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3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25)
“백금왕이 하던 짓이야. 자신이 하사한 장비는 언제라도 거둘 수 있다고 말이지. 그러니까…… 아마 백금왕의 눈이면 뭐든 가능할걸? 안 된다고 해도 우자트로 어떻게든 할 수 있어. 그 부분은 예견의 마녀가 말해 줬잖아, 셀리아.”
“마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자세하지 않았어. 우자트의 신위(神位)가 기적을 낳을 것이며 소원을 들어준다고만 했지. 아무튼 된다는 거지?”
셀리아가 냉정하게 투란을 향해 다시 묻고 있었다.
“어…… 아마도?”
다시 맹한 대꾸를 하는 투란이었다.
셀리아의 눈가에 조금 심상치 않은 불만이 깃드는가 싶었다.
바로 프릿이 그 불만을 가로막듯이 투란에게 말했다.
“시간이 필요할 거야, 투란. 당장 하던 일을 마무리부터 해야지. 지금 도시를 채운 햇살이 얼마나 지속되는가부터 짚어 봐야 하고, 머신기어 호르트가 뭔가도 알아 둬야 하고, 눈알을 파내고 꽂지 않아도 백금왕의 눈을 쓰는 방법이 없나도 확인해야 하고…… 그러니까 셀리아, 투란에게 시간을 좀 줘야 한다고. 백금왕을 처치하고 그 피를 강탈하고 도시까지 억누르는 중이잖아. 너무 보채지 마.”
결국 뒷마무리는 셀리아를 다독이는 소리로 끝내고 있었다.
그래도 불만이 사라질 리가 없다는 듯이 셀리아가 대꾸한다.
“알았어, 그래도 빨리 정리했으면 좋겠네. 인왕도와 백금의 도시를 하나로 엮고, 다음에 찾아올 혈족에 대해 빨리 대비해야 하잖아. 프릿, 내가 재촉하는 것이 아니잖아. 처음으로 도시 하나를 장악했다고, 버젓이 혈족이 지배하는 도시를 말이야. 바루하, 뭐라고 좀 해요!”
프릿이 덤덤한 웃음을 띤 채로 그러려니 넘어가려는 듯하고 투란은 ‘어? 그런가?’라는 맹한 낯짝만 들이대니 결국 셀리아는 바루하에게 응원을 요청하는 듯했다.
바루하는 굵직한 어깨를 으쓱하면서 짧게 답한다.
“그래, 상황은 급하지. 그러니까 시간을 소중히 써야지. 투란이 확실히 정리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유리해. 그러니 셀리아,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실룩이는 셀리아의 표정이 불만이 한층 더 깊어지듯 했다.
하지만 프릿이 살짝 소리 내어 웃고 바루하가 수염을 긁적이며 바라보니 셀리아도 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투란은 생각하고 정리해야 했다.
백금의 도시에 대해서…….
우자트에 대해서…….
호르트의 유해, 신상이 변한 머신기어란 것에 대해서.
* * *
“야, 야! 잠깐만, 투란! 너 생각을 정리하는데 왜 내가 이러고 누워 묶여야 하는 건지 설명부터 좀 해 달라고!”
프릿이 외쳤다.
바루하와 셀리아는 백금의 벽 너머에서 구경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투란은 백금의 침대에 반쯤 포박된 채로, 팔다리만 백금의 끈에 묶여 누워 있는 프릿을 보며 ‘목까지 감아 둬야 하나?’라고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프릿이 한번 더 크게 외친다.
“투란!”
“음? 아…… 잠시만요. 생각 좀 정리를…….”
“야아아! 그러니까 왜 생각을 정리하다가 날 묶고 이렇게 단둘만 있는 감옥처럼 생긴 방을 만드냐고! 설명을 하란 말이야, 설명을!”
“흐음? 다 알게 될 텐데 뭘…… 잠깐만 기다려 봐요.”
