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9)
‘이게 뭔 소리야?’
―무슨 말도 안 되는!
투란은 이해하지 못해서 그 의미를 알아듣고자 했고, 드라고니아는 이해를 했지만 전혀 납득하지 못한 듯이 놀랐다.
바루하는 투란의 표정을 보면서 한쪽으로 손짓했다.
“요리 준비 하는 사이에 따로 이야기하지. 어차피…… 너 말고는 다들 익숙한 상황이니까, 이 이야기는 너만 들어도 될 거야. 듣고 나서…… 어떻게 할는가를 결정하려면 반드시 들어 둬야 할 일이니까. 자, 앉아 봐라.”
말과 함께 바루하가 돌 탁자 곁에 돌의자를 밀어 줬기에 투란은 일단 의자에 앉아 탁자에 기대면서 묻는 말을 꺼냈다.
“무슨 뜻이에요? 다르게 흐른다니, 그림자 밖 세상에서 일 년이 흐르는 사이에 여기서는 하루만 흐른다, 그런 얘기인가요?”
바루하의 표정이 살짝 곤혹스럽다는 듯이 구겨졌다.
“그 반대의 흐름이다만, 그렇게 격하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야. 잠깐 들어 봐라. 그러니까…… 저기 에스탄을 본보기로 이야기하는 편이 쉽겠군.”
그릇 늘어놓고 요리 과정에도 끼어들던 에스탄이 바루하를 흘깃 노려봤지만 한숨만 쉬고 몰라라 하며 투란 쪽을 외면했다.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에스탄 스스로 꺼내거나 끼어들기 싫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바루하는 그런 모습을 승낙이라고 여기는 듯, 혹은 아예 상관 않는 듯이 말을 이어 나간다.
“에스탄이 그림자 아래로 들어선 것은, 바깥세상의 시간으로 거의 오육십 년 정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에스탄이 그림자 아래에 들어와 보낸 시간은 백이십 년에서 백삼십 년 정도 흘렀지. 한창 너만 한…… 너, 한 스무 살 되었냐? 역시 그렇지? 아무튼 그 정도 나이에 들어와 저렇게 주름살 트이고 머리카락도 허옇게 변했지. 뭐, 한 오십에서 육십을 넘거나 그보다 빠르게 저리 늙어 버리는 인간도 있겠지만, 에스탄은 여러 가지 처방을 받았음에도 지나치게 오랜 세월, 백 년 넘는 세월을 보낸 탓에 저 모양인 거야. 간단히 말하자면, 네가 이 안에서 한 삼 년 정도 보냈다가 밖으로 나간다면…… 그림자 바깥에서는 한 일 년 정도 지났을 거란 이야기지.”
―말이 안 돼! 시간의 흐름이 그렇게 세 배까지 차이가 난다면 굴하람이나 로즈벨 쪽에서 확실하게 말이 나왔을 거야!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잖아! 이건 뭔가 이상한 소리일 뿐이다!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투란도 그 기분과 반론에 살짝 공감했기에 잠깐 바루하의 말이 멈춰진 사이에 재빨리 묻고 있었다.
“굴하람에서 여기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몇 있던 것 같던데요, 그림자 아래에서 하루나 이틀 보내고 돌아갔어도 특별히 반나절이나 하루가 된 일은 없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신기한 일이면 외지인이 들어왔을 때 겁먹으라고 몇 마디 할 만도 할 텐데 전혀 없었거든요?”
바루하는 제법이란 듯이 투란을 보며 웃었다.
“그림자가 바깥세상과 만나는 지역에서는 그리 차이가 없어. 시간의 흐름에 명백한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곳은…… 여기서부터다.”
“여기……?”
“인왕도, 우리가 이 자리에 도시를 건설한 까닭도 그 때문이지. 이 도시를 경계로 그림자 밖으로 향해 갈수록 시간의 흐름은 세계의 정상적인 속도에 맞춰지지. 하지만 이 도시를 경계로 더 깊이 파고든다면, 시간 흐름의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빠르게, 밖으로 향할수록 느리게 된다고 보면 돼.”
