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6)
Chapter 200. 그림자 속으로
“응, 역시 이상하게 미친 할배였어!”
투란은 단정 지어 말했다.
드라고니아가 여기에 다른 말을 할 수 없다는 듯이 보탠다.
―이상할 만큼 이상한 꼴이…… 미쳤다는 의견을 함부로 부정하기도 힘들군.
루헬 일행이 길잡이 청년과 함께 더 깊이 들어가 사라져갈 때, 길잡이 하던 노인 에스탄은 거대한 뼈다귀들의 돌 몽둥이 틈새에서 저절로 움직이는 마갑을 세워 놓은 채로 여유롭게 서 있었다.
거대한 뼈다귀가 이곳저곳 헐어 있어 좀 부실해 보이기는 했지만, 저렇게 여유롭게 구경할 상황은 분명히 아니었는데도…….
‘키클롭스 맞지?’
한숨을 골라 내쉬면서 투란은 인간형이며 거대한 골격이지만 그 두개골의 눈구멍이 콧구멍을 타고 곧바로 올라가 하나 정도 나 있는 꼴을 보고 추측했다. 콧구멍 자리 좌우로 펼쳐진 눈구멍이 아닌 꼴로 봐서는 윗구멍이 분명히 눈알이 박힌 자리이고 하나뿐인 외눈알이면서 저 정도 체격인 채로 죽어 저리 돌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키클롭스로 봐줄 만하니까.
―대강 그럴 것 같다. 아주 특이한 변종 거인이 아니라면 말이지. 그런데 정말 저 늙은이, 왜 저러는 것 같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잖아. 저 정도라면 여유 있게 저것들 다 밀어내고 함께 가도 되는데 혼자 죽을 것처럼 빠져서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드라고니아는 역시 노인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투란 역시 궁금했기에 이것저것 가늠하며 멈췄던 추측을 이어 소리 없이 중얼거려 본다.
‘죽은 척하고 도망치려는 것 아닐까? 일도 떠넘기고…….’
―저 정도 마갑을 보유했으면서 죽은 척까지 해야 하나? 알드바인에서 지켜본 바를 기준으로 삼으면, 저 늙은이는 어지간한 몬스터 따위에게는 털끝 하나 안 다칠 텐데? 그런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들이댈 일도 없을 테고…….
‘흐음…… 저런 마갑으로도 감당 안 되는 누군가가 쫓아올까 봐서?’
―그런 인간이 또 있을 수도 있겠지.
투란이 갸웃하며 하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멈칫하다가 웅얼거리듯이 대꾸했다.
그 말투에서 투란은 바로 드라고니아가 누군가를 염두에 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런 마갑을 지닌 할배를 위협할 수 있는 누군가!
‘또라니, 누굴 이미 아는 거야?’
―다른 사람 찾기 전에 우선 너부터 그럴 수 있지. 졸졸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려 한다면, 너만 한 재앙이 또 있겠냐?
슬쩍 말을 돌리는 듯한 드라고니아였다.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삐죽하니 대꾸하다가 투란은 길잡이 하던 할배, 에스탄이 저편으로 한참 움직이다가 경계를 벗어난 것을 알아차렸다.
애초에 헌터 일행과 함께 진입했던 곳에서 거의 수백 미터를 옮긴 셈인데, 가는 길에 파괴의 흔적을 아주 진하게 남겨 놓은 것이 누가 와서 보면 격전의 자취라고 바로 결론지을 수 있을 듯했다.
―응? 뭐야, 왜 벗어?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해서 말한 대로 노인이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히고 있었다!
투란도 잠깐 멍하니 프로브가 보여 주는 광경이 진짜인가 눈을 껌벅이면서 저편을 다시 봐야 했다. 한데 눈을 부릅뜨고 다시 보니 아주 선명하게 피칠하는 늙은이의 모습이 보이잖는가!
‘뭔 짓이여?’
저 정도면 미친 짓 아닐까 싶었다.
