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3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23)
“그들은 최초의 배반자가 아니잖은가? 그러니 당연히 가능하다.”
신상의 대답은 프릿을,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최초의……?”
“배반자?”
무슨 말인가 되뇌면서 둘이 갸웃했다.
신상은 바로 부리를 달칵이며 말을 잇는다.
“호르트의 축복, 그 은총을 저주의 시작으로 바꿔 버린 배신의 흡혈을 시작한 자. 그자의 경우에는 징벌이 먼저이고, 그 자신이 먼저 뉘우쳐야 한다. 하지만 이 긴 세월, 그 많은 시간 동안 그런 적이 없으니까.”
“잠깐, 잠깐!”
프릿이 손을 젓고 머리를 흔들었다.
투란도 프릿에게 동의하듯, 실상은 프릿의 눈치를 보면서 되묻는다.
“뱀파이어라는 것이…… 반성하고 벌받으면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냐!
당장 드라고니아부터 투란의 말에 반발했고, 곁에서 프릿은 잠깐 미친놈 보듯이 투란을 흘겨봤다. 그리고 신상의 부리를 향해 프릿이 바로 묻는다.
“확실히 짚어 두자고, 지금 말하는 이야기…… 모든 뱀파이어에게 해당하는 말이야?”
“모든?”
매의 머리를 갸웃하며 신상이 프릿에게 빈 눈구멍을 돌렸다.
프릿이 바로 대꾸하며 하던 말을 잇는다.
“그래, 모든 뱀파이어! 이 언더섀도우에 퍼져 있는 십이혈족의 뱀파이어 모두 되돌릴 수 있는 거냐고, 인간으로!”
“그렇지 않다, 오로지 호르트의 축복에서 비롯된 저주를 뒤집어쓴 뱀파이어만이 내가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 기원이 다른 자들은 그들만의 사연에 따라 다른 이치가 적용된다.”
“다른 이치?”
“기원이 다른?”
프릿이 눈살을 찌푸렸고 투란이 되뇌었다.
신상이 물끄러미 프릿을 바라보는 시늉과 함께 말한다.
“프릿, 그대라면 알고 있잖은가? 십이혈족이란 열두 가지 기원으로 인해 나눠진 분류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긴 하지. 하지만 그 어느 혈족이든 뱀파이어로의 변이를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고. 정말 이 백은의 혈족, 황금의 혈통은 그런 것이 가능한 거 맞아?”
“선라이트 서클을 품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들이잖은가. 그들은 늘 그 가능성을 품고 있었지. 다만 아무도 알지 못한 채로, 그 지식을 봉인당한 채로 뱀파이어로를 불가피한 숙명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번의 기회를 갖도록 해 주고 싶다.”
신상의 말은 프릿을 움찔하게 했다.
“한 번의 기회?”
투란도 이를 되뇌듯이 웅얼거렸다.
“한 번이면…… 두 번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뜻? 아니면 한 번밖에 기회를 줄 수 없다는 뜻? 어느 쪽이란 말인지…….”
매의 머리를 돌리며 신상이 바로 답한다.
“그들에게 두 번의 기회가 있을 수는 없잖은가. 선라이트 서클를 밝혀 정화(淨火)가 이 도시를 씻어 내린다면, 죄업을 잇고 저주를 유지하려는 자는 모두 재가 될 터이니.”
“뱀파이어를 모두 죽일 수 있다는 말이겠죠? 프릿, 그러려는 거 맞죠?”
투란이 살짝 조심스럽게 프릿을 흘깃거리며 물었다.
프릿은 잔뜩 찌푸린 낯으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없이 깊은 망설임, 그리고 갈등.
투란은 바로 프릿이 고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만하지. 이제까지 없던 가능성이니까. 흡혈종 몬스터가 되었는데 되돌릴 수 있다니, 아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상황일 거야. 그러니까…… 헛소리 뱉으려 하지 말고 입 닥치고 좀 기다려! 응, 제발 좀 기다려!
들으면서 살그머니 달싹거리려는 투란의 입술을 미리 봉하듯이 말끝을 으르렁거림으로 장식하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도 이를 조금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거의 목구멍을 채우고 입술을 넘어가려던 ‘어제까지 피 빨다가 오늘부터 피 빨리는 처지가 되고 싶으려나?’라는 말을 도로 삼키고 입술을 꽉 닫아걸었다.
신상 또한 투란처럼 기다리는 듯이 물끄러미, 텅 빈 눈구멍을 프릿에게 맞춰 놓은 채로 말을 멈추고 있었다.
백금과 황금의 광채가 번뜩이는 풍경 속에서 프릿은 잠시 더 침묵하며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느낀 듯,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굳히면서 말문을 열었다.