“음,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느껴서 알 수 있는데요?”
아직 납득하지 못한다는 듯이 투란이 중얼중얼 곤혹스러움을 담아 물었다.
바루하는 바로 주머니 안에서 둥근 금속 원판을 몇 개 꺼냈다.
투란은 그 원판의 부드러운 형태를 보자마자 중얼거렸다.
“시계……지요?”
“그래, 시계야. 태엽 시계지. 바위 요정의 일족이 아니라면 룬디아크의 특별한 공방에서나 구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이다만…… 잘도 알아보는구나?”
“예? 아, 뭐…… 알드바인에서 봤거든요.”
시계를 쓰던 마법사도, 만들 줄 알던 장인도 봤지만 구체적으로 언급은 피한 채로 대답하는 투란이었다.
바루하는 대강 넘어가는 듯, 시계를 모두 열어 제각각 표시된 시간을 보여 주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원래 이 네 개의 시계는 모두 같은 시간을 출발점으로 맞춰 놨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표시된 시각이 다르지. 날짜를 가리키는 눈금은 물론, 시침, 분침, 초침까지 모두 제각각이잖아. 이렇게 된 까닭은 모두 다른 팀에게 맡겨서 순찰을 돌리고 회수했기 때문이다. 가장 깊이 들어간 팀의 것이 이것, 가장 많은 날짜를 기록하고 있지. 가장 얕게 들어간, 거의 이 도시의 주변만을 돌았던 팀의 것이 이것이다. 차이를 알겠지?‘
“어, 네…….”
투란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날짜를 셈하고 시간을 셈하는 시계는 알드바인에서 본 것보다 대단했지만, 이렇게 제멋대로 흐르는 시간을 계량해 놓는다는 부분은 어쩐지 쉽게 공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부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없었고!
바루하도 일일이 잘 이해했는가를 따지지는 않았다. 그대로 다음으로 넘어갈 뿐이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얼핏 착각하기 쉬운 것이, 깊이에 따라서 시간의 편차가 그래도 일관성이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다. 그렇지가 않아. 그림자 아래 깊은 곳, 바깥에 가까운 곳에서 대체적인 특성은 있지만 깊은 곳 중에서는 열 배는 더 심한 곳도 있고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 바깥세상과 거의 비슷하게 시간이 흐르는 곳조차도 있다. 즉, 언더섀도우의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겪는 시간량이 완전히 달라지는 셈이야. 별것 아닌 그저 이상한 일로 여기면 안 돼. 너를 쫓는 사냥꾼이 너보다 열 배 이상이 시간을 지니고 준비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고, 네가 쫓던 사냥감이 몇 배의 시간을 지닌 채로 도망쳐 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이런 환경에서 뱀파이어가 얼마나 특별한가는 아주 명확해지지.”
“어? 특별해요?”
투란이 흥미를 느끼고 얼른 물었다.
바루하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너…… 살면서 뱀파이어를 만난 적은 있냐?”
“없죠. 피 빠는 몬스터란 것 말고는 거의 몰라요!”
시원하고 간결한 투란의 대답은 바루하가 프릿과 에스탄 쪽을 노려보게 했다.
하지만 바루하는 요리를 하느라 바쁘다는 듯, 저편에서 구경하는 셀리아랑 어울리는 것도 힘들다는 듯이 전혀 반응이 없는 둘의 모습만 봐야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루하가 투란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한다.
“저주받은 영생을 누리는 괴물, 뱀파이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면 그리 말하고는 하지. 그 말 그대로, 뱀파이어는 피를 마시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에 무관한 삶…… 한번 죽은 다음에 일어선 것이니 살았다고 하기에도 곤란하기는 하다만, 어쨌든 세월에 부서지지 않는 활동성을 지닌 괴물이다. 하루가 지나면 하루를 늙고, 일 년이 지나면 일 년이 늙은 인간을 저 깊은 곳에 던져 놓고 밖으로 벗어난다면…… 열 배 이상 빨라진 곳에 버림받은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상대하기 전에 시간에 짓밟히는 꼴이 된다는 뜻이지. 그래, 이곳은 그런 곳이다. 영생을 지닌 자가 한없이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 수 있는 저주받은 어둠 속이지.”
