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4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36)
Chapter 208. 루바인, 마물 바헬키마
검은 바탕의 로브 위로 빛으로 새겨넣은 듯한 무늬가 맴돌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빛이 번쩍이는 듯하며 떠오른 무늬를 따라 불길이 치솟더니, 활짝 펼쳐진 로브를 뼈대 삼은 날개처럼 펄럭이는 광경이었다.
그 불길에 닿은 쇠가 달아오르고 조각난 나무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런 험악한 불길을 두른 채로 알드바인 상아탑의 마스터 케이라는 멜란드가 싸우는 전장에 뛰어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불꽃의 날개를 두른 새가 사람의 흉내를 낸다고 해도 좋을 정도…….
“배틀메이지?”
에스탄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닭 정도 작은 새가 몸에 불이 붙어 날뛰는 광경인가 하면서 어이없이 바라보던 투란도 곧바로 ‘아!’ 하는 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살짝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꿈틀거리는 채로 홀시딘을 바라봤다. 되짚어보면 언젠가 알드바인의 마스터는 배틀메이지가 그 시초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듯했으니까.
과거를 더듬자면 사실 홀시딘도 저렇게 불꽃을 휘날리는 마법을 쓸 때면 주변을 모조리 휩쓸어담는 과격한 짓거리를 거침없이 저지르잖던가.
투란이 그 피해를 뒤집어쓰지 않은 것은 순전히 잘 버틸 수 있었기 때문!
한데 홀시딘의 제자인 케이라는 주변을 휘말리지 않게 하면서 전장에 서는 듯이 보였다.
파란 그랑츄 무리와 함께 불길에 휩쓸린 멜란드가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은 채로 오히려 불을 동반자처럼 여기고 힘을 합쳐 날뛰는 것으로 보였다. 불에 녹은 쇠와 재가 파랑 그랑츄를 덮치며 괴롭히는 상황에서도, 멜란드만큼은 멀쩡한 것처럼…….
―흐흠, 슬슬 윌라이트의 분위기가 풍겨나는데? 몬스터 로드로서 지닌 고유마력에 확실히 의지를 담았다. 몸에 두른 정령수가 제대로 반응해서 케이라의 불꽃을 이용하고 있군. 이 년, 삼 년 사이면 길지도 않은 기간인데…… 멜란드, 대단해졌어.
케이라보다는 멜란드를 칭찬하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몸에 문신처럼 두른 멜란드의 정령수, 스피릿 아티팩트가 각자의 속성을 발휘하며 은밀하게 멜란드를 휘감고 지키며 보조한다는 것.
투란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세련된 채였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격렬하게 덧씌워진 채로 어울렸기 때문에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그저 날뛰는 몬스터 로드의 힘이 강렬하다는 인상만 받을 뿐인 모습이었다.
‘그래…… 그러네, 그런데……흐음? 저것들 재가 되질 않는데? 헬파이어…… 저 마법 홀시딘의 헬플레임 아니었어? 마스터 케이라가 펼친다고 위력이 줄어들 마법은 아니잖아?’
감탄 속에서 피어나는 미묘한 의혹.
투란은 갸웃하며 다시 물결치는 파랑 살갗을 두른 그랑츄 무리를 지켜봤다.
재를 뒤집어쓰고, 불길과 함께 달아오르고 녹아 퍼지는 시뻘건 쇳방울을 뒤집어쓰는 상황인데도 몬스터답게 투지를 불태우는 듯한 모습인데, 그 성질머리를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그랑츄의 몸이 버티고 있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잠깐 동안 나뒹군 몇몇과 다르게 서서히 대부분이 저 상황에 ‘적응’하며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케이라와 멜란드 역시 그 상황을 파악한 듯, 어설프게 화력을 나누기보다는 극단적인 집중을 통해서 그랑츄를 한 마리, 한 마리 확실하게 살육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적당히 때려눕히는 것보다는 한번 눕혀놓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끝장을 내고 확인까지 하는 듯한 모습인지라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반대편의 그랑츄 역시 처음에는 확 타오르다가 푹 익혀지고 쪄지는 듯했던 녀석들이 서서히 그 불길에 대항하고 돌을 들어 달아올라 튕기는 쇳물을 걷어내는 중이었다.
‘저러면 반만 때려잡는 꼴인데?’
투란은 케이라의 참전으로 그랑츄 무리가 확실히 절반가량 도륙(屠戮) 당한 채로 무너진 성벽에서 물러서는 것을 확인했다. 그 나머지는 미쳐 날뛰는 듯한 동작과 다르게 어쩐지 물러서는 걸음을 하고 있었다. 케이라의 과격한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적응하며 일단 물러서는 분위기였다. 어설프게 투지만 내세우는 몬스터가 아니라 나름대로 전투의 상황을 판단하는 지능도 있다고 드러내는 듯한…….
“투란, 이쪽이 문제가 아니라고! 저쪽이다, 저쪽!”
