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2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16)
Chapter 204. 언더섀도우, 백금성
반나절, 어쩌면 하루가 지났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이 헷갈리는 까닭이 언더섀도우의 짙은 어둠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의 흐름이 왜곡된다는 환경의 특이성 때문인지 투란은 알 수 없었다. 딱히 알아내겠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그럴 만큼 한가한 하루 혹은 반나절도 아니었다.
프릿이, 인왕도의 진군(進軍)이 투란이 무슨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가볍게 농담하듯이 반격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쩌자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투란이 갸웃거릴 때, 프릿과 셀리아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함께 온 바루하나 오지 않은 에스탄조차도 그 움직임에 한 갈래가 된 채였다.
그 결과를 투란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인왕도의 성벽에서 내려와 바빴던 이들…… 투란이 전부 몬스터 로드라고 확신하는 수천 명이 순식간에 수비대에서 공격대로 바뀌었고 열심히 긁어모았던 뱀파이어의 피와 장비, 심지어 투란이 쏘아 냈던 독 포자의 분말까지 재주 좋게 챙겨서 바로 황금의 피를 지녔다는 백금왕의 본거지를 향해 진격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투란은 뭔가 그 이름부터 ‘아닌 것 같은데?’라고 슬그머니 시비 걸고 싶은 백금왕…… 뱀파이어의 왕이라고 생각되는 이름을 지닌 자가 산다는 성, 백금성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와 있었다.
‘눈 감았다 뜨니 도착했다……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데?’
그 감상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지만 투란은 넋두리처럼 떠올렸다.
―어림없는 소리로구먼. 오는 동안 두루두루 잘 지켜봐 놓고 그런 말이 나오냐?
‘입으로 아무 말 안 했거든?’
―그게 변명이냐?
툴툴거린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핀잔했다.
이에 대해 툭탁거리면서 싸울 틈도 투란에게는 없었다.
백금성이란 이름 그대로인 백금의 성채를 두른 도시.
그 백금의 도시를 굽어보는 봉우리, 거대한 바늘처럼 돋아나 있지만 주변에 그런 봉우리가 가득 치솟아서 백금성을 보호하는 울타리라도 된 듯한 지형의 한 곳.
그곳에 수천 명이 벌레처럼 기어올라 와 있었다.
그 선두를 이끄는 프릿은 바로 투란 곁에 있었으니, 딴생각을 오래 할 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드라고니아에게 툴툴거릴 수 있는 순간은 잠깐 사이에 지나쳤고 프릿의 신중한 목소리가 바로 투란의 귓가에 꽂혀 들며 무겁게 파고드는 중이었다.
“플래티넘 시티, 그렇게도 부르지. 몇십만이 저 안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고 그중에서 피 주머니 노릇, 열매 노릇을 하는 인간이 몇이고 피 빨고 열매를 핥아 대는 뱀파이어가 몇인가도 전혀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지. 저 중심,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높이 솟아 있는 첨탑의 궁전 보이지? 주변에 여섯 탑이 시종처럼 둘러싸고 섬기는 것 같은 모양 중심 말이야. 여기서 보면 뾰족하지만 저거 굉장히 굵어. 안에 들어가면 어지간한 대저택이 통째로 담겨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응? 그래, 혼자 황금빛 얼룩을 묻힌 것 같은 그 탑이야. 거기가 바로 백금왕이 머무는 곳이야. 당연히 그 주변의 여섯 탑은 백금왕의 친위대가 머물지. 탑의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계단만이 아니라 공중에서 날아드는 적에 대해서도 호위하는 놈들이야. 백금왕에게 도달하려면 그놈들을 차례대로 물리치고 오란 환경을 만든 셈이야. 하지만 그건 투란 네가 할 일이 아니야. 투란, 너는 백금왕만 상대하면 돼.”
강한 말투,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기괴한 신뢰가 담긴 소리에 투란은 흘깃 프릿을 바라봤다.
프릿도 투란을 마주 봤고, 웃었다.
너무 자신만만한 그 웃음에 투란이 불쑥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예지?”
“예견해 주기는 했지. 하지만 투란, 너는 이미 구원자로서의 자격을 증명했어. 고집쟁이 바위 요정족 바루하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독 포자를 선물했고, 그 어떤 뱀파이어의 혈족이라도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늑대의 형상까지 지녔으니까. 그리고…… 백금성의 가장 중요한 열쇠인 우자트까지 다루고 있잖아. 괜찮아, 투란. 넌 해낼 수 있어. 내가 보증하지!”
“그렇다 치고, 저길 대체 어떻게 들어가란 말이죠? 위에 창 구멍도 없어 보이잖아요?”
포기한 듯이 투란이 조금 실질적인 부분을 짚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탓에 아래로 뚫린 창문이 없어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 저 삐죽한 첨탑과 그 호위 탑에는 공중에서 들어갈 구멍이 없는가.
