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7)
―좋아할 일이었냐?
드라고니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거든! 왜 좋아해? 놀리려고 한 말이라고!’
투란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프릿은 투란이 어떤 기분인가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즐겁고 좋은 기분을 한껏 담아 투란을 향해 프릿이 떠들었다.
“우린 정말 잘 통할 것 같아! 하하핫!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아, 그러려면 여기는 좋은 곳이 아니군! 셀리아, 우리 도시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 가자고, 투란에게 우리 도시, 인왕도를 보여 주나고! 에스탄, 뭐 챙길 것 없으니까 그만 둘러봐도 괜찮아!”
너무 유쾌한 그 모습에 투란이 멍해져서 눈을 깜박이며 보다 보니 에스탄이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는 꼴이 이런 프릿을 외면하고자 하는 몸부림인가 의심스럽다!
어쨌든 프릿의 즐거운 기분에 호응하듯, 이것저것 잔해를 뒤척이던 셀리아가 바로 프릿의 곁으로 돌아오더니 찌푸린 탓에 주름이 늘어난 듯한 에스탄과 너무 맹한 탓에 해맑은 낯짝이 돼 버린 투란에게 손짓하며 말한다.
“가까이, 혼자 이 어둑한 곳에 남고 싶은 거 아니면 내 마법의 범위 안으로 들어와. 에스탄, 투란…… 조금 더 붙어.”
마법이라는 말에 투란은 조금 주춤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일단 프릿 쪽으로 다가갔다. 에스탄도 투덜거리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별말 없이 가까이 붙었다. 그렇게 해서 일행이 대강 삼 미터 안쪽에 모두 모였다 싶을 때, 셀리아가 가볍게 손가락에 입술을 대는 시늉을 하면서 속삭였다.
“집으로.”
투란은 그 입술이 닿은 손가락에 제법 굵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끼워진 것을 봤고, 그 보석이 마력을 방출하면서 주변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반발하려는 힘을 억누르면서 투란은 마법에, 퍼져 가는 마력의 파동에 순응했다.
프릿도 투란처럼 별 어려움 없이 마법을 받아들이는 듯했고, 에스탄은 그냥 한숨을 쉬면서 그러려니 하는 모습이었다.
셀리아를 중심으로 옅게 퍼져 나간 마력의 파동은 흐릿한 빛의 소용돌이처럼 일행을 휘감았고, 저절로 둥실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 일행의 발이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 빛의 소용돌이가 번쩍거리며 짙어져 장막이 되어 일행에게서 주변을 단절하듯이 맹렬해졌다.
‘어라? 뭐야, 이거 바람의 길인가?’
투란은 미묘한 감각을 더듬으면서 상아탑의 전송(傳送) 마법을 떠올렸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보태듯이 말해 준다.
―바람의 길이 맞기는 하다만, 상아탑의 마법과는 다르다. 이건 평원의 제국 마도원에서 독자적으로 구성한 바람의 길이야. 상아탑처럼 거대한 구조물을 끼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야. 마력을 응축시킨 보석을 이용해서 일회 한정으로 사용되는 마법이지. 나름대로 알려진 것이다만, 조금 더 개량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 같은데?
‘개량? 어라, 풍경이…….’
의아해하던 투란은 눈앞에서 빛의 소용돌이 바람결처럼 흩어지는 것과 함께 주변 풍경이 확 바뀐 것을 보며 흠칫했다. 예견의 마녀, 그라이아이가 남긴 유적이라 할 수 있는 분지의 광경이 전혀 아닌 곳…… 프릿이 찢어 놓고 으깨버린 뱀파이어의 잔해조차 흔적도 없었다.
‘도시잖아!’
투란의 눈길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래도 일단 하늘은 여전히 뚜껑이 덮인 것처럼 어둡기만 했다.
하지만 그 하늘 아래에서 위아래 구별 없이 어두웠던 풍경이 아니었다.
빛 열매와 그 줄기로 장식된 담장과 지붕, 거리가 높은 성벽 안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잘못 본다 해도 알드바인 정도는 된다 싶은 도시였고, 어렴풋이 그 규모를 눈에 보이는 대로 가늠해도 어느 나라의 왕도(王都)란 말이 납득이 갈 정도였다.
어찌 보면 프릿이 좋아라 했던 인왕도란 이름이 제법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어때, 투란. 멋진 도시잖아? 해는 뜨지 않지만 말이야.”
하지만 자랑스럽게 떠들면서 프릿이 손짓하는 풍경은 모두 눈 아래에 깔린 것처럼 보였다. 저 멀리 경계를 이루고 있는 높은 성벽과 지금 구경하며 둘러보는 투란의 눈높이가 얼추 비슷하다 싶은 상황!
무슨 높디높은 망루에 뚝 떨어진 것인가?
“도시는 멋져 보여요, 그런데 여긴?”
