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52)
문틈으로 보인 얼굴은 금방 투란의 기억을 되살렸다.
사막의 풍경이 저절로 그 얼굴 너머로 겹쳐지는 듯했다. 불쑥 치솟는 반가움이 저절로 투란의 입을 열게 했다.
“키유나……!”
오랜만이라 살짝 올라가던 목소리가 저절로 낮아졌다.
키유나의 표정이 꽤 심각한 탓이었다.
그리고 키유나의 목소리도 나직하면서도 신중했다.
“방금 전에…… 문 아래 틈새로 흘러 나간 저주…… 투란이 정화했어!”
“어! 정화! 아…… 정화랑 좀 다르지만 없어지게 했어.”
목소리를 낮추면서 투란이 대답했다.
목소리 높여서 문 너머에 묘한 영향이라도 끼치고 그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쁜 쪽으로 이끌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키유나는 곧바로 문을 활짝 열었고, 투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홀시딘에게 고개를 까닥하면서 바로 담담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투란, 어서 들어와. 마스터 홀시딘, 밖에서 기다리는 편이 좋을 거예요. 아무래도 마법사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니까요.”
홀시딘은 머뭇거림 없이 대꾸했다.
“그러지. 투란, 어서 들어가!”
둥실거리며 뜬 채로 투란의 등에 발끝을 대고 밀기까지 했다.
―조심해라, 시알라가 마력으로 봉쇄하는 중인데도 흘러나온 것이었어.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들어가고 있잖아요!’라고 투덜거리는 사이에 바로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의 입에서는 그 투덜거림이 금세 여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방 안의 풍경이 단숨에 투란의 관심을 휘어잡아 버렸으니…….
살짝 열린 문은 투란이 들어서기가 무섭게 키유나에 의해 닫혔다.
좁은 방의 사방 벽에는 등불이 높이 매달려 밝게 드리우는 중이었고, 그 한쪽 벽에 대고 놓인 침대 위에 저주를 뒤집어쓴 자가 있었다. 시알라가 그 침대 앞에 두어 걸음 간격을 둔 채로 서서 온몸으로 짙은 마력을 발산하는 중이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 거기에 황금매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채로 침대 위에서 물컹거리며 배어 나오는 저주를 가두는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투란은 시알라가 예전에 본 적이 없는 세련되고 정교한 방식으로 마력을 운영한다는 사실보다 침대 위에 올려진 저주받은 자의 모습에 먼저 눈길을 빼앗겼다. 저절로 그 까닭이 투란의 입가에서 새어 나오기도 했다.
“반짝!”
―뭐! 투란!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반응에 미묘하게 염려하듯이 불렀다.
시알라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투란이 묘한 태도란 것을 알아차린 듯, 바로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며 말한다.
“투란, 아는 사람인 거지! 뭘 하든 빨리 해. 여기 도착할 때만 해도 손발이 멀쩡했는데 지금은 얼굴 반쪽만 남은 채야!”
“어, 조금 더 물러서도 돼.”
오랜만에 만난 것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투란도 시알라도 역병의 수해를 건널 때처럼 서로의 손짓에 반응하며 상황에 맞춰 움직일 뿐이란 듯, 자연스럽게 저주를 품고 침대 위에 올려진 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그사이에 투란이 내뱉은 한마디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이 떠들고 있었다.
―라카샤, 그 소녀가 맞는 거냐! 저 지경인데도 그 반짝임이 너에게는 보인다고! 저주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판별하겠다만, 그건 여전히 알 수가 없구먼. 대체 뭐가 어떻게 반짝인다는 거야!
‘그러게.’
어딘가 투덜거리는 듯한 말에 투란은 그저 어설픈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짚은 대로 지금 저주받은 모습에서는 투란이 봤던 소녀의 형체를 아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시알라가 말한 대로 반짝이나마 인간의 얼굴이겠거니 하며 보이는 살덩이 같은 부분은 부풀었고, 뒤틀린 채였으며 반쯤 썩는 중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그 살덩이 얼굴 이외에 다른 부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은 것은 검은 고름과 적갈색의 뒤틀림이 가득한 가죽이었다. 그 가죽으로부터 물컹거리면서 검은 안개가 그림자처럼 배어 나와 번져 나가는 광경은 섬뜩한 위협이었다.
