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15)
전장은 정리 또한 쉽지 않았다.
그 낯선 광경은 그 사이를 걷는 투란을 이모저모로 불편하게 했다.
그 기분이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한층 더 낯설었기에 투란은 무엇 때문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풍경, 낯선 광경이 어디가 그렇게 거슬리고 있는가?
언더섀도우의 드리워진 어둠은 낯설든 말든 그냥 그랬다.
한쪽 눈에 우자트를 꾸미고 있자니, 어둠이든 뭐든 상관이 없는 상태였다.
풍경이 밝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 잔주름, 머리카락 한 올의 두께마저 세심하게 볼 수 있었으니까.
‘어두운 채로 보는 것도 신기하긴 하네.’
살짝 어긋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투란은 느꼈다.
우자트의 신기한 시각이 낯섦의 원인이 아니었다.
조금 전부터 상처 입은 이들, 아직 덜 죽은 뱀파이어가 버둥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쿡쿡 찔러 오는 낯섦이었으니까.
‘뭐가 문제지?’
투란은 스스로에게, 동시에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을 본 적 있나?
드라고니아는 뜬금없이 되묻고 있었다.
‘뭐? 인간끼리 싸우는 거? 그런 거야…… 전쟁?’
그냥 대답하려던 투란은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쟁, 춤추는 산맥에서는 몬스터 놔두고 뭘 사람끼리 싸우냐고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
서로 싫어하는 낯짝을 만나면 치고받고 싸울 수는 있지만 나라가 전부 싸우러 나선다는 것은 몬스터의 대범람이 아니라면 그냥 헛짓거리라고 하잖던가. 물론 그럼에도 고대 육왕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잊을 만하면 크게 싸우고는 했다는 말이 있기는 했다.
그런 전쟁에서 패잔병이 되고 갈 곳을 잃은 채로 춤추는 산맥으로 들어와 몬스터 헌터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했고.
하지만 이런 모든 일에 대해 투란은 듣기만 했다.
별 의미 없이,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 과거의 일에 대해 오갈 때 스쳐 들었던 이야기일 뿐이었다.
기억해야 할 부분도 거의 없었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면 그냥 칼질 더 잘하고, 먼저 죽이는 쪽이 이기는 것일 뿐이니까.
물론 이랬던 투란의 사고방식은 키린을 만나서 많이 변하기는 했다.
키린이 새겨 준 무투술의 절반가량이 인간을 적으로 상정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기술이었고, 몬스터나 짐승을 상대로는 그 기술을 확장하고 변형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무투술은 대규모로 병사를 움직여 전쟁을 하는 일에는 별 도움도, 의미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오러 윌더가 전쟁에 나서면 몬스터나 다름없겠지?’
사유의 흐름 끝에 불쑥 떠오른 바를 투란이 바로 물었다.
―전쟁, 직접 보거나 가까운 누군가가 경험한 일을 들은 적은 없는 거지?
드라고니아가 말을 돌리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묻고 있었다.
투란도 조금 답답한 기분을 느끼면서 대답해야 했다.
‘응, 그렇지. 몬스터랑 싸우기도 바쁜 곳에서 자랐으니까.’
소리 없이 답하고 보니 어쩐지 오러클 아저씨가 한 말을 되풀이한 듯해서 투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불쑥 피어난 투란의 표정을 보고 누군가 투덜거리는 말이 바로 투란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웃음이 나오냐…… 거참, 여유롭구먼.”
“어? 아…… 아니, 그러니까…… 엉뚱한 생각을 잠깐 하는 바람에…….”
움찔하면서 투란은 프릿이 혀를 차는 모습을 봤고, 엉겁결에 변명을 하려 했다.
하지만 프릿은 투란의 작은 웃음과 다르게 큰 웃음의 여운을 담은 얼굴로 손짓해 투란의 말을 막으며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여유로워야지! 이겼단 말이야! 남은 놈들도 피를 쥐어짜 내고 토막 내는 뒤처리가 남았지만 모조리 정리할 수 있으니까, 여유롭게 웃어야지! 인왕도의 전투는 늘 웃음으로 마무리 지어야 완벽한 승리가 되는 거야!”
“아, 네…….”
떨떠름하니 투란이 대충 대꾸했다.
하지만 프릿은 재빠르게 투란의 목을 감듯이 어깨에 팔을 걸치고 볼을 바싹 붙이면서 나직하니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처진 모습 보이지 마, 투란. 우린 전쟁에서 이겼어. 큰소리쳤어도 싸우면 반드시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전쟁에서 이긴 거야. 그래, 네가 구원자가 되어 우리를 이기게 해 줬지! 하지만 투란, 이거 끝이 아니야. 오늘 몰려온 놈들의 군단은 삼만, 하지만 놈들의 본거지에서 머무는 군단의 수는 그 열 배를 가볍게 넘어. 그런데도 인왕도의 십만 명을 상대하기 위해 겨우 삼만의 뱀파이어를 보낸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우리가 약하다는 거지. 그리고…… 삼만이면 이곳에서 널 찾아 우자트를 빼 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는 뜻이기도 해.”
