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5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48)
“무슨 일인데…….”
멍했던 표정과 자세를 풀면서 투란이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홀시딘이 여러 차례 불렀다는 티를 내듯이 버럭 외친다.
“어디 가서 황금매의 쉼터니 어쩌니 떠들고 다닌 거냐! 저주를 가득 품은 괴인이 널 찾는다잖아!”
“네!”
하던 말을 잊고 투란은 맹한 대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알드바인에서 온 연락이라더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잠깐 졸던 시늉을 하던 투란으로서는 앞뒤 사정은커녕 홀시딘이 눈가를 촤악 치켜올리는 표정조차 이해할 수가 없다!
―흐음! 황금매란 것 때문에 상아탑이 경계를 발동시킨 모양인데! 아겔페스의 일인가 해서 말이야.
‘응! 금색의 마도사! 아니, 그런 일을 내가 떠들고 다닐 리가 있냐! 그것 때문에 엄청 조심해서 로열클래스까지 됐구만! 설마 내가 기억 못 하는 무슨 일이 있나! 저주받은 괴인이랑 엮인 일이 있어!’
투란이 낯을 구기면서 소리 없이 묻는 한편, 홀시딘을 향해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채로 입도 열어 목소리를 흘려낸다.
“전혀 무슨 말인가 모르겠어요! 대체 어디에서 어떤 괴인이 와서 나를…… 정말 날 찾는 것 맞기는 해요!”
홀시딘이 낯을 구겼다.
잠깐 멍하더니 눈을 부릅뜨며 반발하는 투란에게서 어떤 거짓도 느낄 수가 없었고, 뭘 꾸며내는 조짐이라고는 당당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강조하는 투란의 마음가짐이 분명하는 것뿐이니…… 살짝 한 걸음 물러서는 말투로 홀시딘이 진지하게 다시 묻는다.
“야누트 왕국의 상아탑에서 연락이 왔다. 황금매의 쉼터, 거기에 사는 투란을 찾는 괴인이 발견되었다고 말이야! 말을 더듬어 대는 탓에 황금매의 투란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덕분에 상아탑의 경계령이 발동 직전이었단 말이다! 이 바쁜 와중에 그런 일이 왜 터졌을까! 응, 그래, 뭐 짚이는 것…… 있지! 뭐냐, 대체!”
눈을 깜박이면서 무고한 시늉을 하던 투란이 어느 순간에 움찔했기에 홀시딘은 말투를 바꿔 깊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돌리고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꽤나 억울한 상황이었다.
당당하게 무고한 사람이었다가 갑자기 드라고니아가 툭 던지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 것이니까. 물론 그 말에는 확실히 투란의 완벽한 무고함을 흠집 내서 틈을 여는 내용을 담고 있기는 했는데.
―아, 굴하람에서 만났던 그 여자…… 이름이 뭐였지!
‘라카샤.’
스스로 겪은 시간은 십수 년, 굴하람에서 흐른 시간은 석달 가량…… 언더섀도우의 기억이 증발한 채로 굴하람의 일도 조금 희미하다 느끼는 투란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기억 밑바닥에서 치솟는 이름을 떠올리며 움찔하고 말았다.
“뭐냐고, 투란!”
홀시딘이 다그치고 있었다.
후욱, 숨을 들이쉬었다가 몰아 내쉬면서 투란은 일단 정직한 태도로 솔직한 답을 입에 담기로 했다.
“생각나는 일은 한 가지 밖에 없어요. 굴하람에서…… 홀시딘이 부탁한 대로 언더섀도우에 들어가기 전에 누가 내 신분이 뭐냐고 막 따지길래 대답했던 일이 있어요. 알드바인에서 황금…… 금빛매의 간판을 단 쉼터에 산다고 말이에요. 그것 말고는 전혀 없는데요! 게다가…… 저주 같은 것은 전혀 상관없는 남매였다고요. 무슨 괴인이니 뭐니 할 낌새는 전혀 없었어요.”
