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5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44)
몸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격동.
투란은 그 강렬한 파동에 흠칫하다가 이내 깨달았다.
저편에서 거품이 뒤틀린 채로 창처럼 뻗어오는 광경, 그 강렬한 힘에 격동이 일으키는 물결이 장벽이 되어 맞서고 있었으니까.
소리 없는 격돌은 투란이 살갗을 통해 그 사나운 위력을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투란 스스로가 지닌 힘을 자각하게도…….
‘막을 수 있네!’
돌을 관통하고 으깨며 먼지로 만들 파괴력일지라도 생체파동처럼 흘려 내는 격동의 힘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수룡과 사룡의 권능은 거의 동등한 수준이라더니, 이런 거였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그 말투가 살짝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새로 부푼 거품은 바위처럼 투란에게 쏘아지는 중이었다.
‘객관적! 거의! 뭔 이야기야!’
쩌억, 파지직.
거품이 낼 수 없는 듯한 충돌과 파열음이 터졌다.
연이어 날아온 거품의 창은 그 음향의 영향력을 뒤집어쓴 것처럼, 바위 모양 거품과 함께 으스러져 날려갔다.
부르르…… 투란이 몸을 떨 때마다 새로운 물결의 장벽이 주변을 밀고 짓이길 것처럼 파문의 형상으로 번져나갔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우열관계가 바뀔 수 있으니까. 주관적으로 보자면…… 개체로서의 권능, 파괴적인 성질은 사룡이 우월하지만 지혜는 수룡이 더 뛰어나기에 권능의 활용도, 효율성과 상황에 따른 적응방식은 수룡이 압도적으로 우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룡은 앞뒤 가리지 않고 광대한 지형을 누빌 때야 비로소 더스크라이더란 이름의 위력을 드러낼 수 있다. 수룡은 그 이름 그대로 물이 있는 곳에서 비로소 그 권능의 진정한 위용이 드러나는데, 물가를 떠난 적이 없지. 즉, 이 상황은 사룡보다 수룡에게 훨씬 유리하단 말이다. 물론 투란 너는 사룡이 아니라 사룡을 삼킨 몬스터 로드이니까 조건은 더 복잡해질 것이고…… 쉽게 우열을 단언할 수는 없겠지. 조심해라, 수룡의 크리스탈 스피어는…… 피해!
연이어 쏘아져오는 거품, 그 다양한 형태를 우직하게 피어나는 물결의 장벽으로 밀어붙이면서 투란은 나아가는 중이었다. 거리를 둔 채로 뭘 하려 해도 아직 수룡의 형체조차 보지 못하고 있으니, 저 울퉁불퉁하고 짙은 거품 무더기를 파고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거품처럼 투명하면서도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얼음의 창이 날아들고 있었다.
‘안 부서지네!’
격동으로 세운 물결의 장벽을 단번에 둘이나 관통하며 세 번째 물결에 닿는 얼음의 창을 느끼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마치 사룡의 격동 따위는 무시한다는 듯한 견고한 결정질인 얼음, 물이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정련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수정빛 창은 위력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투란은 옆으로 몇 걸음 움직이면서, 물속 깊은 곳이고 물의 중량과 압력이 같은 깊이의 다른 곳보다 훨씬 강렬함에도 거침없이 밟고 걷는 시늉으로 움직이면서 피해낼 뿐이었다.
이런 투란의 가벼운 움직임을 징계하려는 듯, 크리스탈 스피어가 터졌다.
‘어!’
물속에서 아름답게 퍼져가는 그 파편, 구름처럼 안개처럼 물속을 채우는 광경이 순간적으로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그저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라 투란에게 익숙한 ‘뭔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뭔가’는 여유롭게 투란이 몸에 두른 격동의 힘, 그 힘으로부터 파생되었기에 압도적인 물결의 장벽을 파고들며 번지고 있었다.
―크리스탈 애쉬 맞아!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의아함을 풀어주듯 외쳤다.
‘아, 역시.’
투란은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 마법이었다는 크리스탈 애쉬, 하지만 투란이 아는 ‘크리스탈 애쉬’는 몬스터가 지닌 특성이었고 능력이었다. 마법처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본질은 괴물의 파편인 것, 그것이 투란이 아는 ‘크리스탈 애쉬’.
지금 퍼져 스며드는 크리스탈 애쉬가 마법이든 아니든, 그 효과와 특성만큼은 투란이 아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격동의 장벽 속으로 어떻게 저 수정의 분진이 스며드는가를 투란은 금방 납득하고 이해했다. 격동에 거스르지 않고 그에 맞춰 함께 격동함으로써 장벽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스며드는 상황.
