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1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5)
투란이 분지 안에서 그 너머의 풍경을 살피는 사이, 프릿 일행은 다가오는 이들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맞서야 했다.
먼저 공격적인 몇 마디를 쏘아 낸 것은 다가온 자들이었다.
“이 더러운 열매들! 감히 우리 일족의 격노를 감당할 수 있다 여겼느냐! 우리가 하찮은 너희를 두려워해서 불가침의 약속을 한 줄 알았느냐! 감히!”
“용건을 좀 짧고 쉽게 말하는 법은 못 배웠냐? 왜 그러는지 제대로, 똑바로 말을 해야 알아듣지! 무슨 으깨진 스켈레톤이야? 뭔 말을 못 해서 자꾸 감히 감히만 하고 있어?”
프릿은 사나운 웃음과 함께 비꼬는 말로, 팔짱을 끼고 잔뜩 거만한 태도로 다가온 이들을 대하고 있었다.
감히를 토해 내던 자가 바로 발끈하며 뭐라 하려는 순간, 그 옆에서 나온 팔이 입을 가렸고 말문을 막았다. 그리고 그렇게 팔을 내밀어 말을 멈추게 한 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프릿에게 무겁게 말한다.
“예견의 마녀와 거래를 했는가?”
“했어.”
프릿의 대답은 짧고 빨랐다.
팔짱을 단단히 끼고 들이대는 프릿의 도도한 태도 또한 한층 더 심해졌다.
셀리아와 에스탄이 나란히 프릿의 좌우로 서면서 그 태도를 뒷받침하는 듯했다.
다가온 일행이 들어 올린 은색의 등잔 여럿이 그런 프릿 일행을 비추듯이 높이 치켜올라 갔다. 한데 프릿 일행을 밝혀 주는 등잔의 빛은 촛불이나 횃불과는 전혀 다른, 금속의 타원체에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분지 안에서 느릿느릿, 일부러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더욱 느린 걸음으로 나오던 투란은 그 기묘한 등잔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왼쪽 눈구멍에 박힌 눈알은 거침없이 은색의 타원형 등잔이 안쪽에 묘한 광원(光源)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기계 괴수 고르곤의 본능은 곧바로 그 광원의 구조를 흉내 낼 수 있다고 꿈틀거렸다.
‘뭔 등잔이길래 저리 생겼지?’
투란은 어깨에 돋아나려는 고르곤의 형상을 억눌러 지우면서 갸웃했다.
―등잔만이 아니잖아. 저들…… 몸에 두른 모든 것이…… 마치 하클이 만들어 낸 도구처럼 보이는군.
드라고니아가 더욱 빠르게 상황을 분석한 듯이 말했다.
투란은 살짝 걸음을 빨리하면서, 다가온 이들의 수를 세고 그 모습을 기억하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그 와중에 아직 마석을 받지 못했으니 당장은 어찌 되었든 프릿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고 있었는데…….
“마녀에게 무엇을 가져다줬지?”
추궁하는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말을 하는 자의 태도와 분위기는 섬뜩하고 살벌하게 변하고 있었다. 맨 처음 거친 말을 쏟아 내던 자조차 긴장해서 입을 꽉 다물며 한 걸음 물러설 지경이었다.
프릿은 그런 낌새는 전혀 모른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답한다.
“그런 일은 마녀를 찾아가 물으라고. 마녀도 없는 이곳에서, 우리에게 물을 일이 아니잖아?”
“마녀는 어디 있는 거냐?”
조금 누그러진, 프릿의 말처럼 마녀가 있어야 할 곳에 푹 팬 커다란 구덩이만 남겨진 상황을 겨우 알아차린 듯이 나온 물음이었다.
프릿이 그런 상대를 향해 킬킬거리는 웃음을 가득 담아 말한다.
“아는 게 뭐냐? 돌아가는 길은 알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가는? 여기서 뭘 하려고 왔는지부터 지껄여 보지그래?”
이는 앞에 나선 이보다 뒤로 물러섰던 자의 분노 섞인 외침을 먼저 터지게 했다.
“저 건방진 열매 새끼가! 로드(Lord)! 저 분수 모르는 열매 따위는 짓누른 다음에 뇌를 파내서 뭘 아는가 알아내면 됩니다! 로드의 자애로움은 저런 것에게 베풀어져서는 안 되는 귀중한 것이 아닙니까!”
단순히 떠든 것만이 아니었고, 어느새 앞으로 나서면서 내민 주먹에는 금속으로 이뤄진 짐승의 발톱이 날카롭게 장식된 채였다. 조금 전까지는 맨손이었는데 주먹 쥐고 내미는 순간에 금속으로 이뤄진 건틀릿을 끼우기라도 한 것처럼 변해 있었다.
투란은 그 변화를 분명히 봤다.
드라고니아 또한 프로브를 통해 그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했고, 다시 되새기듯이 투란의 시야에 보여 주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도구야. 옷감처럼 꾸며져 있더니 순식간에 저렇게 형상을 변화시키는 금속이라니, 거의 악마의 도구인걸?
