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4)
―야, 뭘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놀라 외치고 있었다.
‘응? 아, 여기 정리하려고…… 미리 봤으니까 괜찮아.’
투란의 대답은 느긋한 말투였지만 나름대로 빠르게 나왔다.
물론 드라고니아로서는 납득할 부분이 전혀 없는 말일 뿐!
―무슨 얘기야?
‘잠깐만.’
다시 묻는 말에 짧게 대꾸하며 투란은 집중했다.
미리 본, 보인 광경에 따라 대응하고 있기는 했지만 투란도 이것이 무엇이고 어떤 현상인가 이해하고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이 돌기둥 무리가 진동하면서, 바닥이 거대한 돌의 톱니바퀴인 탓에 맴돌면서 가라앉는 이 상황을 어찌 정리하고 해결하는가를 미리 본 그대로 해결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해결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터지는가까지 미리 봤으므로!
그래서 투란이 하는 짓은 미리 본 것과는 조금 다르기는 했다.
외눈박이처럼 미간에 눈알이 박혔지만 원래 있던 두 눈과 어우러져 세눈박이가 된 상태, 때문에 한쪽 눈알은 가볍게 뽑아내도 될 듯하지만 투란은 태엽과 톱니의 눈알을 뽑아내는 대신에 손바닥에 새로 생성시켰다.
똑같은 형태, 똑같은 재질, 똑같은 기능의 눈동자, 원래 단 하나만이 존재해야 하는 우자트가 서로 공명했고 그 힘을 거침없이 증폭시키면서 돌기둥 무리의 중심에 감춰진 암석 구조물을 자극했다.
그리고 원래 눈알을 뽑아 끼워 넣을 자리에 손아귀에 생성된 눈알을 끼워 넣었다.
쿠르릉.
돌기둥 무리가 넘어지고 있었다.
빛나는 중심을 향해 눕듯이 기울어지며 누워 새로운 미로를 자아내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에스탄이 낯을 잔뜩 구긴 채로 프릿을 향해, 셀리아를 향해 나지막하니 묻는 말을 꺼낸다.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프릿? 셀리아, 정말 저 속에서 아무 일 없이 걸어 나올 수 있는 거야?”
프릿은 모른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고, 셀리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무너지는 돌기둥 주변을 탐지하는 마법을 부리는 채로 대답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예견자가 말했어, 우리가 데려온 투란은…… 저 안에서 죽을 일 따위 전혀 없다고 말이야. 이제부터 우리랑 함께 해야 할 일이…… 어? 이건 또 뭐래?”
에스탄은 갑작스럽게 변한 셀리아의 말에 뭐라 하지 않았다.
눈앞의 광경이 셀리아의 말을 자르고 바꿀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돌기둥 무리가 안쪽을 향해 끌려들어 가며 분지(盆地)가 생겨나고 있었다.
중심이 바닥으로, 땅속 깊이 꺼지면서 드러누운 돌기둥의 미로를 통째로 삼켜 버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사방 수십 미터가 순식간에 훌쩍 가라앉으며 사라지는 듯했다. 그 텅 빈 자리의 중심에 돌기둥과 함께 빛까지 끌어당기면서 지우는 듯한 모습으로 숙이고 앉은 투란이, 작은 소년 같은 모습이 얼핏 보였다.
하지만 돌기둥과 훤한 빛을 한 팔로…… 팔을 감싼 작은 돌기둥 형태 속으로 끌어당겨 응축하며 지워 버리는 소년의 모습은 어리고 작다는 분위기를 지녔다고 해도 섬뜩함으로 심장을 찔러 오는 괴기를 품은 채였다.
그 광경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에스탄이 고민할 때 프릿이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눈이 파랗네.”
“뭐요?”
에스탄은 어리둥절해서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셀리아는 프릿의 중얼거림이 무슨 뜻인가 알아차린 듯했다.
“정말로 파랗게 되었네?”
에스탄도 겨우 뭘 보고 둘이 떠드는가 깨달았다.
멀지만 어둠 속에서 가라앉은 빛의 풍경, 그 속에서 투란의 왼쪽 눈이 파랗게…… 수십 미터 밖에서도 느낄 수 있는 맑고 파란 빛을 머금고 일렁이고 있었다. 에스탄이 눈가를 찌푸리면서, 살짝 강화된 시각으로 엿보니 그 파란 눈동자 안은 태엽과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며 눈알을 채우는 듯했다.
“저 눈, 어디서 구해서 줬다고 했죠?”
불길함을 느끼고 묻는 에스탄이었다.
프릿은 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인 듯, 상쾌하게 대답한다.
“그런 말은 한 적 없는데?”
셀리아가 피식 새는 웃음과 함께 보태듯이 말한다.
“우리가 구한 눈알이 아냐. 예견자가…… 음, 아마 은빛 피였지? 실버 블러드 종자네랑 엮였다고 했나요? 프릿, 뭐였죠?”
