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10)
―먹지 마! 저건 피 웅덩이 구더기의 애벌레란 말이닷!
‘에? 그게 뭐야?’
에스탄의 흉내를 내면서 막 꿈틀거리는 굵직한 팔뚝 같은…… 그럼에도 완전히 구워졌다는 애벌레 하나를 집어서 힘줘 부러뜨리며 속살을 살피던 투란은 움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먹는 것을 놓고 드라고니아가 이렇게 혐오감을 드러내다니…….
닥치는 대로 주워 먹고 찢어 먹는 투란에게 이토록 참신한 반응으로 권유하는 드라고니아는 처음 겪지 않는가!
―너, 피 웅덩이 구더기 몰라?
‘다른 이름이면 알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름은 전혀 몰라. 그러니까 대체 뭔데? 몬스터냐? 아니면 흉악하지만 보통 벌레? 먹을 수 있다는 걸로 봐서는…… 마수나 괴수? 대체 뭔데?’
―핏웜이라고 하면? 블러드 핏웜이라고 하면 알아듣겠냐?
‘핏…… 혹시 구멍 파고 시체 끌어다 모아 놓고 썩혀서 들이마신다는 벌레 닮은 야수? 그건 벌레가 아니잖아?’
―그건 핏도그…… 이지만, 비슷하긴 하군. 저건 시체를 끌어다 쌓고 거기에 알 무더기를 낳아 두고 썩는 시체 속에서 깨어나 그 시체를 먹고 자라나게 하는…… 마수라 할 만한 벌레의 새끼란 말이다! 하도 잘 쌓고 썩혀서 드라코눔의 일족조차도 그 썩는 냄새만 맡아도 중독 증상을 일으킨단 말이다! 더러운 것은 둘째 치고, 독극물이라고 독극물!
격렬한 드라고니아의 말에 쪼개서 입가에 살살 그 살점을 갖다 대던 투란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먹어도 될 듯한데…… 아무래도 그 전에 슬쩍 묻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음, 그런데…… 이거 무슨…… 짐승이죠?”
생긴 것은 벌레지만, 굵기나 크기로 봐서는 뱀이라고 해도 믿을 만하다는 기분을 담아 묻는 말이었다.
바루하가 그런 투란을 보면서 흥미롭다는 듯이 ‘흐흠?’ 하고는 프릿에게 묻는다.
“이것도 역시 말해 줘야 할 부분이겠지? 감출 거냐?”
대답 대신에 프릿이 이 상황이 묘하다는 듯이 투란을 보며 묻는다.
“먹을 것 가리는 성격이었어? 아닌 것 같았는데?”
투란이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좀 팔딱거리기는 해도 완전히 조리된 듯한 모양새를 한 고깃덩이 아닌가, 평소의 투란이라면 이게 산 채로 앞에서 기어 다녀도 일단 물어뜯어 맛을 볼 듯한데…… 이번에는 좀 심하게 드라고니아가 뭐라 하는 탓에 갑자기 조신한 태도로 조심하고 있는 꼴이었으니!
프릿이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는 듯한 투란의 웃음을 보며 히죽거리는 채로 말을 잇고 있었다.
“다 자라면 사람 몸뚱이만 해지는 벌레야. 그쯤 되면 짐승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기도 하겠지만, 이 녀석은 이 모양 그래도 커지는 것이 성장이거든. 언더섀도우 밖에서는 굉장히 혐오당하는 녀석이기는 한데…… 이게 언더섀도우에서는 꽤나 키울만한 가축이거든. 어디 보자…… 셀리아, 이거 공식 지정 명칭이 뭐였지?”
“블러드 핏웜.”
셀리아가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바로 투란은 뇌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드라고니아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맞잖아! 피 웅덩이 구더기!
약간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드라코눔의 일족은 이 벌레를 놓고 공식적으로 지정된 호칭 따위보다는 감정을 담뿍 담아 미워하며 부른다는 것이 참으로 명확하잖나.
