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1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6)
Chapter 202. 언더섀도우, 인왕도
부드득, 푸악!
뭐라 할 틈도 없이 스륵 늘어나듯이 다가온 프릿의 손이 가슴을 꿰뚫린 채로 뒤늦게 버둥거리려는 로드의 목을 비틀고 머리를 뜯어냈다.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아직 투란의 손이, 팔이 빠지지 않았던 탓에 머리통이 뜯겨 나가면서 열린 목의 파열상에서 터져 나오는 핏줄기가 더 거세고 굵었다.
‘수은……은 아닌 거지?’
역시나 수은처럼 은색으로 방울지며 뭉클거리는 핏줄기를 보며 투란은 일단 손을 빼고 뒤로 물러서면서 상황을 가늠하려 했다. 손과 팔에 엉겨 붙어 끈적이는 은색의 피가 꿈틀거리는 꼴은 슬러시 계열의 괴물이라도 들러붙은 것처럼 보였다.
찰칵거리며 톱니가 돌아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투란의 왼쪽 눈구멍에 박힌 태엽과 톱니의 눈알, 목이 떨어져 나간 채로 수은 같은 피를 흘리고 토막 나는 패거리가 우자트라 부른 눈동자가 옆으로 쓰러지려다가 프릿의 거친 손길에 마저 뜯겨 나가는 로드의 몸통, 저편에서 뒤엉켜 퍼져 있는 그 수하들의 파편을 더듬었고…… 투란에게 낯설고 놀라운 상황을 보여 줬다.
“이거……! 저거……?”
투란의 입술로 넘어나온 소리는 제대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한데 프릿은 곧바로 알아들은 것처럼, 유쾌하게 대답한다.
“뱀파이어의 피에는 그 정수가 담겨 있기는 하지. 하지만 들러붙었다고 바로 삼키지는 마. 로드 대행에 불과한 녀석이라, 놈들에게는 노예나 다름없어. 그 피에 담긴 능력을 쓰려다가 오히려 지배당할 수 있지. 응, 그리고 저건 그 노예 이하인 가축 수준이라, 저렇게 으깨 놓으면 최후의 발악으로 저런 몰골…… 자기들도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이라고 부르는, 말 그대로의 흉물(凶物)이 되지. 통제 불능의 괴물이고, 완성되면 근육의 형상은 제법 그럴듯해서 쓸 만하지만, 진짜 못생겼으니 저것도 삼키라고 권하지는 않겠어.”
어느새 곁에 서서 저 멀리 울타리 너머의 세상 구경을 하듯이 떠들며 나오는 이야기였다.
투란에게는 매우 소중한 정보이기는 했다.
에스탄에게는 아주 짜증 나는 수다였던 모양이었다.
“지금 그렇게 설명해 주고 있을 때야! 그 대가리는 뭐에 쓰려고 주머니에 담는데! 저것들 저렇게 결합 끝날 때까지…… 아, 멀쩡한 몸은 걷어차 주고 있냐고! 더 흉악해지잖아!”
나긋나긋한 프릿의 이야기에 끼어들면서 터져 나온 에스탄의 격한 반응이었다.
둘이 제멋대로 어두운 풍경 속에 마구 떠드는 소리는 원래 뒤엉키고 섞여서 한쪽에 귀를 기울이면 다른 한쪽은 흐릿하게 놓쳐야 했다.
한데 투란은 둘의 이야기를 마치 따로 들은 것처럼 정리해서 기억할 수 있었다.
마치 프릿이 먼저 다 떠들고, 그다음에 에스탄이 차분히 따진 것처럼!
―호르트의 눈동자라더니, 이런 의미였군.
복잡하게 엉킨 소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따로 들은 듯해서 놀라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감탄한 듯 떠든 말이었다. 이 또한 둘의 이야기 틈새로 끼어들었지만 투란의 마음은 이것도 줄을 세운 듯이 차분히 담아 놓고 있었다.
