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2)
―잠깐, 투란! 몬스터가 마법으로 갇혀 있다. 저 돌기둥이 이루고 있는 영역 밖으로는 벗어나지 못하는 채야! 그냥 갇힌 것도 아니고…… 거의 활동을 못 할 지경으로 억압된 상태야.
욱하고 프릿에게 뭐라 한마디 하려던 투란은 억울한 표정만 짓고 입술을 꼭 다물었다. 드라고니아가 갑자기 던진 말이 의미하는 바가 어딘가 기묘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의 돌기둥 틈새에 꼼짝 못 하는 몬스터가 갇혀 있는데 투란을, 몬스터 로드인 투란을 홀로 들어오라 한다?
‘이게 무슨 뜻이지?’
답은 이미 투란의 가슴 한구석에서 서늘하게 맴도는 중이었다.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그 서늘함을 짚듯이 말을 잇고 있었다.
―너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꽤나…… 불길하면서도 신비로운 힘을 지닌 몬스터……라고 해야 할 듯한걸?
‘뭘 그렇게 애매하게 말해? 뭔지 모른다는 거잖아?’
슬쩍 프릿을 엿보고 셀리아를 흘깃하는 채로 에스탄까지 확인하는 눈길을 두루두루 돌린 다음에 투란은 다시 돌기둥 무리를 노려보는 시늉을 했다. 마치 자신에게 대체 무슨 짓을 시키려느냐고 한껏 의심하면서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듯한 태도였다.
프릿이 이런 투란을 향해 실실 새는 웃음을 띤 채로 말한다.
“내가 들어가도 된다면 잽싸게 뛰어들었을 거야. 예견자는…… 에스탄이 험한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초대한 손님을 위험하게 하지는 않아. 초대받지 않고 말 안 듣는 침입자에게 굉장히 험한 경험을 하게 해 주긴 하지만, 투란 너는 아주 정성스럽게 초대받은 손님이라고. 그 눈알, 이 언더섀도우에서 얼마나 쓸모가 있는가 이제 슬슬 느낄 수 있잖아? 안심하고 들어가. 들어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에스탄이 바로 곁에서 불만을 한가득 품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프릿의 말에 대해 뭐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으니, 투란이 보기에는 불만은 많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서 잠자코 있는 것인지 자신을 저 안에 집어넣는 일에 찬성해서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셀리아는 미적거리는 투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보챘다.
“몬스터 로드가 뭘 그렇게 꾸물거려?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아먹고 한바탕 휘젓고 나와도 된다잖아. 겁이 많은 성격도 아니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나와서 프릿에게 따지면 돼! 얼른 들어가!”
투란에게는 저 안에서 무슨 일이 터질까 구경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가득한 마법사로 여기게 하는 이야기였다. 살짝 울컥하는 기분대로 하자면, 일단 마법사는 때려눕히고 여기까지 실실 웃으면서 데려온 일당을 몽땅 묶어 거꾸로 매단 다음에 생각을 하고 싶었다.
―들어가긴 할 거잖아?
그런데 툭 치듯이 드라고니아가 말하고 있었다.
‘그래, 들어갈 거면서 성질부리면 나와서 곤란해질 수가 있지. 가뜩이나 낯선 곳인데 말이야.’
투란은 숨을 고르며 각오를 다지는 시늉을 하는 채로 마음을 정했다.
아예 내빼겠다고 해도 이곳은 이미 그림자 아래, 그 지저 영역을 마법의 궤도차를 타고 온 탓에 어디로 튀어야 하는가조차 전혀 알 수 없는 어둠 속이었다. 지평선처럼 희미하게 밝혀진 선은 중간 어름에 높이 솟는 산자락 따위에 간혹 끊어진 듯 보였지만 모든 방향에 그어진 채였다. 빛을 좇아 어디를 선택하든 엉뚱한 곳을 헤집고 다닐 수밖에 없어 보였다. 게다가 어둠 깊은 저 너머에서 기고 날고 하는 괴이한 것들은 몬스터이든 아니든 함부로 대하기 난감해 보였으니……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들어온 다음에 프릿 일행에게 이러쿵저러쿵 으르렁거리는 것은 앞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멍청한 짓일 뿐.
