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5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45)
내려다본다.
높은 곳에서, 한없이 낮을 곳을 지켜본다.
크리스털 가드는 그 맑고 투명한 몸 곳곳을 허공에 한껏 드리운 채로 그렇게 투란을 향해 무지갯빛 눈동자를 비춰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투란에게 조금 전에 스쳐간 몇 마디를 되새기게 했다.
‘시험한다! 나를! 왜!’
태도를 그 의도는 알 수는 있었지만 그 까닭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룡은 그런 투란의 의의함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투란, 앞!
드라고니아가 경고하는 순간, 투란은 이미 어깨를 한껏 들어 올려 주먹을 뒤로 젖힌 채로 앞에 서 있는 바헬키마를 보고 있었다. 수정 덩어리에서 풀려나자마자 한번 바닥을 딛고 도달한 놈이었다. 그 몸속에 담긴 뜨겁고 이글거리는 괴력이 이 한 마리 바헬키마의 속력을 증강(增强) 시켜주기라도 하는 듯했다.
등골을 차갑게 파고드는 용혈의 저주를 다시 느끼며 투란은 느릿하게 내질러지는 바헬키마의 주먹, 그 너머로 다른 바헬키마 몇 마리가 달려들기 위해 몸짓하는 광경까지 한꺼번에 눈에 담았다.
가속된 사고(思考)를 통해 투란은 모두 여섯 마리인 바헬키마가 자신이 삼켜 품고 있는 바헬키마와 어찌 다른가, 어찌 닮았는가를 검토했다.
오래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화산, 용암…… 재와 함께 숨을 쉴 수 있는 몸, 뜨거운 환경을 자신의 힘으로 바꿔버린 적응.’
당장 주먹을 내지르는 바헬키마가 어떤 환경을 겪고 어떻게 그 몸을 적응시키려 변이했는가를 투란은 ‘느껴’ 알 수 있었다. 여러 마리의 갓난 바헬키마를 삼키면서, 용혈의 저주가 몸을 통해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과정까지 겪는 투란의 바헬키마는 그러한 감각과 통찰을 허용하고 있었으므로.
때문에 투란은 수룡 크리스털 가드가 풀어놓은 여섯 마리의 바헬키마가 얼마나 색다르고 특별한가를 명확하게 알 수밖에 없었다.
세상 곳곳…… 보통은 인간이든 짐승이든 쉬이 닿을 수 없는 격렬하고 혹독한 환경이 자리 잡은 세상 구석구석의 기괴한 곳에 적응한 바헬키마 여섯이었다. 때문에 그 몸이 힘을 발휘하는 과정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효과가 전부 다르다!
맨 앞에 튀어나온 화산지역의 용암 동굴 깊은 곳에 적응한 한 마리는 그 몸이 용암의 뜨거움에 버틸 뿐 아니라 그 뜨거움으로 달아오른 몸을 가속시키며 암벽을 붕괴시키는 괴력을 몸에 지녔다.
그 뒤를 이어 다가온 놈은 발끝이 살짝 땅을 짚는 것만으로도 몇 미터를 도약할 수 있는 기이한 괴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손가락이 유난히 굽은 채로 손톱이 갈고리를 연상시키는 모양, 숨을 참으면서도 전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형태, 더불어 어렴풋한 공명을 통해 그 적응과정의 ‘기억’까지 엿보다 보니 까마득하게 높은 산악지대, 절벽을 건너야만 하는 괴팍한 지형 속에서 수많은 추락을 겪은 한 마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살짝 뒤로 조금 느리지만 단단하고 견고함이 눈가에 들러붙은 차가운 결정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녀석은 차가움을 온몸에 두른 꼴이 혹한의 지역에서 꽤나 오래 뒹군 경우.
‘전부 괴상하잖아! 뭔 벼락이 쉴 새 없이 치는 곳이야! 모래늪 밑바닥이 지하호수냐! 물속인데 불타는 바위로 된 물고기는 또 뭐야!’
