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5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41)
Chapter 209. 수정룡, 크리스털 가드
안개가 그윽하게 맺힌 호수는 흡사 구름을 머금은 하늘처럼 보였다.
맑은 하늘이 안개의 틈새로 드러난 호수면에 고스란히 비치면서 그러한 느낌은 더욱 강화되고 강요받는 듯했다.
하늘에서 하늘을 내려다보는 기분, 투란은 그 신기함에 헤벌쭉 웃으면서 엎어진 채로 투명한 바닥 너머의 풍경을 즐겁게 내려다봤다. 에스탄은 탁자 위에 준비된 요리를 하나씩 맛보면서 느긋하게, 노인다운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태도로 텅 빈 듯한 발아래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홀시딘은 그런 동행 둘의 태도, 여유에 전혀 공감도 동참도 못하는 것처럼 허공을 둥실둥실하는 모습으로 낯을 구기고 이마에 고랑을 파며 날카로운 눈빛을 담은 눈동자를 쉴 새 없이 굴리고 있었다. 홀시딘의 두 손 또한 그런 눈길을 좇듯이 바쁘게 허공을 두드리고 긁고 밀고 당기는 중이었다.
흘깃 마법사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다시 엎어진 채로 생각 없이 뒹구는 시늉에 몰두했다. 그런 모습과 다르게 마음속으로는 아주 바쁘게 드라고니아를 재촉하는 중이기도 한데.
‘야, 그렇게 찾기 힘들어! 상아탑의 대마법사도 힘들어하고 드라코눔의 아칸도 힘들어하고…… 그런 거야?’
―안개 두르고 호수를 누비는 놈이다. 애초에 용의 이름을 얻었다는 점에서부터 마법에 대해 꽤나 대비가 된 놈이라니까! 그냥 눈에 띄지도 않고, 이런 탐지계통의 마법에도 상당히 잘 대응한단 말이다!
‘딱히 숨어 다니는 놈도 아니잖아! 슥슥 나타나서 왕창 물을 끼얹고 슬금슬금 도망치는 꼴인데…….’
―그 장난질에 알드바인이 수몰(水沒)될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을 해라! 홀시딘이 심각할 수밖에 없지! 그냥 괴물도 아니고 그림 투아란과 연관된 괴물이니, 웬만한 방법으로는 건드릴 수도 없으니 더욱 초조한 거야.
‘음, 그것 말인데…… 사룡은 도망치지도 않았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지만…… 얘는 그냥 마음대로 싸돌아다니면서 저렇게 말썽부릴 수 있나! 수룡이란 것도 봉인되거나 어쩌거나 하지 않았어! 어째서 갑자기 튀어나왔나도 희한한데 말이야, 저렇게 돌아다니는 까닭은 뭔가 특이한 것이 있어서, 그러니까 이 주변을 싸돌아다니는 것 아닌가!’
―사룡 때처럼 봉인석이 있다면 찾아내서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가, 그게 궁금한 거냐!
‘응.’
요점을 알았다는 듯이 되묻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긴 말을 치우고 간단히, 한마디로 대꾸했다.
―확실히…… 사룡의 상황을 미리 알았다면 그런 요란한 싸움질 따위는 안 하고 바로 해결 볼 수 있기는 했지. 하지만 투란, 지금 상대하려는 놈은 사룡이 아니라 수룡이다.
‘뭔가 아주 심하게 달라!’
―봉인석의 존재여부부터 애매하지. 드라코눔에서 수룡에 대해 마지막으로 기록한 이야기는…… 대마도사 카엘이 수룡좌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사룡처럼 더 이상 날뛸 수 없게 해 놨다는 말이 전부였어. 사룡처럼 대사막 어딘가에 봉인석이 있네 없네 하는 최소한의 정보조차 없었다. 너무 막연한 이야기라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당시의 아칸이 물었지. 봉인이라면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있다면 그 주변이라도 지켜보면서 만약의 일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야. 그때 카엘은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 온다, 수룡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건 지켜보든 말든 어찌 못한다고. 오히려 누군가 그 주변을 감시하는 것이 수룡을 자극해서 못된 짓을 하게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렇게 애매했구나. 행적을 모른다든가, 봉인되었으니 관심을 가질 필요 없다든가. 맨 그딴 말만 하더니, 결국은 드라코눔의 아칸들에게도 제대로 된 정보는 없었다는 거네.’
