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38)
콕.
“칫.”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며 눈을 부라리는 시늉을 했다.
꽁꽁 묶였지만 보이지 않는 실에 묶인 탓에 낮게 둥실 떠 있는 듯한 몰골인 괴물, 바헬키마 역시 그런 투란을 마주 노려보며 자신의 이마에다가 뭔 짓을 하느냐고 따지듯이 으르렁거렸다. 아까처럼 굉음으로 어찌해볼 낌새는 이제 없었다. 해서 어찌 안 되니까 그만 둔다는 것처럼, 다른 궁리를 한다는 것처럼.
하지만 투란은 그래도 두어 번 더 콕콕 바헬키마의 이마를 샤벨투스의 이빨로, 마력장벽을 두르고 오러를 섞어 날카롭게 벼린 그 핏기 머금은 끝으로 찔러봤다.
―몬스터보다 멍청해 보이는구나…….
드라고니아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확인은 해야지, 확인은!’
소리 없이 투란이 투덜거렸다.
바헬키마, 슬슬 그 이름이 진짜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이 괴물은 기괴한 마성으로 샤벨투스의 이빨이 지닌 예리함에 적응하고 있었다. 오러와 마력을 섞어 한껏 증폭된 이빨의 관통력, 절삭력을 버텨 내는 적응이었다.
―이대로 너의 마력이나 오러에까지 적응해서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큰일난다.
드라고니아가 무겁게 경고했다.
하는 짓이 바보스러운데 그로 인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아주 진지하게 짚는 것이다.
‘알아, 이놈은 일단 적응하면 그 특징을 마음껏 휘두를 수가 있을 거야.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동시에 적응은 못하는 모양이야. 자신이 관심을 두고 몰입하는 쪽으로만…… 먼저 적응하는 특성인가 봐.’
―뭔 짓을 하고 있었던 거냐!
툴툴거리는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겨우 알아차린 듯이 놀라 물었다.
누가 보기에도 삐죽하게 돋아난 것처럼 손가락 틈새로 내민 굵은 이빨 끝으로 엎어진 괴물의 이마를 콕콕 쑤셔보려는 모습이었다.
다른 짓을 한다는 낌새는 전혀 없는 모습인 투란.
하지만 그사이에 괴물 바헬키마의 몸 곳곳이 갈라지고 있었다.
옷의 실이 끊어져 해체되는 것처럼 살갗이 갈라지고 속살이 쩍쩍 골짜기처럼 나눠지고 깊은 곳의 뼈가 드러나는 채로!
살점이 방울지며 다시 부풀고 빈자리를 메워 상처를 복구하려 했다.
그러나 부푼 살점이 줄줄 흘러내리며 절단면이 본래 몸과 다른 이질적인 것으로 ‘덧칠’된 듯한 상황만 드러날 뿐, 상처는 회복되지 못했다.
―오래 못 간다.
드라고니아가 다시 한번 경고했다.
이빨의 끝으로 장난처럼 찔러댐으로써 바헬키마가 온몸이 절단 나는 상황에 주의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런 사이에 퀸 아라크레온이 자아난 특별한 거미줄, 바헬키마의 몸뚱이처럼 상황에 적응하고 변이하는 실날로 쪼개 구획 짓듯이 나눠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눠진 단면을 한번 더 거미줄로 덧칠해서 갈라버린 셈인데…… 처음 그 틈새를 잠시 삐져나왔던 살점 방울, 조여 끊어 냈지만 바헬키마의 마성이 깃든 살점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다시 솟구치려 하는 중이었다. 그 살점이 다시 몸뚱이 닿으면 어떻게든 이 거미줄과 그물, 실낱에 저항하고 적응할 가능성이 엿보였다.
투란이 어영부영 이대로 버티려 한다면 신수(神獸)의 그물이라 할지라도 빈틈을 찾아 상처를 회복해낼 듯한…….
‘알아, 눈에 안 띄게 좀 요란 좀 떨어 봐. 이대로 삼키는 거, 들키지 않게.’
투란의 소리 없는 속삭임에 곧바로 돌풍이 치솟았다.
나뭇가지, 흙머지의 파편과 더불어 바람의 정령수 에어로, 흙의 정령수 테트라가 뒤섞이며 은근하게 물의 정령수 아쿠아, 불의 정령수 파이로까지 보태진 장벽이 투란의 주변을 휘감으며 정령의 장막을 드리웠다.
투란이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너무 익숙하게 자주 했던 듯한 정령의 요술이었다. 그 광경에 잠시 넋이 나간 듯한 낯빛이 되기는 했지만, 투란의 의지는 동시에 문장, 몬스터 엠블럼의 대마법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바헬키마의 상처 자리, 그 절단면에 핏빛의 고리무늬가 가득 채워진 채로 원래 있던 것처럼 피어났다.
으드득, 크워어어!
뼈가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바헬키마의 포효가 장막 안을 메아리치며 소용돌이처럼 바람결을 뒤흔들며 번져갔다.
