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28)
‘저게 뭐…….’
―인왕도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를 수호하는 머신기어야. 움직이는 요새, 이동성채라고도 할 수 있다. 내부 영역을 왜곡시켜서 방대한 기자재를 수납할 수도 있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마법 장벽을 전개해서 진짜 궁성 노릇도 할 수 있지. 하지만 본질은 백금 도시의 머신기어, 전투를 위해 특별히 조율된 워로드야. 셀리아가 설계하고 너랑 프릿이 이것저것 제안해서 바루하가 틀을 잡고, 백금 도시의 기술이 잔뜩 발휘돼서 만들어낸 거지. 여기까지 끌고 올 것은 분명히 아니다만…… 이 시간에 여기까지 너랑 에스탄을 쫓아올 정도로 빠른 것도 저것뿐이긴 하군.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리는 낌새를 가득 담아서 투란의 의아함을 채워 주듯이 말해주고 있었다. 애초에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을 설명해주느라 귀찮다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문제는 그 설명을 들어도 투란은 무슨 뜻인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
눈을 껌벅이는 사이에 프릿의 얼굴 좌우로 벽이 갈라졌다.
갈라진 틈새로 프릿의 멀쩡한 몸이 드러났고, 프릿은 곧바로 투란과 에스탄 앞으로 뛰어내렸다. 3, 4미터의 벽은 그대로 다시 닫히면서 장소에 어울릴 낌새가 전혀 없는 기묘한 담장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머무르는 꼴이 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네모난 모양의 커다란 금속 덩어리…….
‘머신기어라고? 이게? 진짜로?’
문득 강철의 거인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어이없는 기분이었다.
프릿은 투란의 묘한 표정, 에스탄의 성난 표정을 둘러보면서 오히려 묻고 있는데.
“상아탑에 연락은? 했어? 안 했어? 셀리아의 마도구를…… 재상이 갖고 있나? 구원자가 갖고 있나? 칼탄, 신호하는 것 봤어?”
성급한 물음은 두리번거리듯이 헤매며 칼탄에게까지 뻗었다.
에스탄이 프릿을 향해 눈꼬리를 치켜뜰 때, 칼탄이 말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보내셨습니다, 구원자께서요.”
어째서인가 칼탄을 노려보는 듯하는 채로 프릿이 낯을 구겼다.
그 구겨진 낯을 보면서 에스탄이 수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왜? 칼탄에게 뭔가 시켰나? 제대로 안 했나, 칼탄?”
“응? 별것 아냐.”
프릿은 간단히 말했다.
하지만 칼탄은 자신의 허리춤을 두드리면서 에스탄에게 대답하니.
“셀리아 님의 마도구를 방해하라고 시키셨지요. 방해하면 두 분을 조금 더 언더섀도우에 머물게 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방해가 안 된 모양입니다. 저는 분명히 가동시켰는데 말이죠. 셀리아 님이 직접 주신 도구였는데, 역시 구원자…… 투란님은 다른 수단도 갖고 계셨던 듯합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에스탄의 비난하는 눈초리는 투란에게까지 닿고 있었다.
프릿이나 칼탄은 그렇다 쳐도 왜 자신에게까지 그러는가, 투란이 억울하고 어이없다는 시늉을 하니 에스탄은 그냥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대신 프릿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알아서 연락할 수 있었으면서 셀리아에게 뭔 전문도구를 또 만들어 달라고 보챘어? 투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 응? 그동안 함께한 시간을…….”
뭔 말이 길게 이어지는 듯했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셀리아에게 만들어달랬던 마도구는 프릿이 적당히 간섭해서 방해할 수도 있고, 알아보기도 쉬운 것이었다. 그걸 사용하는 척하려고 만들어달랬지. 로열클래스를 감춘 탓도 있지만, 알면 아는 대로 프릿이 이래저래 훼방 놓을 것 같으니까 아예 들통 날 도구를 하나 마련해둔 셈이지. 뭐, 그렇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쓸 수도 있는 마도구이고, 언더섀도우 안에서는 셀리아와 바로 전언을 주고받을 수도 있어서 가져왔지.
‘나도 여러 가지로 수작부린 셈이네?’
―그런 셈이지, 언더섀도우에서 프릿을 겪은 만큼 말이야.
조금 묘하게 쓴웃음 짓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그사이에 칼탄이 프릿의 말을 자르고 투란에 대해 말하고 있었으니.
“늦었습니다, 폐하. 이미 기억을 지우셨어요. 언더섀도우에 들어섰던 처음의 며칠 정도만 기억하고 계십니다. 에스탄 재상께서 방금 전에 확인하셨죠.”
“뭐가 그리 빨라! 아오, 이 못된 놈!”
프릿은 짜증 난다는 듯이 투란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릴 듯했다.
하지만 그 짜증이 더 이어지기 전에 에스탄이 먼저 으르렁거렸으니.