투란은 투덜거렸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덜거림을 무시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가능한 한 무시하는 것이 잠적해버린 듯한 수룡을 대하는 최선이라고 했다, 대마도사 카엘이 말이야. 게다가 수룡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서 바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고는 못하는 경우라서, 더욱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지.
‘그건 뭔 말이야! 모습을 드러냈는데 실체가 아니라고!’
―사룡과 아주 다른 특성 중 하나지. 사룡이 화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피와 살을 자아내고 마력을 엮어야 한다. 하지만 수룡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 수룡은…… 물방울만으로도 자신의 화신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보통은 미러링이라는 분신을 사용한다만.
‘미러라면, 미러드! 그 품종이란 말이야!’
―아니, 골든드레이크 이야기가 아니고…… 수룡, 크리스털 가드란 이름이 어울리게 된 녀석의 독특한 능력……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능력이 있다. 그 능력과 결과물을 미러링이라고 불러. 물, 물의 결정화를 통해 만들어 내는 화신…… 본체를 그대로 재현해낼 때도 있지만 본체와 조금 다르게 뒤틀린 채로도 나타나는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 뒤틀린 거울처럼 자신의 형상을 투영해서 만들어 내는 분화된 또 하나의 실체, 그걸 미러링이라고 한다.
‘알기 쉽게 말하면!’
삐딱하면서도 꿋꿋하게 투란이 으르렁거리듯이 물었다.
한숨보다는 짜증을 섞은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답한다.
―자신을 본뜬 모형을 만들어 내놓고 잘 숨어 있는단 말이다. 봉인되었든 되지 않았든, 크리스털 가드는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의 비늘과 사파이어의 발톱을 지닌 몸뚱이를 드러내고 유유히 떠돌게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본체는 철저하게 숨길 줄 안단 말이지.
‘얼마나 멀리서!’
―분신과 본체의 거리에 대해서는…… 제약이 없다고 알고 있다만.
‘뭐! 야, 그럼 여기서 안개 몰고 다니는 것이…….’
―수정룡의 본체란 보장은 아무도 못하지.
‘그럼 홀시딘이 지금 하는 짓은…….’
―일단 분신이든 화신이든, 힘을 드러낸 것을 때려부숴 놓으면 일차적인 위협은 제거되는 셈이잖아. 다시 보내온다면 그때 해결할 일이고, 지금 당장 위협을 몰고 다니는 놈은 처리해야지. 아마 그래서일 거다. 수정룡의 화신이라면, 그 권능에 제한이 있을 테니까 투란 너라면 어려움 없이 일차적인 위협을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지. 만약의 경우 본체라면 지금 당장 너 말고 누가 싸우겠냐! 홀시딘에게 넌 최선의 선택이야.
‘젠장, 마법사의 꿍꿍이는 정말 귀찮네.’
투란은 흘깃 홀시딘을 보면서 살짝 입꼬리를 뒤틀며 낯을 구겼다.
한데 홀시딘도 투란처럼 낯을 꿈틀거리다가 확 비틀면서 버럭 소리 지르고 있었으니.
“이런 썩을! 저건 또 뭐야! 찾으려는 것은 안 나오고 뭔 썩을 것들이 모여서 발광을 하고 있는 꼴을 봐야 해애!”
상아탑의 마법사답지 않은 격렬한 울화를 아낌없이 토해내잖는가.
