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3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22)
―지금 말한 창공의 눈은…… 우자트가 아닌 모양인데?
드라고니아는 열심히 신상의 말을 해석하려 하고 있었다.
투란이 보기에는 쓸모없는 짓이었다.
창공의 눈, 분명히 우자트를 말함이었잖은가.
그 우자트를 눈구멍 속에 확실히 채워 넣고 신상의 텅 빈 눈구멍을 열심히 노려보면서 백금성, 백금의 도시를 제어할 방법을 탐색하고 선라이트 서클을 발동시킬 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니 투란은 창공의 눈을 부릅뜨고 부라리고 있었던 셈이다.
한데 감고 있다니…….
신상이 부리를 달칵거리면서 투란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채 말한다.
“그대는 우자트를 갖기 이전에 이미 창공의 눈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감은 채로 뜬 적이 없었지. 그 창공의 눈은 우자트와 다르다. 백금의 눈과도 다르지. 그것은…… 고대의 자취를 간직한 금색, 그 마법의 힘과 함께 그대가 품고 있다. 호르트의 두상(頭相)을 지닌 심연의 봉인으로서…….”
투란은 다시 알아듣게 해 달라고 칭얼거리려다가 멈칫했다.
신상, 호르트의 유해가 내민 손끝을 따라보니 백금 손가락과 황금의 손톱, 그 백금 바탕의 손등과 손바닥으로 번져 가는 황금의 무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 무늬가 일렁이며 피워 내는 금빛의 마력이 느껴진 탓이었다.
프릿도 이를 느꼈는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그건…… 뭐요? 고대의 마력인가?”
듣는 순간 투란은 퍼득 깨달았다.
금빛, 저 금색의 마력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깨달음은 투란의 마음을 흔들었고, ‘천칭’의 풍경 속에 꾸벅꾸벅 졸듯이 웅크리고 있든 황금매를 움직였다. 다른 때라면 황금매를 가슴에 품으며 문장을 바꾸었겠지만, 지금 투란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움직이는 황금매를 억누르며 시침떼려 했는데…….
“눈을 떠라, 고대의 인연을 잇는 자여.”
신상의 부리가 활짝 열리면서 강렬한 몇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 손끝도 정확하게 투란의 가슴, ‘천칭’이 형태를 드러내면 자리 잡았을 곳을 콕 찌르고 있었다.
‘어? 으아아!’
투란은 ‘천칭’의 풍경 속에서 황금매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몬스터 에센스가 스며 오는 것을 멀뚱거리면서 지켜볼 자리에서, 횃대에 앉은 닭처럼 꾸벅거리고 있는 모습을 벗어던지고 처음 ‘천칭’ 속에 자리 잡기 위해 날았던 것처럼 날고 있었다.
그 광경을 통해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펜릴……?’
늑대의 문장이 몬스터의 형상이 아닌 문장 자신만의 특성을 지녔던 것처럼 황금매 역시 자신만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금색의 마도사가 이리저리 보태고 변화시킨 탓에 갖춘 특성이 아니었다. 황금매의 문장이 원형으로 삼았던 매의 문장, 그 몬스터 엠블럼이 갖춘 특성이었고 깨어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야 했고 필요한 조건을 획득해야 했다.
하지만 황금매로 변화되면서 그 특성은 잠들어야 했다.
마법의 토대가 되는 마력을 발산시키려면 매의 문장이 본래부터 지녔던 특성이 방해가 되었으니까. 몬스터 엠블럼이라면 당연히 그 바탕으로 지녔어야 할 ‘심연의 각인’이 제거되면서 함께 사라졌다 할 수도 있었다.
투란이 ‘천칭’으로 황금매를 삼켜서 다시 ‘심연의 각인’을 부여했지만, 황금매는 변화된 특성을 드러냈으면서도 매의 문장이 갖췄던 특성은 드러내지 못했다.
딱히 아쉬운 일은 아니었다.
황금매는 독자적으로 몬스터 로드에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줬으니까.
투란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변으로 여겨졌잖던가.
한데 지금 신상, 호르트의 유해가 황금매의 원형인 매의 문장이 지닌 특성을 자극해서 깨워 내고 있었다. 심지어 금색의 마력조차 ‘천칭’ 속에서 흘러나와 투란의 온몸에 퍼지게 하고 있었다.
그 느낌은 마치 황금매를 몬스터의 정수처럼 투란이 다룰 수 있는 듯했다.
잠들어 있던 매의 문장, 그 특성이 바로 투란의 눈동자를 통해 드러나는 듯했다.
늑대의 문장이 몬스터의 형상이 아니라 문장 자체만으로 기괴한 형상을 드러냈던 것처럼…….
“훌륭한 하늘이로구나.”
부리가 토해 내는 칭찬이 투란을 흠칫하게 했다.
무엇을 칭찬했는가를 본능적으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곁에서 프릿은 ‘하늘?’이라며 갸웃거리며 되뇌었지만.
투란은 다시 신상을 바라봤다.