“투란, 모두에게 말을 전해. 뱀파이어로서 죽을 놈은 버티고 서 있으라 하고, 인간으로서라도 살고 싶은 놈은 지금부터 네가 만들어 주는 구멍 속에 들어가라고. 당연히 말하면서 뱀파이어 녀석들을 위한 감옥이랑…… 그러니까 녀석들이 숨을 캄캄한 구멍 말이야. 그거랑 인왕도 전사들이 쉴 수 있는 곳까지, 꾸밀 수 있지? 그래, 그렇게 해 줘. 선택은 놈들이 하는 것이니까. 이 정도면 불만 없는 거죠, 호르트의 유해여?”
투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상, 호르트의 유해라 불리는 고대의 유물을 흘깃했다. 조용히 매의 머리가 끄덕여지면서 어느 정도 타협을 받아들인 듯한 대답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최상의 배려에 감사한다. 스스로 저주의 허물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죄악. 그 벌을 스스로 감당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니…… 하지만 권고라면 그래도 조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주지 않겠는가?”
프릿에게서 머리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면서, 프릿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만 자신에게는 선명한 하늘빛 눈동자를 들이대는 것을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살리고 싶다면 아무렇게나 협박하려 하지 말고…….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투란의 사고 속도 역시 가속하면서 전하려 하는 말이 금방 가다듬어졌다.
그리고 광대한 외침이 무겁게 백금의 도시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백금의 도시에 머무는 자는 모두 들어라! 뱀파이어지만 황금의 혈통을 잇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각오를 한 자는 황금의 관으로 들어가라! 백은의 피를 흘리며 뱀파이어로서 죽을 결심을 한 자는 그대로 버텨도 좋다. 백금의 도시는 이 햇살로 가득 차오를 것이니, 선택하라!”
도시 곳곳에서 금색 빛의 기둥이 치솟았다.
빛 가까이에 있던 뱀파이어는 순식간에 몸이 재가 되는 광경을 느껴야 했고 비명과 함께 피해야 했다. 빛의 기둥이 확산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여실히 깨달으며 흡혈종의 마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공포가 확산할 때, 금색을 머금은 관이 도시 곳곳에 생겨났다. 어떤 것은 크고 넓어 여럿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나 다름없었고 어떤 것은 그저 한 사람이 들어가 누울 관의 크기에 불과했다.
햇살을 흘려 내는 빛의 기둥, 그 빛으로부터 보호를 약속하는 금색의 밀실과 관.
백금의 도시를 새로 장식하는 듯한 풍경의 변화였다.
그리고 도시를 울리는 광대한 외침이 수를 세기 시작했다.
열, 아홉, 여덟…….
그 수가 하나로 줄고 난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굳이 듣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었다. 빛의 기둥이 일렁이며 수가 줄어들 때마다 느릿하고 여린 파동을 도시로 잔잔하게 흘러내는 중이었으니까.
그 여린 빛에도 살갗이 타오르고 잿가루를 흩날리는 꼴을 겪는 뱀파이어 모두에게 이 상황은 오해할 여지가 없었다.
투란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프릿이 그런 투란의 표정을 보고 묻는다.
“왜? 피하지 않고 버티는 놈이 많아? 아니면 피하는 놈이 너무 많아?”
“멀뚱멀뚱 구경도 하고, 피하는 데 방해도 받고…… 분명히 백금 속에 갇혀 있다가 풀렸잖아요? 햇살도 제대로 맛보여 줬고…… 그런데 왜 저래? 이게 무슨 장난인 줄 아는 건가?”
“서로 다투고 있단 이야기지? 냅둬. 아니, 방해하는 놈들은 따로 치워. 스스로 결정해서 행동할 수 있게 말이야. 할 수 있지?”
프릿도 찌푸린 낯으로 짜증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그 불쾌함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이 도시를 차지한 뱀파이어와 비교할 수 없는 적은 수, 삼천이라고 해봐야 정말 비교할 수 없는 극소수에 불과한 전사들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목적은 오직 우자트를 이용해 백금왕을 제거하고 도시의 제어권을 손에 넣는 것이었고, 그다음에는 가차 없이 뱀파이어 백은의 일족을 쓸어내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기묘한 신상이 등장하면서 좀 애매하게 된 것인데, 꾹 참고 기회를 줬더니 자기네끼리 툭탁거리고 있다니…… 백금왕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꼈다면 이 기회를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뭣 때문에…….
―가축이 반란을 일으키고 너도 가축이 되겠느냐고 대드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뭐, 저놈들 입장은 그런 것이겠지. 오히려 그런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적으로 보이기는 한다만.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 말에 투란도 살짝 납득할 수 있었다.