‘대단하긴 한데…… 저거 자유롭게 변하는 물품은 아니네.’
투란은 감탄하면서도 냉철하게 한계를 짚었다.
프릿 일행 앞에 나타나서 사람을 놓고 ‘열매’다 뭐다 떠드는 자들…….
다시 봐도 그들의 복장은 투란에게 아주 낯설었다.
그저 하얀 천을 옷 모양으로 잘라 만든 자루, 그런 것을 몸에 바싹 붙여 꿰고 있는 듯한 차림이었고 덕분에 몸의 잔근육까지 옷감 너머로 드러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옷감은 금속이었고 착용자의 반응에 따라 형태를 바꿔 갑옷도 무기도 될 수 있는 기괴한 물품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마도구라고 해야겠지만, 저 묘한 옷감에는 마력이 깃든 부분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미묘하지만 자연스러운, 결코 마력이라 할 수 없는 ‘힘’의 흐름뿐…….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곧바로 악마종의 기술, 그 도구를 떠올리는 참이었다.
투란 또한 그 부분을 인정하는 셈이었는데…….
“저것은……? 저자는 누구냐!”
갑작스러운 외침, 로드라 불렸던 이가 투란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묻고 있었다.
프릿을 향해 발톱을 들이대려던 자가 흠칫 놀라 물러섰고, 프릿은 분지에서 어기적어기적하며 아주 느리게 올라오는 투란을 봤다.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프릿이 느릿하게, 그러나 온몸에서 거침없이 일깨운 섬뜩한 힘을 흘리면서 대답한다.
“우리 일행이잖아, 보면 모르나? 여기 있던 마녀의 흔적을 찾아보는 중이었잖아.”
로드는 성큼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고, 사납게 투란과 프릿을 번갈아 노려보면서 외쳤다.
“프릿, 헛소리하지 마라! 저자의 눈구멍에 박힌 것은…… 마녀가 우리에게서 가로채 간 우자트, 호르트의 눈동자이잖나! 어떻게 열매…… 인간이 저것을 눈구멍에 박아 넣을 수가 있었지? 마녀는…… 예견의 마녀는 네놈들이 죽여 없앤 것이냐? 프릿, 똑바로 대답하라! 거짓은 치워라! 우리 일족과 전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데 이에 대한 프릿의 대답은 분위기를 깨는 것이었다.
“하아? 아, 씨!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로드 쪽보다 먼저 에스탄이 놀랐고, 셀리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거리게 했다.
투란도 ‘엥?’ 소리를 내면서 프릿을 다시 봐야 했다.
갑자기 뭔 욕질이란 말인가, 여태 으스대는 태도야 그냥 기세 싸움이라도 하려나 보다 싶었지만 저건 그냥 막 싸우자는 말 아닌가.
게다가 그렇게 시작한 말은 멈추지도 않았다.
“전쟁? 네 마음대로? 벌레 네 마리 끌고 다니면서 로드 소리 좀 들으니까 진짜 로드라도 된 것 같아? 애초에 너 따위가 왜 로드를 대행하는 자리를 차지했나 훌렁 까먹었어? 진짜로 우리랑 전쟁을 하고 싶어? 한번 해봐, 당장 시작할까?”
거칠고 사나운 말투 속에 가득 담긴 조롱과 멸시.
그 폭언에 저쪽 로드 일행이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래서 그 빈틈을 채우겠다는 듯이 에스탄이 재빨리 프릿에게 가까이 다가서면서 말문을 열려 하는데, 막 입술을 달싹이려는 에스탄의 눈에 프릿의 붉게 물든 눈동자가 보였다. 그 순간 에스탄은 다가갔던 것보다 더 멀리 프릿에게 거리를 두면서 투란 쪽에 붙으며 속삭이고 있었다.
“투란, 끼어들지 말고 냅둬. 지금 프릿은…… 미치광이 뱀파이어 상태야.”
“에, 네?”
이럴 때 뭐라 해야 하는가 몰라서 투란은 어리바리한 대꾸를 하고 말았다.
드라고니아는 바로 에스탄의 말을 해석한 모양이었다.
―투란, 프릿의 체온이 변했다. 마력의 형질도 변했어. 몬스터 형상을 꺼낸 것 같은데…… 외모의 변화는…… 기묘한데?
완벽한 해석은 안 되는 듯, 좀 뒤숭숭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적당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뱀파이어…… 몬스터의 힘을 쓴다는 거예요?”
에스탄이 나직하게 묻는 말에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사이에 셀리아도 에스탄 켠으로 다가왔고, 귓가에 꽂히는 묘한 소리로 투란에게까지 들리게 말한다.
“에스탄, 상황 나빠지면 나랑 투란을 데리고 튀어. 바로 돌아가자고.”
투란이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 에스탄은 찌푸린 채로 대답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정말 싸울 참인가?”
“저 얼간이들이 투란을 건드리려 한다면, 싸우겠지.”
에스탄의 의혹을 지우듯이 셀리아가 명쾌하게 말했다.