연이은 공명을 통해 ‘기억’을 공유하며 투란은 투덜거렸다.
수룡이 풀어놓은 바헬키마, 그 여섯 마리는 정말 특별한 환경에서 괴이하고 극단적인 경험을 했고 적응했다. 그로 인해 갖춰진 힘은…….
퍼엉, 쩌억!
투란의 새파란 손아귀가 뿜어내는 괴력은 날아든 주먹을 거침없이 움켜쥐었고 뒤틀어 멈춰 세웠다.
퍼억, 꽈드득.
다른 주먹이 붙들리며 힘줄이 뒤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파란 살갗에 힘줄은 긴 벌레와 뱀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불끈거렸지만 바헬키아의 두 형상은 꿈쩍도 없이 고정된 듯이 멈춰 있었다. 때문에 뒤늦게 달려오는 녀석들이 투란을 둘러싸며 거의 포위할 듯했다.
―응! 너, 아주 쉽게 잡는다!
드라고니아가 흠칫 놀란 듯이 묻고 있었다.
거칠고 험악한 환경에서 적응하고 강대한 괴력을 갖춘 바헬키마를 상대로 투란이 아주 쉽게 찍어 누르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때문이었다. 그 자세가 헛된 것은 아닌 듯, 둘러싸고 내질러오는 바헬키마들의 손짓을 투란은 주먹을 붙잡은 바헬키마와 자리를 바꾸고 이리저리 돌리는 시늉만으로 뿌리치고 있었다.
‘이놈들, 진짜 이상한데!’
다시 뒷걸음치면서 붙잡은 놈을 당기고 둘러싼 놈들과는 간격을 두는 채로 투란이 갸웃하는 기분을 담아 속삭였다.
―힘은 비슷한 것 아니냐! 왜 너 끄는 대로 질질 딸려오지!
드라고니아도 알아차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바헬키마들…… 이 여섯 마리는 괴력의 몬스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투란이 살짝살짝 발을 딛고 움직이는 사이에 가로막히고 옆으로 지나치는 등, 기묘할 정도로 싸움질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흡사 싸움의 초보들을 놓고 무투의 달인이 농락하는 듯한 상황.
이 지경이라면 차라리 파랑 그랑츄였던 녀석들이 더 잘 싸운다 해도 좋았다.
‘설마…….’
문득 한 가지 생각난 듯 투란은 낯을 살짝 구겼다.
슬쩍 위를 올려다보는 투란의 눈동자는 바헬키마의 황금빛 형상이었고, 하얗고 투명한 수룡 크리스털 가드의 모습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뭔가 맞서 싸워야할 여섯 마리 바헬키마보다 수룡 쪽에 성난 낌새를 드러내고 투란은 곧바로 어깨를 불끈 부풀리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형상의 변화는 곧 상황을 극단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투란의 파란 힘줄이 툭툭 살갗을 열고 튀어나오면서 주먹을 잡아둔 손등으로 옮겨 갔고, 투란에게 당겨오고 끌려진 채로 휘둘리는 바헬키마의 팔뚝과 어깨로 휘감는 넝쿨이 되었다. 그리고 힘줄 넝쿨로부터 툭툭 불거진 씨눈이 시커먼 잉크를 분사하고 있었으니…… 새파란 바헬키마의 살갗 위로 검은 얼룩이 덮이고 번져나갔다.
카르르르, 캬아앙!
괴팍한 괴성이 몇 마리 바헬키마의 입에서 멋대로 터져 나왔다.
투란이 한 마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덧칠하는 광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듯, 어떻게든 쫓으려 해도 제대로 투란을 보고 서지 못하는 것이 짜증 난다는 듯한 괴성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교묘한 발걸음으로 한 마리를 방패로, 담장으로 삼듯이 움직인 투란의 발 아래로 어느새 검게 찍힌 발자국이 가득했고 물컹거리는 검은 늪처럼 끈적이는 중이었다.