사방의 풍경이 그럭저럭 비슷한 것이 아무래도 도시의 중심, 그야말로 한복판이고 한가운데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법으로 단숨에, 이동한다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옮겨지다니…… 투란으로서는 과연 이 도시 안전한 곳인가부터 살짝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투란이 대충 느끼는 것과 드라고니아가 엿본 상황은 꽤 다른 모양이었다.
―마법 장벽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니! 아무리 마석이 남아돈다고 해도 이게 무슨 짓이야! 전송 마법에 보안 술식까지 끼워 넣은 것까지는 이해한다만, 저 마법 장벽이랑 호응하고 처리해야 하는 것 때문에 보석이 마력을 다 소모…… 저거 갈아치우는 것이었나!
뭔가 격한 감상이 투란의 뇌리를 울리는 사이, 셀리아는 반지에서 색이 변해 보통 돌멩이가 돼 버린 듯한 보석을 빼내고 새로운 보석을 끼워 넣고 있었다. 흡사 쇠뇌에 새로운 살을 장전해 넣는 듯한 태도였고,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놀라는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놀라고 한탄하는 낌새와 함께 흘러나온 몇 마디를 통해서 투란은 대강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도시는 언더섀도우의 넘쳐나는 마석을 이용해서 지켜진다는 것, 셀리아는 그 보호의 장벽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런 마법을 위해서도 마석은 아낌없이 소모된다는 것!
‘홀시딘이 알면 목덜미 잡고 쓰러지겠는데?’
엉뚱한 상상이 불쑥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갈 때, 프릿이 자랑스럽게 투란이 앞서 던진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포트 타워야. 우리 도시를 다른 곳과 마법의 통로로 이어 놓으려고 만든 도시의 중심부지! 하하핫, 셀리아의 마법으로 간단히 도착했지만 다른 마법사는 함부로 닿을 수 없는 안전한 곳이기도 하지.”
“애초에 만든 사람이 셀리아잖소.”
에스탄은 한층 더 이어지려는 듯한 프릿의 이야기를 미리 막는다는 듯이 한마디 던져 말을 자르고 있었다. 프릿은 그런 에스탄을 향해 입술을 삐죽거리는데, 그 모습은 뱀파이어 일당을 파괴할 때랑 너무 달라 보였다.
그 툭탁거림이 좀 더 이어질 듯한 분위기를 치우자는 듯, 투란이 재빨리 하나 더 묻는다.
“어디로 이어지는데요?”
“응? 아니, 이으려고 일단 만들어 놨지. 언더섀도우에 인왕도는 아직 여기 한 곳뿐이니까.”
프릿은 아쉽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 그 말에 투란은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도 새삼 알아차린 듯이 중얼거린다.
―그냥 그림자 아래에 만드는 도시는 전부 인왕도라고 부를 참이었나?
이를 들으면서 투란은 프릿에게 아예 묻기까지 한다.
“언더섀도우에 새로 만들 도시는 몽땅 인왕도라고 부를 생각이었어요?”
프릿은 ‘응? 그런데? 왜?’라는 표정을 지었고, 에스탄이 울컥한 듯이 재빨리 끼어들어 투란에게 으르렁거리듯이 말한다.
“그럴 리가 있냐! 이 첫 번째 도시는 일단 황제 폐하의 의지에 따라 인왕도라 부른다만, 두 번째 세 번째 도시가 생기게 되면 새로운 이름을 붙일 예정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도시도 역시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일 거야!”
“흐흥, 우리 재상은 아직도 이름에 대한 야망을 못 버렸군! 뭐,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고.”
프릿이 히죽거리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셀리아가 한구석으로 가면서 말한다.
“잡담보다 먼저 내려가야죠. 아무래도 잔소리를 한껏 들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누가 맡을 거예요?”
프릿과 에스탄이 거의 동시에 이에 대꾸했다.
“당연히 재상이 해야지!”
“자리 비웠던 폐하가 맡아야지!”
말과 함께 서로 흘깃거리며 쏘아보는 꼴이 장난기가 없었다.
투란이 이 괴상해진 분위기에 새삼 어이없어하면서 셀리아를 향해 묻는다.
“셀리아, 잔소리는 어느 분이 하는 건데요?”
“내가 한다, 이 썩을 폐하랑 각하! 응? 넌 누구냐?”
격한 대답을 한 이는 셀리아가 아니었다.
셀리아가 선 앞쪽으로, 바닥에서 머리통을 불쑥 밀어 올리는 자가 한 말이었다.
머리통에 이어 그 목이 곧이어 밀어 올려졌고, 몸통이 쓱쓱 자라는 듯한 광경은 투란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헛! 바닥에서 사람이 쑥쑥 자라……?”
―헛소리하지 마!
드라고니아가 먼저 핀잔했다.
그리고 돋아난 듯한 모습을 보였던 이도 덩달아 핀잔하고 있었다.
“뭔 헛소리야! 계단 밟고 올라왔구먼! 계단이 안 보였냐? 하긴 보기 힘들게 만들어 놓기는 했지. 그러니까…… 넌 누구냐?”