에스탄은 흘깃 투란을 바라봤다.
눈구멍에서 맑게 돌아가는 톱니가 무늬처럼 보이는 눈동자가 눈꺼풀의 깜박임을 무시하듯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 채로 투란은 ‘무슨 일이에요?’라는 순수한 표정만 짓고 있는 참이었다.
그리고 저쪽 로드 일행은 겨우 프릿의 폭언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는 듯,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멍했던 마음을 간신히 되돌렸다는 듯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 이 미친 열매가!”
“로드, 말살을 명령해 주십시오!”
“감히, 감히이이!”
채캉!
격노를 담아 사납게 휘젓는 팔에서 소매가 뒤틀리고 길어지면서 칼날의 형태를 드러냈다.
로드 또한 휘하의 그런 반응에 동참하듯, 그러나 마지막까지 이성적인 판단을 놓지 않는 듯이 외치고 있었다.
“저자는…… 우자트를 끼고 있는 저자는 생포해라! 나머지는…… 찢어발겨도 상관없다, 내가 책임지마!”
은색 등잔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타원의 발광체는 공중에서 아래를 비춰 주는 조명을 일으켰고, 그 조명을 두른 채로 로드 휘하의 넷이 소매 자리에 칼날을 달고 질풍처럼 프릿을 향해 달려들었다.
프릿 또한 과격한 웃음을 흘리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그 순간, 투란은 에스탄이 자세를 잡는 것을 느꼈고 저 로드 쪽과 자신이 있는 곳 사이에서 철갑의 기사가 불쑥 치솟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쯤 되면 마법사인 셀리아도 뭔가 지원하는 주문이라도 쓰려나 싶었는데, 그냥 에스탄을 방패나 담장쯤으로 생각하듯이 가만히 몸을 숨기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하나만 꺼냈는데?
그리고 드라고니아는 에스탄이 철갑의 기사를 달랑 하나만 내놓은 것을 짚고 있었다. 즉, 에스탄 또한 프릿과 저들의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는 것! 그저 프릿을 지나쳐서 덤벼들지도 모르는 상황에 미리 대처할 뿐이란 것이 명확했다.
이 상황을 투란은 간략하게 해석했다.
‘프릿, 세잖아?’
이미 봤다는 듯한 묘한 말투.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면서 경고한다.
―저쪽 우두머리인 로드란 녀석은…… 그냥 너만 노릴 생각인데?
프릿과 휘하가 격돌하는 사이, 로드는 한구석으로 슬슬 빠지면서 투란을 흘깃거리고 있었다. 너무 노골적이라서 투란에게는 조금 의아하고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 와앗!’
갑자기 놀란 시늉을 하며 투란이 재빠르게 오른손으로 허공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응? 야, 뭘…….
푹, 파악!
드라고니아가 뭔 짓이냐 따지려는 찰나, 투란이 찌르는 시늉을 한 손이 로드의 가슴을 관통했다.
저쪽에 있던 로드가 순식간에 투란의 앞에 서 있었고, 단검처럼 찔러 내는 손길에 가슴 앞에서 등짝까지 뻥 뚫린 광경이었다.
“무슨…… 쿨럭.”
로드가 멍하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다가 피를 토했다.
투란은 그 피가 붉지 않다는 것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은……?”
붉은 피 대신에 몸에 수은(水銀)이 흐르고 있었을까?
로드의 꿰뚫린 가슴에서 뒤늦게 콸콸 흘러나오는 피는 수은의 색채를 띠고 수은처럼 방울지며 떨궈지고 있었다.
“어머? 가속(加速)을 역이용했네?”
셀리아의 놀라는 소리가 몇 박자 늦게 울려 나왔다.
에스탄도 겨우 상황을 알았다는 듯이 말한다.
“가속! 진짜 은혈의 귀족이었나!”
드라고니아도 바쁘게 투란의 뇌리에 질문을 꽂아 넣었다.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니, 이놈의 능력을 어찌 알고…….
“가속이…… 뭐 하는 능력이에요?”
투란은 에스탄과 셀리아를 둘러보며 묻고 있었다.
낱말 뜻은 분명했다.
그저 빨라지고 빨라진다는 뜻일 터.
하지만 투란은 방금 예견을 통해서 대처했다.
이 로드란 자의 움직임을 보고 맞선 것이 아니었다.
이자의 가속이란 능력은 도무지 그냥 빨라졌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특징을 지닌 것이다. 저편에서 이쪽까지, 단숨에 사라졌다가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그 거리를 관통하면서 옮겨 왔다.
너무 빨라서 투란이 내민 손에 그 가슴이 그냥 꿰뚫릴 지경이었다.
“혈인능력(血印能力)이라고 부르지. 말 그대로 빨라지는 능력인데, 상식을 무시할 정도로 빨라져. 그 모자란 놈은 몸만 빨라져서 네 손끝을 보고도 아무 대책도 없이 들이박은 것이야.”
그런데 프릿이 히죽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런 프릿 너머로 난폭하게 찢긴 형체들이 흩날리는 수은 방울과 함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