하지만 장벽을 완전히 넘어서게 된다면 크리스탈 애쉬는 다시 창이나 칼, 어쩌면 도끼 같은 형체를 이루고 투란을 찍어올지도 몰랐다. 아니면 성벽 같은 관짝을 만들어 투란을 가두려 할지도…….
콰아아앗!
투란의 몸 주변에 격렬한 소용돌이가 피어났다.
소용돌이는 격동을 머금고 형태를 바꿔 송곳처럼 거품 무더기를 향했다.
겨냥이 끝나자마자 격동이 만들어낸 소용돌이 송곳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크리스탈 애쉬가 화살이 남긴 자취처럼 길게 늘어졌고, 꼬리가 되겠다는 듯이 자취를 더듬으며 투란을 향해 번져왔지만 매우 늦은 움직임이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투란은 두터운 물가죽처럼 느껴지는 거품막을 관통했다.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벗겨졌고, 물속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바람결이 맴도는 자리에 투란은 내려섰다.
‘거품 동굴!’
―수중성(水中城), 보통 그렇게 불렀다만…… 그렇게 꾸밀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군.
조금 아쉽고 안타까운 듯한 낌새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아쉬움이었다.
‘충분히 꾸며 놓은 것 아니야!’
수중 깊은 곳에 거대한 거품으로 장막을 꾸리고 그 안에 물이 없는 빈자리를 만들어놨다. 그 중심에는 하얗고 투명한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성채가 떡하니 놓인 광경인데, 대체 뭘 더 꾸며야 하는가!
얼핏 봐도 선명하게 비늘과 깃털이 융합된 듯한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도도하고 거대하게 원을 그리는 듯한 성채는 꾸미지 않았다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 아닌가!
―투란, 저거 수룡 크리스털 가드이다만!
‘응!’
투란은 잠시 눈을 비비적거리고 깜박이다가 다시 수중성이라는 거품의 중심구역을 바라봤다.
원을 그리듯이 꾸민 성채……로 보이던 것이 아주 느리게 꿈틀거리며 움직이면서 거대한 똬리를 풀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눈동자를 느릿하게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 거대한 눈동자는 무지갯빛이었고 투란과 딱 마주쳤다.
‘아…….’
문득 투란은 기억해냈다.
지금은 문장의 풍경 속 깊은 곳에서, 아주 깊은 자리라서 흘깃 느끼기에는 까마득한 먼 곳의 작은 새처럼 파닥이는 꼴인 사룡이지만 사실은 백여 미터의 키를 자랑하는 거인이랑 맞잡고 뒹굴 정도로 컸었잖나.
사룡이 그랬는데, 수룡이 수십 미터짜리 드레이크처럼 작을 것이라는 기대를 대체 왜 했을까! 그야말로 드레이크에 대한 선입견이 아닌가.
반성하는 기분으로 투란이 바라보는 사이, 수룡은 보다 크게 그 무지갯빛 눈동자를 드러내면서 투란을 향해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와 함께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수룡의 거대한 몸이 보다 분명하게 그 형체를 드러냈고…….
“예쁘네.”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감상을 투란은 딱 한마디로 요약했다.
수룡은 그 크기와 무관한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듯, 반짝이고 맑았다.
하얀 비늘과 투명한 깃, 눈동자의 무지갯빛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한 광채.
긴 몸의 한적한 곳을 차지하듯 뻗어 나와 짧게 느껴지는 네 발은 손처럼 보였고, 손톱은 새하얗게 물들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색이라고 주장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예쁘다는 한마디로 줄인 것이 죄악처럼 여겨질 지경.
그리고 새하얀 비늘이 깃털처럼 덮은 투명한 날개는 곤충을 연상시키니…….
‘응! 곤충날개!’
투란은 묘한 기분에 어리둥절했다.
그 피막이 얇아도 가죽이며 창칼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드레이크가 지닌 최소한의 특징일 텐데! 저건 아무리 봐도 가죽은 아닌 듯하잖나…….
게다가 저리 투명하고 예쁘다고 강한 것일 리가 없다.
그런데 수룡의 날개에서는 강함이 엿보였다.
마치 아름답기에 강하다 주장하듯!
‘그럴 리가…….’
투란은 떠오른 망상에 헛웃음을 짓다가 표정을 굳혔다
말도 안되는 망상이,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 ‘심상’이 그렇지 않냐는 메아리처럼 되묻고 있기에!
―지혜가 있는 놈이라 했잖아.
씁쓸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은 어이없어 되물었다 반박하듯.
‘사룡은 말 안 하잖아!’
―그놈은 맹수, 저놈은 현자. 그리 불리고는 했다지.
드라고니아는 왠지 태평한 분위기로 대꾸하고 있었다.
그그극.
바닥을 이끄는 둔하고 무거운 소리가 퍼뜩 투란의 관심을 끌었다.