어찌 되었든 투란은 조금 조심스럽게 프릿에게 다시 묻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가축이라면……?”
씨익, 어딘가 스산한 웃음이 프릿의 입가에 걸렸다.
그리고 나오는 말은 투란을 살짝 오싹하게 했다.
“오염된 피를 마시고도 멀쩡하게 살이 쑥쑥 돋거든. 그 살은 오염 따위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깔끔한 고기가 돼 주고 말이야.”
“오염된 피라면?”
어쩔 수 없이 투란은 이렇게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에스탄이 퉁명스럽게 곁에서 대답한다.
“뱀파이어라든가, 온갖 형태의 흡혈종이 질질 흘리는 독성있는 피를 말하는 거야. 이 언더섀도우에서 그런 혈액류에 알을 까고 애벌레를 키우면서 들이마셔도 괜찮은 놈이거든. 몬스터는 아니고 마수라던데…… 덕분에 적당히 조리하면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식량이 되는 거지. 먹어 봐, 여기서 뭘 하려면 조금은 익숙해져야 하는 맛이니까.”
“음, 그렇군요.”
투란은 더 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라도 하는 척하면서 과감하게 고기를 입에 물었다.
―얀마아아!
꽥 하고 드라고니아가 외칠 때, 투란은 맛을 점검할 뿐이었다.
‘조금 질긴데? 음, 푸석하지는 않고 끈적? 아니, 쫀득? 적당히 먹을 만하잖아? 독성도 없고…… 이거 괜찮잖아?’
―이런 미련한 먹보 같으니라고!
드라고니아가 지쳤다는 듯, 질렸다는 듯 이제는 한숨을 쉬며 포기한 낌새를 흘렸다. 그리고 조용해졌기에 투란은 조금 더 고기를 물고 뜯어 씹을 수 있었다.
으적, 으적.
“맛있어?”
프릿이 물었다.
“이거…… 으적, 냠. 조리 제대로 안 하면, 독 있어요?”
투란이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되물었다.
이번에는 셀리아가 대답을 했다.
“아니, 없어. 언더섀도우의 블러드 핏웜은 조금 특별해. 원래는 시체나 혈액의 구덩이에서 뒹굴면서 자체적으로 독성을 발현해야 하는데, 그림자 아래에서는 그런 독성을 무색하게 하는 사나운 시체랑 저주받고 오염된 피가 많아서 그런지, 특별한 독성을 발현시키지 않아. 오히려 그 독성을, 저주를 중화하고 지워 버리지. 바깥세상에서 이런 블러드 핏웜에 대해 알게 되면 굉장히 놀랄걸?”
투란의 태도가 이모저모로 이상해서 재미있다는 듯한 말투로 늘어놓는 이야기였다.
한 덩이를 모두 먹어 치운 다음, 투란이 가만히 셀리아의 말을 되새기는 척하다가 프릿을 보면서 불쑥 묻는다.
“인왕도에는 이것 말고 식량이 없는 거예요? 바깥에서 구해 오는 것 말고는 다른 식량이 전혀 없어요?”
프릿이 슬쩍 에스탄을 바라봤다.
대답을 미루는 듯한 태도였지만 에스탄은 신중하게 생각을 가다듬는 듯한 모습으로 대신 투란에게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식량의 확보를 위해 곡식을 재배하는 시도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고 빠르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마수에 가깝다는, 혹은 마수인 짐승의 고기이지. 이런 것조차 쉽게 구할 수 없었기에 초기에는 사람을 모을 때마다 외부에서 지원을 끌어와야 했지. 그나마 인왕도가 이만큼 자리 잡았기에 이제 이 정도는 가축으로서 키울 수 있게 된 거야. 하지만…… 음, 프릿 다음 이야기는 직접 하겠어요?”
살짝 이야기를 멈추는 태도가 점잖았다.