이 순간은 마치 황금매의 투구를 쓰고, 그 눈구멍을 통해 부릅뜬 눈으로 건너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제대로 보는 방법이란 것을 투란은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창공의 눈!’
황금매의 문장, 그 풍경 속에서 천장에 훤히 열린 형상이었던 하늘빛 허공…… 그 허공이 눈이 되어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서 있는 주변을 단숨에 마음속에 담고 둘러보는 기묘한 시각…… 자신까지 포함하는 풍경을 곧바로 간파해 내는 놀라운 시야…….
그 속에 우자트가 돌연 끼어들었다.
창공의 눈에 우자트가 겹쳐지는 순간, 투란은 신상의 텅 빈 눈구멍 속에서 파랗게 피어나는 광채를 볼 수 있었다. 그 깊은 곳까지 온통 파랗고 너무 맑고 밝은 하늘빛으로 느껴지는 광채였다.
“그대는 살릴 수 있다, 그대는 죽일 수도 있지. 축복을 돌이킬 수 있고, 저주로서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지.”
하늘빛 눈으로 투란을 바라보며 신상이 말하고 있었다.
프릿이 곁에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 순간은 끼어들지 않겠다는 듯이 그냥 지켜만 봤다. 그래서 투란은 물어야 했다.
“그 축복…… 대체 뭐였는데요? 알기 쉽게 좀 이야기해 줘요.”
신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의 머리가 끄덕여지면서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주변의 백금 구조물이 변화했다.
곧 투란, 프릿은 신상과 함께 커다란 알 속에 놓인 듯했다.
알의 껍데기 안쪽만 바라봐야 하는 듯한 처지였는데, 그 껍질이 백금의 광채를 잃은 채 온갖 색채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림을 그려 냈다. 그 그림은 움직였고, 끔찍한 광경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비춰 주고 있었다.
“굶주림, 파멸이 인도한 혼돈이 가장 먼저 세상에 드리운 독이었다. 생명의 순환을 단절하는 것이었으니 모두가 공평하게 굶어 죽고 멸망해 가는 수밖에 없었지. 때문에 그 옛날 현자들은 신성한 지식을 원했고, 신의 파편들은 그 지식을 제공했다. 호르트가 제공한 지식은 햇살을 삼키고 생명을 공유하는 것, 서로의 피를 매개 삼아 여럿의 생명을 잇는 것이었다. 햇살을 통해 생명의 양식을 채우고, 그 양분을 피를 통해 건네며 정상적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생명의 자양분을 섭취하도록 서로 도울 수 있게 한 것이지.”
신상의 말과 함께 투란과 프릿은 알에 투영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란히 손목을 맞잡고 있었고, 그 잡은 손목은 피에 젖은 채였다.
그 피가 끊임없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흘러 옮겨지면서 피를 모두 잃은 자는 홀쭉해지며 뼈 위에 살가죽만 걸친 듯한 모습이 되었다가 다시 흐른 피를 옮겨 받으면서 탱탱하고 멀쩡한 모습이 되어 간다…… 이런 변화가 손목을 잡고 늘어선 이들에게서 거듭되는 중이었고, 그들 위로 둥실거리며 떠 있는 호르트의 유해…… 지금 눈앞에 선 신상과 똑같은 형체가 두 눈에서 하염없이 빛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마치 두 눈이 해가 되어 세상을 비추는 듯한 신상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하고 성스러워 보였다.
그 광경에 투란이 ‘축복?’이라고 되뇔 때, 프릿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상황에서…… 서로 피를 순환시키면서 죽음을 회피하게 했다? 그 피의 순환에 바탕이 되는 힘은 빛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중이신가?”
약간 삐딱한 말투였지만 신상은 조용히 매의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한 축복이었지. 하지만 세계의 이치를 뒤트는 것이기도 했다. 혼돈의 침탈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부여할 수도 없는 축복이었지. 때문에 축복을 받아들이는 자는 스스로 계율을 세우고 지켜야 했다. 호르트의 축복은 서로 나누고 보살피는 자를 위한 것이었으니…… 누군가 그 피의 중심이 되어 독점하려 해서는 아니 되었다.”
투란은 투영되는 광경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손목을 맞잡은 자들이 모두 말라비틀어지는 와중에 단 한 명만은 온몸에서 피 안개를 휘감고 팽팽하고 탱탱한 모습이었다. 그 피 안개는 주변을 휘저으며 더 많은 피를 쥐어짜 내 끌어당기니, 순환을 멈추고 한 사람에게만 집결되는 중이었다.
그 한 사람은 호르트의 신상 뒤에서 그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호르트의 신상이 돌아봤다.
그 눈에서 흘러나온 햇살이 그 피 안개에 닿는 순간, 피 안개가 발화(發火)했다.
피를 집결시켜 독점하던 자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햇살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으로, 밤의 깊은 곳으로, 어둠의 장막 속으로…….
