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14)
키릭.
작은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투란의 귀에 예민하게 파고들었다.
‘응? 야, 갑자기 뭔 소리를…….’
잠깐 어리둥절했는데, 가만히 느끼고 보니 프로브가 부여받은 청각을 강화해서 일부러 들려준 소리였다. 드라고니아가 거기 뭐가 있다고 알려 주는 것이었기에, 보채기까지 할 정도의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기에 투란은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뒤로 빼며 가볍게 발끝으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뱀파이어의 머리를 밀었다.
고개가 돌아가면서 눈구멍에서 통통거리며 눈알 둘이 굴러나왔다.
둘 다 끼릭끼릭 태엽과 톱니가 작동하는 소리를 희미하게 울려 내는 눈알이었다. 보자마자 투란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오른팔을 내밀고 있었다. 아르고누스가 어찌 못하는 눈알이라도 저렇게 기계 계열이라면 기계 괴수 고르곤이 우자트처럼 챙겨 버릴 수 있잖은가.
어쩌면 괜한 욕심인가 하는 생각도 투란의 뇌리에 살짝 스쳐 갔다.
우자트가 대단히 희귀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탓이었다.
그런데 두 눈알은 우자트 때처럼 아르고누스와 고르곤, 양쪽의 호응을 끌어내면서 오른팔의 시커먼 살갗 속으로 담겼다. 그 순간.
‘아, 이거 별로네.’
투란은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자트와 비교하면 굉장히 초라한 눈이었다.
백금(白金)의 광채를 열심히 흘려 내고 있고 소재는 백금을 바탕으로 뭔지 모를 다른 금속을 섞어서 톱니와 태엽, 그리고 핏방울이 얽혀 굴러가는 눈알이었지만 그 전체적인 성능은 우자트보다 한참 모자랐다. 그나마 두 눈알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면 우자트 하나의 절반가량의 성능은 나올 듯한데…….
―열화(劣化)한 우자트잖아. 모르겠냐? 뱀파이어의 백작이란 놈이 우자트를 모방한 아티팩트를 끼고 있는 셈이라고. 머신기어도 그렇고, 이놈들 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기술을 소유했다는 뜻이지. 하지만 악마종처럼 완전히 이 세상 이치에서 벗어난 정도는 아니야. 무슨 뜻인지 알겠냐?
드라고니아가 급하게 확인하라 했던 까닭을 짚어 주듯 말하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도 아주 짧게 그 결론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래저래 더 성가시단 말이네?’
―그렇지, 인간이 얼마나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이 기술은 널리 빠르게 퍼질 수도 있어. 물론 제국이 피스톨 따위를 금지한 것처럼 나라에서 금지하고 사용을 막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금지하면 오히려 들러붙는 작자도 있으니까.
‘음……언더섀도우의 기술이 언더섀도우 밖으로? 그건 좀 아닐 것 같은데?’
투란은 살짝 부정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바루하를 돌아보며 묻는 말을 꺼낸다.
“이건 우자트라고 부르지 않나요?”
바루하는 바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니, 백금안은 우자트를, 호르트의 눈을 모방한 것일 뿐이야. 녀석들에게는 나름대로 백금왕의 은총이라고 귀히 여겨지기는 하지만, 그 눈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백금왕의 백작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백작이 그 사용자의 하한선이라고 해야겠지. 그 아래로는 제대로 쓸 수 없어. 백금안은 피의 소모가 상당하다니까. 너는 그 팔로 쓸 수 있는 거냐?”
“음, 그럭저럭 괜찮아 보여요. 다만…… 우자트를 지녔으니까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해서…….”
투란은 바루하의 미묘한 눈길, 그 속에 담긴 염려와 근심을 읽고 적당히 내다 버릴 수도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바루하가 다음에 하는 말은 투란이 읽고 느꼈다 싶은 것과 반대했다.
“우자트 대신이 그걸 쓰라고 권하겠다만. 물론 우자트만 못하겠지. 열심히 모방을 했지만 유일한 아티팩트인 우자트의 능력에 근접한 물품은 만들지 못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 대신에 백금왕의 휘하, 최하의 남작위 정도만 되어도 사용할 수 있는 모조품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어. 그리고 백작 수준이라야 쓸 수 있기는 해도 더욱 좋은 것으로 개량해 내기도 했지. 그 정도면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우자트를 대신할 수 있을 거야. 그것 때문에 백작위 놈들과 싸우는 일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어려웠다만…….”
차분히 이야기를 하며 바위 요정족의 늙은이는 저편의 전투를 바라보며 세월이 각인해 놓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바루하의 모습이 묘하게 망루의 상황과 어울리는 듯했다.
그 때문인가, 망루의 바닥을 이루는 돌이 꿈틀거렸고 얇고 옅은 돌의 장막을 흘려 내면서 뱀파이어의 잔해를 덮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투란이 맹하게 묻는 말을 툭 던지며 그 분위기에 얹었다.
“백작 수준이면, 몬스터 로드에게 굉장히 귀한 몬스터 에센스가 되는 건가요?”
