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4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33)
에스탄의 요청은 얼렁뚱땅 거부되었다.
이미 바람의 길을 타버렸고, 도달할 곳이 루바인 근처로 설정한 다음이란 때문이었다. 덕분에 에스탄은 주름 맺힌 입술을 삐죽거리는 채로 의자에 앉아서 투덜거리고 싶다는 표정인 채로 구경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 구경당하는 입장이 조금…… 꽤 많이 묘하기는 했지만 투란은 홀시딘을 재촉해서 도대체 무슨 몬스터가 나타났느냐고 물어야 했고, 홀시딘은 가는 동안에 상황설명을 마치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하나는 화이트 레이크의 어딘가에 보금자리를 지닌 괴수로 추정된다만, 안개를 몰고 다니고 그 속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전부라서 정확하게 정체를 파악하지도 못했어. 하지만 그 정체모를 놈이 화이트 레이크를 범람시키고 물기둥으로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점은 확인했지. 애초에 발견된 곳은 그래도 알드바인과 반대편의 호숫가 쪽이었지만 서서히 호숫가를 맴돌면서 루바인으로 옮겨왔고, 그대로 두면 확실하게 루바인을 수몰(水沒)시키고 알드바인까지 덮칠 놈이지. 그래서 그 괴수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고 가능한 한 루바인에도 닿지 않게 하려 했는데…… 엎친 데 덮친다고 루바인 근처에서 어쩌다 한번 보일까 말까 하던 괴물 놈이 본격적으로 얼쩡대면서 그 주변을 자기 둥지로 삼겠다는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어. 이놈도 정체가 애매모호하기는 하다만, 그나마 비슷한 몬스터가 기록에 있기는 했다. 그래서 그에 준하는 대책을 꾸민답시고 꾸몄다면, 잘 안 통해. 완전히 같은 품종이 아닌 탓도 있지만, 닮았으면서도 이래저래 차이가 많이 나는 데다가 원래 기록된 놈도 제대로 잡았다는 얘기는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단서가 없거든.”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결국 안개를 모는 괴수가 아니라, 루바인 근처에서 본격적으로 날뛰는 몬스터에 집중하려는 듯했다. 한데 어째 그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듯하고 기록에 있는 닮은 놈에 대해서도 홀시딘은 가득 짜증이 난다는 듯, 넌더리가 난다는 듯이 말 꺼내기 싫다는 태도가 너무 또렷하지 않는가.
해서 재촉하는 듯이 투란이 제란드에게 입술을 달싹이며 소리 없이 묻는 시늉을 했다. 도대체 그 기록에 있는 닮은 놈은 뭐냐고.
이를 본 제란드는 이야기를 할수록 자제했던 울화를 뭉클거리며 피워내는 홀시딘을 흘깃하고는 가볍게 헛기침과 함께 끼어들어 간단하게 덧붙이듯 말한다.
“오러 몽거. 기록된 것 중에 가장 닮은 괴물은 오러 몽거야.”
“그래! 아주 닮았지! 색칠놀이라도 한 것처럼 색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부터 차이가 팍팍 나기는 한다만!”
홀시딘이 바로 울화가 터져 나오는 것을 억누르는 듯한 사나운 목소리로 보태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맹하고 멍한 표정으로 ‘오러 몽거? 색칠?’이라고 되뇔 수밖에 없었고, 곧바로 이어지는 홀시딘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보랏빛 체모(體毛)! 황금빛 눈동자! 손톱도 털에 포함되는 놈인지, 역시 보랏빛이다. 눈알은 새하얗지. 그리고 그 몸 빛깔은 아주 새파란 놈이야. 멀리서 보면 보랏빛 털모자를 투구처럼 뒤집어쓰고 보랏빛 가죽 반바지를 꿰입고, 새파랗게 근육 자랑하는 얼간이처럼 보여! 그렇게 생긴 채로 아낌없이 괴력을 뿜어낸다. 하지만 오러는 흘려 내지 않아. 색깔만 다르고 오러 몽거가 아닌가, 아니면 어디서 풀려난 오우거가 미쳐서 그리 된 것인가 갖은 추측을 다 해 봤지만 녀석은 확실하게 오우거 계열의 몬스터는 아니야. 그렇게 생겨서 아니라니까 더 황당하기는 하다만…….”
