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5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46)
Chapter 210. 수룡의 주인
몬스터가 날 잡아먹으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일 아닌가!
‘그런 적 있나!’
당연히 없다 여기면서도 투란은 혹시나 해서 드라고니아에게 묻고 있었다.
―없다, 몬스터로 변이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자가 이성을 유지하고 있을 경우라면 그럴 가능성은 있다만.
단호한 대답이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살짝 가능성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보태고 있었다. 어찌 보면 지금 상황이 그런 경우일지도 모른다는 듯한 낌새가 스며있는 듯도 했다.
그래서 투란은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얘, 왜 이러는 거야! 수룡…… 크리스털 가드가 이런 성격인 거야!’
―전설과 이적에 대해서는 많다만, 대부분 드래곤로드 그림 투아란의 휘하로서 그 힘을 발휘했다는 식이지. 수룡은 수정성의 수호자라는 별칭도 있을 만큼 그림 투아란의 가까운 곳에서, 그 보금자리를 지키는 입장이었다니까. 드래곤의 영향력이 없는 상황에서 뭔 성격인가는 전혀 알 수 없지.
‘어쨌든 저런 몰골이라도 몬스터란 점은 그대로이겠지!’
―그야 당연하다만…….
‘그럼 더 생각 안 해도 되겠네.’
―뭐!
투란은 세 가닥 사슬에 휘감긴 수정을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 의도를 드라고니아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일단 삼키는 거냐!
어이없어 하는 혼잣말이나 다름없었지만, 투란은 이에 대답한다.
‘몬스터 로드한테 뭘 바라!’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투란의 발 아래로, 꽉꽉 눌러 만든 듯한 발자국에 시커먼 잉크가 핏빛을 머금은 채로 짙게 채워지고 있었다. 바헬키마의 잔해를 끌어들여 삼켰던 늪을 대신하듯, 시커먼 바탕에 핏빛이 가득한 잉크가 투란의 발아래에서 그림자처럼 늘어지며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었다.
바헬키마의 형상을 그대로 품은 투란의 온몸에서 사나운 투지가 치솟았고, 이에 호응한 윌 라이트의 마력이 그 핏빛의 검은 색채 속으로 스며들었다. 수룡이 풀어놓아 여전히 깊은 물속에 물이 없는 영역을 만들어낸 거품에 닿을 때까지, 잉크의 늪은 퍼져 나갔다.
“셰이아.”
거의 본능적으로 투란은 입술 사이로 한마디를 흘렸다.
자신이 만든 늪의 감각을 느끼다가 반사적으로 흘려낸 셈이었다.
그림자 정령은 곧바로 투란의 자그마한 목소리에 반응했다.
소리 없이 그림자 정령의 힘이 흘려낸 늪으로 스며드는 것을 투란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아주 낯익다는 낯선 상황을 깨달을 수도 있었다. 마치 처음이지만 자주 해 봤다는 듯한, 망각을 넘어서 느껴지는 묘한 기분…….
―잊었을 텐데, 습관이라 어쩔 수 없었나.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담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습관!’
그 한마디가 어딘가 그리우면서도 묘하게 뜨끔해서 투란이 바로 되풀이했다.
―계속해봐, 난 돕지 않겠지만.
묘하게 재촉하는 드라고니아였다.
그 태도에 담긴 의미를 투란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를 일, 돕지는 않아도 막지도 않는다.
드라고니아는 구경꾼처럼 투란을 바라만 보겠다는 것.
아마도 기억을 덮으면서 투란이 드라고니아에게 약속을 받았든가, 어쩌면 제약을 걸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문장 속에 그 정수를 담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투란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가까운 사슬을 밟고 곧바로 수정 위로 올라섰다.
바헬키마의 형상보다 더 큰 수정 위에 올라서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무릎도 대며 자세를 굳히는 투란, 그 입가가 뒤틀리며 몇 마디가 난폭하게 흘러나온다.
“몬스터 로드 앞에서 이런 몰골을 보이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냐! 무슨 생각을 했든 안 했든, 오늘로 넌 내 안에서 그림자로 머물게 될 거야! 내 허락 없이 다시는 이 세상에 간섭 못하게 될 거야!”
목소리가 울리는 사이, 늪에 깃든 그림자가 더욱 짙은 핏빛을 흘려 내며 사방을 채울 듯이 퍼져 나갔다. 그 과정은 빛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고 물이 비워진 영역을 형성하던 거품막을 물들이기까지 했다.
온통 핏빛의 그림자 아래가 된 듯했지만 사슬과 수정은 그 본래의 색채를 전혀 잃지 않았다. 자욱한 안개조차 핏빛의 그림자 아래 하얀 색채를 잃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대조적이었고 어딘가 신비롭게도 보였다.
