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8)
은촛대 몇 개가 뿜어내는 은빛과 매달린 불빛, 그 빛의 경계 안은 포근하고 따사로웠다. 그 따스함 속에서 노인은 이야기를 하고,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어 낸 듯한 어린 청년이 이야기를 들었다.
사방이 어둠의 장벽에 둘러싸인 듯한 탓에 깊이 파고들어 가는 굴은 어둠이 솟아나는 기울어진 우물처럼 느껴졌고, 은색이 반사광을 흘리는 불빛은 어두운 호수에 둥실 떠 있는 밝은 열매처럼 보였다.
“그래, 길가에 돌멩이일 수도 있고 나무 열매일 수도 있지. 아니면 몬스터의 갑각이라든가, 껍질에서 돋아난 혹일 수도 있고. 언더섀도우에서 마석은 특정한 출처를 지니지 않은 채로 온갖 형상 속에 오롯하게 자리 잡은 모양으로 나타나. 그렇게 생겨 먹었기에 머금고 있는 마력도 온통 제멋대로란 말이지. 음, 이를테면 풀잎에 매달린 이슬처럼 늘어진 마석이 굵직하게 자라난 나무 괴물의 중심핵을 이루는 마석보다 훨씬 더 품질이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아, 그래. 열에 여덟, 아홉의 경우에는 나무 괴물에게서 나온 마석의 품질이 더 좋지만. 어쨌든 경험을 통해 단련한 안목이라고 해도 그게 선입견이 되어서 언제라도 배신당할 수 있다는 말이야.”
노인 에스탄의 이야기에 어린 청년인 투란이 혀를 차며 중얼거린다.
“그렇다고 경험을 무시할 수도 없겠군요. 이러면…… 마법사가 굉장히 싫어할 이야기만 가득한데요? 흐흠, 뭐 어쩔 수 없으려나.”
툴툴거리는 투란을 보며 에스탄이 눈가의 주름을 짙게 파는 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잇는다.
“그런 부분조차 모르고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니 직접 돌아다니면서 탐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겠지. 저 안에서 버티고 사는 누군가와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말이야.”
투란이 피식 새는 웃음부터 흘렸다.
“흐으,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걸요? 결국 위험을 감수할 만큼 귀한 것이 많다고 결심을 빨리 할 수도 있어요. 춤추는 산맥의 마법사한테 위험이 어쩌고 떠들어 봐야…….”
이 말에 에스탄이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다른 곳의 마법사라면 자신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춤추는 산맥이라면…… 늘 괴이(怪異)를 접하고 마물과 엮이는 곳이니 말이야.”
노인의 연륜이 서린 말은 투란에게 조금 전과 다른 쓴웃음을 짓게 했다.
“아니, 그건…… 춤추는 산맥이라고 해도 옆집에 몬스터가 사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평생 담장 너머 몬스터 구경 못 해 본 사람도 있다니까요.”
에스탄이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이에 대꾸한다.
“그런 마경을 이야기로만 들은 이들에게는 담장 너머 몬스터란 세상의 이치에 따라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네. 괴이함이란 마법사들이라든가, 이상하게 변해 버린 짐승에 불과할 뿐이지.”
“으음…….”
투란은 바로 부정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로즈벨에서 굴하람으로 오가는 길목에서도 드물기는 했지만 몬스터라 불릴 만한 것이 없지는 않았다. 사막 쪽으로 다가갈수록 몬스터의 낌새는 더 짙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없지 않다고 해도 그것은 매일 볼 수 있는 흔한 것이라 할 수는 없었다.
흡사 알드바인의 북벽 너머에 온갖 야생 짐승이 살지만, 알드바인 사람들에게는 실력 좋은 사냥꾼이나 만날 수 있는 보기 힘든 경우랑 닮았다고 해야 할 듯한…….
―비유가 좀 이상한데?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생각을 좇으면서 투덜거렸다.
‘마석에 대한 얘기가 재미없었냐?’
슬쩍 놀리는 말투로, 투란은 잠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소리 없이 물었다.
―이야기 속에 정보가 전혀 없잖아! 직접 들어가서 굴러 보기 전에는 알 바 아니란 소리만 한가득했다! 차라리 라바 드레이크니 비스트니 하는 것들에 대해 듣는 편이 나았어!
‘뭐, 그건 좀 그렇긴 하지.’
투란도 으르렁거리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불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에스탄이 들려준 이야기의 요점은 나름대로 간단했다.
마석을 구할 수는 있으나, 원하는 대로는 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춤추는 산맥에서 드물게 발견된다는 광맥을 통한 발굴은 언더섀도우에서 거의 볼일이 없는 방식이라 했다. 길 가다 주울 일이 많으니, 땅 파고 열심히 캐는 짓을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머물 수 있는 것조차 힘겨운 환경이니까.
