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4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40)
제란드가 내려갔다.
구멍으로 휙 뛰어내리는 듯했는데, 바람결이 제란드를 받쳐주는 듯이 가볍게…… 루바인의 멀쩡한 성벽 귀퉁이로 부드럽게 끈을 타고 흘러내리듯이 내려갔다.
그 또한 신기하게 보는 와중에 투란은 홀시딘에게 짧게 말을 전했다.
―잠깐만요, 호수의 안개 괴물에 대해 따로 할 말이 있어요.
홀시딘은 이 말을 들으며 제란드가 루바인에 내려서는 것까지 확인한 다음에야 대꾸를 하는데.
“언더섀도우에서 보낸 시간이 십 년이 넘는다며? 프릿이…… 황제폐하가 그러더만. 그 시간 동안의 일을 덮고 원래 살던 대로 살겠다고 나왔다고 말이야. 그 십여 년 동안의 일이 네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인왕도의 재상 에스탄이 알고 있으니 참고하라는 말도 해주더군. 그러니까…… 이제 말해봐, 제란드도 마침 내려갔으니까. 에스탄 씨라면 네 일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형편일 거잖아. 호수의 괴물에 대해서 뭘 알아냈지?”
가만히 들으니 투란에게 굳이 로열클래스의 징표, 마법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못 박는 듯하잖나.
바쁘게 저 아래에서 제란드가 움직이는 모습을 잠깐 더 보다가 에스탄을 흘깃하면서 투란은 홀시딘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반쯤 ‘그러시다면야’라고 떠보는 듯한 말투로, 아주 쉽고 편한 이야기를 하는 시늉을 하면서.
“그 안개 모는 놈, 그림 투아란에게서 용의 이름을 얻은 드레이크일 거예요.”
홀시딘은 눈을 깜박였다.
에스탄은 ‘응? 그림 투아란?’ 이라고 되뇌면서 그게 누구더라 하는 표정을 살짝 지었다.
그리고 알드바인의 대마법사와 언더섀도우 인왕도의 재상이 동시에 외쳤다.
“그림 투아란! 그 그림 투아란!”
말투만으로 사람을 목 졸라 죽일 듯한 분위기였다.
외침과 동시에 둘은 서로를 보고 흠칫했고, 에스탄이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억지로 몸을 뒤로 빼고 의자에 기대면서 양보하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홀시딘이 숨을 고른 다음에 투란을 노려보는, 사나운 눈길을 한 채로 입을 연다.
“근거는?”
전혀 길지 않는 달랑 한마디뿐인 물음이었다.
투란은 홀시딘을 마주보면서, 에스탄도 한번 흘깃하는 채로 대답한다.
“감이요.”
“잉?”
“음?”
대마법사와 재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투란을 바라봤다.
둘이 느끼는 황당함을 무시하듯, 투란은 홀시딘의 손목 쪽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살짝 목소리를 높여 외치듯 말한다.
“감이요, 느낌이라고! 마스터 케이라, 잘 들리세요! 그러니까 내 느낌이…….”
“안 들려, 이 자식아! 여기 너랑 나, 에스탄 씨만 듣는 이야기라고! 그러니 헛소리 말고 빨랑 말해! 근거가 뭐야! 숨기려 할 정도로 큰……?”
홀시딘이 핏대를 세우는 낯빛으로 으르렁거리다가 말을 멈췄다.
투란이 가만히 손을 내미는데, 손바닥 위로 기묘한 비늘가죽, 탁하고 짙은 녹색 빛깔의 기묘한 가죽을 형성하는 중이었다. 그 위로 미묘하게 먼지와 티끌이 맴돌며 작은 방울처럼 은은하게 허공을 울리는 것이 귀가 아닌 살갗으로 느껴지게 하잖나.
그걸 보는 순간 홀시딘은 ‘이게 뭔데?’라며 어리둥절했고, 에스탄은 신음하듯이 중얼거림을 토해낸다.
“더스크라이더…… 역시 자네였나.”