대답 대신에 프릿은 키득거리고 웃을 뿐이었다.
에스탄이 아늑해진 표정으로, 경악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급하게…… 사납고 거칠게 묻는다.
“그 메카니즘 혈족이랑 왜 엮였는데! 그놈들이랑 서로 상관하지 않기로 한 것 아니었나! 프릿, 처웃지 말고 대답을 해, 대답을!”
“상관하지 않았어, 우리는 말이야. 우리가 상관없다는 것은 녀석들도 잘 알아.”
프릿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마치 에스탄이 왜 긴장하고 노여워하는가 알 수 없다는 듯한 태도로 대답하고 있었다. 때문에 에스탄은 한층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말이 통하는 상대를 찾는다는 듯이 셀리아를 향해 다시 묻고 있었다.
“셀리아! 저게 대체 무슨 헛소리요? 설명 좀 해 줘! 제발!”
셀리아가 프릿의 흉내를 내듯이 웃음을 머금은 채로, 에스탄을 놀리는 것이 재밌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대답은 꺼내고 있었다.
“우리는 예견자와 거래를 했을 뿐이야, 저 눈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여기로 데려온다는 거래를 말이야. 그러니까 예견자가 저걸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가는 전혀 모르는 셈이지.”
“모르는 셈?”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한껏 담아 에스탄이 되뇌었다.
모른다는 말이 아니고 셀리아나 프릿이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아마 어떻게든 상황을 알아채고 끼어들어서 이득을 챙기려 했다는 뜻일 터다. 얼핏 생각하면, 정말로 아무 상관 없이 끼어들어 자신들의 일만 했다고 우기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 변명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프릿, 바보야! 이 멍청한 황제 폐하가 진짜!”
험악한 외침이 저절로 에스탄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좀 더 떠들게 놔두면 온갖 욕설이 다채롭게 봇물처럼 흘러넘칠 듯한 순간, 그 봇물을 터뜨리기 직전의 에스탄에게 프릿이 냉정한 위엄을 담아 말한다.
“끝장낼 거니까 상관없어.”
“뭐? 뭐요? 끝장내다니?”
에스탄이 당황했다.
프릿은 방긋 웃으면서 금방 경쾌한 태도로 되돌아갔고, 셀리아가 살짝 에스탄에게 다가서면서 귓속말하듯이 속삭인다.
“거래를 했다고 했잖아. 예견자랑 말이야. 응, 우리는 미래를 받기로 했어. 실버 블러드의 메카니즘 교도(敎徒)가 결코 우리의 도시에, 나라에 간섭하지 못하는 미래를 말이야.”
꿀꺽, 목젖을 울리면서 에스탄은 고뇌와 번민을 주름에 담아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금방 끝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묻는다.
“혈족 중 한 갈래를, 정말로 끝장낸다는……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빙긋, 조금 전과 다른 밝고 시원한 웃음을 담은 얼굴로 셀리아가 이에 답한다.
“그렇게 해 줄 거라고 했어.”
“해 줘? 잠깐, 그 말은 설마!”
멍하니 되뇌다가 에스탄이 화들짝 놀라서 눈길을 돌렸다.
이제 막 형성된 분지 중심에서 태엽과 톱니로 이뤄진 맑고 파란 눈동자를 한쪽 눈구멍에서 굴리고 있는 투란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리저리 작은 돌기둥에 꽂힌 듯한 몰골인 오른팔을 보면서.
‘음, 이렇게 훌렁 삼킬 줄은 몰랐는데?’
소리 없이 툴툴거리는 투란이었다.
―삼켰다기보다는 복구한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도 살짝 툴툴거리듯이 중얼거렸다.
투란도 동감하고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그러게, 아무래도 원래 눈알에 담긴 것이 밖으로 새어 나오면 거대해지는 거였겠지? 다시 눈알을 꼽으면 안으로 휘말려 들어가면서 줄어드는 것이겠고…… 도대체 무슨 돌이기에 이렇게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 있는 거야?’
―모른다. 신화 속에서나 나올 기괴한 금속인가 싶기는 하다만, 너 괜찮은 거냐? 원래 하나뿐인 눈알을 하나 더 만들어 냈잖아? 그 공명 현상 때문에 색채까지 확 변해 있는데, 괜찮아?
‘어, 원래 하나는 아니었을걸? 둘이 있어야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 같거든. 하나만 두면…… 이렇게 커다랗게 확장된 돌무더기를 꾸미고 돌로 된 톱니랑 미로를 꾸미는 기둥을 뿜어내고 말이야. 하지만…… 이 세상에는 하나뿐이었던 모양이기는 하네…… 그래서 본래 능력이나 기능도…….’
―투란! 뭐라는 거야? 너 괜찮은 거야?
버럭 외치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중얼거리는 투란의 정신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사라지며 희미해지는 듯한 분위기를 읽어 낸 탓이었다.
투란도 흠칫하며 바로 드라고니아의 말에 대답했다.