바루하의 바위 같은 표정이 곧바로 일그러졌다.
“귀하지, 단번에 미쳐 날뛰는 뱀파이어가 될 수 있는 피가 흔할 리가 있냐?”
“버려야 하는 건가 보군요.”
투란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고 얌전히 포기하겠다는 듯한 대꾸를 했다.
바루하가 늙은이의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살짝 돌려 저쪽의 전황과 투란을 동시에 보는 눈길을 흘리는 채로 말한다.
“대비 없이 마구 취할 수 있는 에센스가 아니란 뜻이다. 대비를 한다면, 강력한 힘을 획득할 수 있어. 그냥 지금 당장 허용할 수 없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투란, 백작위의 뱀파이어는 대비를 한다 해도 강대한 몬스터야. 너, 문장 속에 담을 여유가 있기는 한 거냐?”
“어, 뭐…….”
적당히 새는 웃음으로 움찔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이 말을 흐렸다.
동시에 지금 중요한 것은 저쪽의 전투 상황이란 듯이 슬그머니 눈매를 좁히며 저편을 열심히 보는 시늉도 하는 투란이었다. 그러나 그쪽으로 열심히 보는 시늉을 하다 보니, 어느 틈엔가 투란은 진짜로 열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우와, 저게 전쟁인가…… 아, 야! 이거 나중에 다시 자세히 볼 수 없을까? 그거 있잖아, 그거!’
몰래 덮쳐 올 자들에게 대비하면서 대충 훑어보고 신기한 물품에 호기심을 느껴 궁금해하는 것과는 달랐다. 수천이 서로 마주하며 격돌하며 제각각의 기괴한 기량으로 죽이고 죽는 광경은 그저 한번 스쳐 보고 잊어도 될 일이 아니었다.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조급한 물음에 조금 음울하고 씁쓸하게 대답한다.
―마법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차피…… 언더섀도우의 기괴한 병력들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가는 시간을 들여 검토할 일이었으니까. 일단 너도…….
말끝이 흐려지면서 저절로 멈췄다.
투란이 오른팔의 눈을 활짝 열어 저편을 향하게 한 채로, 고개를 바쁘게 움직이면서 구경하느라 바빴으니까.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나중에 제대로 들을 때 해야지 이런 투란에게 뭐라 해 봐야 다시 처음부터 말하는 꼴이 될 뿐이었다.
바루하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몰랐지만, 뜨거운 투란의 눈길과 태도만으로 어느 정도 짐작한 듯이 말문을 닫았다.
쾅, 콰쾅, 퍼억, 촤악.
우지끈, 콰드득.
온갖 소리가 제멋대로 터져 나왔다.
수은 방울처럼 튀어 오르는 뱀파이어의 피 사이를 가르며 피스톨이 불꽃과 함께 성스러운 힘을 축적한 탄환을 뿜어냈다. 백은의 옷감이 방패가 되고 검이 되고 창이 되어 막고 베고 찔렀다.
교차하는 격렬한 상황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려 하지만, 언데드 헌터라 불리는 몬스터 로드들은 뱀파이어만큼이나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때문에 전투 상황이 길어지는 것이 당연해 보였지만…….
그 난투의 중심이 되듯 독보적인 파괴력을 보이는 프릿이 있었다.
피스톨도, 백은의 무구도 없이 프릿은 걷어차고 움켜쥐고 때리고 찢는 것만으로 뱀파이어를 도륙(屠戮)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동료들이 찢겨 나가 으스러지는 광경을 본 뱀파이어들이 프릿을 괴물이라 부르며 두려움 가득한 눈길까지 보낼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프릿의 곁에서 피스톨의 불꽃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화륜(火輪)을 굴리는 마법사 셀리아가 있었다. 화륜은 뱀파이어의 몸통을 짓이기고 증발시키며 간간이 바퀴 살을 뿜어내 여럿을 한꺼번에 관통하기까지 했으니, 그 광범위한 파괴는 프릿에 못지않았다.
수천 대 수천, 하지만 한쪽은 삼천이 겨우 살아남았고 한쪽은 오천을 시작으로 새로 몰려온 이들이 더해져 일만에 가깝게 불어나는 상황이었다.
결국 전투는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는 프릿과 셀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두 배가 넘는 인왕도의 전사들이 뱀파이어 수천을 찢어 부수는 상황으로 매듭지어지는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저거, 저절로 일어나기도 하는 거였어요? 아, 구경만 할 때가 아니네.”
투란이 투덜거리면서 왼손을 흔들었다.
‘붉은 늑대’의 형상이 사라졌고 대신 문신처럼 블랙레온이 살갗 위에 자취를 드러냈다. 곁에서 바루하가 뭐라 묻기도 전에 투란은 활을, 하클의 활을 꺼내고 길고 튼튼한 특제 화살도 꺼냈다.