‘영리하네!’
장막을 이용해 포효를 증폭시켜 위력을 더한 괴물을 투란이 칭찬했다.
―이거, 삼켜도 되겠냐?
드라고니아는 괴물의 본성, 어쩌면 지능조차 갖춘 듯한 발악을 보면서 우려하는 말을 흘렸다.
‘이제 와서 뭔 걱정이냐!’
투란은 키득거림과 함께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을 더욱 강렬하게 흘려 냈다.
의지의 마력을 머금은 정령수들이 더욱 날뛰었고, 장막은 한층 더 두텁고 강렬해졌다. 그 속에서 바헬키마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물거품이 부서진 듯한 여린 파편으로, 어른거리는 아지랑이처럼 연기와 먼지처럼 흩어져갔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바헬키마의 마성을 누르고 해체하는 듯한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엄청 빠르네?’
자신이 한 짓이었지만 투란도 그 속도에 조금 놀란 채로 바헬키마의 머리통, 마지막까지 남아 험상궂고 사납게 노려보는 그 눈동자를 끝까지 마주 봐 주면서 되뇌었다. 이 소리 없는 되뇜에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듯 대꾸한다.
―기억을 덮고 지웠다고 해도 그 시간은 네 몸에…… 문장에 확실히 새겨져 있으니까. 삼키는 속도는 빠르다만, 녀석을 다루는 것은 또 다른 일이야. 방심하지 마라.
‘방심이고 뭐고…… 끝장난 것 같은데?’
문장의 풍경을 마음 한편에 담으며, 살짝 어이없어 하는 채로 투란이 속삭였다.
* * *
황금빛 눈동자, 보랏빛 머리카락, 새파란 살갗으로 3미터를 슬쩍 넘기는 두툼하고 우람하며 잔뜩 부푼 체격인 바헬키마…….
문장의 풍경 속에 그 자태를 드러낸 괴물은 곧바로 ‘천칭’의 한곳으로 떨궈졌다.
그곳에서 바로 부스스하니 오러 몽거가, 파이로몽거가 거의 비슷하거나 살짝 큰 체격을 일으켰고 바헬키마를 감쌌다.
그리고 바헬키마가 그 마성을 터뜨리려 막 입을 열 듯 말 듯 한 순간, 오러 몽거와 파이로몽거가 그 새파란 살갗으로 겹쳐지며 파고들었다. 살갗이 밀어내는 것도, 후려치거나 몸부림치는 것도 없이 그저 물감이 섞이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 녀석, 그랑츄가 변이한 경우였나?’
투란은 그 광경을 ‘느끼고 보며’ 루바인 성벽의 파란 그랑츄 패거리를 떠올렸다.
이미 문장에 자리 잡고 완전히 길들여진 정수와 뒤섞인 바헬키마는 아무런 반항도 못하는 채로, 절규조차 실패한 채로 문장의 풍경을 차지하는 몬스터로 정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그런 경우가 맞는 모양이군.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머금은 듯이 중얼거렸다.
그 말과 함께 투란은 정령의 장막이 해체되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톱, 터럭 하나 남김없이 바헬키마가 투명하게 으스러진 다음이었다.
흡사 장막 안에서 투란이 우걱거리며 완전히 먹어치운 다음에 슬쩍 입 닦고 나와버린 듯한 상황.
―실제로 형상을 끌어내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방심은 안 된다.
그래도 잔소리를 덧붙이는 드라고니아였다.
‘뭐, 당장 써먹을 일도 없잖아? 그보다는…… 멜란드 쪽은 어떻게 되었지?’
콰라락.
거친 소리와 함께 투란의 등에서 바위 같은 날개가 치솟았다.
마력으로 바람을 흡수하며 날개가 펼쳐졌고, 투란은 곧바로 루바인의 성벽을 향해 날아올랐다.
―정리되었지, 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눈동자가 루바인의 풍경을 담기도 전에 말했다.
수백 미터 저 멀리 쪼그마한 풍경을 가늘게 바라보면서 투란도 불길이 재앙처럼 휩쓸어버린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하네! 홀시딘한테 배운 모양인데?’
―스승과 제자 사이잖아, 당연히 가르치고 배웠겠지.
‘어, 그런데…… 루바인 너머에 물이…….’
―젠장, 하나 잡자마자 다른 놈이 기웃거리는 거냐.
조금 느긋하게 날아가려고 비행속도를 살짝 늦추던 투란은 그런 기분을 단숨에 떨쳐버리면서 가속해야 했다. 드라고니아와 몇 마디 떠들려는데 루바인 넘어 있는 호수가 치솟아 물의 장벽을 만들며 그대로 무너져서 덮칠 듯한 모양을 꾸미고 있는 탓이었다. 무슨 일이 터질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멀리서 ‘우와! 도시가 물에 잠겨요!’ 따위를 지껄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투란이 고속으로 백여 미터가량 허공을 돌파했다 싶은 순간, 드라고니아가 바로 으르렁거리며 묻는 말이 투란의 뇌리에 작렬했다.
