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4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34)
부운선, 뜬구름처럼 허공을 부유하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홀시딘이 바람의 길에 올려놓은 배는 구름처럼 둥실거리며 느릿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번개처럼, 질풍처럼 하늘 높은 곳을 돌파하며 산맥을 넘고 강을 넘어 알드바인의 풍경을 하루도 안 되어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까지 이르렀다.
이야기를 나누고 요리를 배불리 먹은 다음에 멀뚱거리며 그 풍경을 바라보게 된 투란이 바로 투덜거렸는데.
“아니, 알드바인에 들렀을 수도 있잖아요! 이게 뭐야!”
에스탄 또한 바로 눈살을 찌푸리면서 슬그머니 거든다.
“아예 다른 방향인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마법사, 좀 심하게 짓궂구랴?”
한참 요리를 맛보면서 다가올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동안에는 잠시 잊고 있는 듯했던 일을 다시 따져보겠다는 것처럼 되짚는 셈이었다. 심각한 상황을 몰라라 하는 듯한 태도로 보이기 쉬운 모습이기도 했다.
때문에 홀시딘은 어이없어 한숨을 쉬었고, 제란드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투란과 에스탄이 생각보다 고집스럽게 ‘왜 잠깐 들르면 안 되었던 것?’이라는 눈길을 짙게 흘려보내니, 어쩔 수 없는 짜증을 섞어 홀시딘이 으르렁거리듯이 대답을 해준다.
“바람의 길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가속한단 말이야!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되어서야 감속을 하지!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그렇게 구상되고 구성된 마법이니까! 알드바인에서 루바인에 이르는 거리를 멈췄다 다시 가는 것은 이대로 가는 것보다 반나절은 더 걸릴 테니까, 지금 그렇게 느긋하지 않다고 여태 열심히 얘기해줬잖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날뛴다니까! 그대로 두면 루바인은 으깨지고 호수는 범람해서 알드바인까지 잠긴다고! 안전한 곳으로 은퇴한다고 하지 않았소, 에스탄? 투란, 너도 오랜만에 느긋하게 알드바인의 거리를 걷고 쉬고 싶다며? 지금 내려가서 그렇게 며칠 쉬다가 물에 홀랑 잠기고 싶냐?”
잔소리치고는 길고 강렬했다.
에스탄이 슬그머니 낯선 풍경이 흥미롭다는 듯이 눈길을 돌렸고, 투란은 혀를 날름하면서 ‘누가 당장 내리자고 했어요?’라는 웅얼거림과 함께 불만을 꺼낸 적이 없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투란은 알드바인의 남쪽 성벽의 풍경을 봤다.
고대의 거대한 신목, 거기 자리 잡은 남매의 거처이자 자신의 거점…….
알드바인의 성벽과 함께 전보다 층이 더 높이 올라간 듯한 건물들도 보였다.
호수에 맞닿은 해자 거리는 이전과 다르게 뚜껑, 혹은 지붕이라 불릴 만한 구조물을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멀어지면서 자꾸 작아지는 기억과 다른 기묘한 풍경…….
그 조그맣게 오그라드는 광경을 눈에 담으며 투란이 바로 제란드에게 묻는다.
“시알라는? 그냥 집 지키는 거야?”
“손님이 많으니까. 여관이면서 주점이기도 하잖아. 게다가…… 누나랑 키유나가 함께 일을 한다고 해도…….”
느릿하니 나오는 제란드의 대답, 거기 섞인 이름이 투란을 흠칫하게 했다.
이를 바로 포착한 제란드가 하던 말을 뒤틀어 덧붙이고 이야기를 잇는다.
“키유나도 이제는 제법 퍼브의 점원 티가 나지. 누나랑 둘이 쌍으로 황금매의 마녀들이라고 불릴 때도 있어. 뭐, 진짜로 마법을 쓴다는 의미가 아니라…… 취객을 쥐어 패서 버릇을 고쳐준다는 뜻으로 말이야. 응, 너 없는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지. 그러니까…… 얼른 루바인의 일을 정리하고 돌아가자.”
살짝 다독이는 말투이기도 했기에 투란은 풋 하는 새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쨌든 문제가 몰아닥쳐 오는 알드바인에서 멀뚱거리며 재난을 기다릴 생각이 없기도 했으니까.
“그러면…… 루바인까지 얼마나 남았는데요? 가속해서 더 빨리 도착한다는 말이었잖아요? 산맥까지 넘어왔는데, 설마 하루를 더 가지는 않겠죠?”
“이 속도로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해. 하지만 감속에 반시간 정도 걸릴 수는 있겠어. 멀리 움직일수록 빨라지니까, 그만큼 감속도 시간이 좀 걸리지. 그래, 순수하게 바람의 길을 이용한 것이 아니고, 이런 배를 끼워 넣은 탓이지. 그냥 맨몸으로 바람의 길을 탔다면…… 좀 어질어질하고 배 속을 게워내는 일은 있더라도 가속의 힘을 뒤집어서 단번에 감속할 수 있었겠지만, 이런 운송수단이면 감속 쪽도 다르게 돼버리니까. 아무튼 투란, 도착하기 전에 정리해보자. 여태 한 이야기 중에 뭐 이상하거나 미심쩍거나 따로 확인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나? 잘 정리해서 기억하고는 있는 거지?”