다음 순간에 투란의 오른팔에는 다시 누런 눈알이 맺혔는데, 순식간에 으스러지면서 구름 같은 분말을 털어 냈다. 그 분말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꺼낸 화살촉을 모두 담가 버리듯이 꽂아 넣는 투란이었다.
바루하는 갑작스럽게 투란이 보여 주는 모습에 어리둥절했으나, 다른 것보다 활을 보고 크게 놀란 듯이 묻는다.
“그 활은…… 너, 바위 요정의 일족을 이전에 만난 적이 있었냐?”
“아뇨. 이거 만들어 준 영감님이 젊었을 적에 그 근처로 여행 다녔다는 말은 얼핏 들은 것 같지만.”
단번에 부정하면서 투란은 하클의 활을 활짝 펼치고 누런 분말이 가득 밴 특제 화살을 걸었다.
바루하는 그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멀리서 깊은 울림을 토해 내며 찢겨 나갔던 뱀파이어의 잔해들이 한 덩이로 뭉치는 것이 몇몇 보였다. 투란이 눈깔꽃으로 뭉개 버렸던 곳에서도, 프릿이 일찌감치 으깨 흩어 놨던 곳에서도 뱀파이어의 잔해는 뭉치면서 거대한 어보미네이션의 형체를 꾸미고 있었다.
“키클롭스 사냥용이다, 영광으로 알고…… 자빠져라!”
들을 리가 없는 말을 속삭이면서 투란은 화살을 쏘아 냈다.
피이잇!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이 멀리, 망루에서 전장을 가로질러 잔해가 뭉친 형상을 향해서 날았다.
―모자라, 아무리 하클의 활이라도 간신히 닿기만 할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활의 유효사거리를 짚으며 말했다.
‘에어로.’
투란은 간단하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멀리 향했기에 높이 쏘아져야 했던 화살은 돌풍을 휘감으며 더욱 빠르게, 더욱 강하게 날았고 어보미네이션을 맞췄다. 그저 그 주변에만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살짝 피어났지만, 그 결과는 누런 구름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 거대한 광경이었다.
투란이 가장 먼저 노린 것은 인왕도의 언데드 헌터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형성되던 녀석이었기에 누런 구름이 뭉클거리며 지면을 채우며 번지는 광경은 그들에게 금방 닿을 듯했다.
그 상황을 보고 투란은 뒤늦게 ‘어?’ 하다가 바루하에게 묻는다.
“독 포자 대처는…… 할 줄 아는 거겠죠?”
잠깐 멍했던 바루하가 바로 발끈하면서 대답한다.
“알 리가 없잖아! 여기, 이 언더섀도우 어딜 가서 저딴 독 포자를 만나냐고! 그럴 수 있었으면 내가…… 으윽, 이럴 때가 아니구먼!”
“어, 어쩌죠?”
투란이 두 번째 화살을 걸려던 손짓을 멈추면서, 활을 내리면서 물었다.
어쨌든 몬스터 로드이니까, 기본적으로는 몬스터 헌터이기도 할 테니까 저런 상황에 대해서는 알아서 잘 대처하겠거니 했는데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독 포자는 어보미네이션을 중심으로 증식해서 인왕도 쪽에도 피해를 입힐 것이다!
한데 바루하는 한번 더 발끈하면서 투란에게 활을 올리라는 손짓과 함께 외치고 있었다.
“계속 쏴! 대처는 내가 알려 줄 테니까! 저것들 일어나서 죽는 것보다는 독 포자에 자빠져서 좀 아픈 쪽이 훨씬 낫잖아! 어서 계속 쏴! 멈추지 마!”
“넵.”
간단히 대답하고 투란은 바로 두 발, 세 발 연이어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어보미네이션이 누런 구름을 뿜어내며 터지기 전에 바루하의 목소리가 망루를 울리면서 성루를 타고 흐르듯이 퍼져 나갔다.
“물 들고 뛰어가! 뱀파이어의 피를 파괴하는 독 가루니까, 숨 쉬지 말고 물러서라 해! 이미 자빠진 놈은…… 물로 씻어 내고 살을 째고 누렇게 변하는 피를 긁어내라! 그리고 다시 씻어 내고! 뱀파이어의 피는 그게 안 되니까, 치워 버리고 처방해야 한다! 빨리, 뛰어! 자세한 것은 현장에서 셀리아에게 들어라! 어서!”
윙윙 울리는 그 외침에 드라고니아가 감탄했다.
―허어? 바위 정원사의 솜씨로군. 성벽의 돌을 소리의 매개로 삼다니…….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멀리서 두 번째 세 번째 어보미네이션이 터지는 광경을 보며 연이어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몇 발의 화살을 쏘아 내고, 투란이 바루하에게 말한다.
“참, 저기 독 포자를 창이나 칼에 바르고 던지면…….”
“알아서 할 거야. 바보도 아니고…… 말은 확실히 전해 두마.”
한숨처럼 대답하던 바루하는 문득 설마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던 듯, 곧바로 망루의 돌을 다시 짚으면서 말을 전하고 있었다.
새로 발생한 독 포자, 저 누런 분말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