수염이 가득한 얼굴, 두툼한 어깨는 평범하게 건장한 남성의 두어 배는 될 듯이 좌악 펼쳐져 있었고 그에 걸맞게 몸통도 굵직했고 팔뚝과 다리도 굵직했다. 하지만 묘하게 그 비율이 괴상하게 보였으니, 옆으로 퍼지기만 한 채로 키는 투란보다 살짝 작은 탓이었다.
그 모습에서 박력 있게 나온 되풀이되는 물음에 투란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어, 전 투란인데요?”
“정체가 뭔데 투란이야?”
한숨처럼 그가 다시 묻고 있었다.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구체적으로 여기서 프릿과 왜 엮였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과 함께 수염 가득하고 두툼한 몸매 속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것은 짜증이 가득 어린 불만이었다.
투란은 그 불만의 대상이 자신이 아닌 것을 느끼면서 재빨리 프릿의 곁으로, 사실 한 걸음 더 물러서면 프릿을 방패로 쓸 듯한 자리를 잡으면서 말했다.
“프릿이…… 음, 황제 폐하가 좋은 것 주고 좋은 얘기 해 준다고 해서 왔는데요?”
슬그머니 프릿이 이 도시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것 맞느냐고 따지기라도 하는 말투로 나온 대답이었다.
이런 투란에게 수염 가득한 얼굴의 눈동자가 ‘그게 뭐야?’라는 듯이 꽂히는 찰나, 프릿이 크게 껄껄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말한다.
“손님이 누구냐고 묻기만 하고 자기소개는 안 하시나? 거참, 그게 무슨 예의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인왕도의 마스터 스미스가 무례하기만 한 바위 요정족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고!”
“에? 바위……?”
투란이 흠칫해서 다시 인왕도의 마스터 스미스…… 뭔가 괴상한 그 직함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과연 그 또한 그런 직함이 별로 마음에 든 것은 아닌 듯.
“마스터 스미스는 무슨! 그 이상한 호칭은 치우라고! 난 그저 바위 조각가이고, 요정의 일족일 뿐이야. 어, 내 이름은…… 바루하, 이곳에서 그리 불리고 있으니 너도 그렇게 부르면 된다. 그래서 투란, 넌 뭐냐?”
“에, 예? 나는…….”
투란은 다시 움찔했다.
어째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는 프리소가 에스탄이라더니, 바루하가 쏘아보고 따지고 드는 것은 투란뿐인가?
본명이니 뭐니 하는 따지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묻는 말이 꽤 기이하기도 해서 투란으로서는 뭐라 딱 대답하기도 애매했다.
―흐흠, 저 바위 요정족은 여기서 투란 네가 무슨 역할을 할 것이냐고 캐묻고 싶은 모양인데? 프릿이 왜 널 데려왔느냐고 궁금해하는 모양이다.
드라고니아는 멋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새삼 바루하의 정체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요정족이라고? 저…… 돌덩어리가 형님 할 것 같은 뭉툭하고 튼튼하게 생긴 할배가? 와, 주름은 없어 보이는데 에스탄보다 더 늙은 것 같잖아! 저런 요정족이 있었던 거야?’
―대체 요정족은 어떤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리고 바루하는 투란의 기묘한 눈초리를 느낀 듯이 말을 잇고 있었다.
“너, 요정족이라면 호리호리하고 이쁘장하게 생긴 샌님이라고 들은 적 있는 모양이구나? 그건 물과 나무, 바람 따위랑 엮인 요정족이고, 나는 바위와 산의 요정 일족이야. 그러니 이 모습은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상한 생각 그만하고, 프릿 도대체 이 꼬마 뭐야? 에스탄, 자네는 어째서 함께 온 거지? 의뢰를 받아들인 헌터 일행을 마중 나간 것 아니었나? 왜 이 일당이랑 함께야? 셀리아, 내빼지 마! 열심히 세공해 준 마석을 홀랑 날려 먹은 것인가 아닌가, 제대로 들어야겠거든!”
투란부터, 프릿과 에스탄, 셀리아로 이어지는 으르렁거림이 가득한 목소리가 굵직하고 깊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셀리아가 말한 잔소리를 누가 쏟아 내는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마스터 스미스라더니, 잔소리를 마스터한 장인이었나?’
―그딴 장인이 있겠냐!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그리고 프릿은 점잖게, 무게를 가득 담아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할 얘기는 아냐, 바루하. 어차피 의논할 일이니까, 우선 내려가자고. 아, 지금은 어느 방이 조용하고 좋지? 식사할 때도 되었으니까, 적당한 곳이 어디야?”
바루하는 잠깐 프릿을 노려봤다.
하지만 프릿이 변함없이 진지하게 무게 잡는 표정을 지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바루하의 대답이 나온다.
“당연히 가장 가까운 궁전의 식당이 적당하겠죠, 황제 폐하! 프릿, 이번에는 헛소리로 못 빠져나가!”
왠지 존칭과 함께 이름을 섞는 태도가 마냥 심각했다.
그런 바루하의 모습은 ‘무슨 일 있나?’라는 생각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