그러므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줍는 것이 마석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남는 셈이었다. 물론 그렇게 줍다가 언더섀도우의 혹독한 환경에서 나돌아다니는 몬스터, 주로 언데드 계열인 몬스터와 만나서 죽지 않고 버텨야 내다 팔 수 있는 것인데…….
홀시딘이 말해 준 상아탑의 기록에 따르면 돌아온 자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것치고는 이렇게 에스탄이 들락거리면서 길잡이 노릇을 꽤 오래 한 듯한 상황은 굉장히 의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의뢰받고 들어가서 나온 작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고 했다.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발이 묶일 일이 없는 투란에게, 거의 삼 년 만에 만난 투란에게 홀시딘은 냉큼 일을 떠넘긴 것 아니던가. 그러면서 불안한 생각도 들었는지 슬쩍 흘리는 시늉을 하면서 수틀리면 용암이 되어 언더섀도우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는 말도 살짝 덧붙였다.
‘어쨌든 알아볼 만큼 알아본 셈이지?’
투란은 시원하게 결정했다.
―들어가지도 않고 들은 것뿐이잖아?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흐흠 하는 소리를 내면서 투란은 잠시 에스탄에게 할 말을 정리하는 시늉부터 했다. 그러면서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를 향해서 뻔뻔한 변명을 하는 중이다.
‘이럴 때는 사람을 통째로 넘기면 돼. 이 영감님을 넘기고 알아서 캐내라고 하면, 대마법사인 분이 알아서 잘 캐내겠지! 게다가…….’
마음을 정했다는 듯한 헛기침을 슬쩍 뱉어내는 척하면서 투란이 에스탄에게 묻는 말을 늘어놓는다.
“영감님, 죽은 척하고 갈 곳은 있으셨던 거예요?”
에스탄이 픽 하고 주름진 입가를 뒤틀면서 대답한다.
“아니, 그냥 일단 언더섀도우에서 벗어나고 멀어지고 난 다음에 생각할 참이었지.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니, 생각할 때가 아닌 셈인가? 왜? 내가 어디로 갈는지 궁금한가?”
“갈 곳 없으면 갈만한 곳을 추천하려고요.”
빙그레 웃음을 머금으며 투란이 말했다.
에스탄도 대강 눈치챘다는 듯이 한번 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꾸한다.
“마법사에게 소개해 주려고? 알고 싶은 일을 많이 아는 사람을 떠넘기면 의뢰가 깔끔하게 끝날 테니까?”
“넵!”
결코 머뭇거리는 시늉도 않고 투란이 냉큼 대답했다.
너무 시원한 그 말투와 태도가 에스탄을 살짝 어이없게 한 모양이었다.
“너무 쉽게 살려는 것 아닌가? 원래라면…….”
중얼거리며 몇 마디 더 하려는 노인을 향해 투란이 재빨리 말한다.
“뭐가 있는지도 모를 컴컴한 그림자 아래를 바싹 긴장한 채로 나돌아다니다가 길 잃고 더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나와서 의뢰한 마법사 나쁜 놈을 외쳤을지도 모르죠! 뭐, 욕먹어서 좋은 사람 없으니 욕 안 먹어서 마법사님도 다행일 테고, 영감님도 딱히 갈 곳 정해 두지 않았다면 배려받고 대우받으면서 머물 수 있는 곳이 생기니 좋잖아요? 능력 있는 영감님이니까 헌터들 모이는 퍼브에서 할배들이랑도 잘 통할 텐데요?”
당당하고 뻔뻔하게 늘어놓는 이야기였다.
이는 에스탄을 조금 생각하게 한 모양이었다.
“흐흠…… 춤추는 산맥으로 간다라…….”
“몬스터가 맨날 쳐들어오는 곳도 아니에요. 평소에는 굉장히 조용한 곳이죠. 성벽도 튼튼하고…….”
투란이 살살 꼬드기는 시늉을 대놓고 드러내면서 덧붙이는 말이었다.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며 이런 투란의 뇌리에 웅얼거린다.
―누가 깊은 곳의 거대한 몬스터를 들쑤셔놔서 한참 쳐들어 오기도 했지만 말이지. 뭐, 이삼 년 지난 지금쯤이면 정리되었을까? 아니면 더 많이 쳐들어오고 있으려나? 어느 쪽일 것 같냐?
‘조용히 해!’
뒷골이 살짝 당기는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눈앞의 노인 에스탄에게 집중하는 시늉을 하면서 모르는 척했다.
다행스럽게도 에스탄은 투란의 이야기를 꽤 흥미롭고 그럴듯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듯했다.
“나쁘지 않겠지. 제대로 된 도시라면 춤추는 산맥이든 평원의 제국이든……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니 말이야. 으흠, 그 마법사가 내 이야기에 얼마나 지불할 것 같은가?”
