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6)
Chapter 22. 고르고니아 사냥
꿈벅, 꿈벅.
눈 아래까지 늪에 파묻힌 채로, 머리만 무슨 그릇의 뚜껑처럼 빼꼼하게 내민 투란은 느릿느릿 늪을 헤집듯이 나아갔다.
‘이것 참, 깊어도 곤란하지만 얕아도 곤란하네.’
늪의 깊이가 어느새 줄어들고 있어서 이제는 완전히 속에 잠긴 채로 허우적대며 더 빠질 걱정을 하며 나갈 필요는 없어졌다. 하지만 슬슬 머리꼭지가 늪의 표면에 드러날 정도가 되고 나니, 주변에서 뭔가가 덤비거나 할 경우도 대비해야 했다.
늪 속에서는 딱히 그럴 걱정이 없었다.
‘아, 근데 왜 갑자기 조용해졌어?’
문득 투란은 되새김질하던 궁금증을 한 번 더 문장 속으로 던져 봤다.
내내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드라고니아가 침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고르고니아인가를 찾으러 가는 데 반대하는 것을 계속 무시해서 삐졌나 했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은근히 가슴을 두들겼다. 마치 이 늪을 이렇게 반쯤 헤엄치며 푹 잠긴 채로 나아가는 그를 황당하게 여기는 듯도 했다.
정말로 어째서 드라고니아가 갑자기 침묵하고 있는지, 투란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아늑하게 깊은 문장 속에서 드라고니아는 대체 뭘 하고 있을까?
‘뭐, 나중에 물어보면 알겠지.’
뭔가 터무니없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린 투란은 주변에 대한 감각을 좀 더 예민하게 가다듬으며 나아갔다.
눈깔꽃, 그중에서도 섬광을 자랑하는 녀석들이 점차 무리를 지으면서 모여드는 광경이 보였고, 그 무리가 다시 한곳을 향해 와글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이를 살피면서 투란은 서서히 ‘작은 늪’ 속에서 작은 돌의 힘을 꺼내 악마의 심장에 펼쳐 나갔다. ‘작은 늪’이 골고루 몸에 퍼지며 악마의 심장이 보다 역동적이고 강해진 와중에 급할 때는 작은 돌의 힘으로 아예 단단하게 버텨 볼 궁리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인가, 투란은 이 늪의 성질이 여러 차례 바뀌는 것을 매번 바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거참, 혼자 연못을 만들고 그래서 그런가? 닿기만 하면 늪을 맛보는 것 같네.’
‘작은 늪’을 만들어 낸 작은 돌이 조금 기묘한 성질을 드러내는 것이 가만히 느껴졌다. 그 힘을 몸에 퍼뜨릴 때마다, 주변의 늪을 맛보는 듯한 이상한 감각, 도무지 그래서 어쩌려는 것인가는 알 수 없는 묘한 감각이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뭔가 몸을 긁는 듯해서 투란은 움찔했다.
분명히 소리였지만,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몸 어딘가에 와서 부딪치며 긁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치이…….
잠시 뒤에는 좀 더 분명하게, 하지만 역시나 강화된 감각이 아니면 제대로 느낄 수 없는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투란에게는 뭐라 할 수 없는 귀찮은 느낌이었고, 어딘가 좋지 못하게만 생각되는 자극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이건 뭐야?’
—반향이다. 탐색을 위한 메아리 같은 것이지.
‘응?’
갑자기 전해진 드라고니아의 대꾸에 투란은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조용히 하더니 느닷없이 묻는 말에 답을 해 준 셈, 그런데 그게 대체 뭔가?
—소리를 이용해서 주변을 탐지하는 능력을 지닌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야. 보통은 아주 낮기도 하고 특별한 형태를 지닌 소리라서 감지하지 못한다. 넌 할 수 있었나 보군, 투란.
‘에? 그런 거야? 그거 혹시 박쥐?’
문득 투란은 박쥐가 눈이 어두운 대신에 짹짹 혹은 찍찍거리는 소리를 이용해서 주변을 탐지한다는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그 짹짹찍찍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사냥개가 있기도 해서, 특별한 박쥐를 사냥해야 하는 사냥꾼들이 가족처럼 키운다는 말도 함께.
—박쥐가 늪 속에 뭐가 잠겨 있나 알고 싶어 할까? 이 반향 탐지는 늪을 이용한 것이잖아.
‘닮은 놈?’
—닮았겠지. 늪 속을 헤엄치는 박쥐일지도 모르지.
뭔가 느긋하다 못해 비꼬는 듯한 낌새가 슬그머니 서려 있는 대답이었다.
늪에 잠긴 입가에 쓴웃음을 짓다가 투란은 느긋하게 허우적대던 몸을 멈췄다.
갑작스럽게 주변에서 몰려드는 이상한 느낌, 딱 뭔가의 눈길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투란은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아…… 부담스러운데, 이거?’
—그게 다냐?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였다.