홀시딘이 노골적으로 혀부터 차며 말한다.
“쳇. 완전히 무고하다고 시침 뗄 수는 없단 말이군. 일단 보내라고 해야겠네.”
“네!”
투란은 어리바리하고 맹하니 한마디로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말투로 봐서는 ‘모름!’이라고 시침 떼고 내팽개칠 작정이었던 듯한데, 지금 나온 두서없는 투란의 말에 뭔지 모를 일에 개입하려 하는 태도라니…….
하지만 홀시딘은 자세한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대신.
“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해! 황금매는 무슨 황금매야! 금빛매잖아, 금빛매! 간판 아래에 글자고 금빛매라고 똑바로 새겨져 있잖아! 왜 애매하고 이상한 말로 놀래는 경보가 울리게 하냔 말이다!”
투란은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이 가는 말에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금매의 사연이라든가 관련된 일에 대해서 모르는 채로 가만히 구경하던 에스탄은 갸웃하면서 한마디 할 수 있었다.
“금빛매나 황금매나…… 글자야 어쨌든 그냥 같은 말 아닙니까!”
어딘가 여유로운 그 말에 홀시딘은 끄응 하고 한숨을 쉬는데, 투란은 문득 에스탄이 그루터기의 쉼터에 대해서 뭔가 안다고 느꼈다.
“어, 에스탄…… 쉼터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들었지, 너한테.”
담담한 대답은 금방 에스탄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홀시딘이 ‘어라!’ 하는 표정으로 에스탄을 바라봤다.
그 말없는 의문에 에스탄이 여유롭게 바로 대답한다.
“금전 담요를 감춰놓은 자신의 진짜 보금자리라고, 언더섀도우를 벗어나면 바로 돌아갈 것이라고…… 돌아가서 금전을 마음껏 써야한다고 늘상 투덜거렸지요. 그럴 때마다 프릿 폐하께서 투란에게 금괴를 한 덩이씩 던져줘야 겨우 잠잠해지고는 했지요.”
묘한 추억을 더듬는 에스탄의 주름진 표정은 개구쟁이처럼 즐겁게 지난 장난을 돌아보는 듯했다.
투란은 ‘음!’ 하고 그 표정의 의미를 캐는데.
―그렇게 금괴 모으라고 너한테 꼬드긴 인간이 저 작자야. 자기도 같이 알드바인으로 와서 배당받아 간다고 말이지.
키득거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하고 있었다!
눈꼬리가 꿈틀거렸지만 투란은 후욱 하며 계속 갸웃하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궁금한 부분은 있는데.
‘나, 너에 대해서도 뭐라뭐라 떠들거나 했었나!’
―안 했다. 몬스터 로드의 금기랑 엮인 부분이고, 내가 노출되어서 좋은 일 따위는 전혀 없으니까. 나 역시 당연히 반대할 일이잖아.
이번에는 살짝 씁쓸한 듯이 중얼거리는 답을 들려주는 드라고니아였다.
그런데 투란이 이렇게 눈알을 굴리며 내면의 답을 구하는 사이에 홀시딘은 눈알을 기묘하게 번뜩이면서 에스탄에게 슬그머니 묻고 있었으니.
“금괴라면…… 투란이 특별한 마법 배낭에 담아올 수 있었겠소이다!”
절반쯤은 확신을 담아 확인하려는 말투였다.
에스탄이 그런 마법사의 낌새를 눈채친 듯이 히죽 웃는 얼굴로 답한다.
“물론 그렇지요, 어디 파묻어놓고 왔을 리가 없잖습니까!”
“오호, 역시 투란. 자, 투란, 이제 마무리 좀 지으러 가자.”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치켜올리는 미소가 은근히 사나운 채로 홀시딘이 말했다.
투란은 황당해서, 언더섀도우 인왕도의 재상을 바라봤고 상아탑의 대마법사에게 눈길을 돌리면서 묻는다.
