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42)
―투란!
한번 더, 아주 강력하게 뇌리를 울리는 외침이었다.
너무 세서 투란은 잠깐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기에 대꾸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아, 왜! 금방 정리할 건데!’
―뭐! 대체 무슨 근거로…… 음! 어라!
투덜거리는 투란에게 으르렁거리려던 드라고니아는 금방 투란의 사유(思惟)를 공유받으면서 흠칫해 말을 멈췄다. 이는 투란을 한껏 으쓱대게 했고, 주먹질 발길질을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불나불 떠들게 했다.
‘와, 너도 참 둔하다. 루바인 성벽 너머 숲에 숨은 놈이랑 나랑 한바탕 붙는 꼴 봤으면서도 이것들이 얼마나 덜 익었나도 몰랐단 말이야! 칼도 마법도, 웬만한 바위 더미로 깔고 패도 불끈불끈 기어 나오는 바헬키마가 서로 맞붙는다고 이렇게 찢어지고 흩어지는 몰골이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어! 이놈들, 아무 적응도 못한 채야. 바헬키마지만 갓난아기나 마찬가지라고! 진짜 바헬키마의 주먹 앞에서는 모두 이렇게 되는 거야!’
와직, 꾸드득.
투란이 내지른 주먹이 다른 바헬키마의 어깨부터 내리찍고 찢어 내려가면서 뼈와 살을 뭉쳐 짓이겼다. 피와 살이 출렁이며 투란이 내지른 팔뚝을 휘감았고 어깨로 가슴으로 물결치며 번져왔다. 그리고 투란이 이룬 형상, 바헬키마 속으로 그 물결이 고스란히 뒤엉키며 스며들었다.
―이놈들…….
뒤늦게 드라고니아도 주변을 다시 확인한 듯 놀랐다.
바헬키마 여럿이 서로 찍고 패고 뭉개는 와중에 바닥에 흩어졌던 뼈와 살이 덜렁거리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 뼈와 살을 매달고 있는 개체와 엉키고 엮이며 느릿느릿 융합되는 중이었다.
그 융합과정은 투란의 바헬키마와 닿은 경우처럼 눈에 띌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미쳐 날뛰는 몸짓들이 너무 과격하고 빨라서 거기 휘말린 탓에 엉겨 붙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딱 그 정도로 느린 융합이었다.
‘어려서 그래. 아니, 어리다는 말은 이상한가! 갓 태어났으니 어린 것 맞나!’
살짝 심드렁한 말투로 투란이 말을 이으면서 아주 바쁘게 바헬키마의 형상으로 다른 바헬키마들을 때려 뭉개고 휘감았다.
―그런데…… 투란, 너 지금 이놈들을……!
드라고니아가 한 박자 늦은 놀라움과 의문을 동시에 속삭였다.
격전 속에서 으스러지는 바헬키마, 그 부스러진 살점과 피는 움직이는 개체에 휘감기며 뒤엉키고 융화되는 중이었다. 투란은 그중에서 압도적으로 빠르게 다른 개체의 파편을 집어삼키는 짓을 하는 것이었으니…….
‘유니크야.’
투란의 대답은 간단했다.
―뭐!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한 듯 짧게 되물었다.
‘하나뿐이라고, 바헬키마. 저 파란 그랑츄가 변이해서 완성될 수 있는 바헬키마는 하나만 살아남아. 그게 특성인 거야, 각자 다른 상황에서 적응하더라도 서로 만나면 하나가 되어서 그 적응한 힘을 하나로 합치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 서로 싸우고 어느 쪽이 우수한가 판별하는 거지.’
투란은 길게, 자신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바헬키마의 성질에 대해서 말로 풀어놨다.
절반은 앞뒤 잘라먹고 중간도 빈 듯한 투란의 이야기로,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투란으로부터 전해받는 심상과 현재 상태의 관찰과 분석으로 드라고니아는 상황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과연…… 이 울타리는 갓 변이한 바헬키마를 한 마리만 남기기 위한 것이었나! 그렇다면 이 울타리를 꾸민 녀석은…….
‘수룡이겠지. 왜 이러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래,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경계하기에는 충분하지. 지금 이 상황, 놈이 모두 지켜보면서 뭔가 수작을 부릴 수도 있다. 아무 일 없더라도 미리 각오를 다져 놔라, 투란.
‘그래, 그러고 있다고옷!’
쿼어어어!
마음으로 외친 다짐은 바헬키마의 목청을 통해 웅장한 포효로 터져 나왔다.
이를 계기삼은 듯이 또 다른 포효가 연이어 터졌다.
쿠악, 콰아아앗!
워어어엉! 워어으, 크어엉!
한편으로는 질 수 없다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한편으로는 울분과 격노가 뒤섞여서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듯한 낌새도 가득했다.
쩌적, 쩌억!
살과 살이 격돌하다가 서로를 잡아먹듯이 껍질을 찢어내는 파열음이 터졌다.
바헬키마끼리 맞잡고 두들기는 과정은 그렇게 먼저 상대를 찢어내고 빠르게 잡아먹으려는 투쟁이었다.