동시에 프릿이 이야기하는 와중에 팔락거리는 얇은 천 주머니를 꺼내 로드의 머리통을 즐거운 표정으로 주워 담았고, 셀리아가 그 곁으로 다가오면서 갸웃했다. 에스탄은 그 광경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보채기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저거 어쩔 거냐고!”
그 외침과 함께 투란은 뒤엉키고 정리된 상황이 끝난 것을 느끼고 알았다.
‘프릿이 갈기갈기 찢어 놓는데?’
그리고 찾아온 것은 곧이어 벌어질 상황이었다.
마치 지금 보고 듣는 듯한 일이었지만, 지금 프릿은 투란의 곁에서 그 상황을 준비하기 위해 손을 꿈지럭거리면서 푸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뭐냐? 예견하고 있는 거냐? 아니, 제대로 된 예지인가?
드라고니아가 겨우 투란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린 듯이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프릿의 손에 새겨져 있듯이 나타나는 묘한 피의 그물을 보고 있었다. 단순히 손에 그려진 무늬처럼 살갗 속에 스며 있던 것이 살갗 위로 올라오며 가늘고 복잡한 그물이 되고 있었고 그 실 마디가 뜯어지면서 얕게 하늘하늘 흘러나오는 듯했다.
두 손을 그렇게 망가진 그물 장갑을 낀 듯한 모양으로 바꾸고 나서 프릿은 머리통을 담은 주머니를 에스탄에게 내밀며 말하고 있었다. 그 입술이 움직이기 전에 투란은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갖고 있어.’
“갖고 있어, 재상.”
‘흉물은 치워야지.’
“흉물은 치워야지, 귀찮아지기 전에.”
살짝 키득거리는 표정과 함께 프릿이 세차게 발을 딛고 쏘아지듯 튀어 나갔다.
투란은 미리 본 광경 속으로 프릿이 겹쳐 들어가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마치 정해진 틀이 비어 있는 프릿이 그 속을 채워 나가는 듯했다.
‘잔가지를 쳐내고…….’
프릿은 하나로 뒤엉키고 있는 은색의 덩어리를 더욱 크게 부풀리게 두려는 듯, 먼저 아직 주변에서 꿈틀거리며 제대로 합류하지 못하고 있는 은혈의 흔적을 밟고 훑고 그 위를 할퀴는 시늉을 했다. 프릿의 손에 깃든 그물에서 흘러나온 작고 가는 실 가닥은 그 순간에 크게 확장되면서 그 주변을 모조리 휘감듯이 채워 넣고 긁어 댔다.
그 결과 은혈의 흔적은 모두 실 그물의 손톱, 발톱에 휘감기고 할퀴어진 채로 뭉쳐진, 혼탁한 흙덩어리가 커다란 은색 덩어리를 향해 던져졌다.
―제대로 된 구조를 갖추지도 못하고 있군, 내장과 손발이 저렇게 얽힌 꼴이라니…… 괜히 어보미네이션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어.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앞뒤의 상황을 다시 더듬었고, 겨우 깨달았다.
산산조각 난 몸, 그 안에서 점액 형태로 분산되어 나온 수은 같은 피는 슬러시라도 된 듯이 꿈틀거렸고 여럿이었던 몸을 하나로 뒤섞으면서 제대로 된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프릿이 저리 부숴 놓고 거기에 머리를 떼어 낸 몸통을 던져 주니 겨우 그 형체를 바탕 삼아 다시 뭉쳐 드는 광경이었는데, 이미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 부분이 배척당하고 튀어나오면서 더욱 괴기스럽고 이상한 몰골이 되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저런 광경을 보는 순간에 투란은 황당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헛소리라도 했을 텐데 지금은 이미 ‘예견’했기에 ‘아, 전에 본 그거네.’라는 기분으로 차분하게 감상하는 중이었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순간, 투란은 슬그머니 손을 들어 손등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살짝 간지럽고 거슬리는 느낌이라서 닦아 내는 듯한 동작이었지만, 그 순간에 문장 깊은 곳에서 아르고누스가 으르렁대는 듯한 미묘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뭘 했는가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처음에 미간 사이에 선명하게 생겨났던 예견의 눈동자가 지금은 미간 사이에 박힌 작은 점이 되어 있었는데, 싹 지워지듯 사라졌으니까.
