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35)
―드라고의 형상을 드러냈을 때, 뱀파이어가 아닌 진짜 용족의 타락한 존재를 감지하고 재빨리 들러붙으려 했다. 드라클레스 주변에 얼쩡거리던 것들이라서 별로 뜻밖의 만남도 아니긴 했다만…… 투란, 너 하는 짓이 늘 그렇잖아? 갑자기 습격받은 격이었지만, 냉큼 악마의 심장으로 포박하고 삼킨 다음에 상황 파악 끝내고서 블랙 앤트의 둥지를 털었다. 뭐, 그 일의 내막은 프릿과 너만의 비밀처럼 돼버렸고…… 그래, 프릿도 용혈의 일부와 함께 블랙 앤트 병정계급의 정수를 얻었어. 블랙 앤트 퀸은 유니크 타입이라서 너 혼자 먹어치운 꼴이 되었지. 그 뒤로 드라고의 형상 안쪽에, 핏줄 속에 둥지를 꾸미듯이 형태를 잡아 뒀다. 응, 그러니까 지금 네가 드라고를, 사파이어 티란트의 형상을 드러내면 곧바로 블랙 앤트가 네 몸 곳곳을 요새삼아 자리 잡는 거야. 공생관계라서 드라고의 체력, 속도가 모두 증강되는 효과랑 블랙 앤트가 흘려 내는 블랙 애시드는 드라고의 재생, 피로회복을 가속시킨다. 대충 그래. 이제 알 만하지?
‘드라고의 힘을 쓰다가 실수하면 몸속에서 개미가 넘쳐흐를 수도 있고, 주변은 다 갉아먹어치우는 흉악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 했는데 이렇게 말 나온 탓에 미리 말해주는 거다?’
투란이 조금 뚱하니 짚어 되묻는 듯이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는 가볍게 으쓱하는 듯한 낌새와 함께 명쾌하게 대답한다.
―그래. 설마 나오자마자 홀시딘이 널 기록에 없는 괴물이랑 맞닥뜨리게 할 줄은 몰랐지. 천천히 알드바인의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고 조금 깊은 곳으로 사냥을 나설 때나 되면 말 꺼낼 예정이었다만.
‘흠.’
이번에는 투란도 딴지 걸고 이죽거리지 않았다.
확실히 몸의 상태를 점검해보면 알 수 있었다.
지금 투란이 몸에서 느끼는 힘, 어지간한 괴력은 그대로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고 튼튼했다.
무쇠뿔 오우거처럼 특별한 격을 갖춘 경우라든가, 풀려난 오우거가 돌연변이로 얻어냈다는 괴력이 아니라면 투란은 맨몸으로 힘겨루기를 할 자신이 있었다. 그저 착각한 것이 아니라, 악마의 심장을 통해 진단하고 은근히 마법으로 점검한 결과가 그랬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엘리트 그랑츄 정도를 만난다 해도 딱히 몬스터의 형상를 형성하지 않아도 될 지경!
생각을 정리하는데, 에스탄이 듣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잇는 말이 곧바로 투란의 귓가에 꽂혀 들었다.
“투란의 블루 드라고는 꽤 격이 높소. 사파이어 티란트까지 성장한 특이개체였지. 게다가 몬스터 로드의 권능으로 뱀파이어의 피까지 섞인 탓에 그 체력과 회복이 극단적일 정도로 강화된 특성까지 지녔지. 간단히 말하자면, 보석처럼 파란 비늘이 투란의 몸을 덮으면 어지간한 재주로는 상처도 못 내는데 상처를 낸다 해도…… 팔다리 끊어질 정도의 중상이라도 피의 보급만 이뤄지면 그 자리에서 단숨에 회복할 수 있는 거요. 뭐, 내 보기에는 드라클레스 역시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했지만…… 아무튼, 블루 드라고의 형상을 갖춘 투란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죽을 일이 없다는 이야기였소. 참고가 되었으려나?”
“좋은 이야기였소, 그런데…… 투란이 언더섀도우에서 만난 몬스터 중에 용암의 껍질을 두른 것은 없었소? 언더섀도우에서 들락거리는 물품에 대해 찾다보니, 용암괴수의 껍질이란 것이 있던데, 투란이 그런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는 없는 성격인데 말이오.”