“예, 더스크…… 네? 잠깐! 에스탄, 이런 걸 본 적이 있다고요?”
대답하다가 투란이 흠칫하면서 에스탄을 바라봐야 했다.
에스탄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 딱 한 번 언더섀도우를…… 뱀파이어 혈족 모두를 발칵 뒤집어 놓는 대사건을 일으켰지. 프릿이 나서고 셀리아와 네가 도왔다고 알고 있었다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가는 나랑 바루하에게는 말해주지 않았지. 우린 그저 언더섀도우의 한 귀퉁이를 덮고 짓밟은 거대한 모래먼지의 악마를 봤을 뿐이었다. 그렇게 기억에 남기고 더 묻지도 못했지.”
투란이 눈을 껌벅이는 사이, 가만히 듣던 홀시딘이 다시 짚고 확인하겠다는 듯이 묻는다.
“더스크라이더면, 사룡이냐? 그 봉인되어 있다는 소문의 용을…… 용의 이름을 지닌 막강하다는 드레이크를 잡았어? 정말로?”
“키유나가 좀 엮인 일인데, 몰랐어요?”
투란은 갸웃하면서 되물었다.
분명히 키유나를 보냈고, 로열클래스에 대해서 알려줬으니 홀시딘이 대강은 알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에스탄이 놀라는 모습은 당연히 여겼지만 홀시딘도 놀라기에 살짝 의아했던 투란이었다. 한데 지금 보니 홀시딘은 그런 이야기를 털끝만큼도 모르는 듯하잖나.
“몰라. 금빛매의 마녀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
어딘가 단호하게, 더 묻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어찌 보면 회피하는 듯한 홀시딘의 대답이었다. 말과 함께 태도도 또한 그와 비슷한 것이 반쯤 의도적으로, 반쯤 무의식중에 피하려는 화제라도 만난 듯했다.
―키유나가 로열클래스의 징표를 얻었다면, 홀시딘은 시크릿키퍼가 아닌 거다. 상아탑의 마법에 의해 홀시딘은 그런 부분을 피해내야 하는 입장이겠지. 대마법사의 위계를 지녔으니 어렴풋이 짐작은 하면서도 캐려고는 하지 않을 거야. 너도 더 강요하지 마라.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분석하는 말투로 속삭였다.
“음…….”
투란은 잠깐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야, 내가 사룡의 힘을 썼는데 왜 에스탄만 몰라?’
―프릿과 셀리아가 비밀로 했으니까. 방금 에스탄이 말했잖아. 너무 위험한 힘이라고 프릿과 셀리아가 너와 입을 맞춰서 적당히 끔찍하고 위험한 마법을 썼다고 둘러댔어. 그냥 그런 일이다. 궁금하면 기억을 되돌리든가.
드라고니아에게 대답을 듣고 나서 투란은 생각을 끝냈다는 시늉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사룡을…… 정확하게는 말하자면 사룡의 정수가 봉인된 곳에서 키유나를 만났어요. 봉인된 정수에서 좋지 못한 영향력이 줄줄 새어 나오는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어찌하다 보니 삼켜버린 거죠. 몬스터 로드잖아요, 내가.”
두리뭉실하다 못해 두서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에스탄도 홀시딘도 이런 투란에게 익숙한 듯, 그냥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말을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투란도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란 듯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중이었으니.
“그 사룡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뭔가 까마득하고 더 높고 깊은…… 그윽하다고 해야 하나? 몬스터이기는 한데, 세상 한참 내려다보면서 우습게 아는 그런 분위기? 아무튼 말로 하면 진짜 이상해지는 그런 분위기를 또 느꼈단 말이죠. 대충 감이 오는 이야기죠?”
“그래, 순전히 감이구나. 알아들었다, 네 느낌.”
홀시딘이 포기했다는 듯이 웅얼거리는 대꾸를 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살짝 실소하는 듯이 눈가에 주름을 만든 에스탄이 묻는다.