―응? 왜?
짧았지만 투란에게 많은 것을 묻는 셈이었다.
투란은 다시 프릿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면서…… 우자트의 눈은 프릿의 움직임이 담고 있는 섬뜩함, 정교함, 냉정함, 잔혹함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기에 조금 여유롭게 드라고니아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내가 지혜롭냐?’
―뭐?
‘마법사처럼 영리하고 똑똑하냐고.’
―전혀 아니란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잖아?
‘그래, 그렇지.’
스스로 쓴웃음을 짓는 기분으로 투란이 되뇌었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조심스럽게, 분명하게 짚어 묻는다.
―예견의 능력이 부담스럽다는 거냐?
‘그 눈을 지녔던…… 예견의 마녀가 무슨 꼴로 날 기다렸나 생각해 봐. 도박하면서 패를 미리 읽는 것 말고 내가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상식을 벗어난 가속 능력의 공격을 단번에 막아 냈잖아? 그 정도만 쓸 수 있어도 충분한 것 아닌가?
‘프릿이 말했잖아, 제대로 된 로드라면 내가 미리 예측해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고 해도 그 능력을 조절해서 들이박아 꿰뚫리지 않았을 거라고. 만약 진짜 제대로 된 놈이었다면, 그렇게 가속이란 그 능력을 사용해서 내 태도, 손짓까지 읽어 내고 대처했겠지.’
―그럴 경우에는 그것까지 예견하지 않았을까?
‘글쎄, 과연 그렇게 휙휙 바뀌는 광경을 볼 때마다 다른 손짓 발짓을 하고 있다면 내가 뭔 꼴로 보이겠냐?’
―그건 익숙해지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일이잖아? 낯선 능력을 손에 넣었을 때, 몬스터 로드라면 늘 숙련의 기간이 필요하잖아. 그런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왜 다루기 힘들다고 미리…… 보기라도 한 거냐?
다독이려는 듯했던 드라고니아는 문득 투란이 예견의 눈을 활용하는 자신의 미래를 엿보고 겁먹은 것인가 의아해하고 있었다.
살짝 입가에 쓴웃음을 매달고, 저편에서 프릿이 이미 봐 버린 그대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대답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다루는 방법은 간단해. 보든가, 보지 않든가. 그게 문제인 거지.’
―보든가, 보지 않든가?
‘그래. 뭘 봤다고 단숨에 뭔지 알 수 있으면 현자(賢者)라고 해야겠지. 아주 지혜로운 사람 말이야. 내가 그렇게 지혜롭겠냐고.’
―그건 누구나 고민해야 할…… 고민하기 싫은 거냐?
잠깐 더 다독이려는 듯하다가 드라고니아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다소 어이가 없고 한심하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실룩이려는 볼을 손으로 누르면서, 옆에서 보기에는 프릿의 냉정하고 혹독한 처리방식에 뭔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면서 투란이 한번 더 마무리 짓듯이 투덜거린다.
‘고민해도 답이 없단 말이잖아! 나중에 얘기해!’
드라고니아가 왠지 재밌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그사이에 프릿이 다가오면서 투란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있었다.
“한번 찢었다 뭉친 녀석을 또 찢어 놓고 그냥 돌아서는 꼴이 신기하지?”
“어, 뭐…….”
투란은 적당히 그렇게 생각했다는 시늉으로 소리 내 대꾸하며 얼버무렸다.
