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50)
캬아앙!
“얼레!”
울음소리까지 어딘가 고양이를 닮았기에 투란은 잠깐 움찔했다.
조그마한 고양이도 아니고, 짐수레보다 더 커서 사람 스물은 포개 얹은 크기 같은 괴수가 작은 고양이처럼 울고 있는 셈이잖나.
그리고 괴수 땅징어는 투란이 그렇게 살짝 머뭇거리는 사이에 벼락처럼 바닥을 할퀴고 뛰었다.
“오, 덤……!”
덮쳐오면 맞서려던 투란은 여유롭게 입을 열다가 말을 흐리며 멈춰야 했다.
거대한 고양이가 뛴 방향은 투란의 반대방향.
호쾌하게 울부짖으며 괴수답게 덤비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영리하군, 듣던 대로.
드라고니아가 조금 기묘한 감탄을 흘렸다.
‘뭐라고 들었는데!’
후욱 숨을 들이쉬면서 소리 없는 짜증을 터뜨리면서 투란은 바로 고양이 모양을 한 땅징어를 향해, 냅뒀다가는 이대로 섬을 벗어나 물속으로 뛰어들 듯한 괴수를 향해 돌진해야 했다.
콰드드득.
나무가 땅징어의 고양이 발톱에 휩쓸려 바닥에서 찢겨 튀었다.
나무 사이의 두터운 자갈, 돌덩이도 함께 튀어 올랐다.
돌과 나무의 파편은 사정없이 투란의 갈 길을 막는 듯했다.
‘저거 헤엄 잘 치나!’
우득, 파아앙!
커다랗게 부푼 손바닥으로 앞을 가로막는 파편들을 단숨에 밀어내는 채로 투란은 바쁘게 물어야 했다. 땅에서 산다고 했지만 원래 바닷속 짐승을 닮은 녀석이라면 딱히 헤엄쳐 도망가는 일을 꺼리지는 않을 듯했다. 하지만 몬스터란 생긴 대로 습성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잖나.
―물을 싫어는 한다만, 수중활동에 제약이 있는 경우는 아니지. 애초에 물보다 땅을 더 좋아하는 오징어 닮은 놈이라고 땅징어란 이름이 붙었을걸!
‘쳇. 정말 어디로든 도망갈 수 있단 말이네!’
다시 솟구치는 짜증을 느끼면서 투란은 더욱 몸을 부풀리고 힘을 끌어모으며 앞으로 거칠게 내딛었다. 투란이 불과 두어 걸음 내딛는 사이에 수 미터를 전진했고 땅징어는 작은 숲을 돌파해서 거의 물가에 닿은 듯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뒤통수를 치든 발목을 잡든 해야 했는데, 그 필요가 투란을 본능적으로 손짓하게 했다. 그 손짓은 치솟고 튀어 몰려오던 파편을 치우던 손을 활짝 펴서 내밀며 잡는 시늉이었다.
‘어라!’
―호오!
생각 없이 손짓한 투란이 놀랐고, 드라고니아는 흥미로워하는 결과가 나왔다.
새하얗게 피어난 안개, 반짝이는 투명함을 지닌 안개가 투란의 앞쪽으로 가득 퍼져 나가면서 막 고양이 모습 그대로 물에 뛰어들려는 땅징어를 잡는 커다란 손아귀가 된 것이다.
보자마자 그리고 손에 느껴지는 감각을 통해 투란은 저 안개가 크리스탈 애쉬이며 이전에 활용하던 아르고누스의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촤아악!
고양이 뒷발을 잡혀 끌려온 땅징어가 사방으로 촉수를 뿜어내며 긁었다.
고양이 형태는 순식간에 허물어져 사라졌고, 어느 틈엔가 십여 가닥의 매끄러운 촉수가 나타난 채로 아무것이나 붙잡고 투란에게 당겨지지 않으려 버둥대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통해 투란은 땅징어의 본래 형태를 엿볼 수 있었다.
매끄러운 촉수에서는 가시 혹은 송곳니라 해도 좋은 검고 뾰족한 돌기(突起)가 돋아나 있었고, 거기에 스친 나무나 돌덩이는 그대로 부서져나갔다. 나무나 돌이 덮지 않은 땅바닥도 거죽이 찢어지며 고랑이 파이는 중이었다.
―흠, 흡반 대신에 가시뿔이 돋는다더니…….
‘가시뿔! 이빨 아냐!’
―이빨은 저 머리통 아래 입안에 있고…… 땅징어는 오징어와 닮은꼴이지만 오징어나 문어에 있는 흡반 대신에 지상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발톱과 손톱의 대용품으로 저 작은 뿔을 지녔다는 것이 속설이다. 가시뿔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뜯어내 버릴 수 있고, 촉수도 같이 찢기더라도 먹잇감만 충분하면 금세 다시 자라지. 그 촉수의 재생속도가 괴물이냐, 괴물처럼 강할 뿐인 짐승이냐를 가르는 척도라고 하더군.
와드득.