“그러면 사룡이 두 마리는 아닐 테고. 그림 투아란의 휘하 용이라면, 대체 어떤 놈이란 거지? 전설마다 이러쿵저러쿵하다 보면 가끔 열 마리도 넘게 있는데 모두 제각각 개성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더만.”
“힉? 열 마리나 된다고요!”
투란이 화들짝 놀란 소리를 냈다.
―그건 헛소문이잖아, 아니란 것 알면서 왜 놀라!
드라고니아가 조금 짜증 내며 으르렁거렸다.
‘어? 그야…… 난 세 마리로 알고 있잖아? 하지만 내가 아는 세 마리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잖아? 화룡, 사룡, 수룡…… 천년도 넘은 전설이니까, 너네 기록도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잖아?’
투란은 입을 꼭 다물면서 홀시딘과 에스탄이 자신의 놀람에 안 놀라는 것이 이상하다는 표정인 채로 드라고니아를 향해 투덜거렸다.
털썩, 홀시딘이 둥실 떠다니던 몸을 한쪽 의자에 떨구면서 훤히 열린 아래로 보이는 루바인을 잠시 내려다보는 듯하다가 입을 연다.
“전설마다 제멋대로이기는 하지. 그래도 열 마리는 안 될 거야, 아마도. 확실하게 인간세상에, 그림 투아란과 연관된 기록 중에서 그나마 믿을 만한 이야기로 더듬어보자면…… 많아도 넷, 적어도 셋일 거라고 했어. 각각 섞일 수 없는 특징이 있다는 부분은 전설마다 동일하고…… 이런 거대한 호수를 오가면서 안개를 몰고 다니고, 홍수를 다루고 범람을 일으킨다면…… 수룡, 혹은 수정룡(水晶龍)이라 알려진 녀석이 맞을 거야. 그래, 전설 읊어 대는 녀석들은 크리스탈 드래곤이란 말을 좋아하지. 화룡을 플레임 드래곤이라고 풀어내는 것처럼.”
투란은 살그머니 의자 하나를 당겨 앉으면서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실제로 귀를 기울이며 투란이 듣는 것은 드라고니아의 이야기였다.
―부여받은 용의 이름은 크리스탈가드, 수정룡이란 별명도 거기서 나왔다. 풀어내면 수정의 수호자. 물의 상태변화를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속성을 잘 다루고, 그 힘의 범위도 이런 호수 전체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지. 괜히 드래곤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야. 물이 없는 곳에서는 허공에서 물을 쥐어짜내서 작은 호수를 단숨에 만들어 냈다는 전설도 있다. 마력이 아닌 정령의 힘을 기반으로 쓴다는 이야기도 있지. 근데 예전에 내가 스타파이어 이야기랑 같이 해주지 않았나?
‘이름만 알려줬지. 근데 그 이름, 상아탑은 모르는 거야?’
―글쎄다…….
빠르게 이야기하던 드라고니아가 말을 흐릴 때, 홀시딘이 다시 입을 열며 하던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곤란하군, 곤란해. 상대가 그냥 커다랗고 강력한 괴물이라면 어쩌다 호수와 산맥 싶은 곳 양쪽에서 동시에 나타났겠거니 하겠는데…… 투란 네 말대로 수정룡이라면, 루바인에 들이닥친 바헬키마도 녀석이 유도했을 수 있어. 만약 그런 거라면…… 젠장!”
중얼거리는 듯했던 홀시딘이 돌연 팔뚝을 걷고 싹 문질렀다.
그 순간에 투란은 마력이 흐르면서 살짝 깃털 무늬가 홀시딘의 손등에서 팔뚝으로 번지는 듯한 광경을 엿볼 수 있었다. 금세 그냥 살갗의 광택이 잠깐 번뜩였을 뿐인 듯이 사라졌지만, 투란은 날름 그 모양을 기억 속에 새겨뒀다.
―본다고 아냐?
투란의 작은 노력을 드라고니아가 거침없이 놀려댔다.