홀랑 벗은 채로 자신의 몸과 벗어 놓은 옷자락까지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도대체 저 피는 어디서 났는가?
―마법 물통…….
‘어디서 짜냈냐고!’
드리고니아가 당장 벌건 염색에 쓰이는 피의 출처, 피를 쏟아 내는 마법 물품에 대해 말하려 했기에 투란은 바로 으르렁거렸다.
―저거, 인간의 피야.
드라고니아도 겨우 투란의 말뜻을 알았다는 듯, 그리고 확인한 듯이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투란도 오싹해져서 되물어야 했다.
‘뭐? 짐승 피가 아냐?’
―아니야, 인간의…… 저 늙은이의 혈액인데? 평소 조금씩 쥐어짜 내서 담아 뒀던 모양이다?
드라고니아 역시 오싹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사이에 길잡이 노인 에스탄은 한층 더 섬뜩한 분위기를 흘려 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이상한 짓을 더 하려는가, 투란이 바싹 긴장해서 시력을 한층 더 강화해서 지켜봤고 드라고니아는 프로브의 탐색, 감지 영역을 더욱 확장해 관찰했다.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는 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에스탄은 피칠한 자신의 몸을 둘러보고 벗어젖힌 옷감까지 주욱 둘러본 다음에 중얼거렸다. 낮고 빠른 그 중얼거림과 함께 에스탄의 늙은 등짝이 갈라지면서 몸뚱이가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의 몸이 아닌 에스탄의 늙은 모습이었다. 피칠한 몸과 다르게, 그 몸에서 나왔음에도 깨끗한 몸을 바닥에서 곧바로 치솟아 오른 철갑이 덧씌웠다.
그리고 피칠한 몸의 등짝이 다시 오그라들면서 갈라져서 몸 하나를 더 토해 냈다는 흔적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피칠한 몸이 어기적거리는 몸짓으로 바닥에 늘어놓았던 옷감, 역시 피범벅이 된 옷감 위로 쓰러졌다.
철갑을 입은 몸 쪽 에스탄이 이를 가만히 보다가 손짓했다.
바닥의 돌이 툭툭 튀면서 쓰러진 피투성이의 몸과 옷감을 덮으며 먼지를 뿌렸다.
철갑이 가만히 바닥에서 발을 떼며 떠올랐고, 뜬구름처럼 흔들거리면서 공중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반 미터 정도 높이였지만 날아서 움직이는 셈이었다.
‘저쪽이면, 묘지?’
굴하람의 북쪽, 묘지기가 해골 병사들과 어울려 툭탁거리던 방향이었다.
드라고니아는 부유하는 마법이라든가 움직이는 방향보다는 늙은 에스탄이 남겨 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짓인가 모르겠다만, 가지고 있던 장비까지 모두 피로 물들여서 남겨 뒀군. 알드바인에서 제법 값을 쳐줄 수준인데 말이지.
‘응? 그래?’
살짝 평소와 다른 자신과 닮은 관점에 투란이 냉큼 대꾸했다.
드라고니아가 곧 냉정하게 이어 말했다.
―확실히 평소 쓰던 장비를 둔 꼴은 추적자에게 죽은 잔해를…… 설마 저런 몸뚱이까지 남길 줄은 몰랐다만, 죽었다고 시체로 위장한 셈이기는 할 텐데…… 어쨌든 저 장비에 손을 대면 저 늙은이의 계획에 지장이 생길 테고, 너도 휩쓸릴 일이 될 거야. 어쩔래?
엉큼하게 남긴 장비를 챙길 궁리를 하던 투란을 타박하면서도 길잡이 노인 에스탄의 행태에 대해 의아함이 가득한 채였다.
투란도 일단 장비에 대한 호기심은 접고 그 의아함에 한마디 보탠다.
‘죽은 척하느라 뭔 마법을 쓴 것까지는 알겠는데, 왜 홀랑 벗은 채로 냅둔 거지? 잘 입혀 둬야 그냥 죽은 꼴 아닌가?’