확실히 눈깔꽃 무리가 투란을 향해 들이대듯이 눈길을 쏘아 보내는 광경은 그저 부담스러운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 눈알이 터지며 파멸의 섬광이란 것을 쏘아 내는 희귀종이 아니더라도.
‘쟤네가 나 때문에 여기 모이는 것도 아니잖아?’
투란은 머리카락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대꾸해 줬다.
곧 그의 머리카락이 가늘고 길게 짜인 그물처럼 꾸물거리면서 눈가로 흘렀다. 늪 위로 살짝 뚜껑처럼 올린 투란의 머리 위에서 작게 부풀며 맥동하는 둥근 뿌리가 주변을 향해 은근히 센 파문도 흘렸다.
한층 더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반응이 바로 나온다.
—그게 위장이냐? 그렇게 악마의 심장인 척하면…… 통해!
어이없음에서 갑자기 놀람으로 바뀐 낌새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씨익, 늪가에 잠긴 채로 투란은 보다 환하게 웃음 지었다.
‘응. 헤헷, 몰랐어?’
—그딴 걸 알 리가 없잖아!
이제 투란은 보글보글 거품을 뿜어내며 좀 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여기 뭐 있나 알기 위해 늪 위를 둥실거리며 떠가는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한 짓이었는데, 역시 통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이없고 기막히다는 낌새로 드라고니아의 물음이 나왔다.
‘늪에서는…….’
투란은 좀 더 눈가에 두껍고 투명한 덩굴줄기를 덮고, 더 강화된 시야를 통해 주변을 눈깔꽃 무리를 둘러보며 대답을 꺼낸다.
‘눈깔꽃이 악마의 심장에게 잡아먹혀. 오러 몽거의 가슴에 달라붙은 악마의 심장…… 키린은 봤나 모르겠는데, 그 녀석도 주변에 흘러 다니는 눈깔꽃을 잡아먹고 있었지.’
—오러 몽거에게 악마의 심장이? 하, 하핫, 어처구니없구나! 그래서 그 악마의 심장이 오러 몽거를 움직이기는 했나?
‘팔 하나.’
—움직였다고?
드라고니아가 황당해하면서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을 리가 없다고 여기는 낌새가 선명하게 투란에게 느껴졌다. 조금 발끈했지만, 곧 그 까닭을 납득하면서 투란은 한 번 더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어, 팔 하나뿐이지만.’
—과연…… 투란, 네가 그 꼴을 봤으니 삼킬 만하다 생각했겠구나. 따지고 보면, 악마의 심장이니 악마의 비술인 볼텍스에 대해 어느 정도 효용성을 발휘할 수도 있겠어.
‘칫…….’
투란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납득하고, 그러면서도 기막혀하는 드라고니아에게 삐죽거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뭔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통해서 저런 결론에 이른 모양인데, 투란의 경우에는 몸으로 겪으면서 그 말을 납득하고 있었다.
확실히 악마의 심장은 오러 몽거의 오러에 적응했고, 괴물의 형상 속에서 오러를 휘둘러 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투란이 순수하게 이끌어 내는, 키린의 인도에 따라 끌어낸 오러와 다른, 오러 몽거의 독특한 오러…… 비록 그 힘의 크기를 따지자면 뭔 산자락에 굴러다니는 작은 잎사귀랑 산봉우리를 비교하는 것만큼 차이가 나기는 해도 분명히 괴물의 오러를 악마의 심장이 차분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정말로 악마의 심장이 뭔 악마랑 관계가 있어서 악마의 비술이라는 ‘어비셜 볼텍스’랑 통하는 바가 있고, 그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지도 몰랐다.
치이……이이잉!
‘응? 어라, 쟤네들 눈 돌리네?’
좀 더 센 반향을 느낀 순간, 투란은 알아차렸다.
뭔가 색다른 것이 자신들 무리 근처에서 배회하는 것을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던 꽃봉오리들, 눈깔꽃 무리가 일제히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더 빠르게 뿌리를 흔들어 대며 몰려가고 있었다.
투란도 바쁘게 늪에 잠긴 팔다리를 움직이며, 머리는 철저하게 작은 악마의 심장인 것처럼 꿈틀거리게 꾸민 채로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만 가! 더 가까이 가다가 빗나간 섬광이라도 처맞으면 좋은 일 하나 없다고!
꽥 하는 외침에 투란이 움찔했다.
확실히 셋이 합치면 산도 뚫어 버린다는 그 빛줄기를 이런 상태로 버틸 수는 없을 터……. 그러나 그렇다 해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보지 않는 것보다는 약간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
‘안 맞아. 걱정 마.’
뭔가 좀 더 자신감 있게 생각하면서, 투란은 늪 위에 살며시 끼어 흐르는 안개를 가늠하며 나아갔다. 한편으로는 내놓은 머리 부위가 거울처럼 반질반질한 광택을 띠기 시작했다.
—응? 그거 뭐야? 경면반사(鏡面反射)라도 궁리한 거냐!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경면……반사?’