“음…….”
조금 어렵다는 듯이 투란은 뒷머리를 긁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곧 투란은 프릿을 흘깃거렸고 슬그머니 낮은 목소리로 바루하에게 묻는 말을 꺼낸다.
“그래서 프릿이 뱀파이어의 몬스터 로드인 거예요? 몬스터 로드가 뱀파이어를 삼키면, 그 정수를 얻으면 영생할 수 있는 거라서?”
바루하는 잠깐 눈을 끔벅하다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 녀석은…… 우연히 몬스터 로드가 되었는데, 그때 부여받은 몬스터의 정수가 뱀파이어였던 것뿐이지. 사실 저 녀석 이전에 뱀파이어의 몬스터 로드…… 아, 참고로 이곳에서는 몬스터 로드란 말보다는 언데드 헌터란 말을 더 많이 쓴다. 언데드를 사냥해서 그 힘을 갈취하는 자라고 말이지. 그리고…… 사실 프릿 이전에는 뱀파이어의 몬스터 로드 따위는 이 언더섀도우에 거의 없었다고 봐야겠지. 아예 뱀파이어 행세를 하는 놈이 있었다면 모를까, 인간으로서 뱀파이어의 힘을, 그 피의 권능을 부리는 몬스터 로드로 나선 놈은 프릿뿐이이니까. 몬스터 로드가 뱀파이어의 힘을 얻어 저렇게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프릿이 찾아냈다고 할 수도 있을걸?”
“에? 잠깐만요! 젊음을 유지……? 설마 프릿, 에스탄만큼 나이가 많은 거였어요!”
투란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저편의 둘을 재빠르게 훑어 내리면서 물었다.
투란으로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일을 갑자기 느끼고 깨달은 셈이었다.
바루하가 조금 삐딱하게 고개를 갸웃하면서 대답한다.
“원래 많았지. 하지만 그동안 지내온 것을 고려해 본다면…… 프릿이 거의 서너 배는 더 많은 상태일걸? 뱀파이어의 피를 활용할 수 있다고 깊은 곳에도 거침없이 들락거리고는 했으니까. 에스탄은 그래도 너무 깊은 곳으로는 들어가지는 않았지. 음, 그래도 에스탄이 거의 백오십, 육십 정도이니…… 프릿은 바깥세상에서 내 나이랑 거의 비슷하든가, 그보다 많을 수도 있겠군.”
“허얼!”
투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프릿을, 에스탄을 흘깃거렸다.
그러나 둘은 모르는 것인가,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가 이야기하는 사이에 요리가 거의 준비되었다는 듯이 맛을 보느라 바쁠 뿐이었다.
때문에 투란의 눈길이 문득 셀리아를 스쳤는데, 그 순간에 어렴풋이 눈길이 마주치자 셀리아가 방긋 웃으면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슬쩍 호기심이 피어난 투란은 조금 갸웃하는 시늉과 함께 눈알을 굴려 바루하에게 셀리아 쪽을 눈짓해 봤다.
바루하는 바로 그 눈짓에 담긴 물음을 알았다는 듯, 거침없이 대답한다.
“셀리아? 셀리아는…… 프릿이 피의 세례를 통해서 여러 번 처방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뭐 또 어떤 마법을 섞었는가는 모르겠지만, 언더섀도우에서 프릿을 돕는 마법사 중에서 셀리아 수준은 굉장히 귀하니까 그럴 만했지. 그래도…… 프릿이랑 붙어 다닌 시간이 많아서 셀리아의 젊음은…… 크엇! 왜 그래! 꼬집지 마! 마력으로 할 일이 그리 없냐! 왜 꼬집어!”