투란을 중심으로 빙빙 돌던 바헬키마들이 그 끈적이는 늪을 마구 밟았고, 튀어 오른 검은 늪의 파편이 종아리와 다리에 마구 튀어올랐다. 그러는 사이에 결국 투란에게 달려드는 여섯 마리가 모두 검은 얼룩을 온몸에 묻힌 꼴이 되었다.
―어지간한 마법이나…… 밧줄 따위로는 묶지 못해. 이놈들, 순수하게 저 몸뚱이의 힘만으로 다 뿌리칠 수 있을걸. 단숨에 성공하지 못하면 웬만한 것에는 모두 적응할 테니, 두 번은 없다.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뭘 시도하는가를 흥미롭게 지켜본다는 듯, 그러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알아, 그런데 이놈들이 단숨에 적응 못하는 것도 있잖아.’
투란은 두터운 입술을 뒤틀리면서 소리 없이 대꾸하며 눈가에 웃음을 피워냈다.
―뭐! 적응 못하는…… 어! 너, 설마!
드라고니아는 의아해하다가 흠칫했다.
투란은 자세한 설명을 더하는 대신에 곧바로 새로운 힘의 파동을 일으켰다.
검은 잉크가 붉은 광채를 흘려 내며 요사스럽게 꿈틀거렸다.
몸에 번진 얼룩에도, 바닥에 깔린 끈적임에도 그 붉은 광채가 번져갔다.
주먹을 맞잡은 투란의 두 손 끝에서 두툼한 바헬키마의 손톱과 다른 갈고리 같은 형체가 자라났다. 어지간한 짐승에게서는 볼 수 없는, 두툼하면서도 그 끝이 이상하게 뾰족한 손톱이었다. 그 손톱 끝은 핏방울을 머금은 듯이 부풀었고 자라면서 맞잡은 주먹의 껍질을 꿰뚫고 스며들었다.
특별하고 두터운 살갗이 꿰뚫린 바헬키마가 성난 괴성을 흘렸다.
하지만 아까부터 흘리던 괴성의 파편일 뿐, 그로 인해 달라지는 상황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손톱은 붉은 광채를 머금은 검은 잉크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마찬가지로 얼룩을 묻힌 바헬키마를 모두 푹푹 쑤시는 중이었다. 분리된 몬스터의 형상, 늪의 마수가 투란에게 덤비는 바헬키마 여섯 마리를 모두 할퀴고 쑤신다고 봐야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살갗이 찢어지고 그 안에 손톱이 파고든 것은 거의 잠깐 동안이었을 뿐, 곧바로 속살이 거칠게 불거지면서 그 아래로 근육이 샘솟으며 손톱을 밀어내는 듯한 모양이 이뤄지고 있었다. 상처가 나자마자 흉터가 부풀고 봉합되는 듯한 모양이었다.
쿠억, 쿨럭, 쿨럭.
바헬키마 여섯 마리가 눈과 코, 귀와 아랫도리, 손톱과 발톱, 배꼽 언저리까지 틈이란 틈에서는 모두 걸쭉한 피를 흘리며 허우적거렸다. 빙글거리는 눈알이 거꾸로 돌아갔고, 눈자위의 황금색은 이제 반짝임을 잃고 그냥 노란 거품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귀에서는 길게 늘어진 죽처럼 붉은 피가 흘러내려 귀안에 붙인 귀걸이 장식이 녹아내리는가 싶었다.
그 피는 바헬키마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들러붙었고, 속살 곳곳을 헤집는 것처럼 파란 살갗의 도드라진 힘줄까지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투란이 잡고 있던 한 마리를 밀쳐내니, 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바닥에 엎어지며 버둥거렸다. 그 바닥은 검고 붉은 늪이었고, 뼈와 살이 간간이 거품처럼 치솟았다 내려앉으며 부글거리는 채였다.
투란이 이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용혈의 저주를…… 대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쓴 거냐!
드라고니아는 조심스럽게 묻고 있었다.
