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3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30)
“저주받은 수호자?”
의아한 듯 투란이 중얼거렸다.
에스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편에 보이는 묘지 쪽을 손짓하며 말한다.
“원래 있던 바위 묘지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언데드 몬스터라더군. 굴하람에서 가늠하기로는 한 백 일 전쯤이라니까, 우리가 이곳에서 떠난 다음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더군. 딱히 주변을 돌지도 않고 묘지 구역 안에서만 꼼짝도 않는 녀석이라 굴하람 사람들도 슬슬 무관심해진 채였어. 그것 말고는 주변에 딱히 관심 가질 일이 없었다고 하던걸.”
“백 일이라…….”
투란은 되뇌었다.
그나마 낯익은 이야기였다.
바위 묘지기를 처리하고 대리할 것을 놔둔 지 백 일 정도 흘렀다니…….
―시간 축이 되어주기도 했지. 그림자 안과 밖의 시간 차를 가늠하는 데 꽤 큰 도움이 되어줬어.
드라고니아가 속삭였다.
‘어? 아, 그럴 수도 있겠군.’
조금 늦게 깨닫는 투란이었다.
언더섀도우 바깥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이곳에 있는 녀석은 고스란히 알 수밖에 없으니까. 언더섀도우 안에 있는 투란이 겪은 시간과 바로 비교할 수 있으니까. 다른 시간의 흐름이 어떤 편차를 일으키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편차가 자신을 더 조급하게 했을까?
아니면 여유를 갖도록 했을까?
투란은 어느 쪽인가 궁금했다.
―상황에 따라서 달랐어. 뭐,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초조해하기도 했고 느긋해하기도 했고…….
조금 심술궂은 말투로 중얼거리는 드라고니아였다.
왠지 뒷머리를 긁적이고 싶은 기분으로 투란은 프릿을 바라봤다.
저주서린 물품을 갖고 와서 처리해달라는 핑계를 들이댔는데, 이제 완전히 정리가 된 셈이었다. 그렇다면 프릿은 이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억지로 떼를 쓰면서 더 머물러 달라할 것인가? 아니면…….
“볼일은 거의 다 본 것 같기는 한데…… 아무 생각 없이 다 잊고 떠날 거냐? 아무 기억이 없는 채로 괜찮아? 이 상황이 전혀 궁금하지 않아?”
불쑥 묻는 말이었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가늘게 뜨면서 프릿을 다시 훑어내리듯이 바라봤다.
일부러 기억을 덮고 지워 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프릿은 아주 당당하게 투란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목적으로 묻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한데 듣자하니 저절로 없던 호기심이 스멀거리면서 치솟는 기분까지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째서 프릿의 목소리가 나긋하면서도 당연한 일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귓가에 울리는가?
에스탄이 이에 대해 곧바로 답을 내놓고 있었다.
“아, 정말! 그런 짓 좀 하지 말라고 이 망할 폐하 놈아! 보내주기로 하고 여기까지 쫓아와서 치근대는 것부터가 이미 지저분할 만큼 지저분하다고! 거기다 뱀파이어가 쓰면 저열하다고 쌍욕을 해 대면서 자기가 그 잔재주를 부리면 어쩌자는 거야! 그런 짓을 할 거면 좀 은근하게 모르게라도 하든가! 칼탄 표정 보라고! 황제 폐하고 뭐고 한 대칠 것 같잖아!”
낭랑한 노인의 목소리에 더해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웅얼거리는 설명도 새겨듣는 중이었으니.
―뱀파이어의 매혹하는 목소리야. 굳이 말이 아니더라도 피가 생명을 담고 있는 존재라면 대체로 의지를 전해서 유혹하고 매료시킬 수 있지. 음, 그래도…… 에스탄이 말한 것처럼 완전히 저열한 혈족의 수법은 아니네. 나름 매혹의 기교로 한가락 하는 녀석들의 비법을 새로 익혀 온 모양인데…….
흘깃 칼탄을 둘러보니 정말 썩어문드러질 듯한 표정으로 단검 자루를 만지작거리면서 프릿을 흘겨보는 중이었다!
풋, 투란의 입가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스탄의 잔소리와 칼탄의 험상궂은 눈길, 거기에 대해 프릿이 아주 뻔뻔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알면서 왜 그래?’라는 웅얼거림을 토해내는 모습이 겹쳐지니 기묘하게도 어딘가 웃음 짓는 것이 당연한 듯이 느껴진 탓이었다.
이렇게 투란이 웃는 모습에 프릿은 입술을 삐죽였고 칼탄은 한숨과 함께 쓴웃음 지으면서 단검 자루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그런 둘을 향해 한번 더 혀를 차면서 에스탄이 말한다.
“딱히 굴하람에 볼일은 없잖아? 그래서 그 대마법사가 언제 오는 거야?”
“에? 아…… 글쎄요?”