홀시딘이 탁탁 투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투란의 눈길이 향한 전장이 아닌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쪽은 한참 멜란드가 싸우는 곳과 거리가 꽤 있는 숲의 경계였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길이 뚫린 듯, 부러지고 깨지며 쓰러진 나무가 틈새로 보이는 묘한 상태…… 숲에 누가 길을 내고 문이라도 뚫어놓은 듯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요?”
투란이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뭔가 부수고 나온 듯하지만 그랑츄 무리를 생각하면 저 녀석들이 그런 것처럼 보였다. 밟은 흔적이라든가 부숴놓은 자리라든가, 그리고 그 사나움으로 인해 숲의 벌레나 짐승들이 저 흔적에서 싹 도망치고 없는 듯한 풍경.
하지만 홀시딘은 투란의 말에 으르렁거렸으니.
“숲 깊은 곳! 삼사백 미터 안쪽에 몸을 숨기고 있어!”
“에? 에이…… 그럼, 아직 나올 생각도 없는 거잖아요? 일단 멜란드랑 마스터 케이라부터 도와도…….”
투란이 중얼거리면서 아래의 싸움에 가담하려는 듯이 몸을 으쓱거렸다.
이런 투란의 모습에 홀시딘이 어깨를 늘어뜨렸고, 제란드가 슬쩍 끼어들듯이 말한다.
“투란, 셋을 세기 전에 도착해. 저 거리를, 빨라서가 아니고 괴력으로 발구름을 해서 말이야. 투석기로 몸을 쏘아낸 것처럼, 단숨에 저 거리를 돌파하니까, 보이지 않는 거리라 해도 관측하고 대처해야 해. 그래서 마스터 케이라가 멜란드에 가세해서 저 녀석들을 빨리 정리하려고 하는 거야.”
“발구름으로 수백 미터를 휭 날아온다고?”
투란이 살짝 얼빠진 듯이 중얼거렸다.
―오러 몽거 못지않군. 이모저모로…….
드라고니아가 묘하게 중얼거렸다.
투란은 슬그머니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초조한 듯하지만 홀시딘의 태도는 굉장히 침착하고 냉정했다.
제란드는 냉정하고 침착한 듯하지만 언제라도 뛰쳐나갈 듯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몸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근육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마치 투란에게 구경만 해도 적당히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고 말없이 알려주려는 듯…….
그리고 에스탄은 가만히 잔을 들어 목을 축이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오로지 구경만 하겠다는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중이었다. 흘깃하는 투란과 눈이 마주치자 에스탄은 한층 더 분명하게 그 자세의 의미를 말해주기까지 하니.
“눈치 볼 것 없잖아? 가서 하나 빨리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나? 호수에서 안개 몰고 오는 괴수도 하나 더 있다는데,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려고?”
투란이 뭘 하든 내려다보고 지켜만 보는 입장이라고 밝히는 듯하잖나!
한편으로는 에스탄이 투란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믿는 듯한 분위기도 무럭무럭 피어나는 모습이기는 했다. 어찌 보면 그런 면에서는 홀시딘과 에스탄이 매우 닮아 보이기도 할 지경인 셈.
거기에 살짝 뭔가 보태듯, 홀시딘이나 에스탄이 눈치채지 못한 것을 짚는 것처럼 제란드가 몇 마디 한다.
“투란, 저 파랑 그랑츄의 샘플은 이미 확보해 놨어. 특이개체는 따로 사냥해 두기로 했지. 페란드 형이 보관하고 있으니까, 그쪽 호기심은 나중에 충분히 채울 수 있어.”
“어? 그래? 흐흠, 그러면…… 다녀올게요!”
으쓱하는 표정으로 투란이 바로 바닥을 통통 두드리면서, 얼른 문 열어달라는 표정으로 홀시딘을 보면서 외치고 있었다. 마치 제란드의 말을 여태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였고, 홀시딘이 어이없게 하는 모습이었다.
“썩을 놈…….”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면서도 홀시딘은 바로 구멍문을 열어줬다.
바람이 세차게 몰려든다 싶은 순간, 투란이 바로 뛰어내렸고 구멍은 다시 닫혔다.
투명한 바닥 너머로 투란이 낙하하는…… 그냥 돌멩이처럼 추락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에스탄이 묻는다.
“혹시 투란의 날개를 본 적 없으시오?”
“어떤 날개냐고 되물어야 할 것 같군요.”
한숨과 함께 홀시딘이 대답했다.
‘음? 우어엇!’
소리 내지 못한 채로 투란이 놀라고 있었다.
뛰어내릴 때는 일단 바람을 맞으면서 천천히 드레이크의 날개를 펼칠 생각을 했었다. 한데 막상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허공에 몸이 던져진 순간, 반사적으로 등줄기가 후끈거리면서 등뼈가 불끈거리는가 싶더니 날개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가는 듯했다. 그 와중에 입고 있던 옷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틈새를 열고 길게 뻗어 나간 날개뼈에 길을 내주는 듯했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몸이 제멋대로 버릇을 드러내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혀를 차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보태진다.
―뱀파이어 트릭이다. 머리를 비웠으니 몸이 당연하게 버릇대로 움직인 셈이군. 가고일의 스톤윙이야. 석관(石棺) 공예품에 피를 끼얹고 활력을 불어넣어 움직이는 혈족의 비술로 만들어진 몬스터의 날개라고.