―정말 무슨 생각인지 나도 묻고 싶다.
드라고니아도 바로 동의하며 공감하고 있었다.
‘응? 오호…….’
투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살짝 음흉한 웃음을 띠었다.
―뭐야? 왜?
그 낌새에 드라고니아가 움찔했다.
무슨 나쁜 짓을 꾸미는…… 악당 같은데, 투란이 진심으로 나쁜 수작을 부리려 한다면 어떤 재앙이 될까 염려하는 낌새가 무럭무럭 피어나는 듯했다.
그 낌새가 너무 흉악해서 투란이 웃다 말고 입술을 삐죽일 수밖에 없었다.
‘뭔 큰일이라도 벌인데? 그냥 저 할배한테 묻자는 생각만 했는데.’
―물어? 본인에게? 직접?
이번에는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은 쓰윽 몸을 일으키면서, 헌터 일행이 사라진 방향에서 에스탄이 사라진 쪽까지 둘러보면서 대답한다.
“여기까지 의뢰를 찾아온 베테랑 헌터 아저씨들은 알아서 하라고 두고, 뒤가 구린 할배에게 물어야지. 마침…… 할배가 구린 뒤를 감추려고 늘어놓은 협상물도 있잖아? 일단…… 손대지 말고 프로브 붙여서 감시부터 하자고. 누가 와서 보나 말이야. 그리고 나는…… 훗, 할배를 쫓아가서 물어야지. 뭔 짓이었냐고.”
펄럭, 투란의 등에서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펼쳐졌다.
곧바로 허공으로 높이 치솟으면서 투란은 둥실거리면서도 빠르게 묘지 쪽으로 움직이는 에스탄을 지켜봤다.
덜컹.
철갑의 발이 바닥을 디뎠다.
주름진 이마에서 살짝 땀을 닦아 내면서 에스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해가 중천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던 탓에 조금이라도 높은 쪽이면 더 강하게 햇살에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그 햇살을 고스란히 쏘인 얼굴에서는 마른 땀이 끈적하게 맺힌 듯했다.
그렇게 상쾌하지 못한 기분이었지만 에스탄은 묘지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낮이란 것을 다시 확인하며 천천히 주변을 확인하는 채로 움직였다.
‘셋, 여기서 넷…… 그리고…… 저기 있군.’
소리 내지 않고 이것저것 가늠하던 에스탄이 멈춘 곳은 부러진 나무가 자신을 부러뜨린 바윗돌을 끌어안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부러져 기운 나뭇가지가 땅을 파고들어 새로운 뿌리를 내린 채로 얹힌 바윗돌을 세모꼴로 받친 광경이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에스탄은 그 바윗돌을 향해 다가갔고, 그 아래를 발끝으로 쿡쿡 찔렀다.
철컹, 뭔가 튕기는 쇳소리를 내면서 바윗돌 아래 지면이 스르륵 밀려나듯 옮겨졌다. 가림막이 치워진 듯한 광경이었고, 가려져 있던 것이 저절로 튀어나오며 에스탄 앞으로 옮겨졌다.
그것은 잘 봉해진 가방과 배낭, 서넛이 뭉쳐진 모양이었다.
에스탄은 철갑을 두드리며 속삭였고, 철갑이 찰칵거리며 물러서자마자 벌거숭이인 꼴이 되었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에 새삼 누군가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낌새 없이 바로 가방을 열 뿐이었다. 가방 속에서 옷이 한 벌 불룩하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에스탄이 주름진 몸을 옷 속에 끼워 넣고 감추었다.
“와아, 그래서 훌렁훌렁 벗고 자신만만했군요. 새 옷이 있었어.”
바지를 입은 다음 막 상의에 팔을 꿰고 잠깐 머리를 밀어 넣는 사이에 누가 감탄했다는 듯, 바로 에스탄의 앞쪽에서 떠들고 있었다.
잠깐 멈칫하면서도 에스탄은 일단 웃옷을 마저 입었다.