홀시딘은 이러쿵저러쿵 툴툴거리는 듯하다가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투란은 자신의 기억을 덮은 부분이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마법사의 눈초리를 금방 깨달았고, 담담하게 들은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듯이 하나씩 짚어 대답을 하기로 했다.
“튼튼하고 힘센 오우거 같지만, 오우거보다 골치 아픈 몬스터. 보다 정확한 특성은 멜란드랑 마스터 케이라가 확인 중. 하지만 웬만해서는 사냥할 수 없는 강인한 몬스터란 점만큼은 이미 확실하고…… 루바인을 위협하는 그 녀석이 문제가 아니라 안개를 몰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빠르게 치워야 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요점을 잡은 셈이죠?”
“그래. 루바인에 도착할 때까지, 힘쓰기 좋게 쉬고 있어도 되겠다.”
홀시딘은 투란의 말을 음미하는 듯이 듣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봐야 금방이란 것을 알기에 투란은 입술을 삐죽였다.
에스탄이 그런 투란을 보고 혀를 차는 시늉을 하다가 홀시딘을 향해 묻는다.
“일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여기 안전하게 앉아만 있어도 되는 것이오?”
“대단한 전투병기를 지닌 분이라고, 프릿 님이 그럽디다만?”
조금 느릿하게 홀시딘이 되묻고 있었다.
에스탄은 바로 코웃음을 쳤다.
“이 늙은 몸을 지키는 가드에 불과한 것이오. 도적이나 짐승을 상대로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도시를 위협하는 몬스터 앞에서는 날 피신시키는 것도 벅찬 유물이외다. 프릿이 날 골탕 먹이려고 하는 말에 혹하지 마시오, 마법사.”
홀시딘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꼴을 보고 투란이, 제란드가 어이없어 하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끌어들일 수 있는 작자는 몽땅 끌어들여서 몬스터와 대항하려는 의도를 숨길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마법사……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일에 남을 끌어들여 몬스터 앞에 제물로 내밀려는 수작을 부리려는 마법사가 아닌가!
본인도 나서는 상황이니 딱히 남의 등만 떠미는 꼴은 아닐지 몰라도,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끌어들이려는 태도가 좋아 보일 리는 없다.
“마스터 홀시딘, 여전하군요.”
투란이 뚱하니 퉁명스러운 낌새를 잔뜩 담아 중얼거렸다.
곧바로 홀시딘이 냉정한 코웃음과 함께 으르렁거림을 가득 담아 대꾸한다.
“도움이 많을수록 좋잖아! 힘이 있는 채로 뒤에 앉아 구경만 하는 꼴이 얼마나 흉한데!”
“그야 이분이 알드바인에 정착할 경우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제란드가 툭 끼어들며 혼잣말이란 듯, 다른 곳을 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홀시딘이 그런 제란드를 노려보며 입술을 달싹이려다가 꾹 다물었다.
더 떠들어서 나쁜 인상을 남길 생각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에스탄이 그런 홀시딘을 향해 가벼운 웃음을 띤 채로 말한다.
“상황 봐서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도울 겁니다만, 적당한 보상은 당연히 요구할 겁니다. 뭐, 이번 일에는 아무래도 별 도움이 안 될 듯하지만…….”
“보상은 당연히 합니다, 상아탑이 무슨 강도도 아닌데!”
불끈한 채로 다물었던 입을 확 열면서 홀시딘이 외쳤다.
투란이 재빨리 그 틈새에 끼듯이 말한다.
“어떤 보상이 걸렸어요? 현상금은 따로 나와요?”
잠시 홀시딘이 눈을 껌벅이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음, 미친놈 보는 눈인데? 틀림없어.
드라고니아가 그 눈길을, 마법사의 표정을 해석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홀시딘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아예 확실하게 하자는 듯이 묻는다.
“설마…… 그냥 일해달라는 얘기는 아닌 거죠?”
“아냐, 당연히 아냐!”
왠지 살짝 느린 홀시딘의 대답이었다.
제란드가 키득키득, 저쪽 구석으로 눈길을 돌린 채로 웃었다.
투란이 조금 더 눈길을 가늘게 하면서 보채는 말투로 묻는다.
“그래서 뭐예요? 그 정체불명의 오우거 닮은 놈에 대한 보상은 뭐고, 현상금은 얼마나 나와요?”
“전례가 없는 놈이라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것은 없어. 당연하잖아! 하지만 그런 놈을 잡았는데 그냥 넘어가겠냐? 보상이나 상금 따위는 잡고 나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알아서 잘 챙겨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보다…… 투란, 언더섀도우에서 어떤 몬스터를 단련했지? 머리로 기억 못해도 몸으로 기억하는 것은 있을 텐데?”
“글쎄요? 에스탄?”
투란은 잠깐 움찔하다가 에스탄을 돌아봤다.