마구 미친 황제가 어쩌고 하던 모습과는 조금 엇나간 태도이기에 투란이 쓴웃음과 함께 한껏 흥미롭다는 시늉을 하면서 프릿을 돌아봤다.
프릿은 당연하다는 듯이 에스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투란에게 말한다.
“우선, 잘 짚었어. 그 부분을 칭찬부터 해 줄게, 투란. 인왕도는…… 인간이 왕 노릇하는 도시라고 우리의 염원을 닿아 건설하기는 했지만, 지금 이 왕은…… 왕들은 엄청나게 가난하고 빈곤한 상태야. 간신히 외부에서 들여온 물자를 어떻게든 꾸리고 정비해서 자체적으로 물품을 생산할 근거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도시를 만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깊이 끼어들어서 간섭하려는 녀석들이 있어. 인간을 자신들의 가축, 식량…… 언제라도 주워 먹을 수 있는 길바닥에 떨어진 열매 취급하는 녀석들이 말이야.”
“열매…….”
투란은 문득 수은 같은 피를 흘렸던 녀석들이 떠들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뭔 욕을 열매니 뭐니 하고 떠드는가 했지만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제 보니 인간이란 자신들의 먹거리에 불과하다고 비웃었던 모양이잖나.
바루하가 프릿이 잠시 숨을 고르는 틈을 타서 몇 마디 보탠다.
“그놈들과 대항하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한순간도 마음 놓고 쉴 틈이 없는 곳이었지. 이 정도라도 도시를 꾸민 것이 그나마 예전보다 좋은 상황이라 해야겠지. 하지만 아직 여러 가지로 많이 부족해. 그런 곳에 외부에서 손님으로 네가 온 거지, 투란. 의뢰를 받고 찾아오는 녀석도 아니고, 황제 폐하씩이나 되는 프릿이 마법사인 셀리아까지 끌고 가서 모셔 온 손님이란 말이지. 자, 그러니 내가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잖아? 눈에는 우리 일족이 만든 시계의 안쪽이라도 박아 놓은 것 같은 눈동자까지 꽂고 왔으니, 호기심이 두 배로 커지기도 했고 말이지. 투란, 넌 대체 뭐냐? 어디서 온 누구야?”
투란이 ‘네?’ 하는 사이에 프릿이 혀를 찼다.
에스탄은 자신이 할 말은 없다는 듯이 다시 꿈틀대는 고기 한 토막을 들어서 입에 대고 으적거리고 있었다. 뭘 먹는다기보다는 스스로 입을 막고 말을 못 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듯했다. 한구석에서 셀리아는 무슨 일이든 그저 재미있을 것이라 기대하듯이 빙긋빙긋 웃고 있을 뿐이었다.
투란은 이 상황에서 어버버 하며 뭐라 할지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는데, 프릿이 바루하를 흘겨보면서 하던 말을 잇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뭐, 이야기 순서가 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투란, 이 도시의 상황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그게 좋은 것은 아니야. 무엇보다도 우리 도시에서 하루도 안 걸릴 곳에 자리 잡은 놈들, 우리가 만났던 그 혈족 놈들의 거처가 있으니 말이야. 은색의 피를 흘리면서도 자기네를 황금의 혈족이라 부르는 그놈들이 바로 우리가 격파해야 할 첫 번째 혈족이다!”
“네?”
투란은 프릿의 손짓이 좌악 주변을 훑으면서, 정확하게 ‘우리’란 말과 함께 투란 자신마저도 휩쓸어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조금 전보다 더 어리바리해졌다고 과시하는 듯한 소리를 내 줬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이야기인가, 너무 건너뛰고 있어서 못 알아듣겠다는 의도를 가득 담은 투란을 보며 ‘얘랑 뭘 해?’라는 말을 중얼거리던 바루하가 갑자기 눈썹을 곤두세우면서 에스탄에게 묻는다.