‘야아! 그냥 돌이잖아, 이걸로 어떻게 날 수가…… 있네?’
투란은 여러 가지로 놀라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몸에서, 몬스터 로드인 자신의 몸에서 뻗어 나간 뼈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날개는 돌이었다. 보태고 뺄 것도 없이 그냥 튼튼한, 괄괄 넘쳐나는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듯한 화강암(花崗巖)이었다. 그런 돌로 날개 모양을 만들어 봐야 추락할 뿐이어야 했는데, 어째서인가 이 돌날개는 숨을 쉬면서 기괴한 힘을 끌어모으며 허공을 부여잡고 있었다.
무거움은 그대로인데 깃털처럼 활강을 시작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돌 안에 은은하게 퍼져 나가면서 흐르는 피…….
‘마그마 로드로 쥐어짜낸 돌이 아니었어!’
자주 사용하던 마그마 로드의 형상, 그 뜨거움으로 주변을 녹이고 식히다보면 자주 보게 되는 화강암의 재질이었지만 이 돌은 그렇게 형성되지 않았다. 몸속에서 피의 흐름에 따라 확장되고 성장한 뼈로부터 분출된 티끌이 쌓이고 뭉쳐서 만들어진 돌이었다.
그 돌 안에 흐르는 피가 기괴한 힘을 모아 다루고 있었다.
뒤늦게 ‘뱀파이어 트릭’이란 말을 되새김질해야 했다.
―혈족의 비술은 몸에 새겨지는 요력(妖力)이란 특이한 성질의 마력을 기반으로 발휘된다. 뭐, 뱀파이어는 죽어도 그걸 마력이라 부르지는 않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 녀석들이 비술이라 부르거나 말거나 일종의 마법이니까. 그 바탕이 되는 힘도 특이한 마력이라 여길 수 있는 거지. 아무튼, 몸에 새겨진 습관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무 생각 없이 발휘되는 것이 특징이란 거야. 정신 놓지 말고, 일단 방향잡고 날아봐.
‘얼마나 빨리 날 수 있어?’
―해보면 알 것 아니냐.
슬그머니 묻는 투란에게 코웃음 치듯이 드라고니아가 대답했다.
생각하지 말고 몸으로 느껴 보란 듯한 충동질인 셈이었다.
투란도 더 묻지 않고 마음을 비운 채로 짐승의 손톱, 발톱이 곳곳에 균형 잡고 돋아 있는 듯한 돌날개를 펼쳤다. 날갯짓을 할 필요도 없이 요력이 발휘되면서 투란은 숲의 부서진 문, 뭉개진 길 너머를 향해 쏘아졌다.
가벼운 울림이 허공에 자취처럼 남겨졌고, 질풍을 탄 화살처럼 날던 투란은 살갗을 채우고 덮으며 고글처럼 눈가에 맺히는 돌의 형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온몸에 두르는 돌갑옷의 일부가 서서히 생겨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 속에서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가고일이 뭐야?’
낯익은 듯하지만 낯선 괴물의 호칭이었다.
뱀파이어와 연계되면 더욱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몬스터인가?
이렇게 돌을 바탕으로 뭔가 이루는 꼴은 마치…….
―소울테이커는 아니다. 그건 하나뿐이고 오로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고, 가고일은…… 뱀파이어가 다른 세상의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석상 괴물이다. 그놈들 말로는 대마도사 카엘의 흉내를 낸 것이라고도 하더군. 믿어야할지 말아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뱀파이어는 자신들의 피를 머금은 돌, 활력을 갖춘 돌이라고 라이프스톤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가공해서 형태를 부여하고 가고일이라고 부른다. 그걸 자신들이 오랜 수면을 취하기 위해 준비한 석관 근처에 호위 삼아 배치해 두지. 아, 저놈 통나무 던지는데?
흥이 오른 것처럼 떠들던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럽게 저편을 짚어줬다.
투란도 돌로 된 고글이 눈가를 지키듯이 만들어지면서 시각이 확장된 것을 느꼈고,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전해 들은 그대로, 보랏빛 털을 머리에 얹은 듯한 시퍼런 살갗의 통통하고 퉁퉁한 몸매의 거인…… 오우거 몸집을 한 놈이 나무 한 그루를 쓰윽 뽑아서 한 손으로 훑어 가지를 떼어내더니 투창질 하듯이 내던지고 있었다.
저 멀리 이백여 미터 남은 거리를 단숨에 돌파해서 찔러오는 통나무의 속도와 묵직함은 쇠기둥처럼 느껴질 지경!
하지만 투란은 무슨 생각을 하기 전에 반사적으로 날개를, 돌발톱이 돋은 부위를 가볍게 내밀면서 그 통나무를 찍어버렸다. 뒤늦게 자신이 뭘 하고 있는가 알아차린 투란이 놀라기도 전, 통나무는 깃털처럼 튕기고 있었다.
부수지도 않았지만 어떤 충격도 없는 가벼운 접촉이란 듯.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