투란은 조금 심술궂은 대답을 하고 아예 등을 돌려 버렸다.
프릿은 어이없었지만 동시에 투란이 무슨 심통을 부리는 중인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이 언더섀도우로 끌고 들어와서 인왕도부터 백금 도시까지, 거의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얼렁뚱땅 구원자라 부르면서 몬스터 로드답게 몬스터와 싸우라고 몰아세운 것은 프릿 쪽이었으니까. 그러면서 들이댄 핑계는 예견의 마녀였고 책임도 몽땅 예견에 떠넘기고 있었잖은가.
하루 이틀 동안은 대충 그게 통한 듯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에 투란도 어리둥절한 채로 넘어간 듯했지만 막상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하니 꽤 약 올랐던 모양이라고, 프릿 스스로 생각해도 그럴 만하다고 납득은 할 수 있었다. 다만…….
“얼마나 기다리라고! 그거라로 말을 해, 말을!”
꽁꽁 묶인 이 상황을 프릿이 참을 수가 없을 뿐이었다!
백금왕의 수준을 넘어서 도시 전체를 멋대로 다루는 투란이 작은 방에 집중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힘으로 반항하는 짓은 애초에 포기한 프릿으로서는 이렇게 떠들 수밖에 없기도 했고…….
“응? 말? 아, 말! 이야기! 프릿, 우자트를 왜 직접 사용할 생각 안 했어요?”
“그게 가능했으면 백금왕이 오래전에 언데드 헌터를 붙잡고 세뇌해서 눈구멍에 꽂아 넣었을 거란 생각부터 해라!”
“어? 음…… 조건이 있었나…… 아, 있구나.”
“어이! 투란, 나 보이는 거냐! 야, 야아아!”
프릿은 홱 돌아서서 몇 마디 던지더니 다시 홱 돌아서 버리는 투란을 보며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하지만 투란은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버린 것처럼 중얼중얼, 프릿의 귓가에 들려는 오지만 뭔 이야기인가 알 수 없는 소리만 흘려 내며 외면할 뿐이었다. 억지로 들려오는 그 소리를 어쩔 수 없이 프릿은 들어야 했다.
“사우전드 아이스 오브 나이트(Thousand Eyes of Night), 고르곤 엑스 마키나(Gorgon Ex Machina)…… 우자트의 미로…… 뭐 이리 조건이 까다로워. 하나라도 없으면 나도 괜히 온 셈이었잖아. 신의 지식이라면서 다른 쉬운 방법은 없어? 음? 세븐 아이즈(Seven Eyes)? 일곱이면 된다고? 어? 아…… 우자트가 생성 조건이고 권한 부여를 하는 마스터가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다니…… 결국 누군가는 우자트를 반드시 소유했어야 한다는 거네. 음, 이것밖에 없나. 호르트는…… 머신기어 호르트에서 직접 리브라(Libra)를 다룰 수 있게까지 하려면…… 역시 이 수밖에 없나? 그나마 프릿이 황제 폐하이고 몬스터 로드인 데다가 뱀파이어를 잘 다루는 것이 다행이네. 음, 그래…… 그렇게 하면 되려나? 뭐? 기록까지 해 둬야 하나? 음, 하는 편이 좋기는 하겠네…… 이곳 사정이야 내 알 바 아니긴 하지만……. 하클 영감님이라면 보고 바로 이해했으려나? 으읏, 까다롭잖아! 바루하 할배는 나중에 보고 알아서 하겠지. 끄응…… 그러니까 이 부분은…….”
“투란! 야, 정신 차려!”
흘려듣다가 혼미함에 쓰러질 듯하다는 것을 느끼고 프릿이 외쳤다.
한번 외쳐서는 돌아보지도 않는 투란이기에 프릿은 한번 더 크게 외쳤다.
“너랑 나랑 둘뿐이라고! 대체 누구랑 떠드는 거냐! 투란, 나를 봐! 정신 차려!”
