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2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11)
Chapter 203. 언더섀도우, 황금혈
―이 녀석들이 단체로 미친 것이 아니라면 담합해서 사기를 치는 중이겠군! 너한테 무슨 짓을 시키려고 수작 부리는 것이 틀림없다!
조금 느닷없고 뜬금없이 냉정하게 비난하는 낌새 가득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투란에게는 블러드 핏웜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고 내민 짓에 대한 압도적인 격노로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프릿이나 바루하, 셀리아든 에스탄이든 상관없이 드라고니아는 깊이 불신하겠노라 선언하는 셈이었다. 이를 한마디로 하자면…….
‘삐졌냐?’
―닥쳐! 지성이 있는 작자라면 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엄청 싫어하는구나, 핏웜. 일단 넌 너무 흥분했으니까 조용히 좀 해 봐.’
깊이 숨을 고르는 시늉을 하고 슬슬 바루하를 향해 눈짓해 보면서, 투란은 바위 요정의 일족이 지닌 굳건한 눈동자를 향해 ‘진심인가요? 구원자?’라는 소리 없는 물음을 쏘아 내는 마음을 담아 눈을 부릅떴다 감았다 해 보였다.
이에 대한 대답은 바루하가 아닌 프릿이 했다.
“나 안 미쳤거든?”
“무슨 뜻이에요?”
투란은 적당히 흘리는 소리로 물으면서 흘겨봤다.
뜬금없이 앞뒤 자른 말에 대해 설명하라고.
프릿이 투란의 이런 눈길과 표정에 대해 정답이 있다는 듯이 입술을 달싹이려는 찰나, 벽을 울리며 전해져 오는 소리가 있었다.
멀리서 돌로 된 북을 망치로 치는 듯, 허공에서 벼락이 번쩍하고 바위를 향해 내리꽂히기라도 한 듯, 그 소리는 크고 깊이 울리며 포트 타워를 통째로 흔들려는 것처럼 웅장하게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투란은 본능적으로 그 음파의 격동이 어디에서 근원했는가를 느낄 수 있었기에 그쪽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보이는 것은 그저 단단한 벽일 뿐이었다.
‘어라?’
그런데 마법이 아니라 맨눈으로 그 벽 너머를 볼 수 있었다. 한 박자 늦게 투란은 자신의 눈동자 속에 새로운 눈동자가 맺혀 벽을 관통해 본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자트라 불리는 눈동자가 벽안에 퍼져 가는 음파의 형상을 빛의 물결처럼 보여 준다는 것도 알았다.
―응? 그건…… 쓴 적이 없는 눈알인데?
드라고니아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의 한쪽 눈은 보통 사람이 눈동자인 채로 그 중심에 새로운 눈동자가 바늘로 찍힌 점처럼 작게 생겨나서 생긴 변화였고, 한쪽 눈은 기계적인 반응으로 관심 있는 모든 것을 보려 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더욱 깊이 파고들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프릿이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에스탄 또한 동시에 격한 몸짓으로 일어나 그 옆에 서는 중이었다. 조금 차분하게 보였지만 셀리아 역시 둘에게 그리 늦지 않게 일어서는 것으로 봐서, 벽을 울리는 기묘한 메아리가 뭔가를 알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투란에게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침략이야. 뱀파이어가 도시를 향해 무리 지어 싸움을 걸어온다는 신호다.”
바루하가 투란을 향해 상황에 대한 말을 꺼내고 있었다.
많은 생략이 담긴 말이었기에 투란은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침략? 무슨 알람이길래…….”
포트 타워가 작은 종도 아니고, 전해 온 메아리는 결코 가깝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무슨 일이 터졌기에 저 멀리서 저리 커다란 소리를…… 대체 어떻게 냈기에 포트 타워까지 통째로 울리게 전해져 온단 말인가.
“가자. 이야기는 가면서 해야겠어.”
프릿은 단호하게 말하고, 머뭇거림 없이 바로 내닫고 있었다.
투란이 엉거주춤하며 ‘나도 가요?’라는 말을 할까 말까 입술을 달싹이는데, 프릿이 이미 손짓하고 있었다.
“투란, 이 전쟁은 너에게도 중요해.”
“에, 네? 전쟁……?”
맹한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투란은 앉아서 설명을 다 듣겠다고는 하지 못했다.
에스탄이나 셀리아는 프릿처럼 기다릴 생각도 없이 움직이는 중이었고 바루하 역시 굵직한 발을 힘차게 움직이면서 그 곁으로 반쯤 뛰고 걷는 모습이었다.
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도 투란 역시 프릿의 곁에서는 발을 맞춰…… 뛰듯이 걸어야 할 참이었다. 프릿 또한 느긋하게 기다리지 않고 이미 빠르게 걷고 있었으니까.
횃불을 대신한 빛 열매가 장식된 복도는 윙윙거리는 와중에도 돌로 지어진 단단한 골격과 정교하게 맞물린 섬세함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일행을 받아들이고 반겨 주는 듯했다.