프릿은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이 한번 더 찢어 놓아 어두운 땅을 수은으로 물들이고 괴기스러운 그림과 조각으로 바꿔 버린 듯한 어보미네이션의 잔해를 돌아보면서 차분하게 변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아까도 말했잖아, 이 녀석들 그저 노예와 그 부속물일 뿐이라고. 뱀파이어는, 이곳에서 열두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진짜 괴물들은 저 정도로 해 놔도 몇 번을 더 뭉치고 재생할 수 있어. 그 진짜를 상대할 때는 정수를 삼키고 감당할 수 없다 싶으면 바로 지워 없애는 방법을 선택해야 해. 전혀 안전한 방식이 아니지. 저렇게 저급한 놈들과는 격이 다르니까…….”
“어, 그런데 로드라고 했잖아요? 로드가 아닌 녀석이라면서 말이에요.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데 진짜 로드란 녀석들이 그냥 두나요? 말이 통하는 꼴로 봐서는 그렇게 나대면 헛소리한다고 화낼 만하잖아요?”
주섬주섬 짚듯이 투란이 슬그머니 에스탄과 셀리아까지 둘러보며 묻고 있었다.
셀리아는 프릿이 파괴한 흔적을 살피듯이 사뿐사뿐 어보미네이션의 잔해로 다가가서 뭘 살피느라 투란의 말에 관심이 없는 듯했고, 에스탄은 투란의 물음에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지었지만 대답은 프릿에게 미루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프릿은 당연히 그 대답이 자기 몫이란 듯이 투란에게 이야기했다.
“그 로드란 것들이 인간을 상대하는 상황에서는 그러라고 시켰으니까. 한껏 으스대고 깔보라고 명령했으니까 그래.”
투란은 ‘그게 뭔 소리입니까?’라는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릿이 투란이 한층 더 의혹에 휩싸이는 듯한 모습인 것을 보며 하핫 웃은 다음에 유쾌하게 말한다.
“긴 이야기야, 하지만 꼭 들려주고 싶군. 여기서 말고, 우리 도시에서 여유롭게 이야기하자. 일단 마석을 골라 가지려면 도시로 가야 하기도 하지. 멀지 않아, 마녀의 거처 덕분에 한적한 곳을 골라 쌓은 도시거든. 가자, 투란. 우리의 도시 인왕도로.”
“인왕도?”
투란이 그 이름을 되뇌며 갸웃했다.
무슨 의미가 담긴 듯한데, 당장 떠오르는 바가 없었으니까.
흘깃 보니 에스탄은 살짝 외면하면서 설명을 피하는 듯한 모습이 어째 민망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다는 낌새가 엿보였다.
프릿은 가서 이야기하자면서 히죽 웃음을 더 짙게 흘릴 뿐이었고, 몇 걸음 떨어진 저편에서 자기 일에 바쁘면서도 이쪽을 엿듣고 있던 듯한 셀리아가 투란을 돌아보면서 말한다.
“인간이 왕 노릇을 하는 도시, 인왕도(人王都). 연금술로 만든 커다란 깃발이랑 간판도 있어.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게.”
“인간이, 왕 노릇, 도시.”
투란이 요점을 짚듯이 잠깐 되뇌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투란은 히죽거리는 프릿의 표정을 살짝 본뜬 얼굴로 냉큼 묻는 듯이 말한다.
“강아지 이름은 멍멍이, 고양이 이름은 야옹이! 역시 이름은 그렇게 짓는 거죠! 딱 어울리잖아요! 그렇죠?”
―야! 갑자기 뭔 시비를……!
드라고니아가 먼저 놀란 반응을 드러냈다.
에스탄은 ‘젠장!’ 하면서도 아예 모르는 척, 못 들은 척했다.
셀리아는 저편에서 웃었고, 프릿은 좋아라 하고 있었다!
“역시 뭘 좀 아는구나, 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