“잠깐, 잠깐만요. 오러 없이 괴력이라면, 어느 정도 괴력인데요?”
투란이 손을 들어 홀시딘의 울화를 멈추면서 물었다.
홀시딘의 입이 잠깐 다물어졌다.
대신 제란드가 냉큼 대답한다.
“루바인의 장벽, 웬만한 오우거가 와서 두들겨도 멀쩡하게 버틴다는 아스텔 산(産) 강철로 만든 장벽을 쥐어서 우그러뜨리고 쳐서 구멍을 낼 지경이지.”
“아스텔 산이면, 공방 아저씨들이 값을 무조건 두 배로 붙여놓은 그 쇳덩이?”
투란은 문득 떠오른 기억을 되뇌었다.
알드바인의 공방에서 내놓는 상품…… 도검이나 방패, 무엇이든 간에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소재인 쇠의 가격에 따라 완성된 제품의 가격도 달라지고는 했다. 그중에서 제법 비싼 것이 아스텔의 철광맥에서 캐내고 정제한 강철이라 했었잖나?
제란드가 ‘그거 맞아.’라고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투란의 입에서 저절로 쌍욕처럼 튀어나오는 말이 있었다.
“그걸로 벽을 만들었다고? 돈이 썩어나!”
어흠, 하는 헛기침이 홀시딘의 입가에서 새어 나오며 말도 이어진다.
“루바인의 상황은 특수하니까. 알드바인에서도 좀 지원해서 만든 장벽이다. 덕분에 어지간한 몬스터는 루바인의 장벽을 감히 넘어 볼 엄두도 못 냈지. 이놈도 그 장벽을 우그러뜨리고 몇 군데 구멍은 냈다만, 허물고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뭐, 그놈이 두들기기 전부터 루바인 쪽 헌터와 마법사들이 격렬하게 공격을 퍼부은 탓이 크다면 크겠지만…… 아무튼 그놈이 하는 대로 뒀다가는 그냥 뚫린다는 것만은 확실하지. 그래서 그놈이 심상찮게 어른거릴 때부터 일찌감치 멜란드가 가 있었고, 그럭저럭 놈의 주의를 끌어서 버티고는 있다.”
“주의를 끌어서 버텨요?”
투란이 흠칫하며 제란드를 돌아보는 채로 물었다.
말은 홀시딘에게 되묻는 듯했지만, 그렇게 막내를 굴려도 되느냐고 제란드에게 묻는 듯한 눈길이었다.
제란드도 투란의 눈길이 무슨 뜻인가 안다는 듯, 마주 보는 채로 대답하고 있었다.
“괴력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멜란드의 두 다리는 그보다 훨씬 빠르니까. 방심하지 않으면, 너무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엉겨 붙을 일이 없어. 그리고…… 애초에 함께 간 마법사가 멜란드를 잘 아니까 그런 실수를 못하게 막아주기도 할 테니까. 물론 누나랑 형이 좀 말리기는 했어. 하지만…… 멜란드도 어른이니까. 그래도 페란드 형이 상황 심각하다는 말에 바로 합류하러 갔어. 난 마스터 홀시딘과 함께 널 찾기 위해 왔고.”
가만히 듣던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
만약 투란이 언더섀도우에서 나와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제란드가 언더섀도우로 뛰어들 작정이었다는 것.
홀시딘도 그럴 경우의 지원을 위해서 이렇게 거창하게 부운선, 하늘을 나는 배에 갖은 마도구를 잔뜩 쟁이고 숨겨왔다는 것.
미묘한 한숨을 참으며서 투란이 다시 상황을 되놰 보는 듯하다가 묻는다.
“오러를 쓰지는 않는다면, 마법이나 다른 공격이 상처를 입히기는 한다는 뜻인가요? 오러 가드 같은 재주는 전혀 없고?”
살짝 잔을 입에 대는 듯했던 홀시딘이 바로 대답한다.