에스탄이 고개를 끄덕하면서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에 투란은 투명한 창문을 흘깃하며 지나치는 풍경을 구경하는 시늉을 했다.
홀시딘이 그런 투란을 보고 피식 웃고는 손뼉을 쳤다.
순간, 투란과 에스탄이 동시에 흠칫하며 놀랐다.
갑자기 바닥이 훅 사라졌으니까.
제란드가 혀를 차며 바로 외친다.
“투명해진 것뿐이야, 바닥이 사라진 건 아니야.”
“어, 밟혀지니까 알아, 알기는 알았는데…….”
투란이 미적거리며 대답하는 채로 발바닥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투명해져서 지나가는 지상의 풍경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지만, 바닥의 재질은 변함없이 튼튼했다.
아래로 휭하니 떨어질 일 따위는 분명히 없었다.
그래도 공중에 뜬 채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상황은 피할 수가 없기는 했다.
에스탄이 이에 대한 감상을 헛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이것 참…… 묘한 마법이군요. 방벽을 세우고 그 너머를 그대로 볼 수 있다니, 꽤나 창의적이오. 처음부터 투명한 소재로 만든 것은 아닌 듯하고…… 셀리아가 봤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따져봤겠군.”
“마법사라면 다들 호기심을 보이겠지요. 그래서 투란이 단련한 몬스터는 어떤 것이오?”
홀시딘이 빠르게 묻고 있었다.
여유로운 듯이 풍경을 보게 해주기는 했지만 본래 용건을 전혀 잊지 않고 바쁘게 짚는 모습이었다.
에스탄도 그런 홀시딘에게 동조하듯, 하던 이야기를 잇듯이 말한다.
“투란은 드라클레스와 결전 이후에 블루 드라고의 힘을 단련하며 자주 사용했소. 언더섀도우에 원래 드라클레스의 명성이 크기도 했고, 본격적으로 용족의 형태를 드러내서 드라클레스를 대신하는 척하는 것이 유리했으니까.”
“용족?”
홀시딘과 제란드가 동시에 되뇌었다.
어이없다기보다는 도대체 그런 괴물은 또 언제 잡았느냐고 투란에게 묻는 듯한 눈길도 함께 흘려 내는 둘이었다.
투란은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는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떠드는 이야기가 꽂혀 들고 있었다.
―뱀파이어들을 움츠리게 하려는 선전용으로 사파이어 티란트의 형태를 드러내고 과시하기는 했다만, 실제로 네가 가장 잘 써먹은 것은 블랙 앤트야. 카보닉을 실어 나를 수도 있고, 미세 영역에서 여러 가지 균사(菌絲)를 키우고 조작할 수 있었거든. 악마의 심장, 카보닉과 연계해서 지금 네 몸의 곳곳에 서식하는 중이기도 하다.
‘피에 섞여서 거뭇하게 꾸물거리는 것이 전부 카보닉은 아니었다고?’
뒤늦게 투란도 느낄 수 있었다.
핏줄을 따라 헬임프의 ‘불꽃같은 피’와 함께 맴도는 것이 단순한 역병이 아니었고, 그 안에 또 다른 나노미터 단위의 몬스터가 섞여 있다! 너무 미세하고 섬세한 채로 철저하게 조율되어 몸과 동조된 ‘개미’랑 닮은 괴물이 피와 함께 흐르고 있다!
잠깐 살펴봐도 이딴 것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었는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아케인 라바 비스트, 그 괴물들 틈새에서 영역을 구축한 채로 언데드를 갉아먹고 뱀파이어를 말려 죽이는 군집형태의 몬스터이지. 뱀파이어의 피를 제어하는 수단으로도 잘 써먹었어. 음, 물론 증식시키지 않으면 지금은 그냥 핏속에 섞여 존재만 할 뿐이다. 애초에 언더섀도우 밖에서 쓰지 않을 예정이었다만…….
‘에? 그런데 왜 말한 거야?’
투란이 듣다보니 기억도 못하는 것이 당연한 듯한데, 드라고니아가 느닷없이 폭로를 하고 있는 셈 아닌가.
―사파이어 티란트를 꺼낼 참이었으니까. 애초에 그러기로 한 거야. 밖에 나오면…… 드라클레스의 위엄을 떨칠 필요가 확 줄어들 테니까, 어쩌면 거의 꺼낼 일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사파이어 티란트, 블루 드라고의 힘을 사용할 일이 생기면 블랙 앤트에 대해 말하기로 했어.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눈가를 실룩였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고 꿋꿋하게 에스탄을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에스탄은 그런 투란의 눈길이 더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라 느낀 듯, 하던 말을 이어나간다.
“투란, 언더새도우에서 잡은 것이 아니었잖아. 드라클레스와 격돌할 때에 그걸 꺼내서 다들 놀라기도 했었고…… 언더섀도우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안 다음부터 종종 그 형태를 드러내서 휘둘러 대기도 했었지. 뱀파이어에게 으스대는 일에 참 잘 써먹었는데…….”
―블랙 앤트는 원래 용종과 공생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고니아의 말도 투란의 뇌리에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