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20)
보물은 누가 차지할 것인가?
걸러 내기가 문제가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몬스터의 정수를 길들인다 해도 누가 그것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그 걸러 내는 과정이 얌전히 넘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정수를 간직한 사이에 그 본능을 드러낼 경우, 걸러 내기를 위해 함께 있던 상대는 몬스터의 포악함을 고스란히 겪게 되니까. 한데 그렇게 걸러 내는 과정에서 정수를 완전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한쪽이 일방적으로 소유해 버리면 다시 돌려받을 방법은 전혀 없다!
때문에 걸러 내기는 서로에 대한 신뢰뿐 아니라 서로의 능력에 대한 확인까지도 필수적인 비전이었다. 그저 안다고 마구 행할 수도 없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온전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가를 전혀 알 수 없는…….
“프릿, 이거 꼭 필요한 일이에요?”
너무나 갑작스럽게 확신을 품고 일을 저지르는 프릿을 향해, 가슴 가까이 붙은 그 손가락 끝의 핏방울을 향해 손을 내밀면서 투란이 묻고 있었다.
프릿이 한결 짙은 웃음을 머금었다.
걱정하는 말이기는 했으나 행동은 아무런 근심도 없는 투란이었으니까.
“필요해.”
간결한 대답을 하면서 프릿은 핏방울이 걸린 손가락을 투란의 손바닥에 찌르듯이 닿게 했다.
핏방울이 옮겨졌다.
투란은 핏방울이 맺히고 얽힌 듯한 손바닥을 가슴으로 붙이듯이 움직였다.
앞섶을 비집고 들어가듯이 손바닥이 맨살에 닿는 시늉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프릿이 불쑥 묻는다.
“백금성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은?”
투란이 뱀파이어, 백금왕의 정수를 느꼈다 싶은 순간이었다.
무슨 말인가 투란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뇌리에 불쑥 새겨지듯 튀어나온 대답이 있었다.
“호르트의 유해.”
“유해.”
프릿이 투란과 동시에 말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투란이 ‘엥?’ 하며 눈을 깜박이니 프릿이 크게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걸러 내기 더할 필요 없는 것 같네?”
투란은 입술을 삐죽거리고 말없이 가슴에서 다시 손을 떼어 내어 프릿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더욱 짙은 진홍색을 띤 핏방울이 빙글거리는 무늬를 머금은 채로 투란의 손가락 끝에 걸려 있었다.
“잘 모르겠거든요? 일단 확인해 봐요.”
“그래, 뱀파이어의 피는 나눠 가질 수도 있으니까.”
프릿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었지만 신중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투란이 내미는 핏방울을 손바닥으로 옮겨 받았다. 그리고 금방 프릿은 한층 더 흥미롭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고, 이어 말했다.
“바로크의 병신들이 크게 의지하는 비전이잖아? 보이드, 맞지?”
“그게 느껴져요?”
투란이 신기해서 프릿을 훑어보며 되물었다.
프릿은 무슨 진귀한 짐승 구경하듯 자신을 보는 투란이 난감한 듯, 조금 색다른 웃음기를 머금고 대답한다.
“고유 마력 속에 그 공허(空虛)의 냄새가 담겨 있으니까. 걸러 내기를 자주 하다 보면 상대방의 개성도 맛볼 수 있게 되거든. 좋아, 이 정도면 백금왕의 사념은 너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기억일 뿐이라고 확인했다. 너는 왕의 피를 가질 자격이 있어, 투란.”
“프릿은 대체 몇 가지 생각을 한꺼번에 하는 거예요? 뭘 나에게 전하려 한 거죠?”
가만히 듣던 투란은 한 걸음 물러서는 프릿을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건네받았다가 돌려준 뱀파이어의 정수, 하지만 투란은 그 일부를 아주 작게 썰어 내듯이 도려내서 간직했다. 보이드로 절단해서 감싸 놨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해 한 짓이었다. 한데 프릿에게 건네고 남은 정수의 일부 속에서 수많은 재잘거림이 느릿하게 시작되더니, 아주 시끄럽게 번지며 퍼져 나오고 있었잖은가.
마치 수많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떠드는 듯했고, 그 목소리마다 명백한 개성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 목소리가 하도 많아서 재잘거림은 시끄러웠고 자신도 모르게 닥치게 하고 싶은 의지가 무럭무럭 솟구치는 기분이라니!
프릿이 구겨지는 투란의 표정을 보면서 또 다른 웃음을 띠었다. 이번에는 개구쟁이가 자신의 장난이 성공했을 때의 즐거움이 담뿍 담긴 듯한 웃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 아래에서 나오는 말은 꽤 진지했다.