“아니, 어딜 가요! 간다고 해도 어차피 이 구름배 타고 갈 거잖아요! 그런데 뭘 더 할 일이 있는 것처럼…….”
홀시딘은 즉각 손짓을 해서 투란의 말처럼 구름배를 가속시키는 지휘를 하며 바로 대답을 한다.
“그래, 이걸 타고 갈 거야. 하지만 너도 좀 정비하고 대비해야지. 호수 전역에서 한자리로 모이는 괴물의 자취를 찾아갈 참이니까. 네가 아래에서 해치운 다음에 바로 반응이 왔어. 흔적 쫓기가 힘들었던 녀석들이 노골적으로 한자리로 모인다고 말이야.”
투란으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녀석들!”
“호수를 곳곳에서 범람시키던 녀석들. 네가 날린 것이 본체라면, 아마 그렇겠지만 그 본체와 무관하게 따로 노는 잔가지 같은 놈들이 있어. 그게 한자리에 모여. 무슨 까닭인지, 뭔 일이 일어나는가는 가서 봐야해. 그러니…… 좀 지쳤더라도 다시 힘낼 준비를 하라고. 널 찾는다는 괴인은 이 일을 끝내고 다시 얘기해야지. 그럼, 간다!”
힘찬 외침으로 마무리 짓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스탄이 앉은 자세를 바꾸거나 급히 어딜 붙잡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구름 같은 배의 격렬한 요도에 대처하는 모습을 꾸미지는 않았다. 투란 역시도 멀뚱거리며 가만히 앉은 채로 미묘하게 엉덩이에 전해오는 진동을 느낄 뿐이었다.
―상당히 가속했다. 목표가 분명하니 머뭇거리질 않는군.
‘녀석들, 이란 것에 대해서는 뭐 짚이는 일 없냐!’
―글쎄, 수룡의 분신과 관련된 잔재겠지. 수룡이 완전히 회수를 하지 않았거나 그 제어를 상실했을 때에는 마지막 명령에 따라 움직일 테니…… 대강 그런 정도의 일이다 싶다만, 네가 그 자리에 도착하면 바로 마무리 지어질 거야. 어쨌든 수룡의 본체를, 그 정수를 삼킨 너의 의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다만!’
―그 모이는 자리가 멀쩡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원래라면 수룡이 너에게 삼켜질 때 분신들이 함께 몰려와 마무리되었어야 하지 않나 싶거든.
‘으흠.’
투란은 심상 속으로, 문장의 풍경 속으로 눈길을 돌려봤다.
수룡은 그 커다란 물주머니 혹은 물항아리 같은 수정의 형상 속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듯했다, 사룡이 거대한 궤도를 움직이며 날갯짓하는 것처럼……. 어떻게 봐도 삼켜진 후 세상의 일에는 완전히 관심이 없는 듯했고 뭐라 짤막하게 할 말도 없다는 듯한 여유로운 태도가 느껴진다.
투란은 그런 수룡의 분위기에서 드라고니아처럼 묻고 답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그 형상을 형성해서 힘을 쓰는 것 말고는 이지적인 대화 따위는 불가능, 짤막하게 던져왔던 몇 마디는 그저 무엇 혹은 누군가의 메시지에 불과한 것을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뭘 어찌 따져볼 수가 없으니 투란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다른 것을 떠올린다.
‘라카샤……랑 저주받은 괴인이랑 관계가 있을까!’
―응! 그 여자랑! 글쎄다, 너 그때 상황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지!
‘그냥 만났던 거잖아! 뭘 기억하고 어쩌고 해!’
―요상한 것이 보인다고 갸웃거리지 않았냐! 십수 년이 지났다 보니 나는 좀 기억이 가물거리는 듯하다만.
‘마법으로 기억을 묶어놓는 놈이면서 뭔 소리를! 어쨌든 보면 반짝반짝하던 일은 기억나. 그래서!’