“시대가 흘렀다. 축복을 저주로 바꾼 자들은 어둠 속에서 영원한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지. 축복을 유지하며 온전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그들의 꼬임에 넘어갔다. 그리고…… 호르트에게서 기원한 신성한 지식도 함께 넘어갔지. 그들은 어둠 속에 자신들의 성채를 지었고, 도시를 꾸몄으며…… 용의 시대를 맞이해서 호르트의 파편이 잠든 순간, 그 유해를 약탈해 어둠 속에 감췄다.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이 위협해 오면, 유해에서 다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잔꾀와 함께. 그리하여 나, 여기 이렇게 머물게 되었노라.”
신상의 부리가 말이 끝났다는 듯이 맞물렸다.
투란은 눈을 끔벅거리다가 슬그머니 프릿에게 입술을 달싹이며 나직한 소리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더섀도우 뱀파이어가 사실은 전부 신성한 축복을 받은 것이었단 얘기?”
프릿은 표정을 확 구겼고, 신상이 먼저 부리를 다시 열며 투란에게 답한다.
“아니다. 이 어둠 속에 머무는 뱀파이어는 호르트의 축복에서만 생겨나지 않았어. 그 일부는 혼돈의 파멸 속에서 태어났고, 잘못된 소환술의 결과인 경우도 있지. 그들은 모두…….”
“열두 가지 기원을 지닌 열두 파벌. 십이혈족이지.”
프릿이 신상의 말을 자르면서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투란은 살짝 맹한 표정으로 ‘열둘? 열두 가지 기원?’이라고 되뇌었다.
그 의문이 담긴 표정에 담하듯, 신상이 말을 잇는다.
“그렇다, 흡혈을 수단으로 하는 다양한 비술을 잇고 권능으로까지 삼는 수많은 신들과 악마들…… 그들이 혼돈으로 가득했던 이 세계의 고대를 찾아와 걸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지. 그리고 이 어두운 그림자가 머나먼 옛날의 유산을 이 시대에 이를 때까지 감싸고 지켜 준 것이다. 이 어둠이 아니었다면 세월의 파괴를 견뎌 내지 못했을 유산들이었는데…… 하지만 그 파괴에서 나 또한 어둠의 보호 속에서 이러한 형태로서 견뎌 낼 수 있었다. 때문에 기회를 얻었지. 축복을 저버린 가련한 아이들이 반성할 기회를 얻게 해 달라고, 그대에게…… 그대들에게 탄원할 기회를 말이야.”
투란은 자신만을 보며 말하던 신상이 불쑥 프릿을 돌아보며 살짝 말을 고친 것을 알아차렸다. 곁에서 잔뜩 성난 표정을 짓는 프릿은 이 이야기를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이었으니까.
‘우와, 신의 파편의 화신의 유해라면서 프릿 눈치를 보내!’
―야, 신의 화신의 파편의 유해라고! 뒤죽박죽으로 만들지 마!
드라고니아가 괜한 핀잔을 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그거나 저거나 하는 말이었고, 신상과 함께 프릿의 눈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상황일 뿐이었다.
과연 프릿은 뭐라 할 것인가?
잠시 신상과 투란이 침묵하자 뒤늦게 자기를 살피는 것을 알아차린 듯, 프릿은 한숨부터 쉬었다.
“좋은 의도란 것은 알겠는데…… 여태 다른 인간을 쪽쪽 빨아먹고 멸시하던 놈들에게 이제부터는 너희도 인간이니까, 함께 쪽쪽 빨아먹으면서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하거리며 웃고 지내란 말은…… 전혀 도움이 안 되거든요? 그놈들이 뱀파이어인 이상, 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마물인 이상 타협하고 화해할 수가…….”
“말했잖은가, 돌이킬 수 있다고. 그들이 품고 있는 저주를 거둘 수 있으니 권하는 일이다.”
신상이 불쑥 프릿의 말을 자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투란은 ‘응?’ 하며 어리둥절했고, 프릿은 끊어진 말을 바로 잇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허? 흡혈종으로 변이된 것을 복구할 수 있다고? 진짜 신의 지식을 전할 모양인데? 야, 정신 차리고! 다른 흡혈종에게도 가능한가 물어봐! 기원은 다르더라도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어. 성스러운 지식 속에 그런 비술이 있을 수도 있다고.
드라고니아는 지식에 대한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의 입에서는 아무런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투란은 가슴에서 치솟는 금빛의 마력, 황금매도 아닌 상태에서 신상에 호응해서 흘러나오는 금색의 마력과 새로 뜬 듯한 창공의 눈, 그 눈에 맺힌 우자트를 통해 보느라 바쁠 뿐이었다.
신상이 프릿의 말을 자르면서 한 말, 그와 함께 투란에게 새로운 영역을 드러내고 있는 탓이었다. 그 때문에 어리둥절했지만 이제는 그 영역을 둘러보느라 투란은 프릿의 눈치도 제대로 못 살폈는데…….
“뱀파이어를, 정말로, 다시, 인간으로, 되돌린다고, 그렇게 말한 거 맞나?”
격앙된 탓에 숨을 고르면서, 한마디마다 쉬면서 프릿이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