홀시딘이 조심스럽게 단서를 풀어내면서 묻고 있었다.
그 말에 투란도 금방 라바 드레이크, 아케인 라바 비스트를 떠올리면서 바로 에스탄에게 묻는다.
“그러게요, 나 그런 것 사냥 안 했어요?”
에스탄이 잠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금방 한숨을 쉬면서 대답한다.
“그 정도는 기억을 좀 남겨둘 것이지…… 간단히 말하자면, 뱀파이어와의 전쟁에서 라바 계열의 괴수나 괴물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거의 쓰질 않았다. 그것들은 언더섀도우에서 말할 줄 아는 모든 자들의 적이었으니까. 뭐, 나 몰래 프릿 폐하나 바루하랑 뭔가 하긴 한 모양이다만, 난 네가 라바 계열 몬스터의 힘을 휘두르는 꼴은 본 적이 없어. 투란 너도 딱히 필요가 없어서 얻을 생각도 없어 보였고.”
“흐흠.”
투란은 갸웃하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드라고니아가 에스탄의 말과 동시에 투덜투덜 흘려 내는 이야기가 그사이에 투란의 뇌리에 채워지는 중이었다.
―형태, 형상이 뚜렷하다는 특징이 있어서 마그마 로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형체를 구성할 수 있었지. 확실히 에스탄 모르게 프릿이랑 너, 뱀파이어를 뒤통수치기 위해서 라바 비스트를 몇 마리 사냥해뒀다. 워낙 너저분한 짓이라서 셀리아나 바루하가 알면서도 에스탄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지. 네가 선호한 것은 라바 드레이크의 날개, 아케인 비스트랑 라바 드레이크의 혼종으로 생성된 놈의 날개야. 돌풍을 일으키는 특이한 재주를 발휘하지. 얼굴에 가면 두르고 뱀파이어 둥지를 어지럽힐 때 종종 써먹었다. 너랑 프릿이 나란히 나눠가진 용암괴수인 셈이지. 에스탄 앞에서는…… 꺼내지 않는 것이 좋아. 방금 말한 것처럼 뱀파이어뿐 아니라 인간 사이에서도 라바 계열의 마물은 아주 평이 안 좋으니까. 싸우는 뱀파이어와 인간을 화해시킬 수 있는 것이 라바 몬스터란 말까지 있을 지경이었지.
‘에스탄에게 비밀인 일이 꽤 많았나?’
―사고 치고 숨기는 일이 아주 많았다. 지금 알아도 버럭 화낼 일이 꽤 되지. 그러니까, 언더섀도우의 냄새를 흘리는 몬스터를 에스탄 앞에서 드러낼 생각은 하지 마. 네 기억이 지워졌다는 핑계로 적당히 얘기 듣자고 해봐야, 마갑을 꺼내서 널 쥐어 패는 것부터 할 테니까.
‘쳇.’
몸을 뒤로 기대면서 투란은 홀시딘과 제란드를 흘깃했다.
둘은 에스탄의 말에 생각에 잠긴 듯한 분위기를 띄운 채였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둘의 분위기 속에 에스탄을 평가하는 낌새를 느꼈다.
방금 전의 물음도 어쩌면 투란의 마그마 로드에 대해서 아는 것인가 슬그머니 캐물은 것이 아닌가 싶었고…… 이런 정황을 따지자면 결국 투란이 지닌 다양한 비밀을 최대한 덮어두려 한다는 일에는 변함이 없는 듯했다.
투란이 보기에 그런 마음은 에스탄도 마찬가지인 듯하기는 했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살던 이들이 갑자기 투란이란 공통점을 놓고 ‘이놈이 이런 것도 비밀로 하고 있는데 말이지.’라고 떠드는 꼴도 괴상할 터였다. 굳이 투란 스스로 뭐라 보태거나 빼야 할 말도 없었고…….
“도착했다. 우선 케이라부터 만나도록 하자고.”
불쑥 홀시딘이 말했다.
동시에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의 길을 타고 질주하던 부운선이 멈추고 있었다.
속도가 푹푹 꺼지듯이 떨어졌고, 어느새 허공에 뜬 구름처럼 둥실거리는 낌새.