―그게 무슨 저주의 낌새였을 수도 있잖을까!
‘음! 흐음, 넌 어쨌든 라카샤랑 무관한 일은 아닐 거란 말이구나!’
―달리 연관된 일이 없잖아! 어디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나불거린 것도 없으니, 거의 유일한 관련자잖나!
‘그렇겠지, 역시…….’
슬그머니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면서 투란은 바닥을 내려다봤다.
어느 정도 투명함을 조절한 듯, 스쳐 가는 풍경이 뿌옇게 보이고 있었다. 혹은 너무 빨리 날아서 그냥 뿌옇게 호수의 안개와 엮인 것일 수도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렇게 스쳐 가는 풍경에는 수룡의 잔재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틈엔가 자신의 풍경 속에 수룡은 자연스럽게 동화된 듯했고, 저 호수의 풍경과는 완전히 격리되어 상관없어진 듯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비행이 느릿해지며 보이는 풍경이 선명해졌는데…….
“뱀! 하얀 물뱀!”
멀리까지 보이는 수면의 풍경 속에 한곳을 향해 느릿느릿해 보이는 꾸물거림으로, 실상은 상당한 속도로 모여드는 몇 가닥의 굵직한 형체가 엿보였다.
―분신이로군, 수룡의 본체가 사라져도 여전히 남아서 처음에 각인시킨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된 모양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고 하더군.
‘본체가 각인시킨 명령을 본체가 사라져도 따른다니…… 편리한 일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가만히 수룡의 분신이라는 형체를 세었고, 어디로 모여드는가를 살피려 했다. 홀시딘이 그런 투란의 셈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입을 열어 결과를 쏟아낸다.
“섬으로 모이고 있군. 폭이 이십 미터도 안 되는 작은 섬인데, 저런 곳에 여덟 마리나 엉겨서 대체 뭘 하자는 거지! 게다가 저 모양은…… 대체 무슨 몬스터를 꾸미고 싶은 거야!”
“뱀……이잖아요!”
투란은 아무 생각 없다는 듯이 중얼거려 답했다.
에스탄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어설프게 날개 뼈도 달려 있고 다리도 붙어 있다. 몸통이 길고 긴 뱀이지만 말이야, 그러니 뱀은 아니지. 애초에 왜 저런 몰골인가부터가 의아하군.”
홀시딘도 이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가 갑자기 버럭 외친다.
“뭐가 되었든! 투란, 먼저 내려갈 거냐, 아니면 내가 불부터 질러볼까!”
“섬을 통째로 녹여 가라앉힐 것 아니잖아요! 일단 내려갈게요. 아까 잡은 녀석이랑 닮았으니까 어쩌면 더 쉽게 정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투란이 불타오르려는 듯한 마법사를 향해 눈살을 찡그려 보인 후에 한숨처럼 대답을 했다. 그사이에 드라고니아가 헛웃음과 함께 한 말이 투란의 뇌리를 울리는데.
―헬플레임을 한층 더 강화한 모양인데! 은근히 실험하고 싶은 걸로 보인다만, 확실히 수룡의 분신에게 통할지 어떨지 나도 궁금하군. 수룡 크리스털 가드의 수정방벽은 견고함으로 유명했다니까 말이야.
‘호기심 채우려고 숲도 짐승도 있는 작은 섬을 녹여 없애냐! 게다가 호수도 상당히 증발할 텐데, 주변에 뭔 일이 터질지 어떻게 알아! 저 분신이 얌전히 처맞아준다고 확신도 못하는데!’
투란은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키득거리는 금방 투란의 뇌리에 스며왔다.
―정론이다만, 네가 말하니까 이상하군. 푸후훗.
입을 꾹 다물며 투란은 곧장 홀시딘이 열어준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가고일의 돌날개가 투란의 등에서 불쑥 솟아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