‘다른 거랑 분별은 할 수 있잖아! 왜 구박이야!’
냉큼 대꾸하면서도 투란은 홀시딘이 터뜨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케이라! 수색 팀, 파티를 강화해라. 예상외의 피해가 들어올 수 있어! 안개가 얼쩡거리면 안을 뒤질 생각 말고 마킹만 해서 바로 물러나도록 해라.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만, 우리 예상을 넘는 위험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구체적인 부분은 좀 더 확인해야 한다만, 괜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당장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말고 기다려다오.”
홀시딘의 마지막 말은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급한 일이 있다면 둥실둥실 이 구름 같은 배를 몰고 나가서 직접 도울 수도 있는 홀시딘이 마치 어디 먼 곳으로 가서 당분간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듯이 하는 말이라니?
사악, 다시 팔뚝을 꼼꼼하게 문지르면서 홀시딘은 한숨부터 길게 쉬었다.
답답하거나 짜증 난다기보다는 이제부터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숨을 고르는 듯한 마법사의 모습, 그냥 구경하는 듯했던 투란과 에스탄도 살짝 긴장하게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조심스러운 투란과 에스탄을 향해 홀시딘이 무겁게 입을 연다.
“바헬키마…… 그 요동치는 미친 물결인가 하는 놈은 일단 케이라 쪽에 맡겨두자. 투란, 너는…… 에스탄 씨도 도와줬으면 좋겠소.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일이 많을 테니까 말이오. 부탁드리오, 투란과 나를 도와 전설의 수정룡을 쫓아가서 해결하는 일에 함께해주시오.”
에스탄이 미미하게 눈가를 꿈틀거리다가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이 말한다.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이는 부탁이로군, 마법사. 뭐, 은퇴할 도시가 물에 잠겨버리고 파괴돼버린다면 나 역시 원치 않는 뜨내기가 될 판이니…… 별 도움은 안 되고 말만 해 대는 입장이지만, 무슨 말이든 보태보리다. 음, 그래도 이 배 안에서 나갈 일은 없었으면 좋겠소만.”
“최악의 경우라도 에스탄 씨는 이 배와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을 것이오. 내 약속하리다. 그리고 투란, 너는 나랑…….”
에스탄에게 정중하게 확언하며 홀시딘이 막 투란을 돌아보며 말을 이으려는데.
“나도 비상시에 이 배에 들러붙어서 대피하게 해 줘요!”
눈을 반짝이며 투란이 먼저 이리 말하고 있었다.
―야, 이 미친놈아. 정신 나간 소리를 왜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말문이 막혀 잠깐 조용해진 홀시딘을 대신하듯 으르렁거렸다.
홀시딘 역시 바로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금방 투란에게 달려들어 두 볼을 부여잡고 으르렁거린다.
“안 돼! 너는 대피 못해! 너는 나랑 죽든 살든! 같이 수정룡 잡으러 가는 거야! 사룡까지 먹어치웠다는 놈이 어딜 도망칠 궁리부터 하자는 거야! 넌 절대로 대피…… 아니, 도망 못 가! 도망갈 궁리도 하지 마! 알았냐! 알아들었냐고!”
“꽤에에…… 나도 번개 같은 구름배 좀 타보고 싶었을 뿐이라고요오오…….”
투란이 뒤늦게 볼 아프다는 시늉을 하며 변명했다.
그래도 볼을 움켜쥔 홀시딘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는 투란인데, 홀시딘은 그것이 더욱 짜증 난 모양이었다.
“이 자식아! 나중에 번개처럼 질풍처럼 나는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하라고! 이럴 때 헛소리해서 사람 속 터지게 하지 말고!”
“네, 그럼 만들어주기로 한 거죠?”
볼이 늘어난 채로, 머리가 흔들리는 채로 투란이 실실 웃음과 함께 윙윙 울리는 소리로 말을 흘리고 있었다.
“아오오오!”
“하하핫.”
마법사는 울화를, 재상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