마법에 의해 바깥의 영향력이 차단된 상태였지만 바닥이 훤히 뚫린 채로 보이는 데다가 어쩐지 미묘하게 투란에게는 느껴지는 중이었다.
그래서 투란이 루바인은 어떤 풍경인가 내려다보려는데.
“멜란드부터 도와야할 것 같군요.”
제란드가 보이는 풍경의 한쪽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무너진 성벽, 나무와 돌을 쌓아 만들었지만 귀퉁이가 사라져서 무너져 내린 성벽의 잔해 위에서 누군가 날뛰고 있었다. 팔에 돋은 하얀 털이 등까지 번져 덮었고, 두 다리는 도마뱀의 형체를 확대하고 비비꼬아 부풀린 듯한 모양인 채로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멜란드였다.
‘우와, 대단한데?’
뿔비비, 그중에서도 독특하기 이를 데 없던 왕관뿔비비의 두 팔과 랩티드의 상위형태라고 말해도 좋은 랩티어의 두 다리를 기본으로 삼았지만 멜란드의 몸 곳곳에는 정령수가 들러붙어 만들어낸 문신이 미묘한 광채를 머금은 채로 번뜩이는 중이기도 했다. 몬스터 로드이면서도 투란과 엮인 인연으로 인해 많이 색다른 능력을 지닌 네 남매의 막내 멜란드는 투란이 기억하던 어설픈 모습이 아니었다.
소용돌이처럼 움직이며 사납게 흰털이 감싼 주먹을 휘두르고 도마뱀의 날카로운 발톱이 돋은 발길질을 해가며, 자신의 주변으로 떨어져 내리는 마법의 불꽃을 정령수의 힘으로 제어하는 채로 성벽 잔해를 넘으려는 괴물 무리를 견제하고 쳐 죽이고 있었다.
불꽃이 휘둘리고, 빠른 속도와 괴력이 어우러진 채 마법의 비전까지 두른 몬스터 로드…… 투란이 보기에도 소문과 전설로 들어볼 만한 자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잠깐 멜란드의 활약을 내려다보고 감상하던 투란이 입을 열었을 때는 살짝 뚱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한 마리라면서요?”
루바인을 얼쩡거리면서 괴롭히는 괴물은 크고 센 한 놈이라 하지 않았던가.
저렇게 무리지어서 와글거리며 쳐들어온 도적떼 같은 놈들이 아니라…….
곧바로 홀시딘이 으르렁거리며 대꾸한다.
“저놈들은 그냥 쳐들어온 것들이고! 보면 모르냐, 저건 그랑츄잖아!”
투란이 시침 떼듯 다시 눈을 가늘게 하며 멜란드와 격렬하게 싸우는 괴물 무리를 살피는 척했다.
새파란 살갗, 새싹의 연한 녹색을 머금은 털을 두른 그랑츄.
그다지 친숙한 소문 속의 그랑츄는 아니었지만, 저 무리는 분명히 춤추는 산맥을 떠도는 그랑츄의 한 종류가 아닌가 싶기는 했다.
“그래 보이는데…… 뭔 특징이 있는 거죠?”
그래도 뚱한 말투로 투란이 다시 물었다.
홀시딘이 숨을 후욱 들이쉬는 사이, 드라고니아가 먼저 투란의 뇌리에 줄줄이 읊어주는데.
―적응(適應). 푸른물결의 그랑츄라고 들어본 적 없냐? 음, 조금 희귀한 쪽이었나. 아무튼 저렇게 무리로 나타나면 상당히 까다로운 품종이다만…….
“공식명칭은 푸른물결 살갗 그랑츄. 두들기면 저 퍼런 살갗에 물결치는 듯한 반응이 나타나. 그리고…… 두들긴 것에 대해서 적응해버린다. 칼로 찌르면 다음부터는 그 칼의 날카로움에 저항성이 생기고 불로 지지면 그 불의 뜨거움에 대해 내성이 생기는 경우야. 개체마다 적응 속도, 적응하는 정도가 다르기는 하다만…… 약한 놈도 며칠 지나면 아주 빠르게 강해지는 것들이지. 저게 한 이삼백 년에 한 번씩 나타나서 제대로 퇴치가 안 되면 아예 자리 잡고 부락을 꾸민다만…… 아니, 왜 갑자기 루바인 앞에 나타난 거야!”