“음? 어…… 혹시 기념으로 주워둔 마석 쪼가리 없으세요? 그런 거라도 있으면 이야기랑 더해서 비싸게 팔 수 있을 텐데.”
투란이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고 있었다.
에스탄도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말한다.
“그렇군, 정보와 함께 실물을 넘기면 신뢰성도 높아지겠지. 그래, 좋은 생각이야. 마법사라면 값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테니…… 자네가 보증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은데?”
“심부름값은 주시는 거죠?”
옅은 웃음을 띠면서 투란이 되물었다.
에스탄이 킬킬거리면서 대답한다.
“내가 그곳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면, 기꺼이!”
“그야 어렵지 않죠!”
투란도 웃음과 함께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노인과 어린 청년이 합의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심술궂으면서도 묘하게 쾌활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와아, 뭐 이런 황당한 상황이래? 대체 어딜 가서 따로 자리를 잡겠다는 거야? 이봐, 재상! 재상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투란은 웃는 얼굴인 채로 굳어졌고, 에스탄은 웃음이 산산조각 난 표정으로 홱홱 고개를 돌리면서 목소리가 대체 어디서 나왔는가를 살폈다.
―안이다, 밖이 아니고.
뒤늦게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속삭였다.
‘안?’
그 의미를 투란은 에스탄의 눈길이 멈춘 곳을 보며 겨우 느낄 수 있었다.
머물고 있는 절벽의 굴 바깥쪽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 막혀 있을 터인 굴 안쪽, 목소리는 거기서 터벅터벅 걸어 나온 사람에게서 이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바람 좀 쏘인다고 했잖아? 이게 바람 쏘이면서 할 얘기야? 와아, 심지어 옷 입혀 놓은 시체까지 남겨 뒀다면서? 죽은 척하고 도망이라니…… 우리 함께 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그건 아니잖아?”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푸른 빛깔이 맴도는가 싶으면 붉은 색조가 살짝 섞인 듯한 묘한 검은 머리카락…… 은촛대의 불빛에 어딘가 밝은 갈색의 채광까지 머금은 기묘한 머리카락을 산뜻하게 흘려 내는 청년이었다. 허리에 검대를 둘렀고, 입고 있는 옷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광택이 없는 묘한 옷감인데 어쩐지 으스스하고 튼튼해 보였다. 펄럭이는 망토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충분히 몸을 감쌀 수 있는 듯했고…… 어딘가 이단적이고 이질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
탐지의 마력을 배제하는 듯한 마력의 느낌, 그러면서 너무 자연스럽게 그 몸에서 흘려 내는 힘은 생명을 기반으로 한 오러와 닮은 듯하면서도 아닌…….
―아무래도 일찌감치 구멍을 내놓고 장막의 마법으로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드라고니아가 뒤늦게 파악한 상황을 말해서 투란은 한층 더 놀랐다.
‘프로브에다가 옵저버까지 써서 탐지했잖아?’
―그랬지. 분명히 자연스러운 동굴이었고, 자연스러운 바위벽이었다. 그 너머도 그냥 꽉 막힌 꼴이었고.
‘그럼……?’
―드라코눔의 탐지 마법을 능가하는 장막 마법이든가, 아니면 지금 막 뚫고 나온 것이든가. 어느 쪽이든 범상치 않아.
‘보통일 리가 없지.’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청년을 다시 살펴봤다.
옷감이 희한하기는 해도 청년의 차림새는 아예 낯설고 이상하지는 않았다.
헌터가 아닌 채로 적당한 무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 딱 그런 모습이니까.
다만 허리춤의 검이 과연 쓰려고 차고 다니는 것인지, 모양만 꾸민 것인지 애매하게 보이기는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음, 안녕하신가? 우리 재상이 막 신세를 진다는 말을 하고 있었지? 내 이름은…….”
넉살 좋게 청년이 투란을 향해 명랑한 말을 꺼내고 있었다.
너무 넉살 좋고 밝아서 투란이 엉겁결에 ‘네? 네에…….’ 하는데, 에스탄이 벌떡 일어나면서 노한 소리를 버럭 질러냈다.
“프릿! 여긴 대체 왜…… 아니, 어떻게 그 안에서 나오는 거야얏!”
“프릿이라고 해. 음, 소년? 아니, 이제 다 큰 청년인가? 아무튼 자네 이름은?”
프릿은 에스탄에게 귀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가만히 있으란 시늉을 하면서 더욱 밝고 맑게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뭔가 희한하고 이상해서 투란은 어정쩡하니, 어리둥절한 채로 더듬는 말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음, 어…… 투란이라고 하는데요…… 어, 에, 음.”
묻는 말에 답하고 나니 이 상황에서 더 뭐라 말을 이어야 하는가 전혀 알 수가 없잖은가!
프릿은 전혀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다음 말과 행동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