꽈악.
파란 주먹의 근육이 뽀득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힘줄을 드러내며 쥐어졌다.
―야, 그렇게 내리치면 아무리 바헬키마의 살가죽이라도 찢어질 텐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경고했다.
무지갯빛 수정알, 수룡이 봉인된 형체를 무시하지 말라는 듯.
한데 투란은 곧바로 주먹을 내리찍으며 짧게 대꾸하니.
‘찢어질 거야.’
파악, 와득.
주먹이 무지갯빛 수정의 표면에 닿기가 무섭게 터져 나가며 뼈까지 뒤틀리며 부러지고 말았다. 피가 튀었고, 거침없이 부러진 뼈를 헤집으며 배어나오고 괄괄 넘쳐흘렀다.
주먹질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퍽, 으직, 퍽, 퍽, 퍽…….
뼈가 빠른 재생력을 통해 엉겨 붙기도 전에 내리치는 탓에 어느 틈엔가 무슨 팔뚝에 달린 가죽 주머니를 내리찍는 듯한 몰골이 되고 있었다. 온통 찢어져서 그 안에 담긴 뼈와 살, 핏덩이가 철철 흘러넘치는 듯한…….
너무 단단한 것임에도 울화와 분노를 참지 못해 자기 몸 상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리치는 듯한 모습이었고, 달리보면 마치 투란이 일부러 피를 흘려 무지갯빛 수정알 위에 얼룩이라도 만들려 하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사이에 거품막과 바닥을 핏빛으로 채워넣는 그림자 정령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고, 미묘한 소음까지 내고 있었다.
사아아…….
‘마력장벽! 아니, 피의 장벽이라고 해야 하나!’
투란은 주먹질을 하며 셰이아의 움직임을 느꼈고, 문득 떠올렸다.
기억하고 있는 뱀파이어와의 짧은 만남, 그 속에서 뱀파이어가 피를 흘려 내고 다루는 광경을 떠올렸고 거기에 지금 셰이아의 하는 짓을 겹치면 떠오르는 광경.
원래 그림자를 바탕으로 마력을 끌어 올려 이뤄내던 장벽, 거기에 피를 더해 한층 더 강화된 장벽을 꾸미는 그림자 정령…….
―피를 도구로 삼아 그림자의 힘을 증폭시키는 거야. 주인인 네가 허락했으니까, 네가 그 피를 제공했으니까.
드라고니아가 조금 뜬금없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투란은 이를 따지거나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셰이아가 이뤄진 핏빛 그림자, 그 마력장벽이 얼마나 촘촘하고 견고한가를 음미하면서 투란은 다음 할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
‘맛보고 삼킨다, 셰이아. 알아서 도와.’
―흐음!
드라고니아가 살짝 흥미롭다는 듯, 감탄했다는 듯한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흘려넣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나, 지금 꽤 놀랐음!’이라고 알려오는 셈이었다. 한편으로는 왜 그런 ‘명령’을 셰이아에게 내렸느냐고 묻는 듯도 했다.
‘내가 바보냐아아!’
소리 없이 버럭 외치면서 투란은 너덜거리는 손을 활짝 펴서 커다란 수정 위에 올라탄 그대로 수정의 표면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올라탈 정도로 커서 어차피 손을 대는 모습이었지만 그 움직임과 함께 퍼져 나갔던 핏빛 위로 작은 고리의 무늬가 연쇄적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광경은 그냥 그러려니 넘기겠다는 듯.
―아무 생각 없이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정말로 셰이아에게 맡긴 거냐!
조금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였기에 투란은 투덜거리는 말투로 짜증을 섞어서 대답을 늘어놓는데.
‘내가 기억을 못해도 정령수는 기억을 한다, 이게 네게 맨 처음에 외우라고 한 일이잖아! 내게서, 나의 의지에서, 내 마력에서 태어난 정령수가 나를 위해 내가 시키지 않은 일도 할 수 있다면서. 그리고 내 마력을 받아들이고 나랑 계약한 정령도 그리할 거라고! 그러니 셰이아도 이럴 때 뭘 해야 하는가 알겠지! 내가 시키는 것보다 더 잘하겠지! 내가 덮어버린 기억은 나만의 기억일 테니까. 너도 멀쩡히 기억하는 중이니까!’
길게 이어지는 말에도 투란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 의지를 따르는 투란의 마력도 분명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마력이 아무리 열심히 갉아도 무지갯빛 수정의 표면에서 수룡 크리스털 가드의 정수에 닿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어렵지 않게 금방 알 수 있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몬스터 로드의 마력을 방해하는 이질적인 마력을 투란은 금세 느낄 수 있었으니까.
수정알에 머금어진 수룡의 마력과는 다른 마력은 사슬로부터 발생하고 있었다.