“수도방어용 머신기어를 멋대로 끌고 나올 정도인 황제폐하를 상대하는 일이니 신속하게 일처리를 해야지! 대체 저걸 왜 끌고 나왔냐고!”
살짝 그 꾸짖는 눈길을 외면하는 채로 프릿이 대답한다.
“줄 것이 있으니까, 꽤 많았단 말이야.”
“나 줄 거예요?”
재빨리 묻는 투란이었다.
―야!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태도에 황당하다는 듯이 뇌리를 울리는 외침을 터뜨렸다.
프릿도 투란을 보며 가느다랗게 뜬 눈길을 흘리면서 타박한다.
“기억이 없어도 챙길 거는 먼저 챙기고 싶다니, 그 버릇은 못 치우냐?”
“마석 받기로 했었는데…… 손에 쥔 게 없잖아요?”
조금 뻔뻔하게 대꾸하는 투란이었다.
에스탄이 어이없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고, 칼탄은 미묘하지만 쓴웃음을 짓는 듯했다. 한데 프릿은 어리둥절해서 ‘마석?’ 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리잖는가.
투란은 그런 프릿을 향해 차분하게 ‘어제’ 혹은 자신이 이곳에 ‘잠들기 전’의 기억을 더듬듯이 말한다.
“애초에 내가 언더섀도우에 들어간 까닭이 말이죠…….”
“상아탑의 마법사에게 마석에 대해 알아봐 주기로 했고, 얻을 수 있으면 얻어다 주기로 한 것! 맞아, 그게 벌써…… 잠깐 깜박했다. 십 년도 넘게 지난 이야기니까.”
프릿이 끄덕거리면서 기억났다는 듯이 말했다.
투란이 그 말을 부정하듯이 바로 대꾸한다.
“며칠 되지도 않은 일이라고 기억하거든요? 그러니까, 마석 주머니 건네두려고 온 거예요? 아니면…… 뭔가 크고 대단한 것? 저 벽 속에 담아온 거예요?”
프릿이 이에 뭐라 하기 전에 에스탄이 바로 말한다.
“마석은 내가 챙겨왔고, 도대체 뭘 줄 것이 있다고 온 것이지? 무슨 핑계를 대는가 한번 듣고는 싶군, 폐하.”
“쯧, 내가 정말 놀러 왔다고 생각해? 떠나기로 한 투란을 잡겠다고 수도방어용 머신기어를 몰고 왔다고? 바보냐, 에스탄? 설마 늙어서 은퇴하는 재상을 잡으러 왔을까! 정말로 중요한 일, 처분할 물품이 있단 말이야! 칼탄, 에스탄 좀 가드해 줘. 투란, 넌 한 걸음 더 나서봐. 자, 이제 꺼낸다.”
프릿이 투덜거리면서도 엄격한 태도로 말하며 벽을 향해 손짓했다.
벽이 갈라지면서 그 크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깊고 넓은 구역을 드러냈다.
‘왜곡?’
그 구역의 풍경을 보면서 투란은 곧바로 왜곡의 배낭을 떠올렸다.
손에 쥔 작은 배낭, 하지만 그 주둥이를 열면 깊고 깊은 공간이 보이는 현상.
프릿의 손짓에 머신기어가 벽의 형태를 열고 보여준 것은 그런 현상이었다.
그리고 차례로 열린 문턱 가까이 옮겨져 오는 것들…….
“응?”
저절로 자신의 손이 내밀어지는 꼴에 투란은 움찔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밀어지는 오른손이 검은 가죽이 수십 개의 작은 입을 열고 있는 형체가 되어 있었다.
프릿이 그 꼴을 보며 말하는데.
“저주가 서린 물품…… 저주만 해결하면 거의 아티팩트라고 해도 좋은 것들을 찾아 모은다고 했었잖아. 이것만 어떻게 해달라니까 그냥 내빼고 있어. 너 없으면 이거 어떻게 못하는 것들이라고! 영혈이 깃든 것이라서…… 그래, 암혼 일족의 영혈! 투란, 뭔가 느껴지지?”
슬그머니 기대감이 어린 목소리였다.
뭔 기대인가 투란이 어리둥절해 하는데, 드리고니아가 코웃음 치듯 말한다.
―사라진 기억을 자극해서 뱀파이어의 피를 끌어낼 속셈이구먼. 그 피를 통해 기억을 되살리면 떠나는 것을 며칠 포기할까 해서 저러는 거야.
‘그 자극을 피하려고 넌 내게 혈족 이름 몇 개를 미리 알려 줬던 거냐?’
―그게 뭔가 하고 호기심을 품었다가 피가 되살아나서 기억까지 자극할 것들만 미리 말해 두기로 했지. 네가 그렇게 부탁한 짓이거든?
‘그래? 흠, 나 많이 똑똑해졌구나.’
드라고니아의 툴툴거림을 대충 넘기면서 투란은 프릿을 쳐다보지도 않고 열린 벽의 틈새로 보이는 화려한 장검에 손을 얹으면서 입을 열고 있었다.
