는 청년이 버럭 소리치게 했다.
“얼른요! 여길 빨리 벗어나야 해요!”
루헬은 빠르게 결단했다.
길잡이 노인, 에스탄이 홀로 남아야 할 각오를 했다면 빠르게 치고 나가야 했다.
여기서 돌아서서 도망칠 생각이 없다면, 남은 방향은 더 깊이 쳐들어가는 것.
그리고 노인의 뒤를 잇는 길잡이 청년은 이미 내달리고 있잖나.
“앞으로.”
루헬의 무거운 목소리를 쿨람이 바로 이어받았다.
“앞으로! 대형 유지! 속도 유지!”
퍼억, 콰득, 와지근.
스컬 데브리들이 으깨지고 튕겨 나가는 길을 따라 헌터 일행이 내달렸다.
거센 망치질, 도끼질이 나아갈 곳을 길잡이 청년이 알려 주며 앞장섰다.
그렇게 일행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잠시 후, 지면이 들썩이면서 이전에 보였던 것과 크기가 다른 커다란 뼈다귀가 치솟았다.
원래 신장이 6, 7미터는 되었을 듯한 거인의 뼈다귀였다.
이런 뼈다귀는 그저 바닥에서 솟구친 것뿐 아니라, 저편에서 몇 구가 달려오는 중이기도 했다.
저 멀리 내달리던 헌터 일행은 그 몇 구의 거대한 뼈다귀가 육중한 돌 몽둥이를 든 것까지 확인하면서 더욱 빨리 멀어져 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노인 에스탄의 입가에는 미묘한 웃음이 맴돌았다.
그 웃음 끝에 큰 외침이 어둑한 풍경 속으로 퍼진다.
“네놈들은 내 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발에 응한 것처럼 거대한 뼈다귀들이 노인을 향해 섬뜩한 음향을 흘리며 돌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