“그 새파란 가죽이 어지간한 가죽 갑옷…… 아니, 겹으로 두른 가죽 장갑보다 더 튼튼해. 그렇다고 강철만큼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 마력에 대한 내성, 외부충격에 대한 내성이란 측면에서는 굉장하다만 헌터의 칼질도 그럭저럭 살갗에 흔적은 남겨. 상처라 하지는 못할 정도지만, 아무튼 분명히 헌터의 장비, 마법의 공격에 질기고 강하게 저항은 하지만 통하기는 하는 셈이야. 문제는 그놈이 가만히 멀뚱거리면서 그런 공격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점이겠지. 멜란드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놈의 민첩성도 어지간한 오러 윌더에 견줄 정도는 되거든. 그래서 멜란드가 주의를 끌며 녀석이 루바인의 장벽을 부수는 일에 골몰하지 않도록 훼방 놓는 중인 거지. 멜란드에게 결정적으로 놈의 가죽을 뚫을 한 방이 있었으면 바로 제압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만…… 아케인 스피어로도 흠집만 나고 피 한 방울 안 흘리는 놈이다 보니 어떻게 못하고 있는 모양이야.”
“아케인 스피어라면…… 그거 웬만큼 두꺼운 성벽에도 구멍 낸다는 마법의 창이었지요?”
투란은 눈가를 찌푸린 채로 중얼거렸다.
아케인 스피어는 그 위력도 위력이지만, 무엇보다 겨냥한 대상을 확실하게 적중시키는 것이 더 대단한 마법이었다. 마법사의 인지 범위 안에 있다면 반드시 적중당할 테고 그렇다면 강철의 성채라도 관통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홀시딘이 더 못 참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루바인의 장벽에 구멍을 뚫을 수도 있는 마법이지. 애초에 케이라가 거기 간 것도 멜란드가 주의를 끄는 사이에 아케인 스피어로 그 괴물의 팔다리라도 끊어버릴 작정이었다만…… 맞혀도 가죽이 버텨 내면서 출혈조차 못 일으킨다는 것만 확인했지. 상당히 의외였다. 공방의 좋은 도검류에 흠집이 날 정도니까, 파격적인 마법이면 확실히 끝장낼 수 있다고, 맞추기만 하면 정리될 것이라고 여기고 갔었거든. 정신 사납게 하는 안개의 괴수에 대처하려면 일단 주변 정리부터 해야 한다고 말이야. 단순히 마력만으로 이뤄진 아케인 스피어라서, 놈의 항마력이 강해서 그런가 싶어서 케이라가 아예 투창에 적응시킨 아케인 스피어까지 써봤다고 하던데, 역시 안 통했어. 그 얘기를 듣자마자 너부터 데려가려 온 것이야. 너라면…… 음, 어떻게든 할 방법이 있잖냐.”
투란은 홀시딘이 말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금방 눈치챘다.
―용암에 빠뜨려 죽이자는 얘기로군.
드라고니아도 픽 새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곁에서 구경만 하는 듯했던 에스탄도 눈치챈 듯한데, 살짝 웃음을 머금은 채로 나오는 에스탄의 말은 예상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확실히 투란이라면 마그마의 뇌옥으로 가둘 수는 있겠군. 하지만 투란, 그놈…… 뜨거운 화염에 대해서도 지독한 내성을 지니고 있어. 그놈은 자신을 해치려 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강력하게 적응하고 저항 능력을 갖추거든.”
“응? 에스탄…… 뭔지 알아요?”
흘려듣던 투란이 흠칫해서 바로 물었다.
제란드도 홀시딘도 놀란 표정으로 에스탄을 바라봤다.
톡톡, 가만히 탁자를 두어 번 손끝으로 두드리면서 에스탄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이야기를 잇는다.