쓰윽, 투란이 프릿을 돌아봤다.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띤 채로 보는 그 눈길은 프릿과 마주쳤지만 프릿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동시에 투란이 정말로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하는…… 아무도 없으니 마치 자신이 둘이 된 것처럼 떠드는 중이라는 것을 프릿은 알 수 있었다.
멀쩡한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투란은 지금 살짝 미친 상태!
하지만 프릿은 한숨을 쉬고 덤덤하게, 방금 전까지 큰소리로 외친 것을 사과부터 하며 말하고 있었다.
“미안. 자세한 설명 없이 끌어들여서 미안해. 그러니까…… 네 안의 또 다른 인격이랑 떠들면서 날 모르는 척하지 마. 괜히 악령에 빙의당한 미친놈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거든.”
“여기 악령도 있어요!”
돌연 투란의 눈을 깜박이면서 식겁한 듯이 묻고 있었다.
프릿은 그런 투란을 보며 마찬가지로 눈을 깜박이다가 엉겁결이란 듯이 대답한다.
“그야…… 있지. 언데드 헌터란 말이 몬스터 로드를 대신해 버린 까닭이 온갖 망령, 시체 따위의 언데드가 어둠 속에 가득한 탓이니까. 실체가 없어서 걸리면 바로 날려 버리기는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그 망령의 성격에 물들어 버리기도 하거든. 음, 이것도 대충 몇 마디 하고 미리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구나. 미안.”
차분한 말투가 투란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투란이 짓궂게 부리는 심통까지 달래려는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슬쩍 다시 눈길을 돌리며 말한다.
“미안할 일은 안 하는 편이 좋죠. 금방 정리되니까, 아주 잠깐이면 돼요.”
그리고 투란이 다시 자신만의 웅얼거림에 빠져드는 듯했을 때, 프릿은 편안하게 백금의 침대에 몸을 누였다. 금속의 광택을 잔뜩 머금었지만 벽에 드리워진 금색 무늬에서 흘러나오는 광채를 반사하는 요란함은 없는 침대는 부드러웠고 깃털이나 고급의 천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프릿이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편안한 잠자리가 되는 셈이었다.
‘뭐, 잠깐이라면 쉬어도 되겠지.’
프릿은 아예 편안한 마음으로 눈까지 감아 버렸는데…….
―역시 대담하군. 황제 폐하란 호칭을 그냥 별명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일 만해. 어쨌든 네가 원한 대로 눈감고 진짜 자려는 것 같다만, 어쩌려고?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에 투란은 슬쩍 뒤통수 머리카락 사이에서 뜬 눈으로 프릿을 살폈다. 확실히 가슴과 목 언저리는 긴장을 풀고 편히 누운 모습이었고, 그러면서도 팔다리는 최소한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만약의 경우에는 아예 팔다리를 끊어 내고 움직일 준비도 되어 있는 프릿이었다.
‘거참, 상위 뱀파이어의 능력이 대단하기는 대단하네. 팔다리 날려 버려도 순식간에 피로 전환해 복구가 된다니…… 그러니까 세븐 아이즈로 어떻게 되는 거겠지만. 음, 아무튼…… 우자트를 프릿이 쓸 수 없다면, 대용품을 박아 줘야지. 안 그러면 내가 계속 이 도시를 관리해야 한다고. 어디 가지도 못하고!’
아까와 다르게 소리 없이 투덜거리는 투란이었다.
―흐흠, 역시 책임은 지려는 거냐? 그냥 냅다 몰라라 하고 튀어도 되기는 한다만…….
슬그머니 놀리는 듯한 드라고니아였다.
‘여기 수십만 명이랑, 인왕도 십만 명이랑 죽네 사네 난장판이 되건 말건 튀자고? 야야, 구원자씩이나 돼서 그러면 안 되잖아. 게다가…… 선불받은 것은 우자트뿐이라고. 아직 마석도 못 구했고…… 여기 구경도 제대로 못 했어.’