그리고 이 모든 주변 상황에 대란 고려를 마음 한구석으로 일단 치워 놓게 하는 것은 돌기둥 틈새에서 불길하게, 신비하게 일렁이는 몬스터였다. 몬스터 로드의 본능, 문장의 마력을 슬그머니 자극하는 몬스터의 냄새가 투란을 유혹하는 셈이었다.
프릿이 말한 것처럼, 투란이 거부한다 해도 그건 나중으로 미룰 정도로 강한 유혹이 돌기둥 사이에서 부르는 상황!
다시 돌이킨다면 투란으로서는 얌전히 반 토막 알 위에 올라앉아 따라온 그때부터가 문젯거리를 짊어진 꼴이라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듯싶었다. 하지만 프릿이 달콤하게 속삭였던 대가는 여전히 투란에게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속삭이는 듯도 했으니…….
―마석을 챙겨 가려는 욕심 탓이었잖아. 뭐, 홀시딘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결과가 없었겠지만. 그래서 어쩔 거야? 계속 망설이면서 버틸 생각이냐? 참고로 알아 둘 점은…… 프릿이나 셀리아, 심지어 에스탄도 널 저 안에 처박을 준비가 끝나 있다. 곱게 들어가지 않으면 험한 꼴 볼걸?
‘아우, 썩을!’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일단 한 걸음 돌무더기 쪽으로 디디면서 프릿을 바라봤다.
드라고니아가 말한 준비가 무엇인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투란은 프릿의 얼굴, 어째서인가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듯한 분위기마저 띄운 그 낯빛 너머로 불길하게 꿈틀거리는 이상한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더불어 셀리아가 몸을 장식하는 장신구 곳곳에 박아 둔 마석이 마력을 흩날리면서 강력한 마법의 준비가 완료된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에스탄은 시무룩하면서도 무거운 표정으로 뭔가 마음을 정하지 않은 듯한 애매한 표정이란 점이 조금 투란의 마음을 다독이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투란 너 잠깐 잊고 있는 것 같다만…… 애초에 너한테 건넨 태엽 기계 눈알을 통해 저 안의 예견자가 너에게 보여 준 것, 그 이상한 눈을 확인하기 위해서 왔잖아? 이제 와서 망설이는 꼴이 너무 우습지 않나?
‘생각 안 하려고 잘 눌러 놨는데, 너 때문에 또!’
투란은 혀를 차면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아르고누스는 태엽과 톱니의 기계 눈이 보여 준 광경 속의 눈알을 탐하고 있었다.
너무 지나치게 보채는 것 같아서 투란은 마음 한구석에 아르고누스의 본능을 억누르고 그 힘을 태엽 장치 눈으로 끌어내면서 관심을 분산시킨 채로 살짝 뇌리에서 예견자가 보여 준 광경을 지워 놓은 참이었다.
하지만 다시 드라고니아가 짚어 주니, 이제는 프릿이 주절거렸던 대가고 뭐고 상관이 없다는 기분이 샘솟고 있었다. 홀시딘의 부탁이고 뭐고 반드시 저 돌무더기 속에서 기괴한 예견자가 들고 있는 눈알을 일단 손에 쥐어야 한다는 충동이 거세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는 그 충동이 투란의 걸음을 더욱 빠르게 보채기 시작했다.
“다녀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좀 기다려 줘요.”
슬쩍 혼자 남겨 두면 무섭다는 시늉을 담아 말하고 투란은 돌무더기 틈새로 빠르게 걸어 들었다.
순간적으로 기묘한 장막을 스쳐 지난 듯해서 투란이 잠깐 멈칫하니 곧바로 프릿의 대답이 투란의 귓가에 아련하게 전해 왔다.