“새파란 살갗, 보랏빛 털, 황금빛 눈동자. 터무니없는 괴력에 금방 상처입는 듯하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는 특이한 몸뚱이. 그놈, 언더섀도우에 한번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놈을 처리했던 자가…… 드라클레스, 용혈의 드라클레스였지. 이겼다든가, 잡아 죽였다든가 한 것은 아니야. 쫓아냈을 뿐이었어. 벌써…… 수십 년 전이었군. 갑작스럽게 흡혈종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다 짓이기고 물어뜯고 다니면서 난장판을 만드는 놈이 나타났었던 것이…… 인왕도이든 혈족이든 상관없이 날뛰는 놈이라서 많이 곤란했었다만, 우리 황제폐하가 잽싸게 뱀파이어에게 떠넘기는 책략을 발휘했었어. 정말 치사했지만, 아주 잘 통했다고 해야겠지? 아무튼, 자신의 무력을 자랑하는 뱀파이어들에게 놈은 꽤나 흥미로운 상대였다. 대부분 박살 났지만, 드라클레스가 나서서 결국 내쫓기는 했어. 그때 드라클레스가 놈을 일컬어 부르던 이름이…… 바르키마? 바르바키마? 그 비슷한 말이었다. 무슨 뜻이냐를 나중에 들었는데, 미친 물결이라더군.”
듣는 이들이 다 같이 멍하니 눈만 깜박이는 와중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한숨 섞인 듯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바헬키마. 광폭한 난동의 물결이란 뜻이다. 드라코눔 문명의 오랜 전설에 등장하는 용사 이름이다만, 그걸 괴물에게 붙여놓다니…….
‘나도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야?’
―글쎄…… 온갖 이야기를 다 듣기는 했다만, 바헬키마란 이름은 오늘 처음 나온 것 같군. 그냥…… 드라클레스가 난폭한 괴물, 괴수, 마물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꽤나 많았으니까.
‘으흠…….’
투란은 애매한 말에 눈가를 살짝 구기면서 에스탄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구체적인 약점이라든가, 습성은…… 들은 적 없어요?”
에스탄이 물끄러미 투란을 보는 듯하니 히죽 웃었다.
“드라클레스의 모험담은 넘쳐났지. 뱀파이어에게도, 인간 사이에서도. 하지만 그 용혈의 일족, 홀로 일족을 이룬 그 놈의 상대에 대해서는 인간들에게 제대로 전해진 바가 없었지. 그 바키마, 바르키마인가 하는 경우는 한참 난동을 부리다가 쫓겨났다는 것만 확실했었다. 그런데…… 그때 쓴 방법이 놈을 소용돌이치는 포털로 몰아넣었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소용돌이……?”
투란이 움찔하면서 말을 흐릴 때, 홀시딘이 바로 꽤액 하듯이 외친다.
“소용돌이 포탈이라면, 춤추는 산맥 안으로 통하는 전이의 늪이잖아!”
제란드가 이에 ‘아하!’ 하면서 알았다는 듯이 몇 마디 보태는데.
“과연 소용돌이 늪이라면 꽤나 그럴듯한 처분방법이겠군요. 그게 다시 기어 나오지만 않는다면…… 으음.”
중얼거리다가 문득 안 좋은 것을 떠올린 듯이 눈살을 구기며 말을 흐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안 좋은 부분을 이미 확실하게 파악한 듯, 홀시딘이 으르렁거리면서 에스탄을 향해 묻는다.
“그놈, 그놈이 같은 품종이라도 다른 놈이 아니라 바로 그놈인가 아닌가 확인할 어떤 특징 없소? 그러니까…….”
에스탄은 홀시딘이 묻고자 하는 바를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대답한다.
“드라클레스가 그 괴물을 몰아넣을 때, 자신만의 고유한 무투술…… 용의 손톱이란 강력한 기술로 등짝을 확 찢어서 등뼈를 드러낼 정도의 상처를 입혔다고 하더구랴. 네 갈래의 손톱자국은 아무리 대단한 괴물이라도 상당히 오래 흉터를 간직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오. 뱀파이어 녀석들이 그 업적을 칭송하면서 네 갈래 흉터의 괴물이 다시는 언더섀도우의 고요한 어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 노래를 부르더구랴.”
“썩을! 바로 그 새끼가 기어나온 거 맞구만.”
꽉 다물린 입으로 이를 갈다가 홀시딘이 으르렁거렸다.
제란드도 한숨을 쉬면서 의아해 하는 투란에게 말한다.
“있어, 네 갈래 흉터. 등짝에 확실히.”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