“날 노렸다고요?”
투란은 조금 놀라서 되물어야 했다.
물론 망루에서 강력한 뱀파이어 귀족 둘에게 기습을 당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투란이 사납게 저질러 놓은 짓이 있었잖은가.
뱀파이어 군단 쪽에서 보자면 무슨 짓을 더 하기 전에 빠르게 처리할 필요가 있는 존재라고 증명했으니까 그 기습이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프릿의 이야기는 그 인과(因果)가 아니라, 아예 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몰고 온 뱀파이어 군단의 목표가 투란이라 하는 것이다!
‘이 사람, 진심인가?’
―완벽하게 진심인 것 같은데?
미묘한 말투가 드라고니아 또한 투란처럼 어이없어하면서도 어딘가 근거가 있는 말을 프릿이 한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프릿이 슬슬 투란을 당겨 걸으면서, 그야말로 꽉 끌어안고 친한 둘이 소곤거리며 걷는 꼴을 꾸미면서 빠르게 말한다.
“투란, 지금 네가 우리랑 무관해지려고 홀로 도망친다고 생각해 봐. 직접 그걸 실행에 옮긴다고 작정하고 생각해. 그다음에…… 무슨 일이 보이지?”
“예? 아…….”
순간 투란은 느꼈고, 볼 수 있었다.
미간에 아주 조그맣게 점처럼 떠오른 눈동자, 그라이아이가 넘기고 저주를 퍼붓게 했던 눈동자가 프릿이 말한 대로 할 경우에 무슨 일을 겪게 되는가를 투란에게 단숨에 비춰 주고 있었다.
“언더섀도우를 벗어나도 추적해 오는 군요?”
“그래, 언짢겠지만…… 음, 언짢을 수밖에 없겠지만 예견의 마녀는 이 상황에 대해서 미리 말했어. 너에게 우자트를 심어 놓으면, 네가 이곳에서 뱀파이어의 혈족과 만나고 그들의 정수를 얻으면, 너는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 투란, 함정에 빠진 기분이겠지만 잠깐 참고 내 얘기를 들어,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봐. 너 아니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저렇게 쓰러져서 멱이 따이고 피를 적출당하는 뱀파이어 군단이 인왕도의 성벽을 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잘 모르겠어요. 뱀파이어는 익숙하질 않아서…….”
슬그머니 회피하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전투 중에 기회를 잡으면 사람 목에 이빨을 박고 피를 빨아 재끼는…… 겉모습은 인간과 똑같았지만 결코 인간일 리가 없는 행동을 거침없이 보이던 마물이 바로 저 뱀파이어였다.
인왕도의 건물 틈새, 복잡한 거리로 뱀파이어가 군단 단위로 몰아닥쳤다면…….
그런 상황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에 투란도 가차 없이, 기묘한 기술을 드러내고 문명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명백한 그 군단을 향해 파멸의 섬광을 터뜨렸잖은가.
프릿은 투란에게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군단에 대해서, 흡혈종의 군단을 이끄는 자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백은의 혈족을 이끄는 자는 황금의 피를 지녔다고 하지. 그 황금의 피를 지닌 왕을 백금왕이라고 불러. 맞아, 그 휘하에서도 손꼽히는 백작 하나랑 보조하던 남작을 투란이 망루에서 박살 내 버린 거야. 애초에 널 노리고 군단을 보냈던 백금왕에게는, 그 황금의 피를 자랑하는 뱀파이어에게는 아주 통쾌하게 반격해 준 셈이지. 그러니까 녀석은 지금 더 화가 났을 거야. 인왕도로 몇 명의 백작을 더 보내고, 몇 만을 더 보내서 어떤 식으로 전쟁을 꾸며야 하는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니까 투란, 선수필승이란 말 들어 봤어?”
“예? 선수…… 먼저 때린 놈이 이긴다는 말이죠?”
투란은 문득 뇌리를 스쳐 가는 고무쇠 아저씨를 떠올리면서 떠오르려는 쓴웃음을 억누른 채로 대꾸해야 했다.
오러클 아저씨는 상대가 먼저 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네가 먼저 때렸으니, 다음은 내 차례!’라고 두들겨 팼지만,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인 아저씨는 험하게 말다툼하다가 손이 꿈틀거리면 ‘앗, 저거 뭐야!’라고 딴 데 보도록 유도한 다음에 먼저 후려치고는 했다.
그 고무쇠 아저씨가 자주 쓰던 말, 그것이 바로 선수필승이란 말을 아주 소박하고 저렴하지만 흉악하게 뒤튼 외침이었다.
“이 새끼야, 먼저 쑤신 놈이 배때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서 목을 조르는 거야!”
그 소리를 떠올리면서 투란이 나직하게 하던 말을 이어 묻는다.
“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때리려 한 셈이잖아요? 어쩌려고요?”