도대체 프릿은 왜 백금성을 내려다보는 이 봉우리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쳐들어갈 방법이 없어 보이는 이곳으로 진군하도록 했는가.
투란에게는 백금왕과 싸우네 마네 하기 전에 그 모든 부분이 모호하고 애매할 뿐이었다.
프릿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란의 의문이 당연하다는 듯, 인정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 대답은 머뭇거림도 의혹도 없이 곧바로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일단 저 위에 내려서면, 우자트가 문을 만들고 열어 줄 거야.”
“에? 예?”
한층 더 의문이 가득해져서 투란이 눈을 깜박였다.
멀리서 보고 있기는 하지만 딱히 우자트와 저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거울처럼 보이는 백금의 궁전 첨탑이 반응할 것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데?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셀리아의 목소리가 옆에서 치고 들어왔다.
“내려서면 본능적으로 되나 안 되나 알게 된다고 하는데, 안 된다 싶으면 이걸로 뚫고 들어가면 되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 백금왕은 분명히 저 안에 있으니까.”
말과 함께 내밀어지는 것을 투란은 엉겁결에 받아 쥐었다.
누렇게 포장된 묘한 것은 주먹만 한데, 투란의 손에 쥐어진 채로 꿈틀거리며 툭툭거리는 둔한 고동을 맥박처럼 흘려 내는 중이었다. 그 꼴이 그냥 봐도 뭔가의 심장 같아서 불길하니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라바 비스트의 심장. 마석을 심고 포장해 놓은 거야. 거기 작은 꼭지 달린 것을 떼고 붙여 놓으면 금방 터져. 백금 궁전이 아무리 단단해도 큰 구멍을 내 줄 거야. 아, 터질 때 옆으로 비켜서 있어. 휘말리지 않게 말이야.”
셀리아는 투란의 입술이 달싹이는 듯하자마자 바로 말해 주고 있었다.
프릿이 투란의 손에 쥐어진 심장, 폭발물을 흘깃하고는 투란의 불길함을 덜어 내 주겠다는 듯이 말한다.
“걱정 마, 그거 쓸 일 없을 거야. 꼭지만 안 떼면 절대로 안 터지니까, 갖고 다니다 터질 걱정 안 해도 돼. 자, 그러면…… 모두 준비되었지?”
마지막에 돌아보면서 자신이 이끌고 온 인왕도의 군단, 전사들을 향해 묻는 듯이 확인하고도 있었다.
줄줄이 늘어선 듯하면서도 봉우리를 빼꼼히 점령하고 주변을 경계하던 이들의 고개가 일제히 까닥거리고 있었다.
가까운 앞에서 먼 저 끝까지…….
투란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이상해 보이는 장비와 무장이 한가득했다.
프릿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쾌속한 진군을 해 버린 탓에 투란이 제대로 구경하며 묻지도 못했던 것들이기도 했다. 틈을 봐서 물어봤다 해도 아마 나중에 설명해 준다고 해 버렸을 듯하기도 했기에 차마 묻지도 못했지만.
프릿이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투지가 담긴 강렬한 눈빛을 번뜩이며 투란에게 전투 전의 마지막이란 듯이 말한다.
“투란, 우리가 뛰어내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바루하가 알려 줄 때 바로 백금왕의 궁전 탑으로 쳐들어가면 돼.”
살짝 비뚤어진 기분이 되어 투란이 불쑥 묻는다.
“여기서 저기까지 어떻게 가는지는 안 가르쳐 줘요?”
저쪽을 향해 막 뛰쳐나갈 듯했다가 잠깐 멈칫한 프릿이 투란을 돌아보며 빙긋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용의 날개, 마녀는 너에게 어떤 뱀파이어도 흉내 낼 수 없는 바람을 품은 날개가 있다고 말해 줬지. 이 계획도 함께 검토해 줬고. 그러니 투란, 믿고 맡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프릿의 몸은 공중을 가르고 있었다.
그 광경에 투란이 무슨 말 한마디를 하기 전에 옆을 스쳐 가면서 공중에 투신하는 인왕도의 전사들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언데드 헌터라 부르는, 투란에게는 명백하게 그 마력의 여운이 몬스터 로드라고 알려 주는 삼천 가까운 군단이 백금의 도시를 향해 뛰어내리고 있었다.
‘어쩌자는 거냐고!’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투란은 우선 이 집단 투신의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프릿부터 차례대로 드러내는 모습이 그 의문을 바로 풀어 줬으니…….
펄럭, 파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다들 백금 광채를 머금은 날개를 펼치고들 있잖은가!
새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박쥐는 될 듯한 모습이었다.
“어?”
