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0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0)
아르고누스가 눈알에 반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비록 그 눈알이 태엽으로 꾸며져 있고, 거품 같은 괴이한 곁가지 눈알을 덤으로 흘려 내는 중이기는 했어도…… 어쨌든 뭔가 보는 눈알이란 점은 분명한 듯하니까.
하지만 태엽으로 꾸며진 기계장치라고 해서 고르곤이, 마이두스 왕의 황금성에서 만난 기계 괴수 고르곤이 반응하는 것은 굉장히 뜻밖이었다.
‘뭐야, 왜?’
자신에게 물었지만 투란은 몬스터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먼저 행동하고 있었다.
손을 내밀었고, 프릿의 손이 기울어지며 떨구는 구슬…… 기계 태엽의 눈알을 받아 들었다.
투란의 손바닥에서 검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작은 기둥처럼 시커먼 잉크가 찰랑이며 치솟았다.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프릿이 건넨 기계 태엽의 눈알을 휘감았고 날름 삼키면서 손바닥 속으로 끌어들이더니, 지워졌다.
잠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투란은 느릿하니 눈을 감았다.
에스탄이 이 광경에 ‘헛?’ 하며 놀란 소리를 냈고 프릿과 셀리아는 흥미롭다는 듯,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변의 그런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투란은 가만히 아르고누스와 기계 괴수 고르곤의 본능이 대처하는 과정을 통찰해 보니…….
황금빛 눈알을 만들어 내고 타우루스에게 박아 넣던 고르곤의 본능은 눈알의 구조에 집중하고 있었다.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물려 있고 그 안에서 태엽이 어떤 식으로 걸쳐 어떻게 박혀 있는가…… 구슬처럼 보이던 눈알의 기본 틀이 어떤 형태인가를 더듬으며 이를 재현하려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본능이었다.
아르고누스의 본능은 그런 형태나 구조에 집착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어떻게 시각이 구현되어 있는가, 어떻게 보는가를 파고들면서 거품처럼 피어났던 붉은 기름의 눈알을 시커먼 바탕 속으로 끌어들였고 그 기름이 맴도는 태엽과 톱니의 틈새를 잉크로 물들여 가면서 시각이 구현되는 부분을 수정의 형태로 본뜨며 재현해 내는 과정을 즐기는 듯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하나의 형태, 하나의 시각으로 맞물렸으니…….
감고 있던 투란의 눈꺼풀이 거뭇하게 물들었다.
검은 잉크가 끈적하게 눈물처럼 흘러나오면서 감긴 눈꼬리에 맺혔다.
곧 투란이 한쪽 눈을 뜨니, 태엽과 톱니가 엮인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알 속조차도 톱니와 태엽이 정교하게 맞물린 채로 달칵거리면서 꿈틀거리는 형상을 머금은 것이 엿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눈을 움직여 주변을 보던 투란은 새로운 시각, 시야의 풍경에 멍하니 놀라고 말았다.
‘눈금……인 거지?’
수직선과 수평선, 처음에는 하나씩 그어졌던 것이 시야 모두를 갈라놓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좍좍 그어지고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을 격자무늬 너머로 봐야 한다는 것처럼, 수직과 수평의 선이 투란의 시야를 토막 내며 보여 주고 있었다.
―코디네이트 매트릭스…….
드라고니아는 새로운 시야에 대해 뭔가 아는 듯이 속삭이고 있었다.
‘뭐야, 그게?’
투란이 눈알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시험하듯 시야를 옮기는 채로,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는 프릿과 셀리아, 에스탄에게 들리지 않게 소리 없이 물었다.
드라고니아가 머뭇거림 없이 바로 답을 해 주었다.
―행렬좌표(行列座標)를 매겨 구역(區域) 분류를 하는…… 아, 그냥 자로 재서 세상을 보기 쉽게 해 주는 기술이야.
투란이 ‘뭔 어려운……!’이라고 으르렁거리기 직전에 아주 쉽고 편한 말로 고쳐 주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도 금방 수직선과 수평선에 매겨진 눈금, 물건 길이 재는 자처럼 표시된 시야의 상황에 대해서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었다. 다만…….
‘자를 이렇게 잔뜩 늘어놓고 보려니까 불편해! 하나씩만…….’
투덜거림이 투란의 마음을 채웠고, 그 순간에 고르곤의 본능이 움직였다.
눈금을 머금은 수직선과 수평선은 하나만 남았지만, 시야를 구획 지으며 나눠진 풍경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 순간에 투란은 자신이 보지 않으려 하면 이 수직선, 수평선 또한 시야에서 치워 버릴 수 있었다.
‘근데 이거 어디다 쓰라고?’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는 투란이었다.
―원래 지도 그리는 기술에 포함되는 것이다만, 활이나 쇠뇌 사격할 때에는 겨냥에 도움이 되는 조준을 위한 기준선이 되어 주기도 하지. 벡터칼크도 이런 식으로 공간 분할을 해서 인식할 수 있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있으면 편한 도구라고 생각해라.