“기다릴 거야, 그래도 가능하면 빨리 일 끝내 줘! 여기서 며칠 새울 준비는 안 했거든! 부탁해!”
상쾌하고 유쾌하면서 아무 걱정도 염려도 없는 말투가 어쩐지 좋은 느낌이잖은가.
‘희한하고 신기한 사람이야. 진짜 황제려나?’
―이곳에서 자칭 뭐라 하든 상관할 사람이 있겠냐? 저 마법사와 이상한 노인이 그렇다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해라.
‘너도 안 믿고 있었어!’
―언더섀도우에 무슨 왕국이나 제국이 있겠냐?
짧게 스쳐 간 대화의 끝에 담긴 신랄함에 투란이 잠시 어이없어하는데, 돌기둥이 꽂혀 이뤄진 기묘한 틈새 사이에서 맴돌던 불길하고 신비로운 뭔가가 안개처럼 흐느적거리며 가죽처럼 팽팽하게 다가와 발아래에서 불끈거리며 자극해 왔다.
적대적이라고 하기 곤란한 자극이었고, 그냥 어서 와 달라고 보채는 듯한 분위기만 짙다고 느껴졌다.
―잡아 삼키고 움직일 거냐? 그냥 움직일 거냐?
드라고니아가 느릿느릿 발끝으로 바닥을 짚어 보는 투란에게 물었다.
이미 예견자가 머문다는 곳으로 가기로 했는데, 이 틈새 길을 맴도는 기묘한 몬스터를 삼키고 만날 것인가 그냥 만날 것인가…… 투란의 선택에 호기심이 생긴 듯이 묻는 말이었다.
‘음, 뭔지도 모르는데…… 길들여진 것 같잖아? 일단 가 보자고. 정말 내게 주려는 몬스터인가 아니면 이 주변을 지키는 파수꾼인가부터 확인해야겠어.’
투란은 조금 냉정하게 생각하면서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돌기둥마다 짙은 녹색이 검게 물든 듯한 이끼가 채색되듯 들러붙어 있었고, 볼록한 혹처럼 돋아난 이끼에서는 빛의 파편이 새어 나오듯 광채가 흩날리고 있었다. 덕분에 어둡다기보다는 어스름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런 돌기둥에 가려진 샛길은 그리 길지 않았고, 고작 이십여 미터를 지나서 바로 돌기둥 무리의 중심이 되는 듯한 빈터가 나타났다. 가죽인 듯 살랑이는 안개가 빈터를 메우고 맴도는 탓에 다른 것은 없는 듯했지만, 투란이 돌기둥을 지나서 그 안에 발을 딛는 순간 빈터의 중심에서 부스스하고 느릿하니 일어서고 있었다.
사방의 돌기둥에서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끼가 한층 더 볼록한 돌기를 내밀었고, 중심을 향해 빛의 파편을 분출하는 듯했다.
―포자(胞子)로군, 발광(發光) 식물을 조종하는 모양인데?
딱 맞는 순간에 조명(照明)을 강하게 한 듯한 광경을 드라고니아가 평했다.
투란은 그 중심에서 일어선 자, 가늘고 여리지만 남자가 아니라 분명히 여자임을 알 수 있는 몸매인 채로 한 손을 내미는 자에게 집중했다.
태엽과 톱니의 눈알, 그 안에 기묘하게 기억시킨 화상을 통해 봤던 자였다.
프릿이 예견자라 칭하고 에스탄이 괴물 년이라고 평했던.
“가아아아 고오구으아아 흐아아!”
입을 열고 토해 내는 소리를 듣자마자 투란은 에스탄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싶다는 기분부터 느꼈다.
도대체 저 말이 될 리가 없는 소리를 어떻게 들었기에 프릿이 덜렁덜렁 태엽 톱니의 눈알을 받아 투란을 찾아올 수 있었을까? 절대로 저 소리를 말로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저 소리랑 다르게 멀쩡하니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봐아앗! 그딴 소리로는…….”