길게 이야기하던 홀시딘이 말하다말고 울화를 터뜨렸다.
투란은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허공의 구름처럼 뜬 채로 내려다보는 듯한 상황이 많이 희한한 것을 느끼면서 콕콕 찌르듯이 손가락질 하며 말한다.
“어쨌거나 멜란드의 주먹질이나 발길질에 맞아 죽기는 하는 모양인데요? 대부분은 그냥저냥 상대할 만해 보이는데…… 한번 맞고 죽지 않은 것들은 굉장히 질기고 튼튼해지는 모양이에요?”
“적응한다고 했잖아! 젠장, 더 적응하기 전에 단숨에 끝을 내야해! 투란, 어설프게 건드릴 생각 말고 따라 내려와! 일단 내가 케이라부터…… 케이라?”
둥실 떠오르면서 대처 방안을 늘어놓는 듯했던 홀시딘이 돌연 허공에 눈길을 고정시킨 채로 자신의 도제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길이 닿은 허공에 금방 은색의 환영이 맺히면서 케이라의 얼굴이 나타났다.
은색 환영의 케이라가 바로 입을 열었고,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스승님, 푸른물결의 그랑츄는 이쪽에서 해결할 겁니다. 끼어들지 마세요. 그보다는…… 저 무리가 나온 숲 너머를 관측해주세요. 그쪽에 초록 괴물의 흔적이 아침부터 보였거든요. 그랑츄 패거리를 몰아넣은 것이 그 괴물 짓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래, 그러마…… 케이라, 푸른물결 무리를 정리하는 데 도움은 필요 없나?”
홀시딘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확인하듯이 묻고 있었다.
투란이 듣기에는 딱히 케이라를 걱정한다기보다는 푸른물결 그랑츄 무리가 살아남고 적응해버리는 것을 더 염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케이라는 투란과 전혀 다르게 느낀 모양이었다.
“스승님, 저도 상아탑의 마스터입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제자잖아요. 이쪽은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정찰하고 관측이나 제대로 해주세요.”
“어, 알았다.”
조금 찔끔한 모습으로 홀시딘이 대답했다.
케이라의 환영이 물거품처럼 흐트러지고 사라졌다.
그 흔적까지 사라질 듯한 순간, 제란드가 혀를 차면서 홀시딘에게 말한다.
“마스터 케이라의 신변을 걱정하시는 것도 적당히 하세요. 지금 맞붙어서 싸우는 것은 멜란드잖습니까.”
“쟤는 팔다리 끊어져도 도로 붙일 수 있잖아! 끊어져 잃어버린 손가락도 도로 재생시키더만! 케이라는 한 대 잘못 맞으면 죽는단 말이다!”
홀시딘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가만히 듣던 투란이 ‘엥?’ 하고 고개를 갸웃했고, 듣고 보다가 똑같이 의아해진 에스탄이 묻는다.
“상아탑의 마스터란 분이 한 대 맞을 곳까지 들러붙기라도 합니까?”
“젠장! 케이라가 요새 이상한 쪽에 취미가 생겨버렸어! 아니, 왜 마법사가 들러붙어서 화력을 높일 궁리를 하냐고!”
홀시딘의 말은 살짝 뜬금없었다.
하지만 에스탄도, 투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상아탑의 마스터 케이라가 요새 새로운 마법, 적에게 들러붙어서 막강한 화력을 발휘하는 어떤 마법에 홀랑 빠져서 거침없이 자기 몸으로 그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
―인간 마법사이면서 뭔 미친 짓을…….
드라고니아조차도 이치에 어긋난 괴담을 듣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금방 다들 볼 수 있었다.
성벽 잔해 위에 화려한 불꽃을 두르고 내려앉는 케이라의 모습을…….
어째서인가 그 모습은 투란에게 알드바인 성벽에서의 공방을 떠올리게 했고, 문득 루바인의 풍경이 그 기억과 겹쳐지면서 자신이 알드바인으로 확실히 돌아왔다고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