투란이 들으면서 힘을 주는 순간, 크리스탈 애쉬의 손아귀에 붙잡힌 촉수 몇 가닥이 찢어졌다. 땅징어가 드라고니아의 이야기처럼 붙잡힌 부위를 빼낼 수 없다 여겨지자 바로 붙잡히지 않은 촉수로 찢어내 버린 것이다.
‘독한 놈이네!’
투란은 살짝 감탄했다.
―아, 몬스터구만.
드라고니아는 땅징어의 찢긴 촉수 언저리가 뭉클거리며 금방 다시 솟구치는 꼴을 보며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투란도 적당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보통 짐승이 지닌 재생과는 확연히 다른, 그야말로 마법처럼 잘려나간 부위를 원래대로 복구시키는 저 능력은 몬스터라 부르기 딱 어울렸다.
“대가리도 찢어발기나 한번 보자!”
으르렁거리는 투란의 포효는 바헬키마의 괴성이었다.
물가로 가기 위해 땅거죽을 긁고 찢던 땅징어가 파르르 떨며 잠깐 멈칫했다.
파팟, 파악!
새하얗게 퍼져 나가며 투명하게 번들거리는 크리스탈 애쉬가 몇 가닥의 촉수처럼 갈라지고 내리꽂히며 땅징어를 가두는 울타리처럼 내리꽂혔다. 공중에 자취처럼 남겨져 있던 크리스탈 애쉬는 다시 뭉쳐서 커다란 손아귀를 꾸몄고, 곧바로 땅징어의 뾰족하고 둥글둥글한 중심……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하아아…….
느릿하면서 도도한 숨결이 투란의 입가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안개가 숨결을 따라 새하얗게 번져 가며 땅징어를 덮었다.
요동치던 촉수가 모두 굳어버린 듯이 멈췄다.
‘응! 나, 방금 뭘 했지!’
투란이 흠칫하면서 두리번거리는 채로 자신의 숨결을 다시 되돌아봤다.
―수룡의 숨결 아니었냐! 크리스탈 애쉬에 자극받아 수룡이 숨결에 힘을 보탠 것 아니었어!
드라고니아가 조금 전의 상황을 되짚어 보는 듯이 말했다.
‘아…….’
투란도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며, 문장의 풍경 깊은 곳에서 슬쩍 콧김을 흘리는 듯한 시늉을 해보이는 수룡의 형상을 확인하며 알 수 있었다.
지금 숨결은 수룡 크리스탈 가드가 그 힘을 빌려준 것.
크리스탈 애쉬로 확실하게 땅징어를 찍어 누른 것이다.
때문에 투란은 처음 떠올렸던 의문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왜 땅징어가 크리스털 가드 봉인된 곳에 파묻혀 있었지!’
―시답잖은 상상으로 말해볼까!
툭 던지는 드라고니아의 말투가 조금 묘했다.
뭔가 추정한 일이 있는 듯한데, 그런 추정을 말도 안 된다고 스스로 먼저 부정하는 꼴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은근히 그 추정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살짝 짜증이라도 내는 듯도 하다니.
‘뭔데!’
자신에게는 그런 시답잖은 상상도 없기에 투란은 툭하니 물어야 했다.
―수룡 크리스털 가드를 삼킨 몬스터 로드에게 주는 선물. 수룡이 해방되면, 그리고 봉인째로 삼켜지면 그 일을 완수한 몬스터 로드에게 보다 활용하기 쉽고 평범한 척 꾸밀 수 있는, 하지만 아주 유용한 몬스터를 통째로 선물했다……라는 상상을 해버렸다. 응, 말하고 나니 터무니없는 것은 둘째 치고 한층 더 시답잖은 헛소리 같구만.
잠깐 머리가 멍해지고 텅 비워지는 것 같아서 투란은 대꾸할 수가 없었다.
사아아, 찬바람이 사방을 메웠고 크리스탈 애쉬의 자취는 그 차가움의 원인이란 듯이 투란의 주변을 맴돌며 서리를 흩뿌렸다.
그 차가움을 투란은 문장 깊은 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간결한 긍정.
어이없고 황당했지만 투란은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 맞나 본데!’
―뭐!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했다.
‘선물, 맞다고.’
―뭐라……!
투란의 보태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말문이 막힌 듯했다.
투란은 머리를 좌우로, 어깨에 기대는 듯이 꺾는 시늉을 하고 바로 바헬키마의 형상을 해제했다. 다시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온 채, 투란의 손이 찢긴 채로 굳어버린 촉수의 파편을 집어 올렸다.
곧 몬스터 로드의 의식(儀式)이 치러졌다.
하얗게 서리에 덮여 굳어버린 땅징어는 금방 투명한 티끌이 되어 사라졌다.
하아, 입김을 내뿜으면서 서리의 잔재가 함께 사라진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기지개를 펴는 시늉을 했다. 이런 모습에 호응하듯 곧바로 홀시딘의 목소리가 투란의 귓가에 울려왔다.
“끝난 거냐!”
“보고 있었잖아요!”
투란은 조금 뚱한 대꾸를 했다.
“안 보였어!”