투란은 조심스럽지 않게, 홱 돌아서서 수룡을 올려다보며 대답을 하고 있었다.
“저주와 싸우는 바헬키마의 피, 그 피와 저주가 엮인 늪, 그 피의 늪이 바헬키마의 뼈와 살을 녹이고 잡아먹는 거야. 연습은 갓난 녀석들에게서 충분히 했고, 이놈들의 피와 살도 맛봤으니까. 자, 그러면…… 만족하나, 크리스털 가드! 그거 네 이름 맞지! 너의 시험, 이제 끝난 거냐!”
쿵, 쿵.
수룡을 향해 투란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큰 북소리처럼 바닥이 울렸다.
원래는 수중 깊은 곳이라 물거품과 섞인 진흙이 치솟을 자리였지만, 거품막에 의해 물이 차단되고 바싹 마른 바닥은 풀풀 흩날리는 사나운 티끌을 일렁였다.
수룡은 그렇게 몇 걸음 다가온 투란을 보며 그 길고 거대한 몸을 움직이며 커다란 머리를 낮췄다. 투란에게 무지갯빛 눈동자를 더욱 자세히 보여주려는 듯, 혹은 투란을 더욱 자세히 보겠다는 듯…….
투란은 그 거대한 눈동자를 험악하게 마주 쏘아봤다.
그사이에 늘어진 검은 늪이 붉게 번뜩이며 널브러진 바헬키마 여섯 마리를 삼키고 녹여 트림하는 듯한 거품을 볼록거렸다. 늪은 곧바로 응축되었고 투란의 발아래로 흘러드니…… 아무런 잔해조차 남지 못했다.
모여든 검은 잉크가 투란의 발을 적시고 발목을 타고 올랐다.
투란의 종아리가 불끈거렸고, 바헬키마의 형상은 구석구석 부풀고 가라앉으며 새로운 형질에 적응이 완료된 것을 과시했다.
그 광경을 모두 다 보았다는 듯, 거대한 수룡의 머리가 살짝 끄덕이는 듯했다.
“너 대체……!”
슬쩍 울컥한 투란이 뭐라 떠들려 하는 순간, 수룡의 눈동자에서 무지갯빛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텅 빈 듯한 투명한 눈알…….
갑작스러운 변화는 눈동자의 탈색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룡의 온몸이 그렇게 투명해져가며 바스러지고 안개처럼 변해 추락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투란의 앞에는 커다란 안개 더미만 남겨진 듯한 상황이었다.
―투란, 저거!
드라고니아가 그 안개의 중심으로 요란하게 떨어지는 사슬을 짚었다.
꼬리와 몸의 뒤쪽 두 다리를 묶고 있던 사슬이 팽팽해진 채로 또 뭔가를 휘어감듯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수룡의 형체가 어찌 변하든, 사슬은 뭔가를 잡아 묶기라도 하는 듯했다.
안개에 그 광경이 가려졌기에 투란은 짜증을 내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수룡이 떠 있던 자리까지 다가가면서 하얀 원을 넘었고, 그 중심쯤 되는 자리에서 찰캉거리는 사슬의 소리를 들으며 투란은 계속 안개를 헤치고 나아갔다.
세 가닥 사슬이 커다란 무지갯빛 수정알을 휘감은 광경은 금방 투란 앞에 나타났다. 대강 칠팔 미터의 간격까지 다가서자 겨우 보이는 것이 이 갑작스러운 안개가 보통 것이 아니란 점을 확실히 알리는 듯했다.
‘뭐야, 이거!’
투란이 어리둥절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신중하게 드라고니아가 이에 대꾸한다.
―사룡과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마찬가지?’
―수룡을 봉인한 결정……이 아닐까! 아까 본 것은 수룡이 만들어낸 화신이든가, 그 본래 능력으로 비춰낸…… 실체처럼 꾸민 환영이든가.
‘그래서 지금 뭐 하자는 건데!’
―사룡과 마찬가지……로 잡아먹어 보라고 도전하는 것 아닐까!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의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