자연스럽게 가려졌다 드러난 시야, 가려지기 전에는 분명히 아무도 없던 바윗돌 위에 당연하다는 듯이 걸터앉은 애송이가 에스탄의 눈에 바로 보였다.
아무 기척도 없이 툭 하고 나타난 애송이, 하지만 에스탄은 전혀 얕보지 않고 가만히 그 모습을 살폈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미묘하게 갈색도 섞인 듯하지만 아무튼 검은 눈동자에다가 살갗은 그냥 잘 그을린 살색…….
‘남방 계열인가? 차림새는 분명히 평상복…… 하지만 춤추는 산맥의 나이프 포켓이 있는 옷이라…….’
어딜 봐도 갑작스럽게 툭 나타난 상황에 대한 단서는 없었다.
흡사 하늘에 걸려 있다가 뚝 떨어진 듯한 모습의 애송이.
그 애송이가 한 말은 에스탄에게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하게 했다.
“어디서부터 보고 있었지?”
불쑥 묻는 말은 건조했고 감정 없이 불퉁했다.
그런 노인을 향해 투란이 상큼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한다.
“피칠할 때부터요. 갑자기 모래 먼지를 뚫고 나온 할배가 훌렁 벗고 피칠하는 꼴 보니까 호기심이 무럭무럭 치솟잖아요.”
“너는 뭘 하고 있었는데?”
에스탄은 담담하게 다시 묻고 있었다.
투란은 ‘역시 할배!’ 하는 작은 소리부터 내고 히힛 웃는 채로 대답한다.
“의뢰받은 일을 하고 있었죠.”
“의뢰?”
에스탄이 작게 꿈틀거리는 표정을 담담하게 굳히면서 되뇌었다.
그 미묘하고 작은 표정 속에 담긴 의혹이 뭔가 투란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흠? 너도 헌터 의뢰를 받고 왔나 생각하는 건가? 너까지 저쪽 일행이랑 함께 보냈어야 했나 싶어서?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느낌에 보태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투란은 계속해서 말하며 에스탄이 고민하려는 추측을 치워 버리고 있었다.
“상아탑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석이 이 근처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알아봐 달라고 해서 말이죠. 굉장히 귀한 거라고, 로즈벨까지 단숨에 보내 주면서 자세히, 알아낼 수 있는 한 자세히 알아보라고 시켰어요.”
순수하게, 시켰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과 몸짓도 애송이처럼 보이도록 잘 섞은 채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에스탄은 투란이 늘어놓은 몇 마디 속에서 더 깊은 내용을 찾아낸 듯했다. 바로 그 내용이 담긴 몇 마디를 짚었다.
“로즈벨까지 단숨에? 설마…… 로즈벨에 바람의 길이 열렸다는 말을 하는 거냐? 그 게으름뱅이 주정꾼 마법사가 그런 일을…… 아니, 상아탑에서 주도한 일이겠지. 어느 상아탑이냐? 춤추는 산맥의 어느 나라에 있어?”
놀란 표정 속에 은근히 반가워하면서도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또렷했다.
단번에 말하지도 않은 부분을 푹푹 찔러 짚는 탓에 투란도 살짝 놀랐지만, 대답은 조금 전 에스탄이 연륜을 담아 되물었던 것처럼 꺼내 놓고 있었다.
“이 근처에 대해서 잘 아시죠? 저 수상한 먼지바람 너머로 들락거릴 정도로 아주 잘 아시는 거죠?”
에스탄이 계속 물으려다가 멈칫하며 투란을 다시 바라봤다.
마치 이제서야 그 표정을 살핀다는 듯, 그렇게 투란을 보다가 에스탄이 철갑을 쓴 것처럼 굳은 표정을 꾸미며 묻는다.
“너, 내가 남겨 둔 피투성이 흔적에 손을 댄 것은 아니겠지?”
투란은 살짝 고개를 젓기는 했지만, 그 얼굴에는 짓궂은 악동의 웃음이 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