“느껴지는군요! 대단한 저주인가봐요! 우와, 꿀꺽꿀꺽 들이마시네!”
투란의 오른손에 열린 입에서 나온 혀가 장검의 칼집과 칼자루를 골고루 핥았고, 허공으로 치솟는 연기를 훌훌 들이켜 삼키고 있었다.
이런 투란의 행동은 프릿이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다른 자극을 받고 있노라 과시하는 셈이었다.
에스탄이 살짝 일그러지는 프릿의 낯을 보며 껄껄 웃었다.
“저주를 해체해주면 좋아해야지, 폐하. 시커먼 속셈을 그렇게 낯짝에 고스란히 드러내지 말라고!”
“쳇, 누가 시커먼 속이라는 거야. 아무튼 암혼혈족 녀석들이 곳곳에 감춰둔 보물창고를 털었고, 거기 함정으로 깔아둔 저주의 물품은 다 쓸어모았어. 수도에 위협을, 인왕도에 위협을 줄 만한 것들이라 다른 곳에 보관할 수 없어서 머신기어를 끌고 와야 했다고. 아무튼…… 적어도 이것들은 너만 보고 모은 것이니까 네가 해결하고 가란 말이야! 야, 투란 너 정말 기억 지운 거냐?”
투덜거리다가 아쉬운 듯, 프릿은 다시 한번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투란은 바쁘게 스쳐 가는 물품을 헬비스트의 혀로 핥으면서 그 안에 깃든 저주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도록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차례대로 열린 문턱 너머로 옮겨왔다가 멀어지는 물품들은 품고 있던 저주를 상실해 갔다.
한편에 앉으면서 프릿이 바쁜 투란을 대신하라는 듯이 에스탄에게 말한다.
“여기는 며칠이나 지났대?”
에스탄이 흘깃 굴하람 쪽을 보면서 대답한다.
“백 일…… 대략 저번에 내가 들러보고 나서 석 달 좀 넘었다 하더군.”
프릿은 물끄러미 에스탄을 잠시 바라보다가 묻는다.
“너한테는 얼마 만이었지?”
에스탄이 잠깐 먼 하늘을 돌아보는 시늉을 하다가 대답한다.
“십사 년.”
잠시 손가락 꼽아보는 척하다가 프릿이 바쁜 투란을 흘깃하며 말한다.
“투란이 언더섀도우에서 보낸 시간인가?”
에스탄은 살짝 갸웃하며 대꾸한다.
“내가 투란이랑 똑같은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잖소. 아마도…… 거기서 삼사 년은 더 보냈을 수도 있겠지.”
“그래…… 꽤 깊은 곳을 들락거렸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듯, 프릿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던 칼탄이 나직하니 속삭인다.
“그러니 이제 보내드려도 되잖습니까…….”
투란에게는 살짝 들리지 않게 조절한 그 목소리에 프릿과 에스탄이 어이없다는 듯이 칼탄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투란이 떠나는 것을 가장 바라지 않는 이는 칼탄이었는데 저런 말을 하니까.
이를 넌지시 짚어보자는 듯이 프릿이 칼탄에게 묻는다.
“너, 괜찮은 거냐?”
수더분한 수염을 기르고 있기는 했지만 칼탄은 아지 새파랗게 젊은, 어리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체질이 털이 많은 탓에 저리 기른 수염으로 그 나이를 감추고 있기는 했지만…… 누구보다도 투란을 우러러보며 자란 녀석이 보내자는 이야기를 하니까 슬그머니 걱정된다는 듯이 물을 수밖에 없기도 했다.
칼탄은 저주를 해체하느라 바쁜 투란을 잠깐 바라보다가 프릿과 에스탄에게 눈길을 마주치면서 낮지만 선명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햇살 아래에서 살고자 한다면, 저 역시 재상님을 따라가면 될 뿐이니까요.”
“야! 그건 아니지!”
프릿이 흠칫 놀라면서 바로 으르렁거렸다.
에스탄은 피식 새는 웃음을 감추면서 묻는다.
“그래서 갈 거냐?”
칼탄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프릿이 살짝 안도할 때, 칼탄이 말한다.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요.”
짓궂은 웃음을 드러내면서 에스탄이 바로 묻는다.
“일 끝내면?”
“모르겠습니다.”
칼탄은 잠깐 주저하는 듯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프릿이 그런 칼탄을 보면서 혀를 차며 말한다.
“일감 넘쳐난다, 너까지 내뺄 궁리 하지 마.”
칼탄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에스탄을 향해 묻는다.
“어떤 기분이 됩니까?”
“응? 뭐가?”
에스탄이 두리뭉실한 물음의 의미를 되물었다.
“남들에게는 백 일이 지났지만, 자신에게는 십 년 이상이 지났다는 것. 어떤 기분인 겁니까?”
칼탄이 차분히 다시 묻고 있었다.
에스탄은 투란을 흘깃하면서 조용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