그 속에서 투란은 압도적인 위력, 지독한 효율을 드러내면서 독주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난투의 결말은…….
걸쭉하게 흐르는 핏빛은 붉었다.
넓게 펼쳐진 수정의 벽, 사방을 에워싸고 하늘조차 그 울타리 안에 가두고 보여주는 듯한 광경을 만들어 내는 얼음의 그릇 중심에는 오직 하나의 바헬키마만이 우뚝 서 있는 채였다.
그렇게 홀로 선 바헬키마, 그 형상을 두른 채로 투란은 주변을 둘러봤다.
얼음이 수정처럼 느껴지는 광경 속으로 바헬키마의 피와 살, 뼈가 나뒹굴면서 꾸물꾸물 흐릿하고 여린 파문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중이었다. 중심을 향해, 오직 홀로 남은 바헬키마인 투란을 향해 몰려들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수정의 바닥은 피의 뜨거움에 조금씩 얼음의 본성을 깨우친 듯이 녹아 섞여드는 듯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피와 살, 뼛조각이 간간이 섞인 채로 옅은 얼음과 엉기며 늪의 잔해를 드러내는 듯했다.
‘음, 이놈은 둔하고 센 것에 적응했나…… 별로네, 이 녀석은 어디서 이런 날카로운 것에 베였었지! 에이, 그래봐야 사벨투스의 이빨이나 발톱만은 못하네. 어디보자, 이건 뭔 뜨거운…… 용암보다 덜 뜨겁구만, 얘도 치우고.’
꾸물거리며 살갗에 섞여드는 잔해의 ‘기억’을 본능에 따라 더듬고 분류하면서 투란은 자신이 루바인에서 잡아 삼킨 바헬키마가 얼마나 오래 살아왔고,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아왔는가를 새삼 느끼고 알 수 있었다. 실로 이 자리에서 막 변이된 바헬키마들이 여기에 이르는 동안 쌓아온 온갖 경험을 압도하는 ‘기억’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녹는 얼음의 바닥을 흘러오는 피와 살의 여리고 느린 파문 속에서 투란이 이질적인 ‘요동’을 발견한 것은 잠시 후였다.
―투란, 울타리가…….
‘알아, 느꼈어.’
드라고니아의 경고가 막 나올 때, 투란이 먼저 대꾸했다.
난투의 끝을 확인했다는 듯, 막 변이한 바헬키마를 가두었던 수정의 울타리와 바닥이 해체되며 해빙(解氷)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서서히 녹아 이슬이 되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바위처럼 큰 수정 덩어리가 수많은 이슬방울로 단숨에 흔들거리며 굴러떨어지다가 흐트러지고 흘러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화이트 레이크가 다시 그 자리를 확보하듯, 안개낀 수면에서 바헬키마의 잔해가 느릿하니 수중으로 침몰해가는 풍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서 있으면 투란은 물속으로 빠져들어 헤엄쳐야 할 듯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홀시딘의 배로 되돌아가든가…….
쿠웅.
투란이 돌연 내딛는 한 발이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 냈다.
출렁거림은 녹아사라지는 얼음에 닿은 수면 위로까지 번져나갔다.
늪의 잔해처럼 남은 것들 위로 그 출렁임은 한층 짙고 또렷했다.
그리고 투란이 다시 두어 걸음 주변을 디딜 때, 드라고니아가 겨우 투란의 발바닥에 도톰하게 돋아난 돌을 알아차렸다.
―응! 야, 갑자기 왜 스웜하트를…….
‘그냥…… 그냥 툭 튀어나왔네!’
투란은 스스로도 갸웃하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늪의 잔해 같은 상황을 접하는 순간, 꼬불거리는 발가락 아래로 ‘작은 돌’이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바헬키마의 피와 살, 뼛조각과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이뤄졌다가 녹아내린 얼음의 잔영이 뒤엉킨 듯한 잔해의 늪…… 그저 닮았을 뿐이라고 해야하는 것이 옳을 듯한 갓 태어난 작은 늪을 맛보고 삼키고 있었다. 그 결과물은 금방 투란의 발목부터 불거진 뼈처럼 ‘작은 돌’이 불끈거리며 돋아나서 토해내었으니…….
콰르르, 촤아악.
뼛조각이 줄기가 되고 그로부터 발갛게 돋아나는 피와 살점 사이에서 맑은 이슬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형체가 잔뜩 퍼져 나갔다. 퍼져 나가면서 아직 출렁이고 있는 바헬키마의 잔해들 사이를 누볐고 잔해를 휘감으며 부피를 불렸다.
순식간에 투란은 얇고 붉은 점막 위에 선 꼴이 되었다.
퍼져 나가며 불거진 뼛조각이 간간이 이어진 채, 점막을 버티는 그물처럼 보였다.
피와 살, 맑은 이슬이 깊이를 알 수 없는 표피가 된 듯한 점막, 얄팍하기 이를 데 없는 기괴한 늪이 펼쳐진 듯했다.
크르륵, 크흣!
바헬키마의 목젖이 울렸다.
‘앗, 따가.’