“흐흠? 나의 재잘거리는 심상을 맛본 거야? 하핫, 잘했어! 그 재잘거림을 들으면 너무 시끄러워서 닥치게 하고 싶은 충동이 펑펑 치솟지! 그러다 보면 절대로 뭐가 재잘거리든가 말든가 노려보게 되고, 그 본능에 휘둘리지 않게 되는 거야. 뭐, 나만의 비전이라면 비전이지. 그게 내가 길들이는 방식이니까. 적당히 써먹을 수 있을 거야, 너라면 말이지.”
분명히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마다 다른 방식으로 쌓아 올리는 심상, 상급 몬스터 로드라면 반드시 지니게 되는 그 심상을 프릿은 꽤 색다른 방식으로 구축(構築)해 낸 것이다. 하나하나 그 본능을 느끼고 억누르는 대신에 몽땅 저 멀리서 떠들게 한다는…… 투란이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방식의 심상을!
―진짜 이상한 황제 폐하로구먼.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기분에 동감하듯이 중얼거렸다.
프릿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호르트의 유해, 문을 열 수 있어?”
한층 더 진지하게, 이제는 웃음도 흐릿하게 지우면서 묻고 있었다.
투란도 그 진지함에 공감하듯, 조금 전까지 삐딱하게 치솟던 기분을 정리하면서 신중하게 대답해야 했다.
“굉장히 위험한 것 아니에요?”
“백금성을 인왕도로 만들려면 필요하지. 그리고…… 다른 혈족이 우리가 점령한 백금성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려면 피할 수 없잖아? 알 수 있지, 투란?”
프릿이 가만히 건네는 눈빛에 투란은 다시 백금왕의 기억을 품으면서, 그 사고방식을 흉내 내듯이 대답해야 했다.
“선라이트…… 호르트가 지닌 창공의 눈은 낮에는 해님이고 밤에는 달님이니까…… 하지만 언더섀도우에서는 뭐가 될지 모르잖아요?”
“백금왕으로서는 두려워할 일이었겠지. 하지만 우리가 피할 일은 아니지! 후훗.”
프릿은 명쾌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유쾌함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호르트, 투란이 공물이라고 받았던 우자트의 원래 주인이며 고대부터 전승되는 수많은 신화 중 하나를 차지하는 신의 이름이었다. 그 두 눈이 해와 달이라고 일컬어지는 하늘의 신이었고 뱀파이어인 백금왕이 물려받았다는 황금의 혈통이 바로 호르트의 축복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 이 백금성과 백은의 혈족이라는 뱀파이어에게 전해진 기괴한 도구…… 투란이 아는 연금술이나 마법과는 상당히 다른 계통의 문명과 기술이었다.
그 지식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 선라이트 서클, 어떤 어둠도 꿰뚫어 내는 햇살을 뿜어내는 빛의 원을 그리는 비술이었다. 햇살을 두려워하는 존재라면 감히 손댈 수 없는 비전의 지식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비술이 감춰진 곳이 뱀파이어 열두 혈족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백금성이란 것이 꽤 어이없기는 하지만.
“백은의 혈족은 몰살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요.”
투란은 백금왕이 품었던 근심을 중얼거렸다.
프릿이 유쾌하게 이에 대꾸한다.
“죄업을 쌓아 온 뱀파이어인 백금왕이야 그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우리는 아니잖아? 게다가…… 투란, 백금성을 당장 장악하려면 필요한 일이야. 이상한 명령 때문에 간신히 싸움이 멈춰진 것뿐이고, 언제라도 우리 쪽이 몰살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프릿이라면 혼자 다 쳐 죽일 수도 있어 보였는데.”
투란이 조금 흘겨보는 눈짓을 하면서 속삭이는 시늉을 했다.
시늉만 했지 전혀 작은 목소리가 아니라서 프릿은 못 들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프릿도 그냥 웃어넘길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리는 대꾸를 바로 한다.
“야, 내가 무슨 드래곤 블러드라도 처마셨는 줄 알아? 무리야, 그런 짓은!”
―드래곤 블러드? 뭔 소리야?
투란보다 먼저 드르고니아가 움찔했다.
“드래곤 블러드? 그런 것이 있어요?”
프릿이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다.
“나중에. 먼저 호르트의 유해부터. 선라이트 서클부터.”
―있는가 본데! 정말로 용의 피가 이 언더섀도우에 있단 말이냐! 이럴 수가!
프릿의 말투에 드라고니아가 경악해서 외쳤다.
투란은 그 시끄러움에 눈가를 실룩였지만 곧 우자트를 눈으로 삼으면서 백금성의 구조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사아아…….
거대한 바람이 백금의 도시를 휘감았고, 높이 솟구쳐 있던 백금왕의 거처가 지면을 향해 쏟아져 내리듯이 가라앉았다. 주변을 지키듯이 우뚝 서 있던 호위의 첨탑들이 지켜야 할 탑을 향해 구부리듯이 휘어지며 기울어졌다.
격렬하면서도 거대한 그 변화에 백금의 도시 곳곳에서 놀라는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반응이 그 분위기와 함께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갔다.