‘으음…….’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쉽게 설명해 주기 까다로워 회피하듯이 내놓은 답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프릿을 바라보며 묻기로 했다.
“저기, 이게 대체…….”
“바이오-오그먼트(Bio-Augment), 생체증강기구(生體增强機具). 마음에 드는 말로 고르라더군. 그리고 그 안에 메모리가 된…… 이렇게 말하면 대강 안다던데, 다른 말로는 기록 화상? 그런 것이 있으니 그것도 봐 달라던데?”
프릿은 투란이 입을 열자마자 냉큼 대답해 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이미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한 신속한 대답이었다.
이에 대해 투란이 뭐라 할지 몰라 입을 벙긋거리니, 곁에서 에스탄이 사납고 차갑게 대신 으르렁거리듯이 말한다.
“괴물 년…… 여전히 지독하군!”
그 말투, 태도에 투란은 ‘아, 이거 화낼 일인가?’라고 조그맣게 웅얼거리면서 어떻게 화를 내야 하나 살짝 궁리하는 시늉을 했다.
셀리아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채로 갸릉거리는 고양이 울음 같은 코웃음을 밝게 흘리면서 그런 투란을 놀리듯이 말한다.
“에스탄은 이도 저도 못 하는 궁지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예견자에게 휘둘린 적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고…… 지금 투란에게 해 주는 것처럼 이런 말 저런 말 붙인 설명까지 해 줬으면 에스탄도 그렇게 불만은 없었을걸? 뭐라 하기 전에 그 눈에 기억된 것이 뭔가부터 봐. 그게 화를 낼 일인가, 좋은 일인가부터 확인해야지.”
“어…… 음, 네…… 으음…….”
버벅대면서 투란은 다시 떴던 눈을 감았다.
메모리되었다는, 기억된 뭔가를 어찌 찾아야 하는가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고르곤의 본능이 태엽을 움직이고 톱니를 뒤틀면서 엷게 저미듯이 스며 있는 미세한 틀을 움직였고, 그 안에 담긴 붉은 기름의 피막이 조합되면서 금방 뭔가를 볼 수 있었으니…….
두근, 두근, 두근.
그려진 듯한, 실물을 그대로 담은 그림인 듯한 그 화상(畫像)의 형태를 마음에 담는 순간 투란은 온몸에서 바싹 곤두서는 듯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화상 속에 담긴 것은 거뭇한 그림자 같은 형상이 뭔가를 쥔 손을 내밀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손에 쥔 것은 끈에 매달린 것처럼 대롱거리는데, 둥글게 생긴 채로 빙빙 돌려는 낌새로 마주 노려보는…… 눈알이었다.
흡사 어딘가에서 핏줄과 힘줄째로 뽑아낸 듯한 그 눈알의 형상에 아르고누스가 아주 격렬하게 반응하는 셈이었다. 마치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뭔가를 겨우 다시 보게 된 것처럼!
하지만 투란은 아르고누스가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저 눈알, 이제는 완연히 실감 나는 그림 속에서 고정된 꼴로 보이는 저 눈알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아르고누스의 갈망을 느끼며 저 눈알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는, 획득해야 한다는 욕심이 억누르기 힘들 정도로 사납게 치솟는 것만 깨달을 수 있었다.
‘저게 뭔지 알겠어?’
잠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꽉 채워지는 욕심을 한구석으로 치우며 주의와 관심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모른다. 하지만…… 네 상태로 봐서 짐작할 수는 있겠군. 저건 원래 아르고누스가 갖고 있다가 잃어버린 눈이겠지. 다른 대상으로부터 획득한 것이 아니라 본래 갖고 있었던 눈일 가능성이 커. 아니라면…… 한때 어딘가에서 얻었지만 어쩌다 빼앗기고 잃어버린 채로 본능 깊이 그 상실감을 새겨넣은 채일 수도 있고.
‘그냥 넘길 수는 없겠지?’
―몬스터의 본능을 무작정 억누를 수 없잖아? 너라면 일단 일상에 지장 없이 본능을 찍어 누르기야 하겠지만…… 일단 봐 버린 이상, 계속해서 네 마음 한구석을 갉아먹으려 들 거야. 해결할 수 있을 때 해결 보는 편이 좋겠지. 도와주겠다고 들이대는 작자들까지 있잖아? 어지간하지도 않은, 대단한 작자들이 말이야.
슬쩍 프릿과 셀리아, 에스탄을 훑는 듯한 말에 투란은 눈을 감은 채로 숨을 고르면서 담담한 표정을 꾸민 다음에 눈을 떴다.
프릿이 얼굴을 들이대고 눈동자를 마주치는 채로 바로 묻는다.
“봤어? 어때? 예견자, 만나러 가겠어?”
이 물음은 드라고니아에게 곧바로 분석당했다.