그 일행의 끝자락에서 프릿의 반걸음 뒤를 따르는 채로 투란은 프릿이 흘리는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야 했다.
“투란, 너에게 그 눈이 전해졌다는 것을 놈들은 알아. 블러드 미니언을 사방에 뿌려 놓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그 마스터에게 상황이 전해지는 요술을 쓰거든. 그러니까 녀석들은 나와 전쟁을 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고, 너에게 우자트가 박혀 있는 것을 알고서 우리 도시를 침공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다는 이야기지. 그러니 투란, 너도 함께 싸우면 되는 거야. 이해하기 쉽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요?”
투란은 프릿이 말하는 요령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앞쪽을 바라봤다.
주로 에스탄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눈길인 채로 투란이 복도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내면서, 이해가 안 되는 이 상황에 대해 묻는다.
“여기 오기 전에 만났던 그…… 수은을 흘리던 놈들은 다 죽었잖아요? 그렇게 해 놨는데도 살아 있다는 건가요? 게다가 우린 마법으로 단번에 날아온 거잖아요! 그런데 몇 시간 되지도 않아서 그때 프릿이 했던 말 그대로 전쟁하자고 바로 쳐들어온다고요? 이게 대체 무슨…….”
이에 에스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을 했다.
“인간의 발걸음으로는 하루가 넘게 걸리는 곳이 놈들, 백은의 혈족이 자리 잡은 곳이야. 그놈들은 그 거리를 한 시간 만에 주파(走破)할 수 있어. 거느린 미니언에 대해서 바로 파악하는 것은 놈들이 지닌 혈인능력…… 권능이라고까지 하는 능력이지. 어쨌든…… 프릿 폐하의 선전포고를 기회 삼아서 바로 쳐들어오는 셈이야. 셀리아, 이제 바로 옮겨 줄 수 없나?”
중요한 부분을 다 짚었다는 듯, 내달리는 걸음을 멈추면서 이야기 끝에 셀리아에게 뭔가를 요청하고 있었다.
“모여요, 다음 방에서. 바닥에 그려진 원 안에.”
원이 그려진 방 안으로 일행이 들어섰다.
투란은 벽 한쪽이 훤히 뚫린 것이 마치 열린 문처럼 보인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풍경을 아래에 깔고 보는 듯한 광경이 아직 포트 타워의 꽤 높은 곳이란 것을 금방 알게 해 주고 있었다.
이대로 공중을 걸어갈 수는 없는 듯한데…….
“성벽으로.”
셀리아의 외침은 간결했다.
일행이 방 안의 원 안에 모두 발을 디딘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온 한마디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원을 기반으로 기둥처럼 솟구치는 마력이 일행을 움켜쥐었고 바라보는 풍경이 단숨에 바뀌었다.
―대단하군! 도시 내에 바람의 길을…….
드라고니아가 감탄한 듯 뭐라 하려 했다.
하지만 그 뇌리를 울리는 소리에 투란은 집중할 수가 없었다.
풍경이 변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울려 나오는 격한 목소리들…….
“젠장, 빨리 가져와!”
“라이플 없으면 피스톨이라도 많이 가져오라고!”
“헌터! 언데드 헌터는 성벽 앞으로!”
“문장 없는 놈들은 성벽 안에 머물러라!”
“야, 엎어질 시간 따위 없어!”
누군가 넘어지려는 것을 바로 잡아채서 세워 놓으며 으르렁거리는 말까지, 달리고 뛰어오르면서 성벽 위의 방어 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듯하는 이들은 가까운 곳에만 수십 명, 조금 더 눈길을 돌리기만 하면 수백 명이 금방이었고 길게 이어진 탓에 거의 수천 명이 순식간에 성벽 위를 채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 광경은 투란에게 알드바인에서 겪었던 수성전을 바로 떠올리게 했다.
‘이 성벽, 알드바인보다 더 길어 보이는데?’
그때와 같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프릿이 옆에서 바로 속삭이듯, 또렷하게 하는 말이 투란의 자리를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망루, 투란 일단 성벽 위 가드 타워…… 저기로 올라가 있어 줘. 바로 따라 올라갈 테니까. 이쪽에 몇 마디 하고 말이야. 바루하, 투란과 함께 망루로 올라가요!”
무슨 일이냐고 바루하는 따지지 않았다.
이 순간에 투란은 아직 높이 솟은 성벽의 여러 망루 중에서 가까운 곳을 올라가란 말인가 조금 떨어진 먼 곳을 올라가란 말인가 가늠해 보려 하는데, 바루하가 투란의 팔언저리를 툭 치면서 고개를 까닥하더니 앞장서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그 뒤를 따르며, 주변을 가득 메운 이들…… 언더섀도우의 인왕도에 사는 인간의 모습을 재빠르게 훑어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춤추는 산맥의 몬스터 헌터가 갖추는 차림새와 닮았지만, 그 허리를 교차하는 두꺼운 가죽띠가 둘이었고 띠에는 작고 동그란 대롱을 가득 꽂아 놓은 채였다. 그 허리띠에 덜렁덜렁 도검(刀劍)이 매달린 것은 이해가 갔지만, 허벅지에 바싹 붙여 놓은 묘한 육각 방망이는 용도를 알 수 없었다. 손잡이는 칼자루와 다르게 슬그머니 휘어져서 방망이에서 약간 대각으로 뻗어 나온 모양이었다.