투란은 자기 목이 울리면서 등짝에 들러붙은 기묘한 통증을 느꼈다.
―어라! 드라클레스의 손톱이 남긴 흉터……!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등짝을 먼저 보고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그 말에 투란도 퍼뜩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투란이 형성했던 바헬키마의 형상, 그 본래 몸에는 오랜 경험과 함께 언더섀도우를 지나온 증명처럼 흉터가 남겨져 있었다. 그 흉터는 저주였기에, 용혈의 뱀파이어라는 드라클레스의 저주였기에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투란이 바헬키마의 정수를 삼키고 그 형상을 이루는 데 굳이 그런 흉터까지 재현할 필요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저주는 결국 드라클레스의 불길한 마법의 힘이니,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으로 부서져 나갔다고 봐야 했다.
한데 투란이 홀로남은 바헬키마로서 이 울타리 안을 제패하고 남은 잔해마저 ‘작은 돌’의 힘으로 단숨에 빨아들이려는 순간이 오자 당연하다는 듯이 흉터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뭔 일인 거냐, 이게!
드라고니아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딱히 투란이 알 것이라는 기대도 없이 묻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투란도 뭔 일인가 싶을 뿐이었는데, 투란의 입술이 저절로 열리면서 답을 토해내고 있었다.
“적응…… 아직 마치질 못했잖아…… 아, 이런!”
스스로 토해낸 말을 자신의 귀로 듣고 나서야 투란은 겨우 알아차렸다는 듯이 쓴웃음과 함께 한숨 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투란의 마음과 공명한 듯이 드라고니아도 한숨처럼 중얼거린다.
―이 미친 괴물이…… 그저 떨쳐내는 것이 아니라 드라클레스, 용혈의 저주를 완벽하게 장악해서 극복할 때까지 일부러 등짝에 달고 있었던 거라고! 그게 본능적인 기억이란 말이냐! 정수에까지 그 흔적이 그대로 담길 정도로! 하, 이런 괴물까지 있을 줄이야.
‘하하, 이 희한한 놈…… 나한테도 적응하는 모양인데! 몬스터 로드의 마력에도 적응해서 자기 본성을 더욱 완벽하게 발휘하려나 봐. 하하하…….’
조금 더 상태를 살피면서, ‘작은 돌’이 끌어당긴 피와 살, 뼛조각과 이슬방울의 늪을 모두 삼켜 치우면서 투란이 키득거렸다.
―웃을 일이냐! 몬스터의 본성에 휘둘릴 참이잖아!
드라고니아가 곧 경계하란 듯이 으르렁거렸다.
‘아니, 그치만…… 결국 내 자신이 더욱 완벽해져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꼴이거든. 몬스터 로드의 마력은 이제 완전히 자기 힘이란 것처럼 말이야. 야, 그런데 말이지…… 어째서인가 기분 좋아, 왠지…… 다른 정수들이 저절로 호응하면서 유쾌하게 즐기는 것 같아. 이거 무슨 기분이래!’
―미친놈.
살짝 해롱거리며 낄낄거리는 투란의 이야기에 드라고니아가 울컥하려다가 포기했다는 듯, 그래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짧게 평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욕설 같은 평을 하는 드라고니아에게 화가 나거나 삐죽거리는 기분 대신에 깊이 가라앉는 착잡한 분위기를 느꼈다. 조금 삐딱하니 말이 심하다는 생각은 그 분위기를 충분히 마음으로 음미한 다음에야 느릿하니 찾아오는 듯했다.
그래서 녹아 사라지는 울타리와 바닥을 충분히 감상한 다음, 머리 위로 홀시딘의 배가 넉넉히 다가와 구멍 같은 문을 여는 꼴을 본 다음에야 투란은 물었다.
“왜…….”
첫마디는 입술 너머로 내놨지만, 그다음은 소리 없는 속삭임으로 마음속을 울리며 드라고니아를 향해 몰려갔다.
‘내가 기억을 덮어 지운 거야!’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살짝 당혹스러운 듯, 그러면서도 철벽을 두른 것처럼 단호한 태도가 가득 담긴 듯한 되물음이 드라고니아로부터 나올 뿐이었다.
―무슨 말이냐! 내가 말려도 듣지 않고 너는…….
‘십 년, 그 이상의 시간이었잖아. 처음 사흘은 굉장히 불안 했고, 알드바인이 변한 일이 걱정스러웠어. 그래, 내가 기억하는 것은 딱 그 불안하고 초조할 때에 메듀시아의 기묘한 머리를 이용한다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까지야. 그다음부터 홀랑 비어버렸지. 딱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하게 납득하려는 그 순간까지만 남기고 싹둑 잘라내고 비워 버렸잖아. 내가 아는 나에게 십수 년은…… 그 십 년 이상의 시간을 그렇게 싹 지운다는 생각을 고쳐먹고도 남을 시간이었다고. 그러니까,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그럴듯한 핑계가 통할 순간까지 억지로 기억을 지웠어야 할 이유가 있었느냐고.’
드라고니아는 침묵했다.
그 침묵과 함께 투란은 발을 굴렀다, 홀시딘의 하늘을 나는 배를 향해.
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