“재상, 이 녀석을…… 투란을 어디에서 데려왔지? 어디를 어떻게 들러서…… 인왕도로 바로 끌고 온 거야?”
에스탄은 고기를 입에 가득 물고 열심히 씹는 시늉만 했고, 프릿이 바루하를 보며 왜 그리 성급하냐는 듯이 혀를 차며 말한다.
“뭘 못 들은 척해요? 방금 들었잖아요! 여기 투란이, 황금의 혈족 녀석들이 환장하는 우자트의 눈을 끼고 있는 투란이 우리를 도와서 황금의 혈족부터 시작해서 십이혈족을 모조리…….”
“잠깐, 잠깐 닥쳐 봐! 우자트라고? 저게? 진짜 우자트야? 황금 혈족이 애지중지하다 못해 숨겨 놓고 썩어 으깨지길 기다린다는 그 기계의 신안(神眼)이란 우자트? 그놈들이 고신(古神)이라 부르는 호르트인가 뭔가의 신성이 담겼다는 그 눈? 진짜 그거였다고? 너 대체 바깥에서 왔다는 놈이 그걸 어떻게 끼고 있는 거냐!”
바루하가 황당해하며, 너무 황당해서 두서없이 프릿의 말을 끊고 끼어들면서 마구 묻고 있었다.
그 물음이란 것이 투란에게는 참으로 대답하기 쉬워서 탈이었다.
“이미 말했잖아요? 프릿이 줬다니까요!”
포트 타워, 그 정상에서 내려오며 이미 짧고 굵게 답한 부분인지라 투란의 말투는 한층 더 당당했고 목소리는 차랑차랑 또렷하게 울려 나오는 중이었다.
바루하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잊었다가 겨우 생각해 냈다는 듯, 바루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나갔던 정신을 다시 찾아오는 시늉을 하고서 프릿에게 묻는다.
“정말이냐? 그냥…… 그냥 황금 혈족의 백작 놈을 대충 골라 두들겨 패고 눈알 빼다 준 것이 아니라, 진짜 우자트를…… 네가 저 애한테 줬다고? 황제 폐하, 이 농담이 진담이란 것이야? 도대체 무슨 재주로 저걸……!”
뭔가 으르렁거림이 점차 높아지면서 격노할 낌새가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그런 바루하를 보면서 프릿이 재빠르게 책임 전가하는 말을 골라 뱉는다.
“예견의 마녀가 준 거야! 투란에게 주라고 해서 투란에게 준 거지!”
“그래, 그 마녀가 뭐? 뭐라고?”
바루하가 하던 말이 꼬여 결국 입을 벙긋거리면서 말을 멈췄다.
그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꼴이 뭔가 프릿의 말에서 또 다른 의미라도 찾아낸 듯이 기묘해 보였다.
그러는 사이에 투란은 에스탄을 봤고, 셀리아를 봤다.
둘은 어째서인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철저하게 구경꾼 노릇을 하면서 고기를 뜯어먹거나 아예 턱을 고인 채로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투란이 두리번대는 동안 프릿은 바루하의 경악을 지켜보듯이 기다렸다.
바루하가 겨우 숨을 다시 고르면서, 굴강한 바위 요정의 모습에 한층 더 무게를 더하는 듯한 목소리로 프릿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얘가…… 이 투란이 그……거라고?”
프릿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설명이 전혀 없기에 투란은 재빨리 입을 움직였다.
“그게 뭐예요? 내가 뭔 그거란 말이에요?”
바루하의 입이 다물렸다.
뭔가 스스로 말하기 싫다는 듯, 혹은 말할 수 없다는 듯도 했고 말하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듯도 했다.
그런 바루하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셀리아가 입술을 삐죽하며 바로 한마디 한다.
“구원자.”
“응, 그거.”
프릿이 날렵하게 보태고 있었다.
투란은 바루하를 보면서 ‘이럴 때는 저런 표정이지!’라는 것처럼 그 표정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