―피스톨이다. 여기서는 쓸 수 있나 보군.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관심을 보이는 도구에 대해 짧게 말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투란이 짧게 되묻고 말았다.
‘그게 뭔데?’
―활이나 쇠뇌, 그런 것과 마찬가지인 투사(投射)형 무기라고.
‘태엽도 없고, 시윗줄도 없어. 마법도 안 느껴지고. 연금술사가 만들었나?’
―바위 요정의 일족 중에서 저걸 제조하는 부류가 있다. 음, 바루하는 바위 정원사라 했으니 다른 바위 요정의 일족이 있는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오래 살다가 취미 삼아 일족의 공예를 배워 둔 것일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이곳에서는…… 공예 기술을 전해 받은 인간이 직접 제작했을 가능성이…….
‘야, 뭘 어떻게 쏘는 거냐고!’
쓸모없이 늘어지려는 이야기를 자르면서 투란은 으르렁거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멀리서 투석기가 준비되는 것, 성벽을 뚫어 버릴 듯한 대형 쇠뇌가 성벽 아래에서 위로 옮겨지는 것, 분주하게 자리 잡으면서 은색이 짙은 날을 지닌 칼이나 도끼, 창을 준비하는 것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수천, 어쩌면 길게 늘어진 성벽의 아래위로 수만일 수도 있어 보이는 인간들의 움직임을 한순간 정지시킨 것은 프릿의 외침이었다.
“들어라!”
처음 한마디에 투란은 바루하를 따르던 눈길을 바로 돌려서 프릿을 봐야 했다.
성벽 전체를 울리는 목소리라니, 절대로 프릿의 목청에서 나올 위력이 아니었으니까…… 이 의심을 품고 돌아본 투란의 눈에 바로 셀리아가 보였다.
셀리아는 프릿 곁에서 마법을 담은 손짓을 하는 중이었고, 그 손짓과 함께 성벽이 울부짖듯이 프릿의 말을 고스란히 인왕도에 울려 내고 있었다. 단순히 소리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울릴수록 성벽이 강대하게 모두를 지탱해 주는 듯한 분위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
―전투 의욕을 향상시키고 나름대로 가호를 거는 중이기도 하군.
드라고니아는 셀리아의 다채로운 마법이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프릿의 목소리는 한 박자 쉬는 듯하다가 인왕도의 관심이 집결되는 듯한 상황 속에 한층 더 강렬하게 터져 나왔다.
“오늘 식사는 배불렀나?”
잠깐 투란이 ‘엥?’ 하는 소리를 내게 하는 말부터 시작이었다.
바루하가 바로 투란의 손목을 두드리고 손짓하면서 망루를 가리켰다.
그냥 서서 듣지 말고 빨리 올라가며 들으란 손짓이었고, 엉겁결에 다시 앞장서는 바루하의 뒤를 쫓으면서 투란은 대체 프릿이 무슨 말을 하는가 귀를 기울였다.
“배는 불렀지만, 맛은 없었겠지! 그래, 이 척박한 곳에서 간신히 얻을 수 있는 식량이라고는 마수의 고기일 뿐이고 그놈도 따지고 보면 몬스터! 그딴 것을 배불리 먹는다고 즐거울 리가 없지! 그저 살기 위해 배를 채울 뿐이니까! 우리를 이렇게 맛없게 살라 한 놈들이 쳐들어왔다! 우리를 자기네 물주머니로 여기는 놈들이 목마르다고 쳐들어오는 꼴을 봐라! 저놈들이 사는 곳에 과수원이 있다는 것, 다들 알고 있지? 그 과수원에서 육포와 열매를 실컷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런 좋은 곳에 사는 괴물 놈들이 우리가 가진 것을 마저 뺏겠노라 쳐들어오고 있다! 그냥 내줄 텐가? 놈들이 자주 떠드는 말을 기억하는가? 인간 천 명이면 물러나겠다고 하면 그런 거래에 응하겠나? 인왕도의 인간이여! 여기서 너희는 무엇이냐? 대답해라, 그림자를 향해 외쳐라!”
프릿이 잠시 숨을 고르듯이 말을 멈췄다.
성벽 곳곳에서 프릿이 멈춘 틈새를 메우겠다는 듯한 외침이 합창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왕! 왕이다!”
“우리는 왕이다!”
“인왕도에서는 인간이 왕 노릇한다!”
포효하듯, 선언하듯 하는 그 소리는 투란이 한번 더 돌아보게 했다.
셀리아는 여전히 마법에 집중하느라 바빴고, 프릿은 당당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수많은 대꾸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둘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에스탄은 어느새 갑주를 몸에 두른 채로 빠르게 손짓하고 외치면서 전투를 준비하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