한숨을 참으며 투란이 소리 없이 툴툴거렸다.
입 밖으로는 여전히 프릿에게 자장가처럼 들려주는 소리를 내는 중이기도 했다.
“머신기어를 입어야 하나, 그냥 움직여야 하라…… 으음, 에스탄 할배처럼 할 수는 없나. 역시 안 돼? 쳇…… 백금이니까 백금 장비? 근데 진짜 백금 아니잖아…… 그러면 이것은…….”
마치 입을 움직여 소리 내는 투란과 마음속으로 분주하게 생각하는 투란이 다른 듯한 상태였다. 드라고니아는 이를 그냥 그러려니 하는 듯, 하고 싶은 말을 바로 하고 있었다.
―투란,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널 변화시킬 거야. 그건 두려워할 일이 아니잖아? 뭘 갈팡질팡하는 거냐? 알드바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온다고 해서 프릿이 뭐라 할 리도 없잖아? 아무리 봐도 프릿은 몇 년을 내다보고 널 섭외하려는 거니까. 이곳의 시간이 기묘하게 흐르는 만큼, 밖에서 몇 년 지났어도 이곳에서는 수십 년을 보낼 수도 있다는 점은 너에게 불리하지 않아. 오히려 더욱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되겠지. 그 경험은 이득이지 손해가 아니잖아?
‘알아, 아는데 싫은 거라고.’
투란은 프릿이 정말로 잠이 든 듯한 모습을 뒤통수의 숨긴 눈으로 보면서 한숨도 억누르는 채로 대답했다.
대강 2년…… 그사이에 홀시딘이 변한 모습을 봤다.
알드바인의 여러 가지 정황도 꽤 변했다고 들었다.
그사이에 투란 자신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몇 달 동안의 여행 끝에 갑자기 2년이란 시간을 훌렁 뛰어넘었다는 느낌만 강하게 남아서 변해 버린 홀시딘, 특히나 정말로 대마법사다운 실력을 보이는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고 할 수 있었다.
한데 이 언더섀도우에서, 장소에 따라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다르다는 곳에서 살벌하고 기괴한 뱀파이어의 혈족과 듣도 보도 못한 언데드 마물과 엮인 경험을 하고 세상에 나간다면, 그런 투란을 보고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밖에서는 일 년 흐른 사이에 이 안에서 십 년을 보내고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과연 투란을 아는 이들이 ‘어, 투란이네?’라고 봐줄 것인가?
얼굴만 같은 다른 사람이라고 당황해하면서 낯선 이방인을 보듯 볼 것인가?
투란이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먼저 알드바인에 가서 얼굴만 비추고 돌아온다 해도, 그다음에 언더섀도우를 몇 년 경험하게 되면 똑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프릿과 함께, 인왕도의 신기하고 낯선 모습인 전사들과 함께 언더섀도우를 돌아보는 일이 내키지 않는가? 그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언더섀도우의 특이하고 괴상한 풍경은 계속 돌아보고 싶었다.
결국 투란은 알드바인에 2년여 만에 돌아가는 자신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언더섀도우의 모험, 탐험을 해 보고 싶었다. 그 경험을 얻으면서 현재의 자신도 고스란히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투란이 지금 원하는 바였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의 조그맣고 엉뚱한 소망을 어처구니없어하며 달래는 중이었다. 경험을 통해 변화하는 자신을 두려워 말라고 다독이면서,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경험을 새기고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도 된다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작은 소망을 이룰 방법이 분명히 있다고…….
슬그머니 예견의 눈이 그걸 이룬 자신을 보여 줬으니까.
그러니 그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
그러기 위해서 투란은 백금의 도시가 오랫동안 보관했던 유해, 머신기어 호르트가 감추고 있는 ‘지혜’를 뒤지며 자신이 지닌 몬스터의 정수를 되짚어 보고 있었다.
그 소망이 이뤄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