“우아앗! 내가 뭘!”
저절로 터져 나온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입을 조이듯이 다물며 말을 멈추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다시금 진지하게 묻는다.
―정신 차리고 있냐?
‘음, 정신 차렸어. 젠장, 엄청나게 헷갈리게 하네.’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오른팔을 흔들었다.
축소된 돌기둥의 형태, 그 안에 팔을 꽂고 있는 듯했던 오른팔이 소음을 일으키면서 온전한 사람의 멀쩡한 팔로 변해갔다. 톱니가 돌고, 안으로 암석 상태의 구조가 휘말려 들어가면서 사라지는 기묘한 변화였다.
그사이에 투란의 왼쪽 눈은 파랗고 맑은 광채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은색의 톱니가 맞물린 듯한 눈동자를 띄우고 있었다. 그 은색이 오른팔에서 지워지는 사이에 투란은 왼쪽 팔을 살폈다.
그라이아이, 괴이한 노파가 사라지며 남긴 저주를 한껏 맛보고 삼킨 왼팔의 마물은 아쉬워하는 중이었다. 온전하게 저주가 완성된 다음에 먹어 치웠으면 좀 더 오래, 맛있게 먹었을 텐데 저주가 발생하는 순간부터 미완성인 채로 핥고 삼키고 지워 버린 탓에 너무 빨랐다고 반성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 반성의 결과인 것처럼 부풀었던 형상을 지우고 그나마 남은 자취…… 허공에 맴도는 저주의 요사스러운 마력을 혀로 끌어당겨 휘감으며 팔의 크기도 멀쩡한 사람의 형체에 걸맞게 되돌려 놓은 채였다. 그럼에도 팔뚝의 색채는 여전히 붉은 가죽이었고, 곳곳에서 입을 열고 혀끝을 날름거리니 크기 말고는 그냥 마물인 채인 팔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한숨을 삼키면서 투란은 고개를 돌려 프릿 일행 쪽을 바라봤다.
돌기둥 무리가 사라진 탓에 높은 언덕 위에 선 것처럼 셋이 잘 보였다.
요란한 소동의 중심에 있는 탓에 뭐라 떠들었는가는 잘 몰랐지만, 소동이 가라앉는 와중에 몇 마디 묘한 말이 오간 것을 듣기는 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 그런 말이겠지?’
살짝 마음 한구석에 삐친 기분이 솟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웅얼거렸다.
―무슨 음모를 꾸몄다기보다는…… 너에게 의뢰를 맡길 생각이었나 싶은데? 이 안에서 싸우고 있는 뭔가에 대해서, 너의 힘을 빌리려 하는 의뢰 말이야.
드라고니아는 점잖게, 하지만 나름대로 분명한 근거를 지닌 듯이 말했다.
투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안의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 예견자가 공물로 보낸 눈알, 이제는 투란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우자트’라는 이름이 새겨진 눈이 멀쩡한 사연을 지닌 것은 아닐 테니까.
무엇보다 그라이아이가 멀쩡한 경우가 아니었으니, 어떤 상황에 엮여 버린 것인가를 함부로 추측할 수가 없었다. 과연 저주를 뱉은 그라이아이의 마음가짐으로 보낸 공물이었던가, 아니면 수정뇌옥의 지배로 모든 것을 바친다는 상태에서 전한 선물일 것인가.
어느 쪽이든 투란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프릿의 일에 끌려들어 가는 중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내빼면 아무 일 없을걸?
드라고니아가 뭔가 긍정적인 부분을 찾았다는 듯, 하지만 투란에게는 슬그머니 놀리는 낌새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때문에 투란은 새어 나오는 쓴웃음을 억누르며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가면, 세상 어디로든 쫓아올걸. 저 아저씨, 마석을 들고 쫓아오면서 이미 줬다는 말도 거침없이 흘리면서 온갖 소동을 일으키며 쫓아올 성격이야. 에스탄 영감이 죽은 척하고 튀려 했잖아. 결국 들통나니 포기했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심한 억측 아니냐?
‘그냥 귀족 흉내도 아니고 황제 폐하라잖아. 전혀 억측이 아닐걸? 둘러보라고. 이런 곳에다가 사람 사는 나라를 세우겠다? 그게 제정신인 인간이 할 소리냐?’
―그건…… 음…….
돌기둥이 사라지며 함께 사라진 밝은 풍경을 되새기듯 드라고니아는 말을 더듬으며 흐렸다.
확실히 언더섀도우는 인간이 나라를, 도시를 세울 풍경이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시커멓게 막히고 물든 듯한 하늘 쪽 풍경, 사방을 내리누르며 어둠으로 채우는 그림자 속의 세계는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모두를 배척하는 듯했다.
이를 증명하듯 당장 저편에서 휙휙 날듯이 바닥을 박차며 날아오는 은색 등잔을 든 인간의 형체조차, 인간이 아니었다.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