변화와 함께 완전히 봉쇄된 백금왕의 거처였기에 그 상황을 전혀 모르는 채로 프릿과 투란은 백금성 지하의 비밀스러운 곳이 문을 여는 광경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둘 앞에서 옥좌였던 부분이 갈라지고, 무엇인가를 바쳐 올리는 제단처럼 생긴 형상이 드러났으며 그 뒤로 거대한 황금의 매가 사람의 몸뚱이를 한 채로 백금을 바탕으로 황금 깃이 새겨진 모양의 날개를 펼친 모양의 신상(神像)이 나타났다.
투란은 그 신상의 눈구멍이 비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그것을 보는 것이 너무 당연하며, 가장 먼저 확인할 일이었다고 눈동자가 저절로 움직인 듯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투란은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바탕이 되는 본능이 있었네?’
저절로 눈길을 움직인 눈동자가 우자트였으니, 몬스터 로드에게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투란이 오래 생각하고 감상하며 검토할 틈은 없었다.
먼저 프릿이 빠르게 투란의 귓가에 외침을 꽂아 넣었다.
“햇빛을 가득 채워 줘! 인왕도에서 바로 언더섀도우를 꿰뚫고 볼 수 있도록, 환하게 백금의 등불을 밝히는 거야!”
보채는 듯했지만 강렬한 갈망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투란으로서는 우자트를 눈구멍에 박아 넣고 사용하는 까닭이나 다름없었으니 딱히 나중으로 미룰 일도, 거절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프릿의 요청을 바로 들어줄 수가 없었다.
신상의 머리, 사람의 목 위로 매의 머리통이 달린 그 신상의 부리 달린 입이 열리면서 묻는 말을 터뜨려서 프릿의 외침을 훅 날려 보냈으니까.
“생명을 나누는 축복을 생명을 갈취하는 저주로 활용하는 자여. 진정 심판의 광휘를 풀어놓으려 하는가? 그리하면 저주받은 그대들의 생명은 단죄의 불길 속에 재가 되어 으스러질 터인데?”
“누구세요?”
맹하니 투란이 되묻는 소리가 살짝 공허하게 울렸다.
신상의 비어 버린 눈구멍이 투란을 쏘아보는 듯했다.
머리가 움직여서 비어 있지 않았다면 분명히 투란을 노려봤을 것이란 점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였다.
프릿이 한 박자 늦게, 투란에게 했던 말은 싹 잊은 듯이 조금 큰 목소리로 외친다.
“호르트? 고대의 세계를 거닐던 옛 신? 당신 맞아요?”
―뭔 미친…… 설마? 그럴 리가…….
드라고니아가 프릿을 미친놈 취급하려다가 신상이 흘려 내는 거대한 힘을 알아차린 듯 당황해하고 있었다.
투란도 그 당혹스러움을 입으로 토해 내듯, 프릿의 말에 한층 더 혼란스러움을 더하듯이 중얼거린다.
“호르트의 유해라고 했는데, 호르트가 튀어나와? 아니, 신전에서 섬기는 신이니까…… 신이란 분이 뱀파이어의 성 깊은 곳에서…… 프릿, 옛 신이면 지금은 없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뒤죽박죽이었고 자신도 뭔 이야기를 하는가 확신할 수 없는 소리였다.
프릿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뭔가 굉장히 성난 표정으로 프릿의 눈길이 신상을 꿰뚫을 듯한데, 신상의 부리가 다시 달칵거리면서 말이 흘러나온다.
“근원을 이 세상에 두지 않는 자, 이계의 부름에 호응한 신의 파편이 이 세상과 조율하여 그 의지의 일부를 남겨 이뤄진 화신(化身), 그 화신이 수명을 다해 남긴 잔해가 바로 이 몸이니라. 그대들은…… 심연을 품고 저주를 담은 자들이로구나. 긴 세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던 이들도, 그 후예도 아니었어. 너희는 무엇을 원하느냐?”
신상의 물음에는 반드시 대답하란 듯한 묘한 압박이 담겨 있었다.
설혹 없다 해도 저절로 그런 압박감이 가슴을 억누르는 듯했다.
투란이 슬그머니 프릿 곁으로 붙으면서 속삭인다.
“아까랑 말이 달라졌는데요?”
“눈이 없어서 처음에는 착각했나 보지. 죽은 다음에 남겨진 잔해이고 오랫동안 감금된 채였다잖아.”
프릿은 이 상황을 투란과 전혀 다르게 바라보며 해석한 듯한 대답을 했다.
투란이 슬그머니 눈을 깜박이면서 비어 있는 신상의 눈구멍으로 저절로 움직이는 우자트를 억제하려 하면서 다시 프릿에게 나직하게 속삭인다.
“선라이트 서클, 저 신인지 화신인지 파편인지 잔해인지 하는…… 황금인지 백금인지로 된 분이 허락해야 하는 것 같은데요?”
“젠장.”
프릿이 한숨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