되돌아온 홀시딘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담겨 있었다.
투란이 어이없어 되묻는다.
“에! 안 봤다고요! 도망치지 못하게 잡으라 해놓고 왜 안 봐요!”
“안 본 것이 아니고 볼 수가 없었단 말이다!”
홀시딘의 대답이 한층 더 사납지 않은가!
‘이게 뭔 소리야!’
투란은 애써 자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몬스터 로드의 정상적인 규칙을 따르듯이 땅징어를 삼킨 과정을 왜 홀시딘이 보지 못했는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보여주려고 그랬는데, 볼 수가 없었다니…….
―흐음! 이거 묘한데!
뒤늦게 드라고니아가 꺼낸 말은 투란을 홀시딘만큼 짜증나게 했다.
‘뭐가! 왜 위에서 아래를 훤히 내려다보지 못했다는지 묘하다는 말이야! 로열클래스 마법으로 날 마음껏 엿보던 중 아니었어!’
―로열클래스의 징표를 그렇게 막 쓰겠냐! 홀시딘은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투영(投映)의 마법을 쓰려 했던 모양인데…… 음, 뭐랄까 네가 발산한 수룡의 힘이 주변의 마법을 모두 무효화시키거나 방해를 했다고 해야 하나!
‘수룡이 훼방 놨다고! 숨결을 차갑게 한 정도가 아니라 마법사를 훼방 놓기까지 했다고! 나 모르는 사이에!’
경계심이 자연스럽게 투란의 가슴에서 치솟았다.
통제되지 않는 채로 멋대로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몬스터 로드의 힘, 그것은 광란의 시초나 다름없을 뿐이니.
―의도한 것은 아니야. 너도, 크리스털 가드도 딱히 뭘 방해하려 한 것은 아니지. 다만 크리스털 가드가 자연스럽게, 너에게 협력하면서 그 힘을 풀어낸 것이 상아탑의 마법과 맞닿아 발생한 현상이다. 음, 어찌 보면 몬스터 로드에게는 흔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흔하고 당연해! 그건 또 무슨…….’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형상을 끌어내고 그 능력을 발휘할 경우, 주변의 마법은 저절로 해체당하는 일이 자주 있잖아. 너는 여태 그런 일이 없기는 했다만, 대부분 몬스터 로드에게는 그리 희한한 일도 아니지.
‘그러니까 결국 내가 수룡의 힘을 흘리다가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까지 넘치게 흘려서 저질러진 일이다! 여태 그런 적이 없는데 수룡을 삼키니까 그런 일이 생겼다!’
투란은 입을 꽉 다물면서 진지하게 자신의 상태를 되짚으며 물어야 했다.
어떤 경우라도 몬스터 로드는 자신이 삼킨 몬스터의 힘을, 그 영향력을 명확하게 파악해서 제어해야 하는데 실패했다니까.
―투란, 이건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야. 단지 수룡 크리스털 가드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착각한 것이라고 해야할 일이다.
‘착각! 뭘 몰라서 착각을 했기에 상아탑의 대마법사가 마법을 망가뜨려!’
―먼 옛날 그림 투아란의 주변에서도 자주 있던 일이야. 수룡은, 크리스탈의 성채를 지닌 수룡은 주인의 힘을 강화시키는데 주인이 그 강화된 영역을 제대로 파악 못하면 아티팩트조차도 망가졌다고 했어. 그런 전설 못 들어봤냐!
‘그림 투아란이!’
―그래, 그림 투아란도 수룡을 거두고 얼마동안은 그랬다고 했어. 음, 너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은 거냐!
‘그림 투아란은 드래곤로드이고 그딴 실수는 한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 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홀시딘이 꽤 답답했던 모양이군. 아예 내려오고 있어.
‘응!’
잠시 침묵하며 드라고니아랑 떠들던 투란은 위를 올려다봤다.
안개가 사라지고 하늘이 훤히 보이는 풍경 속에서 구멍 난 구름조각이 쑥쑥 커지듯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화된 투란의 시각은 그 구멍 속에서 빼꼼히 드러난 홀시딘의 얼굴을, 그 곁에서 갸웃거리는 에스탄의 표정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쓴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투란은 외쳐야 했다.
“여기요! 나, 멀쩡해요!”
부우웅.
허공을 부유하는 구름배가 가까워지며 조금 요란한 바람 소리를 흘렸다.
“땅징어는!”
그리고 거세게 덧붙여지는 홀시딘의 물음.
조금 더 짙어진 쓴웃음으로 투란이 주변을 손짓하며 대답한다.
“난폭했는데, 잡아버렸어요. 깨끗하게 세상에서 치워 버렸죠.”
“괜찮으냐!”
홀시딘은 깊은 염려를 담아 짧게 묻고 있었다.
투란은 빙긋 웃으며, 충분히 낮아진 배에 뛰어들 자세를 취하며 대답한다.
“괜찮아요! 이제 돌아가죠! 알드바인으로!”
파앗, 아직 십여 미터는 남은 부운정의 구멍을 향해 투란은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