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4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31)
Chapter 207. 귀환, 알드바인
“홀시딘, 먼저 올라가서 구경 좀 하고 있을게요!”
투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두 다리에 힘을 주며 굽혔다.
그 순간, 튀어 오르려던 생각을 잠깐 한편으로 치울 정도로 투란은 놀라고 말았다.
‘우와!’
에어로가 자연스럽게 두 발목을 휘감았고 발바닥을 받쳐주는 테트라가 탄력을 잔뜩 머금으며 투란의 움직임에 호응하고 있었다. 튀어 오르는 순간에 최대한 보조해주려는 것이다.
―아, 그동안 숙련된 기교라서 저절로 발동했군. 기억을 치워 버리기 직전까지 당연히 하던 짓이었으니까. 그래, 너 정령수를 다루는 요령도 많이 늘었어. 이전처럼 덩치 큰 채로 나대면서 날뛰는 것을 자제할 수 있게 되었지.
‘야, 내가 날뛴 것은 아니잖아!’
투덜거림을 소리 없이 토하면서도 투란은 바로 튀어 올랐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통통 튕겨 주려는 듯한 땅바닥, 발목에서 시작된 바람은 투란을 휘감고 감싸 안으면서 몸을 보호하는 살갗처럼 맴돌았다. 그런 채로 단숨에 구름처럼 둥실거리는 허공의 배를 향해 쏜살같이 투란의 몸은 치솟았다.
그렇게 곧바로 배 아래 열린 구멍, 홀시딘이 나왔던 입구를 통해 배 안으로 투란이 들어서마자 본 것은…….
매끈한 차림새의 어느 구석에도 무장이라든가 긴급 상황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 모습, 적당히 턱과 볼에 키운 수염과 이어진 머리카락이 단정한 낯빛과 어우러진 낯익은 얼굴.
“제란드?”
입술 너머로 이름을 소리 내면서도 투란은 조금 당황했다.
늘 팔목과 발목에 최소한의 단도, 쇳조각으로 무장하고 잠들 때조차 떼어놓지 않는 버릇이 있던 제란드가 어째 저런 모습인가?
심지어 제란드는 넓은 타원형 탁자…… 요리가 얹힌 접시가 가득한 식탁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그 몸짓은 식사 준비를 해놓는 듯하잖나.
그리고 투란의 의아한 우물거림에 제란드는 담담하게 대꾸하니.
“오랜만이네, 투란.”
몇 년 만에 보는 상황을 꽤나 무덤덤하게 지적하는 듯한 채로 하던 일…… 여러 사람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 응, 오랜만! 근데…… 뭐야, 그 모습은?”
투란은 엉겁결에 마주 인사하다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묻고 말았다.
제란드는 잠깐 투란을 물끄러미 보는 시늉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조금 더 편리해진 것뿐이야. 대마법사님이랑 아는 사이인 덕분에.”
말과 함께 제란드가 손목을 살짝 뒤트는 시늉을 하니, 곧바로 소매를 덮는 강철 팔찌가 아롱거리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
―호오? 너의 블랙레온처럼 개조해준 모양인데? 아니, 그보다 더 편리해 보이기도 하는군? 손발 어디에라도 바로 장비를 착용시켜줄 있는 모양이야. 흐흠.
“와앗!”
드라고니아의 관찰을 들으면서 투란은 손가락질하며 놀란 소리를 아끼지 않고 내질러 줬다.
제란드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한쪽 의자를 당기며 말한다.
“일단 앉아. 홀시딘이 올라오면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자고. 오래 밀린 이야기를 멀뚱거리며 서서 하기에는 좀 그렇잖아?”
“응? 아, 그렇지! 그런데 이 요리…… 먹을 수 있는 거야? 어째 예전에 시알라가 실패한 것이랑 닮아 보이는데?”
투란이 냉큼 식탁가로 가서 제란드가 내준 의자에 앉으며 식탁 위에 놓인 요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피식, 다시 제란드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 요리 맞아. 단지 이번에는 내가 조리했고, 실패작이 아니지. 먹을 만할 거야. 그런데 홀시딘이 지금 이야기하는 작자는 누구야? 이상한 마도구를 타고 언더섀도우에서 나오는 것 같던데.”
“응? 아, 프릿. 황제폐하야. 뭐, 대충 그런 정도로만 알아 두면 될걸?”
투란의 대답은 시원했다.
당연히 제란드는 함께 시원하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뭔 폐하?”
특이하고 이상해 보이는 작자란 것은 멀리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투란이 하는 말은 제란드가 상상했던 모든 상황, 조건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괴이함만이 가득할 뿐이다!
투란은 제란드가 어이없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드러내는 모습이 꽤나 신중하다다는 것부터 느꼈다.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견고함이 제란드를 휘감고 있는 듯한 분위기…….
―너 안 보는 사이에 많이 성숙해진 모양이군. 얼렁뚱땅하는 너랑 어울리다가 물들었던 성격이 다 빠져나간 모양이야.