―기록이니 기억이니 지껄이더니, 뭐였나 알고 있었구먼!
입가에 떠오르는 뒤틀린 웃음을 가능한 억누르면서 투란도 묻는 말을 꺼낸다.
“음, 뭘 보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나 보네요?”
“수상해서 물어봤거든. 얌전히 대답해 주던데? 예견자가 자기 모습을 너에게 보여 줘야 한다고, 자기 모습 그대로 담아 둘 거라고 말이야. 일단 거짓말은 안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없었지만.”
프릿은 어쩐지 즐겁게 재미있어하면서 떠들고 있었다.
그 꼴에 투란이 입술을 살짝 떨면서 ‘이럴 땐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말이 안 나온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자니, 에스탄이 곁에서 한숨을 쉬며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으로 호응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셀리아는 한 손을 내밀면서, 그 손바닥 위에 기묘한 환영을 피워 올리면서 묻고 있었다.
“그 기록 화상에서 본 것이 이런 몰골 맞아?”
프릿과 다르게 명백하게 비교할 대상을 보여 주었다.
“어? 똑같…… 아, 그쪽이 훨씬 자세한데요?”
보자마자 투란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거뭇하고 흐릿한 형체였던 기록 화상과 다르게, 셀리아가 비춰 주는 환영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성이 실 가닥에 꿰인 흉측한 피투성이 눈알을 들고 선 모습,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린 상태가 굉장히 수상했고 누더기를 걸친 꼴이 그냥 팔다리만 꿰어 놓으면 옷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몰골이었다.
에스탄이 왜 ‘괴물 년’이라고 불렀는가 어느 정도 납득까지 할 수 있는 괴이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모습이기도 했다.
덕분에 투란은 피투성이 눈알의 형체를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고, 아르고누스의 본능이 한층 더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욕심을 부추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눈동자, 저 눈알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는…….
“그러면 투란, 갈 거지? 예견자에게 갈 거지? 길 안내는 우리가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함께 갈 거지?”
프릿이 재빠르게 부추기는 말투로 묻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니 투란이 가지 않는다고 하면 냅다 납치라도 할 위험, 위협이 풀풀 흩날리는 듯한 분위기이잖나!
너무 노골적인 그 분위에 투란은 어색한 웃음을 꾸미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가야 할 것 같…….”
“좋아! 가는 길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돼! 오래 걸릴 여행이란 걱정도 치워도 돼! 후후훗, 셀리아가 전부 해결해 놨거든!”
프릿이 아주 명랑하게 투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외치고 있었다.
곁에 있던 에스탄이 그런 프릿에게 익숙한 듯, 한편으로는 언제 봐도 못마땅하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또 떠넘기는구먼…… 아주 지긋지긋해, 이 꼴 다시 보기 싫었는데!”
반면에 셀리아는 웃으면서 프릿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편하고 빠른 길이 준비되었으니까, 정말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예견자에게 왔다 갔다 하다가 험한 꼴 겪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아주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어요.”
투란은 그냥 어색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문을 닫고 말았다.
프릿은 이를 완벽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자아, 그럼 투란과의 협의는 끝났고! 재상, 우리 잠시 얘기 좀 해야겠지?”
에스탄이 화들짝 놀라서 움찔하는데, 그 주변이 은은하게 일렁이는 꼴이 당장 철갑의 기사들이 튀어나올 듯한 낌새마저 엿보였다.
하지만 프릿은 의자를 고쳐 앉으면서, 팔짱을 낀 채로 순수한 대화를 원한다는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에스탄도 그런 프릿에게 당장 무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던 듯, 끙끙거리는 표정인 채로 ‘뭐! 무슨 얘기!’라며 나름대로 당당한 자세를 꾸미는데…….
“에스탄, 마무리만 남았어. 십이혈족을 제압하고 언더섀도우에 인간의 제국을 완성할 마무리 단계만 남았다고. 이럴 때 떠날 거야? 그동안 쌓아 올린 세월의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아? 물론 결말을 짓는데 에스탄의 도움이 필요하지. 우리 재상이잖아. 이대로 떠나면 도망자란 말만 듣고 끝나는 거야. 십이혈족 녀석들이 망해도 좋아라 하는 꼴이 보고 싶어? 철혈의 재상이라고 들이대던 에스탄이 끝내 자기네 이빨을 피해 달아났다고 좋아라 할 텐데? 에스탄, 마무리야! 마무리 짓고 그 녀석들을 발아래 깔아뭉개고 일 끝났으니 떠난다, 이렇게 외치고 싶지 않아?”
프릿의 말은 조금 전의 명랑함, 유쾌함이 싹 지워진 채로 사나운 위엄만을 담은 웅장한 목소리로서 울리고 있었다.
―이중인격?
드라고니아가 그 태도, 분위기에 놀란 듯 이리 중얼거릴 지경이었다.
투란도 ‘설마?’ 하며 프릿을 다시 봐야 했다.
그리고 에스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