투란은 갸웃하면서 홀시딘이 아직 반응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프릿이 나타나고 몇 마디 나누는 동안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마법사가 된 홀시딘이라면 신호를 보내자마자 바로 반응했을 듯도 한데 묘하게 아무런 응답이 없잖은가. 바쁜 일이 있다면 간결하게 기다리란 말이라도 전해왔을 듯싶은데…….
‘설마 언더섀도우에서 로열클래스 마법 망가진 것은 아니겠지? 한번 더 신호해볼까? 야, 아무 일도 없었지?’
―망가진 적 없어. 몰래 신호를 보낸 적이 몇 번 있었고 매번 정상적으로 마법의 효과 발휘되었다. 시간편차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말은 안 했지만 신호받기 어려운 이상한 환경이란 말은 해뒀다. 벗어나면 제대로 신호한다는 말도 했으니까, 잠시만 더 기다려…….
‘어? 잠깐!’
드라고니아의 말이 끝나기 전에 투란은 손가락을 살짝 조여오는 마법의 반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홀시딘이 투란을 찾는 듯한 느낌이 로열클래스의 징표를 통해 묘하게 전해져 온 것이다. 흡사 지금 어디에 있냐는 것을 묻는 듯한, 가까운 곳이라고 금방 도달할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 탓인가? 홀시딘이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
―진짜 가까이 있었잖아!
갑작스럽게 드라고니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투란은 그 황당한 낌새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프릿과 에스탄, 칼탄도 그런 투란의 몸짓에 반응해서 같은 방향을 제각각의 대비를 하며 바라봤다.
그 눈길이 닿은 자리는 낮은 곳이 아니었다.
허옇게 구름이 뭉클거리는 하늘에 가까운, 하지만 하늘보다는 분명히 낮은 높은 산의 절벽을 올려다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 높은 곳에서 천천히 뭉클거리는 구름을 받침대로 깔듯이 짓누르면서 내려오는 것이 있었다.
커다랗게 부푼, 빵처럼 보이는 것이 구름과 같은 색으로 번진 듯했지만 명백하게 깔고 내려오는 구름보다 짙은 잿빛은 그늘진 듯한 색채였고 그 속에 동그랗게 파묻힌 회칠한 바위를 달걀처럼 보이게 했다.
흡사 밑바닥에 살짝 구름칠을 하고 그 중심에 단단한 바위 핵을 꽂아 넣은 둥실거리며 떠다니는 부풀어버린 빵인 셈이었다.
‘내 풍선보다 더 크잖아?’
뒤늦게 투란의 뇌리에 스쳐간 감상이었다.
어떻게 봐도 투란이 대충 꾸려 만들었던 풍선, 사람이 타는 풍선과 비슷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정교한 구조물이었고 위장도 깔끔한 데다가 이모저모로 다듬어서 도저히 크기만 더 크다 할 수 없었지만…… 그 내막이 살짝 엿보이는 와중에도 투란은 일단 그 크기부터 짚고 있었다.
이런 감상에 드라고니아도 순순히 동의를 했으니.
―확실히, 웬만한 삼사층 구조의 건물 하나는 그대로 들어가겠는걸? 시알라의 금빛매 여관 정도는 그냥 담아버릴 수 있어 보이는군. 허? 홀시딘의 마력파문이 가득 감지되는걸?
투란도 저 하강하는 괴건물 풍선이 홀시딘의 기척을 가차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로열클래스의 징표가 거침없이 반응하기도 했고, 홀시딘이 노골적으로 ‘나 여기 있다!’라며 그 마력을 이상할 정도로 크게 흘려 내는 탓이기도 했다.
‘왜……?’
투란이 갸웃하는 사이, 칼탄과 에스탄이 감탄하는 소리를 내놓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과연 대마법사의 작품이라 할 만한데요?”
“뭔 천 년 묵은 뱀파이어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할 수 있었지?”
한데 그 틈새로 프릿이 작게 투덜거리고 있었으니.
“썩을.”
이 소리에 투란은 어이없어 프릿을 안 볼 수가 없었다.
홀시딘이 가득 커다란 마력을 노출시킨 만큼이나 프릿의 태도가 엉망진창이잖은가.
―아, 그렇군. 언더섀도우의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이들이 너에게 적대적인 경우를 상정해서 위협하는 모양이다. 로열클래서의 키퍼로서 비밀뿐 아니라 너의 안전도 지켜줘야 하는 입장이잖아. 음, 그래서 아예 여기 와서 널 찾아볼 생각까지 한 모양인데? 저런 걸 끌고 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드라고니아가 멋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곧 구름칠이 벗겨지며 구멍처럼 열린 틈새로 쏜살같이 내려오는 홀시딘의 모습은 어쩐지 드라고니아의 해석이 맞다는 증명처럼 보이잖는가.
노골적으로 마법을 쇠뇌처럼 장전 중이라고 시위하는 몸짓과 그 위력을 가늠해보라고 으스대는 듯이 드러내는 마력…… 그 결과물이라는 듯이 홀시딘 주변으로 가득히 빛이 송곳처럼 맺히고 있기까지 했다!
“홀시딘, 이 사람들 도적 아니에요!”