거리낌 없이 떠들던 바루하가 몸을 뒤틀면서 누가 물어뜯고 꼬집어 괴롭다는 몸짓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란은 그 말과 함께 마력의 흐름이 셀리아에게서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희미하게 나오는 셀리아의 목소리도 투란의 귓속에는 쏙쏙 잘 스며들었다.
“중요한 얘기만 하라니까, 뭘 자꾸 숙녀의 나이를 따지고 검토하려고 하냐고요.”
아무래도 바루하는 못 듣는 말인 모양이던 듯.
“젠장, 그만하라고! 네 얘기 그만할 테니까!”
이리 으르렁거리니, 셀리아가 심술 난 것이 그 나이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자기 이야기를 싫어하는 마법사의 성질이라고 여긴 듯이 떠들고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시알라도 은근히 나이 얘기 싫어했지?’
문득 추억 한구석을 뒤척이던 투란은 씩씩거리면서 입술을 삐죽이는 바루하가 ‘어디까지 했더라?’ 하는 표정을 짓는 꼴을 보고 재빨리 묻는 소리를 흘려 낸다.
“그러면 이 도시…… 인왕도의 몬스터 로드들은 뱀파이어랑 싸우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그 피를 얻고 능력을 확보해 놓고 있겠네요?”
“응? 아, 그건…….”
바루하가 낯을 구기면서, 어딘가 투란의 물음이 언짢은 기억이라도 건드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고르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렸다는 듯이 프릿이 박수 치며 외침을 터뜨렸다.
“자, 우선 먹자! 배 고프잖아, 배부터 채우자고, 투란!”
말과 함께 쓰윽 밀려오는 접시를 보는 순간, 투란은 그동안 바루하랑 떠들던 이야기를 홀라당 잊고 말았다.
―이게…… 요리냐! 이딴 걸 요리라고 들이대는 거야! 저놈, 미쳤나!
심지어 드라고니아까지 접시 위의 요리된 음식을 성토하며 음식이 아니라고 포효하게 만들 지경…… 그것은 접시 위에 가득 채워진 채로 꿈틀꿈틀하는 굵직하고 커다란 벌레무리였다.
투란이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프릿을 봤지만, 프릿의 태도는 ‘이런 맛있는 거 처음 보지?’라는 당당함만이 넘쳐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투란의 눈길은 셀리아를 스쳐 갔고, 에스탄에게 도달했다.
‘제발 영감님만은 제대로 된 말을 해 줘!’
간절한 투란의 소리 없는 호소가 닿았는지, 에스탄은 손을 내밀어 굵은 팔뚝 같은 벌레 한 마리를 쓰윽 집어 들면서 담담하게…… 나름대로 투란에게 평온한 분위기를 전하려는 듯이 말해 주고 있었다.
“곡식을 준비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잖아. 여러 가지로 실험은 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없었어. 그렇다고 도시까지 건설해 놓고 굶주릴 수도 없잖아? 어떻게든 자급자족해야 싸우다 죽기라도 하지, 싸우기 전에 굶어 죽는 것은 완전히 바보짓인 거고. 그래서 이 언더섀도우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고 번성하는 벌레, 다 자란 것은 아니야. 애벌레인 이 녀석을 주요 식량으로 삼아야 했다. 뭐, 보다시피 언더섀도우에 어울리지 않는다 살 정도로 생명력이 왕성해서 완전히 익었어도 이렇게 꿈틀대기는 하지. 그래도…….”
우적, 손에 든 벌레를 반 토막 내서 그 속살을 보여 주고는 입으로 가져가 한입 크게 물어뜯는 모습까지 에스탄은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우물거리는 살점을 꿀꺽 삼킨 다음에 말을 잇는다.
“제대로 양념해서 맛있다. 투란, 먹어 봐.”
“어…… 음…… 네.”
투란은 곁에서 쏟아붓는 프릿의 눈길에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