‘말하는 돼지 같은 경우로군.’
―그건 또 뭐냐?
‘있어, 그런 거.’
투란은 어린 시절, 오러클이 이놈 저놈 두들겨 패고 맴돌면서 지껄였던 우화 한 토막을 떠올렸지만 그냥 기억 깊은 곳에 파묻어 버렸다. 지금은 뱀파이어의 긍지, 혈족의 긍지를 나불거리는 녀석들이랑 햇살의 공포에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녀석들부터 처리해야 하는 때이므로.
―아, 그런 얘기였나. 맞아, 그런 경우야.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스쳐 간 투란의 기억을 금방 느낀 듯, 납득했다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찌 보면 몬스터 로드로서의 편리함, 어찌 보면 자기 안에서 나불나불하는 드라코눔의 아칸 따위는 역시 정신 헷갈리니 품지 않는 것이 맞다는 듯한 생각이 투란의 뇌리를 복잡하게 했다.
그러나 백금의 도시를 울리는 외침에는 그런 복잡함도, 오락가락하는 부분도 전혀 없었다.
“판단은 각자의 몫.”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말과 함께 뱀파이어들은 곧 주변과 격리되었다.
각자 알아서 하란 듯, 백금의 도시가 그에 맞춰서 개인용 관과 함께 훤히 드러난 공간으로 향하는 계단을 드리웠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오르든 관 속에 드러눕든 스스로 알아서 하란 상황이 명확해졌다.
이미 다섯이 헤아려진 다음에 새로운 선택이 가능해졌던 탓인가, 그다음에 드러난 행동들은 매우 빨랐다.
누군가는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 자신들의 혈족이 가득 모이도록 허용된 광장으로 질풍처럼 내달렸고, 누군가는 황금의 관 속으로 재빠르게 들어간 채로 숨죽이면서 햇살이 반사되는 것조차 피하려는 듯이 뚜껑을 닫아걸며 웅크렸다.
셋, 둘, 하나.
허공을 울리는 헤아림이 끝났다.
금빛의 섬광이 환하게 퍼져 나가며 도시를 가득 채웠다.
어둠이 가득했던 풍경이 환하게 밝아졌고, 마치 그림자 아래에 낮이 찾아온 듯했다. 그 풍경 곳곳에서 재 덩이들이 휘날렸지만 바람결에 금방 흩어지며 백금의 광채에 녹아 흩어지듯 사라질 뿐이었다.
그렇게 거대한 도시의 풍경은 매우 단출하게 정리되었다.
“워어어엇!”
“으아아아앗!”
함성을 지르는 수는 대강 삼천, 그들은 백금성의 중심인 기둥 아래에 새로 만들어진 광장에 모여 있었다. 스스로 걸어 모인 것은 아니었고 어느 순간에 백금의 담요에 돌돌 말려 있다가 풀려나니 다들 두리번거리면서 광장에 놓인 채였다.
그다음에 이어진 거대한 외침, 뱀파이어를 향한 경고를 이어 세상을 밝힌 금색의 광휘가 그 삼천의 함성을 이끌어 낸 참이었다.
백금의 도시를 굽어보는 거대한 뿔같은 산봉이 언더섀도우의 풍경 속으로 길고 지은 그림자를 흘리면서 그 함성을 품는 듯했다.
백금왕의 거처, 다시 열린 창턱 너머로 이를 내려다보는 프릿은 조금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곁에서 투란이 중얼거린다.
“이겼잖아요, 어쨌든…….”
“그래, 이겼지. 뱀파이어에서 다시 인간이 된 수가 얼마라고?”
프릿은 심드렁하게 되묻고 있었다.
“대강 오십만 넘어서 거의 육십만 정도?”
투란은 우자트와 백금안이 알려 주는 수를 정확하게 불러 주지 않고 대충 얼버무려서 대답했다. 처음에 수십만이라고 뭉뚱그려 말해 줬던 것보다는 조금 자세한 셈이었다.
“며칠이나 걸린다고 했지? 짧을 경우, 길 경우 며칠씩?”
프릿은 ‘수십만이 여섯 날은 넘기지 않고 다시 인간이 된다.’라고 해 준 투란의 말을 되새기면서 더욱 정확한 일정을 묻고 있었다.
조금 셈해 보는 척하면서 투란이 대답한다.
“짧으면 사흘, 아주 길면 닷새. 피의 순도에 따라 차이가 나요.”
“오래 걸리는 놈이 강한 뱀파이어였다, 그런 말이지?”
조금 더 단순하게 확인하듯이 묻는 프릿이었다.
투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프릿이 인왕도의 전사들에게서 눈길을 떼고 몸을 돌려 다시 신상, 호르트의 유해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