드라고니아는 투란을 놀리고 있었다.
그 소리 없는 야유를 외면하며 투란은 제란드에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한다.
“언더섀도우가 좀 이상한 곳이야. 프릿은 거기 대장님…… 두목? 아무튼 그런 입장인데 호칭이 그래. 망할 황제폐하라고 부르기도 하고.”
“별명이 특이하군.”
제란드는 대충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제란드의 태도가 아쉽다는 듯이 투란에게 중얼거린다.
―야, 진짜 황제폐하잖아. 인왕도는 언더섀도우의 나라라고. 거기 임금님이고 이제는 진짜 황제답다니까.
‘응? 몰라, 기억나는 것 없는 내가 뭘 알겠어? 어차피…… 임금님답지도 않잖아? 그냥 넘어가.’
가만히 언더섀도우에 대해 기억나는 부분을 더듬다가 투란은 시원하게 흘려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화제를 돌리려는 듯이 접시를 당기고 그 위에 담긴 고기를 집어 먹으면서 바로 감탄하는 말을 쏟아낸다.
“와아! 정말 맛있네! 시알라가 실패하지 않았으면 이런 맛이 나는 거였구나! 하핫, 맛있어! 다른 요리도 할 줄 알아? 와아, 음식점을 차릴 생각이었어? 다들 재주가 늘었나봐! 하핫.”
“다들…… 네가 기억하던 모습이랑 많이 달라졌지. 알드바인도 꽤나 변했어. 뭐, 알드바인의 중심인 상아탑의 마스터가 대마법사로서 활약하기 시작했으니까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야, 투란! 천천히 먹어!”
제란드는 적당히 대꾸하다가 어느 틈엔가 두 손으로 음식을 집어 입안에 퍼붓는 투란을 보며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전이라면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한 외침이었겠지만 지금 제란드는 혀를 차며 투란 앞에 마실 것을 밀어놓으면서 급히 먹다 체하지 말라 다독일 뿐이었다.
―흐흠, 정말 성숙해졌군?
드라고니아가 늘 아옹다옹하던 네 남매의 모습을 되새기듯이 중얼거렸다.
투란도 문득 제란드가 자신이 기억하던 날선 듯한 모습과 다르게 꽤나 부드럽고 강인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남매의 한편에 서서 지켜보며 경계하던 제란드의 모습이 메아리처럼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때만큼 날카롭지는 않았다. 대신 훨씬 더 견고하고 안정적이었다.
이렇게 훑어보는 투란을 제란드 또한 느낀 듯.
“처음 보는 수상한 사람이냐? 뭘 그런 눈으로 쳐다봐?”
슬쩍 놀리는 말을 덧붙이고 있기도 했다
그래도 더 지그시 보는 척하면서 투란은 볼이 미어터져라 요리를 욱여넣을 뿐이었으니, 결국 다시 제란드가 툭탁이듯이 천천히 먹으라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투란과 제란드가 식탁 앞에서 서로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하듯 요리를 놓고 아옹다옹하는 시늉을 할 때, 여전히 열린 입구를 넘어 한 사람이 더 치솟아 올랐다.
“호오? 요리까지 준비가 되어 있군? 배의 거실인 셈인가? 아니면 식당? 하늘을 나는 퍼브라 해도 믿을 수 있겠군.”
느릿하니 식탁 앞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에스탄이 말하고 있었다.
제란드는 그런 에스탄을 눈짓하며 투란에게 바로 말한다.
“투란, 소개.”
“응? 아, 에스탄! 여기 제란드예요. 제란드, 저 할배는 에스탄. 재상님이라고 부르면 될걸?”
투란의 소개는 매우 두서없고 성의도 없었다.
제란드가 한숨을 쉬었고, 에스탄을 향해 눈길을 보내면서 말한다.
“제란드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상아탑의 마법사님을 보조하는 역할로 여기 따라온 몬스터 헌터지요.”
투란은 그런 제란드를 흘깃하면서 우걱우걱 다시 여러 요리를 입안에 욱여넣고 있었다.
그런 투란을 어이없다는 듯이 흘깃하고 에스탄 또한 제란드에게 자신을 소개하니.
“언더섀도우에서 탈출하는 늙은이라네, 재상이니 뭐니 하는 말은 의미가 없고…… 투란에게 알드바인을 소개받아 그곳에서 살아볼 생각을 하고 있지. 아래 마법사께서 이 부운선(浮雲船)으로 알드바인까지 동행해도 괜찮다 해서 올랐네만.”
“마스터 홀시딘이 동행을 허가했다면 이 배 안에서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뭐, 그래봐야 마스터 홀시딘과 저, 둘만 타고 오기는 했지만요. 투란에게 맡긴 일이 그렇게 소문낼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촐하게 오게 되었습니다만, 무슨 일인가 알고 계십니까?”