에스탄이 한편에서 고개를 갸웃했고, 투란은 냉큼 몸을 굴리다가 앉으면서 아래를 훑어보는 시늉과 함께 묻는다.
“뭐예요! 뭔데요!”
“바헬키마. 투란, 아무래도 파이로몽거랑 같은 경우가 맞나보다. 그것도…… 훨씬 지랄발광 하는 쪽으로 말이야.”
격노를 억지로 누르는 듯한 표정으로, 한껏 터질 듯한 울화를 겨우 참는 말투로 홀시딘이 손짓과 함께 말했다. 그 손짓과 함께 바닥의 투명함이 일렁이면서 여린 빛을 피워냈고, 그 빛이 그려내는 환영이 바로 상황을 드러냈다.
“응!”
“여러 마리가 있을 수도 있는 놈이었나!”
투란이 맹한 소리를 낼 때, 에스탄이 매우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환영은 에스탄의 말처럼, 홀시딘이 그 이름을 읊조린 그대로의 몬스터…… 투란이 루바인에 내려서자마자 상대하고 잡았던 바헬키마를 여러 마리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얌전히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여러 마리의 바헬키마가 서로를 쳐 죽이지 못해 미쳐 날뛰는 상황을 비춰 주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골수에 와 닿는 듯한 섬뜩한 난투를, 전혀 가감 없이 그 색채까지 선명하게 비춰 준다!
찢어지고 뭉개진 놈, 그 뼈와 살을 누더기처럼 걸친 채로 다른 놈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물어뜯다가 옆구리를 처맞고 복부가 찢어지는 녀석…… 그 복부를 찢다가 또 다른 녀석에게 목을 잡혀 그대로 머리가 뒤틀리며 목뼈가 부러졌지만, 그 골절보다는 목이 빙빙 돌아 숨구멍이 막히는 것을 더 난감해하는…… 괴력의 마물 바헬키마가 서로를 짓이기는 난투를 벌이고 있었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광경에 투란이 멍하니 생각을 아예 멈추고 있는데.
―투란, 울타리!
드라고니아가 사납게 외쳤다.
오직 홀로 들어야 했던 그 외침에 투란은 아무 생각 없이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따라 되뇜을 흘려 내고 말았다.
“울타리……!”
별로 크지도 않은 투란의 목소리에 홀시딘이 바로 반응했다.
“저 썩을!”
몇 마디 더 이어지는 화려한 욕설에 에스탄이 살짝 어이없는 듯, 그러면서도 놀란 듯이 홀시딘을 보며 중얼거린다.
“욕도 마법에 포함되는 분야였나…….”
이 중얼거림이 귓가에 닿고 나서야 투란은 황당한 표정으로 겨우 홀시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게 다 뭔…….”
호기심 가득해서 투란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터져 나온 홀시딘의 욕설, 그 의미를 알고자 함이었다.
너무 신기하고 어이가 없어서 잠깐 정신이 마비되는 기분까지 느꼈으니까!
하지만 홀시딘은 그런 욕설 몇 마디를 설명할 기분이 아니라고 표정으로 외치면서 바쁘게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투란, 저놈들 한꺼번에 정리 가능하냐! 루바인에서 성벽 지켜보던 놈처럼, 몽땅 잡아서 한꺼번에 없앨 수 있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기들끼리 숫자를 줄이고 있기도 하니까. 한두어 마리 남았을 때 떨궈주면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보다 아까, 그…….”
입술을 삐죽이며 환영 속의 바헬키마를, 서로 쳐 죽이고 찢어발기는 괴물들 몇 마리를 지켜보다가 투란이 답하면서 다시 호기심을 자극한 욕설에 대해 묻고자 했다.
홀시딘은 그런 욕설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바로 손짓하며 마력을 흘려 내고 마법을 자아낼 뿐이었다. 그 마법이 바로 투란이 선 바닥을 열었고, 투란은 ‘우엉!’이란 낯선 외침과 함께 구름 아래로 떨어지는 꼴이 되었다.