‘사룡과는 다르긴 한 거지!’
―뭐, 그쪽이야…… 거의 사룡의 유해를 직접 사용한 봉인이었지! 이건 수룡의 핵을 마도구인 사슬로 감아놓은 셈인데…… 음, 아무래도 금색의 마도사가 썼던 그 사슬과 같은 맥락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뭔가 어설프게 수룡의 조각이라도 새어 나가지 않게 보호하고 방어할 목적도 갖춰서 말이야.
‘몬스터 로드의 마력으로도 단번에 안 부서지게 말이지.’
으르렁거리는 표정으로 투란은 격렬하게 온몸의 힘을 끌어모았다.
바헬키마의 형상이 흔들거렸고, 등에 박힌 흉터가 사납게 저주를 흘려 내는 듯했다.
투란의 모습에 변화가 일어났다.
바헬키마의 형상이 해제되며 본래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변화였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 방출되는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은 줄어들지 않고 폭증하고 있었다.
외형이 축소되는 와중에 마력은 오히려 두 배, 세 배 더 증폭되며 사슬을 물들인 핏빛 늪으로, 정령이 자아내는 그림자 속에 더욱 강렬한 마력을 두르고 무거운 장벽을 덧씌우는 것처럼 퍼져 나갔다.
둥, 두둥, 둥.
느닷없는 고동(鼓動)이 투란의 몸 한구석에서 피어나며 뒷골을 타고 스며들어 마음속에 드리워졌다.
파칫, 파르르…….
기묘한 격동이 투란을 중심으로 짙게 퍼지고 있었다.
투란의 눈가에 괴이한 변화가 피어났다.
핏빛으로 덮인 수정알에서 무지갯빛 광채가 치솟았다.
너무 짙은 탓에 핏빛 장막을 뚫었지만 여전히 핏빛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무지갯빛이 수정알의 실체를 드러내는 듯했다.
치리링, 채앵.
사슬 세 가닥이 요동치며 굵직한 모양과 다른 가벼운 울림을 터뜨렸다.
―어! 야, 이거……!
드라고니아가 돌연 놀란 듯이 외쳤다.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투란은 왜 외치는가를 알 수밖에 없었다.
멀리 원주에 뿌리내린 사슬, 그 사슬이 뿌리를 들어 올려 회오리바람처럼 투란을 향해 휘말려 오고 있었으니까. 수정알을 뿌리 삼아 투란까지 휘감아 묶어버리겠다는 움직임이 너무나도 노골적이었으니까!
이 상황을 한 걸음 물러서서 관찰한다면, 명확하게 투란을 잡을 덫인 셈이었다.
수룡의 정수를 탐내는 몬스터 로드를 사로잡을 덫에 투란이 걸렸다고 해도 될 듯한 상황.
하지만 투란은 이런 상황을 향해 피식 웃었다.
셰이아가 이 웃음에 호응하듯 움직였다.
투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고동과 어우러지는 듯한 핏빛이 요동이 거대한 거품막의 공동 안을 가득 채웠다.
파치칫, 채애앵.
회오리처럼 몰려들던 사슬이 공중에 못 박힌 듯이 멈춰졌다.
핏빛의 장벽에 들이박힌 듯한 광경이었다.
그 장벽의 깊은 안쪽에서 투란은 무지갯빛 수정알에 손을 담가가고 있었다.
단단했던 껍질, 그 표면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투란의 손을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수룡의 정수가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과 만났다.
* * *
“저거…… 냅둬도 되는 겁니까!”
에스탄이 미묘한 우려가 담아 물었다.
홀시딘이 확대해서 보여주는 수중의 광경, 거대한 거품막이 핏빛으로 물들며 더 이상 그 속의 풍경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투란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바헬키마, 아무리 봐도 관록과 경험으로 무장하 듯한 노력한 놈들을 제압한 것까지는 봤기에 급박하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에스탄은 그 뒤에 핏빛 거품의 장벽 너머로 요란하게 피어나는 물결, 때문에 수면까지 뒤틀며 피어난 소용돌이와 호수의 요동을 보며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점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뭔가 할 수 있는 이는 에스탄이 아니라 상아탑의 마도사…… 아무리 봐도 상급 마도사 중에서도 최상위로 여겨지는 홀시딘이었으니 에스탄은 넌지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에스탄이 모르는 것을 안다면 대답이라도 해줄 테니까.
홀시딘은 이런 에스탄의 복잡한 생각과 기대를 아는 듯, 조금 느릿하게 구겨진 표정을 숨기지도 않은 채로 대답한다.
“냅둘 수밖에 없군요. 적어도…… 투란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저지르고 있는 일이니까 말이오.”
“으흠…….”
에스탄도 더 묻지 못했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