길게 늘어져 내린 수룡, 크리스털 가드의 꼬리와 아래에 돋아난 두 다리가 바닥에서 솟아나온 은색의 사슬에 묶여 질질 끌리는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가 난 듯했고.
“뭐냐, 저건!”
투란은 수룡의 꼬리 끝, 두 발목을 휘감은 사슬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중 깊은 곳에 거대한 거품의 동굴을 꾸미고 성채 같은 몸집을 내려놓았던 녀석이 홀시딘처럼 둥실 뜨는 것도 황당하지만, 그런 녀석의 한편을 휘감은 세 가닥 사슬의 모양도 범상하다 여길 수가 없었다.
수십 미터 지름으로 그려진 원주(圓周)에 사슬은 묶여 있었고, 수룡이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만 움직여도 수룡은 화이트 레이크 곳곳에 영향력을 끼치고 파랑 그랑츄를 불러서 바헬키마로 변이시키는 짓 따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고 있었잖은가.
그렇다면 저 사슬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아니, 뭐 당연히 묶고 있…… 젠장, 대체 뭔 수작이야!’
스스로 대답을 망상하는가 싶던 투란이 울컥해서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스스로 생각을 하는 중이라 느끼기는 했지만, 아까처럼 사슬에 대한 망상은 투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더듬고 되짚어보니 역시 수룡이 기묘한 방식으로, 말을 대신해서 순수하게 의지만을 전해 온 듯했다.
“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 지혜로워 현자라며! 그럼 말 정도는 제대로 하라고!”
그그극.
수룡의 꼬리 끝이 바닥을 긁었다.
그 둔하고 무거운 울림 속에서 투란은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청해오는 대화의 시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방식에 대해 매우 친숙하게 여기는 자신의 ‘일부’를 느낄 수 있었다.
―사룡의 생체파동에 간섭하는 것이군.
드라고니아도 알아차린 듯이 말했다.
“대화가…… 되는 거냐!”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그리고 수룡 크리스털 가드를 향해 동시에 묻는 말을 소리 냈다.
―일반적인 대화를 하는 놈이 아니다. 대화를 한다 해도…….
드라고니아가 일단 부정하는 말을 꺼내다가 흐렸다.
그 흐릿함 속에서 투란은 사룡의 격동, 생체파동과 비슷하지만 완연히 수룡의 것인 파문을 느끼고 그 안에 담긴 ‘의지’를 ‘엿듣고’ ‘읽어 냈다’.
마치 담장 너머에서 누군가 혼잣말을 하는 광경을 엿보다가 귓가에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 그런 기분으로 투란은 수룡이 대화가 아닌 통보를…… 일방적인 통보를 하는 중인 것을 알아차렸다.
‘이건 또 뭔…… 음!’
절로 한숨이 나오게 하는 그 묘한 ‘알림’ 속에 담긴 기묘한 광경이 투란의 관심을 끌었다.
또렷한 모습은 아니었다.
허리춤을 살짝 넘는 지팡이를 짚은 그림자를 보는 듯했다.
지팡이에는 춤을 추는 듯한 두 가닥의 긴 것, 상식적으로 뱀이라 여겨지는 두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휘감긴 채였다.
역시 그림자처럼 보이는 그 뱀 두 마리가 감긴 지팡이가 바닥을 찧었고, 그림자처럼 보이는 자가 ‘말’을 전해오고 있었다.
―시험해라, 시험관.
―크리스탈 옥좌의 주인을 가리는 것은 너의 의무.
―뚜껑 열어놓을 테니, 나와서 시험해라.
―더스크라이더를 본보기로 삼든 말든, 그건 스스로 판단해라.
―스타파이어를 기준으로 삼아도 괜찮아.
―깨웠으니, 책임질 일을 책임져라.
이러한 ‘말’을 크리스털 가드는 품고 있었고, 투란에게 엿듣고 엿보게 해주고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를 투란은 납득할 수가 없는데…….
뿌득, 푸슷.
사슬이 매달린 원주, 그 원의 안쪽에 불끈불끈하다가 수정 덩어리를 몇 개 툭툭 뱉어내고 있었다. 수정은 너무나도 투명해서 그 안에 담긴 새파란 살갗과 보랏빛 체모가 선명하게 보였고, 그런 몸뚱이가 허공에 덩실거리며 매달려 있나 싶은 착시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바헬키마……!”
투란은 중얼거렸다.
―여섯 마리나!
드라고니아도 살짝 멍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투란은 등짝을 시원하게, 화끈하게 스쳐 가는 흉터…… 용혈의 손톱자국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저 수정 속에 담긴 바헬키마 여섯이 갓난아이 같은 경우가 아니란 것까지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저것들!’
오싹한 기분으로 투란은 수룡의 눈동자를 올려다봤다.
수룡 크리스털 가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