한데 그 날개는 몸의 형상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몸에 걸친 옷감이 변형해서 박쥐의 날개 모양을 만들어 냈고, 그 날개가 활강을 맡아 주고 있었다.
“많이 모자랐다만, 네 덕분에 모두 백은 혈족이 자랑하는 무장을 갖출 수 있었지. 뭐, 전리품을 이렇게 바로 써먹으려고 힘들기는 했다만…….”
어버버 하며 입술을 벙긋거리는 투란 곁으로, 프릿이 비운 자리를 채우듯이 다가온 바루하가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셀리아가 바루하를 확인하면서 몸을 내던지며 투란에게 소리친다.
“정말 저기까지 못 갈 것 같으면 바루하에게 던져 달라고 해. 그리고 내가 준 심장을 써! 걱정하지 마, 프릿이 해낼 수 있다고 말했잖아.”
“에? 저기요! 셀리아!”
투란이 뒤늦게 항의하듯이 불렀다.
하지만 셀리아는 이미 저 멀리 하강하는 프릿의 곁으로 쏘아진 다음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도대체 왜 자신이 할 일에 대해서 프릿이 보증하는가에 대해 따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곁에서는 바루하가 보채고 있었다.
“투란, 준비해. 금방이다.”
스쳐 가는 인왕도의 군단이 어느 틈엔가 절반이 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투란을 흘깃하면서 의아해하기도 했고, 싱긋 웃어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간에 이 기습이 성공한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기회가 없으니 무조건 저지르는 중일까?
투란은 알 수 없었다.
바루하가 잠깐 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찌푸린 투란의 표정을 보더니, 바로 팡 소리 나게 투란의 등짝을 두드리며 외친다.
“가라!”
“왜 밀어요오옷!”
그냥 친 것이 아니고 냅다 궁전 탑 쪽으로 내던지듯이 힘껏 밀어친 것이기에 투란은 으르렁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중에서 허우적거리거나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려 몸부림치는 꼴은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허공에서 자세를 잡으면서 나름대로 궁전 쪽을 향해 활강하는 방향을 잡아 보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프릿이 짚었던 것처럼 날개를 펼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투란은 손발을 저으면서 공중에서 헤엄치는 시늉을 하며 활강의 방향을 조절하고 있었다.
―뭔 꼴사나운 짓이냐? 그냥 마법을 써라!
드라고니아가 질렸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쓸 거야, 잠시만.’
투란은 팔다리처럼 엉성하지 않게 재빨리 눈동자를 굴렸고, 프릿과 인왕도의 군단 전사들이 뭘 하는가를 살폈다.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제멋대로 방향을 잡은 그들이 노리는 곳은 호위 탑이었다. 투란이 도달하기 전에 그 옆구리를 뚫어 재끼면서 난리를 치고 소동을 일으키려는 모습이었고 그 목적은 분명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 네가 시간을 오래 끌수록 많이 죽을 거야.
조금 전과 사뭇 다르게, 드라고니아가 냉혹한 말을 하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겠네.’
씁쓸해하면서도 투란은 마음속으로 에어로를 불렀고, 팔다리를 휘감으며 움직임에 맞춰 자신을 쏘아 내게 했다. 바람의 정령수가 일으킨 가속으로 인해 번개 같은 화살처럼 투란이 날아가니, 그 헤엄치는 꼴이 더욱 이상하고 수상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프릿과 그 군단이 본격적으로 전투를 개시하는 소음이 시작될 무렵에는 바로 백금왕의 거처, 백금 궁전의 첩탑 위에 내려설 수 있었다.
발을 디디면서 뭉클거리는 시커먼 잉크로 물들여 바로 백금 광채의 표면에 접착하면서 투란은 곧바로 두 눈구멍 모두 우자트로 채워 넣었다. 그 순간, 공명하는 두 눈알을 통해 프릿의 말이 무슨 뜻이었나 투란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우자트의 눈빛에 호응한 백금 광채가 출렁이면서 지붕이 걸쭉하게 유동하더니, 아래를 향해 훤히 뚫린 구멍을 불쑥 드러내 준 것이다.
―설마 이 궁전, 그 옷감이랑 마찬가지였나?
드라고니아가 나직하게 경악을 드러냈다.
인왕도를 덮쳐 왔던 뱀파이어 군세, 그들의 장비가 바로 이렇게 유동하면서 멋대로 변형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거대한 성채의 도시를 모두 이런 것으로 채웠을 줄은 상상 못 하는 것이 당연하잖나.
투란은 생각하는 대신에 그대로 구멍 속으로 뛰어내렸다.
비스듬히 열린 구멍은 곧바로 투란을 삼키면서 다시 유동하며 닫혀 들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사라진다는 것처럼.
그리고 구멍을 통과해 몇십 미터를 미끄러져 내려간 투란은 백금왕이 옥좌에 앉은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과 시뻘건 눈동자를 지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