프릿이 쓰윽 볼을 붙이면서 멀리 보는 눈길을 한 채로 바로 투란의 목을 감은 팔뚝에 힘을 준 채로 대답한다.
“놈들은 예상하지 못해. 인왕도가 구원자와 함께 자신들의 본거지를, 그 황금의 피가 흐른다는 백금왕의 거처를 짓밟으러 간다는 것을 절대로 모르지!”
“네?”
주변을 둘러보면서 투란은 맹하니 멍청한 대꾸를 하고 말았다.
“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마. 춤추는 산맥에서처럼 말한다면, 범람에서 가득 찬 몬스터가 목숨을 위협하는 중이야. 피할 곳을 찾아 세상 끝까지 갈래? 아니면 빼앗긴 곳을 되찾기 위해 싸울래? 투란, 우리 상황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그러니까 내가 예견의 마녀까지 찾아갔던 것이고, 몰리고 몰린 열악한 이 상황을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너를 데리러 갔던 거야. 덤으로 우리 재상의 탈주도 막았지.”
강렬한 전쟁의 의지가 담긴 프린의 말은 투란을 살짝 질리게 했다.
하지만 그 말의 끝자락을 붙잡으며 투란도 물을 수 있었다.
“그 열악한 상황 때문에 에스탄 영감님이 도망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아무리 에스탄의 행적을 되짚어 봐도 겁먹고 달아나려던 사람의 낌새는 전혀 없었다. 그저 지겹고 귀찮고 벗어날 수 없는 곳에서, 인생 얼마 남지 않은 자기 아니더라도 누군가 할 일을 팽개치고 내뺄 궁리를 했던 노인의 모습만 되새겨질 뿐이었다.
프릿이 얼굴을 감추듯이 투란에게 볼을 붙이고 돌아보면서 눈을 마주친 채로, 빙긋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에스탄은 앞으로 한 백 년 동안은 인왕도가 그대로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음, 말하자면 에스탄이 모르는 사정이 따로 있었던 셈이지. 너도 에스탄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정의 한 부분이야. 어쨌든 우리를 도와줘, 투란. 우리에게는 정말로 구원자가 필요해. 봐, 다들 너를 보면서 희망을 품고 있잖아.”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투란은 프릿의 열의가 가득 담긴 끝말을 바로 부정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프릿에게 목이 감긴 투란을 보면서 다들 왠지 불쌍하게 되었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슬슬 멀어지고들 있었으니까!
이런 투란의 대꾸에 프릿이 살짝 상처 입었다는 시늉을 했다.
“프릿에게서 떨어져 봐. 그러면 다들 희망을 보는 눈으로 봐 줄 거야. 프릿이랑 그렇게 붙어 있으면…… 프릿이 다음 잠자리 상대를 정했다고 생각해서 저리들 불쌍하게 볼 수밖에 없어.”
몇 걸음 간격을 둔 채로 다가온 셀리아가 이리 말하고 있었다.
“네? 뭔 상대요?”
투란이 황당해서 프릿에게서 얼굴을 떼어 내며 되물으니, 셀리아가 키득거리면서 프릿을 놀리듯이 말한다.
“그러게, 작작 좀 피를 빨았어야지. 본능을 다스리는 훈련 해 준다면서 잠자리로 불러서 그동안 한 짓이…….”
“제대로 단련해 줬거든! 쳇, 뱀파이어의 능력을 다루려면 거쳐야 할 일에 대해서 친절하고 상냥하게 나를 희생시키며 가르쳐 줬는데! 다들 너무하잖아!”
프릿이 셀리아의 말을 자르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채로 으르렁거렸다.
그사이에 느슨해진 팔뚝에서 투란이 재빨리 빠져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훑어보니, 가까이 있던 이들이 너털웃음과 함께 몇 마디씩 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뭔 소리인가 투란에게 와 닿지는 않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셀리아의 말이 맞다!
프릿은 몬스터 로드의 기량을 높여 주는 단련을 해 주지만, 그게 대부분 뱀파이어의 능력을 몸으로 겪으며 괴롭혀지는 일이란 것!
그리고 그런 짓을 할 때, 방금 전 투란에게 했던 것처럼 친절하고 상냥하게 다가와 어깨를 감싸 주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
투란이 이런 상황을 느끼며 슬그머니 프릿을 노려보았다.
“투란, 너 정도 되는 몬스터 로드라면 황금혈의 백금왕을 노리러 가야지. 그래야 내가 뱀파이어의 특성과 능력에 대해서 단, 련, 해 줄 수 있다고.”
왠지 놀리는 낌새를 가득 담아 말하고 있잖나!
―장난치는 것 같지만, 장난이라 할 수가 없군. 우자트란 미끼가 심어진 이상, 투란 어쩔 수 없이 백금왕이란 뱀파이어와는 결판을 내야 할 모양이다.
드라고니아가 냉정을 되찾아 주겠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도 한숨을 내쉬면서 프릿과 셀리아가 꾸며 내는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