―대책 없이 뛰어들 참이냐! 작아도 도시라고! 저 홍수를 어떻게 대처할 방법도 없이 무조건 부딪힐 거냐? 정신줄 놨어?
‘증발시킬 수 있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정말이냐?
‘어. 감이 왔어.’
번개처럼 스쳐 가는 사념의 대화를 끝내며 투란은 치솟는 물의 장벽…… 도시를 조그만 돌멩이처럼 보이게 하는 장벽에 격돌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그러나 닿는 순간에 그 끔찍함을 느끼게 하는 파문이 곧바로 투란을 덮쳤다. 나름대로 충격에 대비해서 몸을 감싼 돌날개가 그대로 바스라졌고 파문은 뼈와 살을 갈아버릴 것처럼 스며들었다.
그 으깨져가는 감각 속에 투란은 문장 깊은 곳에서 숨을 쉬며 대기하고 이 순간을 즐길 준비가 된 몬스터의 정수에 마음을 불어넣었다.
‘나와라, 사룡.’
문장의 풍경, 그 심상 깊은 곳에서 더스크라이더가 날개를 폈다.
투란의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격동(激動)이 시작되었다.
몸을 으깨고 파고들던 파문, 물결의 파동이 곧바로 격동에 잡아먹혔다.
포식을 통해 더욱 커지고 강화된 격동이 살갗으로 번져나갔다.
살갗에 닿아 있던 물결, 그 속에서 격렬하게 부딪혀오던 파문에 격동이 닿았다.
요동치던 물결이 멈췄다.
고요는 순식간에 치솟아 몰려들던 물결, 호수를 관통할 것처럼 퍼져 나갔다.
거대한 장벽이 꿈틀하고 멈칫했다.
촤아아…….
고요를 깨뜨리며 장벽이 허물어져 내렸다.
격동으로 바람결을 짓누르고 허공에 우뚝 선 채, 투란은 무너져 내리는 물살 너머에서 짙은 안개가 물컹거리며 멀어져가는 광경을 노려봤다.
마치 누구냐고 묻는 듯한 격렬한 투란의 눈길, 하지만 대답해오는 것은 없었다.
그저 화이트 레이크의 이름을 드높이기만 할 듯한 하얀 안개를 루바인에서 몇 킬로미터 밖으로, 안개의 몰골이지만 의지를 지닌 채로 살아 있는 짐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면(水面)을 달리며 멀어져 갈 뿐이었다.
―탐지가 안 된다.
살짝 이를 가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훤히 보이는 안개, 하지만 그 안개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프로브도, 옵저버도…… 드라고니아가 정령까지 움직이며 사용한 탐지 마법조차도 쓸모없는 꼴이 되었으니 이를 갈 만도 했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드라고니아를 위로하지 않았다.
그냥 짧게, 신중하게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그림 투아란의 용…….’
―뭐?
흠칫하며 놀라 말문이 막힌 듯한 드라고니아.
투란은 숨을 고르며 아래로 하강하는 채로 자신의 느낌, 순수한 감각만으로 통찰해낸 결과를 모두 말해줬다.
‘안개를 다루고 호수를 이용하는 놈이다.’
드라고니아는 침묵했다.
투란은 계속 하강하며 자신이 호숫가, 물 위로 떨어질지 루바인 요새도시의 한쪽 귀퉁이에 처박힐 것인가를 가늠해야 했다. 하지만.
“야, 올라타!”
구름처럼 흘러내려온 허공의 배, 그 구멍 속에서 밧줄을 드리우며 홀시딘이 외치고 있었다. 어느새 투란의 몸 주변에, 간격을 두고 반짝거리는 마법의 빛이 드리워진 채로 주변의 관측을 차단하는 중이기도 했다.
투란은 바로 밧줄을 움켜쥐었다.
굳이 팔에 힘을 줄 필요 없이 밧줄이 살아 있는 것처럼 투란의 팔뚝을 감으며 휙 낚아채서 부운선의 안쪽으로 냉큼 삼켜버렸다. 개구리가 파리를 낚아채는 듯한 광경이었다.
탁, 가볍게 투란이 배의 바닥을 딛자마자 에스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라클레스가 놓치거나 말거나, 자네는 단번에 잡아버리는가. 뭐, 드라클레스를 때려눕히고 잡아버린 자네니까 당연한 듯도 하네만.”
“투란이니까요.”
제란드도 에스탄에게 동감하듯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말해야 했으니.
“그게…… 내가 잡은 놈이 언더섀도우에서 날려 온 놈이 맞긴 맞는 것 같은데 말이죠…… 이거 한 마리가 아닐 수도 있어요.”
“무슨 미친 소리야!”
홀시딘이 툭 떨어지는 몸짓과 함께 버럭 소리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