그렇게 떨어지는 투란을 향해 홀시딘이 마법으로 외쳐준다.
“내려주마! 한두 마리 남기 전에 해결해! 저놈들 가둔 울타리, 그때까지 못 버텨! 빠르게, 한꺼번에 정리해야 해!”
곁에서 보던 에스탄이 어이없다는 듯 두어 번 혀를 차다가 묻는다.
“대체 저 울타리는 뭡니까! 누가 저런 괴물들을 가둔 울타리를 만들 수 있는 거지요! 심지어…… 물 위에 띄워놓은 채라니. 마스터 홀시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진지하고 정중한 질문이었기에 홀시딘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저 투란이 울타리 안으로 겨냥되어 떨어지는 광경을 확인하는 듯하다가 홀시딘이 에스탄을 향해 심각한 표정을 드리운 채로 대답한다.
“수룡의 성채, 오랜 기록에는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물을 다루고 얼음을 꾸미는 능력, 수룡에게는 그런 특별한 힘이 있지요. 그 능력으로 호수 한복판에 바닥을 깔고 벽을 쌓고…… 저놈들을 던져넣은 겁니다. 아마…… 파란 그랑츄를 몇 무리, 몇십…… 아니, 몇백 마리를 넣고 강제로 조건을 만들어서 바헬키마로 변이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수룡은 그 옛날에도 그런 식으로 몬스터 무리를 상잔(相殘)시키고, 그중에서 살아남은 강한 한 마리를 그림 투아란에게 공물로 바쳤다고 하더군요. 공물로 바치지 않은 경우에는…… 그냥 풀어놔서 그 주변에 재앙이 되게 했다고 하고 말이죠.”
상황을 말하면서 홀시딘은 한숨을 섞었다.
잠시 투명한 바닥을, 그 위에 올려진 환영 속에 투란이 끼어드는 꼴을 보는 듯하다가 에스탄이 말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한 마리가 남았을 때에 투란을 내려보내는 편이 낫지 않았습니까! 지금 저렇게…….”
“그림 투아란이 주변에 없으면 울타리는 한 마리가 남기 전에 풀린다 했으니까요. 강한 한 마리 대신에 여러 마리, 제법 사납게 살아남은 여러 마리를 풀어놓고 수룡은…… 그 망할 드레이크는 드래곤처럼 구경하는 겁니다! 젠장.”
“그렇군요. 마스터 홀시딘, 투란을 지원할 수 있는 겁니까!”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고 알린 후, 에스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차하면 내 특기인 화염마법을 쏟아부을 겁니다. 투란은 내 화염마법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을 테니까.”
홀시딘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지만 에스탄은 이미 홀시딘이 그 특기라는 화염마법을 준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숨에 쏟아내기 위해서, 몇 겹으로 겹쳐내기 위해서 마법사의 눈알이 바쁘게 움직이며 차분한 손짓과 함께 마력을 응축시키고 있으니까.
그리고 울타리 안에 처박힌 투란은…….
“미워! 나만 미워해!”
우렁찬 투정과 함께 발길질.
“이빨 돌려!”
사나운 투정과 함께 주먹질.
투란의 손발은 새파랗게, 머리카락은 보랏빛으로, 몸집은 가히 3미터를 거뜬히 넘을 정도로 우람하게 부푼 채였다.
그 주변에서 맴도는 다른 괴물들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었다.
바헬키마를 상대로 투란은 똑같은 바헬키마의 형상을 갖춘 것이다.
―야, 너도 이 싸움질에 그대로 끼어보자는 거냐! 홀시딘이 이러라고 내려보낸 것 아니잖아!
드라고니아가 황당함을 가득 담아 외쳤다.
듣는 둥, 마는 둥한 투란이 손발을 더 바쁘게, 거칠게, 사납게 움직였다.
퍼억! 빠악! 꽈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