제란드가 식탁 한곳에 의자를 당기며, 마치 에스탄을 그 자리로 초대하는 듯한 몸짓과 함께 말하고 있었다.
에스탄은 망설임 없이 그 자리로 가서 앉으며 대꾸한다.
“마석이란 것이 소문나면 좋은 일보다는 귀찮은 일이 더 많기는 하겠지. 아, 제란드 씨도 알고 있는 일이기는 했나?”
“아주 대충 듣기는 했습니다. 투란을 도와주신 겁니까?”
제란드가 다시 새로운 잔과 접시, 식기를 꺼내 에스탄에게 건네면서 물었다.
에스탄이 가만히 건네받은 잔에 음료를 따르면서 대답한다.
“아마도?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나중에 투란에게 대충 들어야 할 거야. 뭐, 투란도 대충 넘어가지 않을까 싶네만.”
“그렇군요. 그러면 다른 분은 동행하지 않는 겁니까?”
제란드는 간단하게 화제를 넘기고 있었다.
에스탄의 상황에 대해서 굳이 캐물을 생각이 없다고, 그저 동행하는 상황에만 충실할 뿐이라는 것처럼.
에스탄은 그런 제란드를 보면서 빙긋 웃는 채로 대답한다.
“아마 그럴 거야. 아무리 알드바인에 대해 호기심이 넘쳐난다 해도, 당장은 상아탑 마법사와 거래를 열게 된 정도만으로 만족하고 돌아가야 할 테니까. 뭐, 다른 친구 하나는 얼렁뚱땅 함께 갈 궁리도 한 모양이지만…… 저렇게 들러붙어 왔으니 우리 중 한 명은 제물로 남아줄 수밖에 없거든.”
투란은 에둘러 말하는 에스탄을 흘깃했다.
돌아가야 하는 것은 프릿, 따라붙을 궁리를 한 것은 칼탄일 터였다.
하지만 에스탄은 모두 에둘러서 두리뭉실한 말을 할 뿐이었다.
제란드도 자세히 캐묻지 않았고, 그저 공중을 나는 배에 올라선 손님…… 투란까지 포함한 손님들에게 안락한 식사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는 듯했다. 그런 모습 때문에 투란은 적당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뭐 먹는 사람이 많았어?”
“응? 뭐…… 공중에서 정탐하는 동안에 배가 고프면 먹을 수밖에 없잖아?”
어쩐지 제란드의 대답도 두리뭉실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잖는가.
―야, 그것보다 이 배가 어디서 난 거냐고 물어야지. 그사이에 홀시딘이 만들었는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얻어다가 마법을 둘러친 것인가.
드라고니아가 자신의 호기심을 투란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물론 투란 또한 궁금한 일이었으니 바로 물을 수 있었다.
“정탐?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비행 마도구란 말은 들어봤지만, 대부분 잠깐 날다가 내려오는 정도였다고.”
“비행도구이기는 하지만 마도구는 아니야, 투란. 흐흠, 그러고 보니 룬디아크 공방과 거래를 시작하기도 전이었구나, 투란 네가 알드바인에서 새어 나간 것이.”
“에? 새어 나가다니……!”
“거의 야반도주한 걸로 알려져 있으니까, 자주 듣게 될걸?”
“헐? 뭔 야반도주를!”
왠지 짓궂어지는 듯한 제란드의 말투, 그 내용에 투란은 황당해서 진담이냐는 듯이 쏘아볼 수밖에 없었다.
제란드는 빙긋 웃으면서 에스탄을 향해 눈길을 보내며 말한다.
“투란이 알드바인에서 떠났을 무렵의 이야기를 하던가요?”
“아니, 전혀 못 들었어. 그냥 알드바인의 상아탑, 저 아래 있는 마스터에게 의뢰를 받아 온 것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지. 함께 한 시간이 길었지만, 투란은 자기 이야기는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네.”
에스탄이 냉정하게 짚듯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이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기억을 지우듯이 치워 버렸으니, 뭘 말하고 뭘 말하지 않았는가 짐작도 안 될 뿐이었다.
―의뢰 말고 소소한 신상 따위는 이야기한 적 없다. 뭐, 과거에 대해 여유롭게 떠들 시간이 없었다고 해야겠지. 아무튼, 지금 에스탄이 말한 대로야.
드라고니아가 도움 주듯이 말했다.
그사이에 제란드는 가만히 한쪽에 앉아 자신의 잔을 채우고서는 음유시인 같은 분위기를 띠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갑작스럽게 몬스터 로드가 되면서 자신을 통제하기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투란은 잠시, 떠날 때는 정말 잠시라 생각하고 알드바인에서 도망쳤지요. 그대로 도시 안에 머물면서 일을 처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조금 지독한 몬스터의 정수를 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는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전혀 알 수 없어 투란은 맹하니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홀시딘이 널 위장시키기 위해 꾸며준 이야기 같군.
그나마 드라고니아는 뭔가 단서를 되짚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