일단 투란은 톱니와 태엽의 눈알을 크게 부릅뜨면서, 자신을 불러 놓고 무슨 수작이냐고 따질 생각으로 입을 열어 외치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맺기도 전에 투란은 가슴으로 스며들고 마음을 울려 오는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위대한 허무(虛無)의 옥좌(玉座)를 지배하는 분이시여.
“뭐?”
갸아아아아!
움찔하는 투란의 귓가로, 온몸으로 새로운 음향이 쩌렁쩌렁 울려 왔다.
동시에 투란은 퍼져 있던 안개가, 더욱 선명한 가죽의 형상이 되어 덮쳐 오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발목의 감각은 가죽이 뱀처럼 감아 온다고 알려 줬고, 눈앞에 펄럭이는 가죽의 장막은 여러 개의 입을 활짝 열고 그 안에 날카로운 이빨이 돋은 모양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물어뜯으려 하잖는가!
‘이런 썩을! 이거 함정이었……!’
울컥한 기분이 투란의 마음에 불끈 치솟으려 하는데, 또다시 ‘외침’이 투란의 마음을 울리며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소리로 된 언어와는 전혀 다른 이상한 방식의 ‘이야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용의 보좌를 받는 왕의 공허 속에서 모든 저주를 먹어 치우는 지옥의 아가리조차 굴종할 것이니! 받아 주옵소서, 모든 저주(詛呪)를 삼키는 지옥의 사냥꾼을! 비천한 것의 작은 공물(供物)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동시에 투란은 빠르고 바쁜 드라고니아의 외침도 들었다.
―소환된 마수(魔獸), 아니 마물(魔物)이다! 소환식을 파괴해서 완전히 몬스터로 바꿔 놨어! 투란, 대처해라! 삼키든 물리치든 빨리 해!
콱, 콰득, 콱, 콱.
사납게 머리부터 덮어씌우면서 팔뚝을, 정강이를, 허리를, 뱃가죽을, 등짝을 물어뜯어 오는 괴물의 아가리를 느끼면서 투란은 어처구니없었다.
‘에스탄 영감 말이 맞구먼! 괴물 년이 무슨 짓을!’
울컥한 기분이 마구 솟구쳤고 그에 따라 사나운 생각이 투란의 마음에 마구 드리워졌다. 하지만 물어뜯는 아가리와 함께 그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물린 자리를 핥는 혀, 더불어 이빨이 가득한 입을 열기는 했지만 끈끈하면서도 매끈하게 온몸 곳곳에서 칭칭 감겨 오는 감각이 요동치는 것도 느껴졌다.
투란은 이에 대해 아주 빠르게, 다른 몬스터 로드라면 감히 생각도 못 할 방법으로 대응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울화를 가득 담아, 노여움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목소리로 말도 했다.
“기껏 준비했는데 받아 줘야지, 그래 무슨 미친 괴물인지 괴수인지 주는 선물이니 잘 받아 주겠다!”
나직한 포효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고 시커먼 잉크가 뱀 비늘이 엮인 검은 가죽을 토해 내면서 물어뜯는 아가리를 메꿔 나갔다. 잉크의 시커먼 광택 속에서 흐릿한 붉은 고리 무늬가 떠올랐고, 곧바로 핏빛을 선명하게 뿜어내면서 안개와 가죽 속으로 번져 나갔다.
투란의 머리를 덮었던 부분이 시커먼 잉크빛 가죽으로 바뀌면서 젖혀졌다.
그렇게 투란의 시야가 다시 열리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은 높이 치켜올린 두 손이 꼭 붙잡고 있는 힘줄…… 작고 가느다란 실 가닥이 꼬이고 엮여 겨우 꾸민 힘줄에 매달린 채로 내밀어지고 있는 눈알이었다.
아르고누스가 격동했고, 투란은 머뭇거림 없이 손을 내밀어 움켜쥐었다.
쿠르릉, 돌기둥 무리가 기다렸다는 듯한 울림을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