투란이 두 손을 휘휘 저으면서 몇 걸음 나아가면서 외쳐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막나 못 막나 시험이라도 해볼 듯이 바로 마법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질 듯했으니까.
그리고 이런 투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홀시딘은 곧바로 자세를 고쳤고 빛의 송곳 무리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래도 홀시딘의 몸은 일단 일행과 몇 미터 거리를 둔 채로 허공에서 둥실거리며 뜬 채였는데.
“도적이 아니면, 빚쟁이?”
불쑥 내놓는 말은 투란이 잠시 생각을 잊고 입술만 벙긋거리게 했다.
대체 왜 빚쟁이란 말이 나오는가?
―아, 그건…… 네가 저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빚지고 나갈 수는 없다고 했거든. 뭐, 마음의 빚이라고 둘러대기는 했다만.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머금은 말투로 속삭였다.
‘뭐? 마음의 빚? 뭔 마음의 빚? 기억 지우면서 같이 사라진 마음의 빚? 아니, 그런 빚도 같이 지워 버렸다고?’
―딱히 신세졌다는 말은 아니었고, 그냥 상황이 바로 벗어나기 어려워서 둘러댄 말이었을 뿐이다만…… 뭐, 홀시딘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겠지. 너무 의아해서 저렇게 아예 쳐들어가려는 듯이 여기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어? 날 찾아서 언더섀도우로……?’
갑작스럽게 어리둥절하면서 한편으로는 묘하게 반가운 기분이 가슴에 뭉클거리는 것을 투란은 느꼈다.
“빚을 대신 갚아주실 겁니까?”
한데 미묘하게 삐딱한 물음을 프릿이 꺼내 들었다.
“대신 빚 받아주면 뭔 보상이라도 있소?”
그렇게 대꾸하는 홀시딘의 뒤틀린 표정은 투란의 뭉클거리던 기분을 싹 다 날려 버리고 말았다.
‘뭐야, 저 표정!’
―너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드라고니아조차도 떨떠름하니 이렇게 말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언더섀도우에 다녀오는 사이에 홀시딘에게 원한 생길 일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홀시딘? 왜……?”
그래도 조심스럽게 투란이 표정이 왜 그리 나쁘냐고 물으려 하는데.
“좀 닥쳐봐. 언더섀도우의 주민들에게 궁금한 일이 많으니까. 네 얘기는 좀 나중에 듣자. 혹시 상아탑이나 헌터 길드 쪽으로 편지 보낸 장본인이 여기 계시오? 마석가루도 좀 묻혀놓고, 마석 조각도 좀 담아넣고…… 그렇게 꽤 오래 보냈던 분이 계셨는데, 혹시 아는 분 아니시오?”
프릿과 에스탄, 칼탄을 둘러보면서 홀시딘이 한층 더 삐딱하니 묻고 있었다.
이에 바로 에스탄이 대놓고 프릿을 흘깃흘깃 눈짓하듯 바라봤고, 칼탄도 ‘아? 그 일인가?’라는 웅얼거림을 노골적으로 흘리면서 프릿을 흘깃거리는 시늉을 했다. 둘의 이런 태도에 프릿이 떨떠름하다 못해 짜증 난다는 듯이 쏘아보는 척하다가 홀시딘에게 되묻는다.
“유능한 인재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당연하잖습니까? 굉장히 유능해 보이시는데, 혹시 마석에 흥미 있으신가요?”
홀시딘이 슬쩍 볼을 불룩거렸다.
그래도 마석에 관심 없는 마법사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따지는 대신, 홀시딘은 아예 분명하게 프릿에게 물음을 되돌리고 있었다.
“마석을 굉장히 유용하게 써야할 곳이 있어서 말이오. 내가 직접 저 그림자 아래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적절한 보상을 기대하는 모험심 넘쳐나는 젊은 마법사들은 몇몇 소개해줄 수도 있소.”
“좋군요. 중개에 대한 보상으로 마석 몇 개 기꺼이 건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죽, 눈을 번뜩이는 채로 프릿이 말하고 있었다.
홀시딘 역시 둥실 뜬 채로 조금 더 프릿에게 가까이 옮겨오면서 거의 비슷하게 번뜩이는 눈길로 대꾸를 하니.
“그럼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볼까요? 투란은 멀쩡하니 잘 있었던 같으니…… 돌아가는 길에 무슨 사정이었나 듣기로 하고. 아, 한데 그 편지에는 프릿이란 분이 서명했던데…….”
“제가 프릿입니다. 하핫, 장본인이라고 옆에서 저리 열심히 눈을 부라리고들 있잖습니까. 아, 한데 부유하는 마법사님은 어떤 이름이신가요?”
“나는…….”
홀시딘과 프릿이 왠지 잘 어울리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광경이었다.
투란은 슬그머니 에스탄과 칼탄 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둘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숨을 쉬는 모습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멀리 굴하람을 내려다보는 구름이 허공의 세찬 바람에 흔들거렸고, 머리 위에 내려온 상아탑의 풍선은 낮게 내려온 구름이란 것처럼 흔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