—거울이 빛을 튕겨 내는 현상, 그게 경면반사라는 거다. 빛줄기가 또렷하게 뭉칠수록 거울이 반사해 내는 것 역시 또렷한 빛줄기가 되는 거 말이야.
‘아, 그래?’
—야! 너 대체…….
‘오러 몽거의 심장이 되려고 했던 악마의 심장이 하던 짓이야.’
—허!
놀라는 드라고니아보다, 투란은 잠시 주변에 꼬물거리는 눈깔꽃의 기척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제는 3, 4미터 거리를 둔 채로 주변에 바글거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오싹한 느낌에 사로잡히면서 좀 더 조심스러워지는 투란이었다.
‘이거 대체 어디서 이렇게 희귀종이 떼로 몰려왔지? 누가 밭을 갈아서 키우기라도 하나? 이놈들, 정원에서 키울 수도 있나? 이렇게 줄지어 몰려들 줄도 아는 게 꼭 어딘가 정원에서 키운 것 같잖아.’
하지만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이 파악한 상황을 정리했다.
이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아주 신중하고 진지하게 호응한다.
—그럴 수도 있다. 저것도 애초에 악마의 비법에서 탄생한 놈이니까.
‘엥? 비, 비법? 뭐야, 그건 또!’
—이블 아이(Evil Eye),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위저드 아이(Wizard Eye)를 악마가 자신들의 독특한 마법으로 구현해 낸 것이지. 마법사들의 위저드 아이가 축적된 마력이 소모되면 사라지는 것에 비해, 이블 아이는 식물처럼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주변의 정기를 양분처럼 흡수해서 지속된다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가끔 그 뿌리를 뽑아서 주변을 알짱거리며 정찰도 했지. 완전 독립형 마법이라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방식이었다.
‘아니, 악마 녀석들은 그런 걸 뿌렸으면 도로 거둬 가야…… 잠깐! 그런데 그 이블 아이도 터지나?’
—이블 아이를 제거하려는 자를 제거하기 위해 위험한 폭발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보통은 독을 뿌려 뭐든 가까이 못 오게 하는 것이 자기 보호 능력으로 부여되기도 했고…….
드라고니아가 태평스럽게 늘어놓는 이야기는 투란에게 황당하게 느껴졌다.
까마득한 먼 옛날, 사실 투란이 제대로 들어 본 적도 없는 악마와의 전쟁이 있던 시대, 그 시대의 유물이 저런 몬스터라니!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곧장 투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빠르고 정확한 한 가지를 추측해 내게 했다. 바로 투란의 입이 늪에 잠긴 채로 열려 한 번 보글거렸고, 투란은 입에 쏟아진 늪의 맛을 느끼면서 입을 다물고 침착하게 생각했다.
‘야! 그러면 어떤 악마가 저놈들을 저렇게 몰아 놓을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원래 악마의 비법인가 하는 마법으로 움직이는 놈들이고, 재배할 수 있는 몬스터라면…… 이렇게 떼로 몰아넣는 것도 당연히 되는 거잖아!’
—어라? 그런가?
주춤, 드라고니아가 뭔가 놓친 것을 겨우 깨달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는 투란이 어이없었다.
‘왜 그런 경우는 생각을 못 한 거야?’
—악마의 기척이 전혀 없었으니까.
‘뭐?’
—이블 아이, 저 눈깔꽃이 정말 악마의 지배에 속한 독립형 마법의 생체 형태라면 그 악마의 기척을 뿜어낼 수밖에 없거든. 하지만 저것들은 그런 낌새가 전혀 없다. 제멋대로 어디선가 몰려나온…… 그저 이 춤추는 산맥의 낌새만 잔뜩 배어 있는 몬스터 꽃송이일 뿐이지. 그러니까 그냥 이상해 보이기만 했지, 뭐.
조리 있는 설명에 투란은 눈가를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리 떼로 몰려다니는 꼴을 보면 뭔가의 지배 혹은 지휘를 받는 듯하다.
하지만 저것을 지배할 수 있는 악마라면 그 기척을 훤히 드러내야 할 텐데, 그런 것이 없다.
‘그럼 악마가 아닌 다른 뭔가…… 마법사?’
—마법사의 기척도 없지. 저 꽃송이들은 뭐가 자신들을 지배하든 그 기척을 확실하게 공유하면서 드러낸다. 그게 이블 아이의 묘한 특성이었고. 하지만…… 저 눈깔꽃이 여태껏 그런 특성을 지녔을까 의심스럽기도 하군. 아무리 봐도 그냥 몬스터 꽃이잖아.
‘그건 그렇…… 어?’
—응?
싸아아.
꽃송이들이 일제히 피어나는 광경이 독특한 소리를 이뤄 냈고, 그 소리에 맞추듯이 주변에 듬성듬성 솟구쳤던 안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늪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작은 섬, 그 위에 어슬렁거리는 금빛의 몬스터가 고개를 드는 광경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