어찌 봐도 손발이 문제가 아니라 팔다리 구분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엉킨 몸통은 이전 소녀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할 뿐이고…….
하지만 투란은 ‘보고’ 있었다.
‘여전히 반짝거려, 아니 이전보다 더 밝게 반짝인다고 해야 하나!’
프로보도, 몬스터 로드의 치열하게 단련된 감각도, 마력을 통한 감지도 아니었다.
투란에게는 그저 보일 뿐이었다.
저주로 뒤엉켜서 오감(五感)을 망가뜨리는 영향력을 한가득 뿜어내는 형체, 그 안이 텅 빈 듯한 광경 속에서 한없이 반짝이는 별빛 같은 무엇…… 굳이 닮은 것을 되새기려 한다면 마치 드라고니아가 문장의 풍경 속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꾸며 놓은 별빛 무리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러니까 전혀 그런 것을 모르겠거든! 어쨌든 저 저주부터 어떻게 해라. 호기심은 나중으로 미뤄야잖아.
드라고니아는 다시 투덜거렸다.
‘그래, 그래야지. 아, 그런데 몇 년…… 아니, 몇 달 만에 다시 만난 거지!’
한 걸음 더 침대에 다가서며 투란은 갸웃했다.
드라고니아가 피식 새는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너나 저 소녀에게는 반년도 안 지나서 아주 해괴한 꼴로 다시 만난 셈이지. 나는 십 수 년 만에 다시 너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드는 괴상한 소녀를 또 보는 셈인 것이고.
‘흠, 그런가. 야, 근데 이 저주 대체 뭐야! 어떻게 하면 사람을 이 꼴로 만들 수 있다냐! 뭔 몬스터에게 서식당한 것도 아니고.’
사앗, 할짝.
검게 물든 투란의 손, 팔뚝까지 열린 여러 입에서 혀가 멋대로 튀어나와 공중부터 훑으며 핥고 있었다. 그때마다 투란의 검은 팔 위로 힘줄이 불끈거리며 돋아나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하는 중이기도 했다.
“저주를…… 먹어 치우냐! 대체 뭔 몬스터야.”
어이없다는 듯이 시알라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투와 다르게 시알라는 한숨 돌렸다는 듯이 안도하면서 좀 더 뒤로 빠져 키유나 곁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방의 경계를 둘러싼 마력을 유지하고 그 형태를 지속시키는 시알라의 솜씨는 어지간히 능숙한 수준이 아니었다.
투란은 저절로 느낄 수 있는 시알라의 솜씨, 그리고 벽 너머의 경계를 은은하게 지키는 키유나의 그림자를 알아차리면서 침대 위로 살짝 무릎을 얹고 자세를 낮췄다. 짙게 퍼져 나가는 저주의 힘을 더욱 본격적으로 잡아먹기 위해서.
―투란, 서둘러라. 저주를 모두 해제해도 죽을 것 같은 상태야. 빨리 해제하고 치유를 시작해도 상당히 후유증이 남을 수 있어. 어쩌면…… 아니, 이미 팔다리를 끊어 내고 머리도 반이 날아갔다고 봐도 좋을 지경이라고.
‘그래! 음.’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
투란은 조금 더 살덩이 같은 얼굴 쪽으로 붙으면서 검게 물든 채로 혀를 날름거리는 손을…… 이제는 손가락 끝조차 입이 되어 할짝거리는 손으로 대강 뒷머리쯤 되는 곳을 잡듯이 받쳐 주면서 속삭였다.
“라카샤, 기억나요! 나, 투란.”
길게 말할 것은 없었다.
그저 스쳐 갔을 뿐이었으니까.
반짝임이라는 조금 기괴한, 주변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묘한 것만 투란에게 보여 줬고 그다음에 만날 일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나마 자신이 사는 곳을 떠들었던 것도 딱히 찾아오라 한 말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라카샤는 이런 몰골이 되어 찾아왔고, 지금 투란의 속삭임에 반응하고 있었으니…….
투둑, 뭔가 억지로 밀어내는 것처럼 살덩이 얼굴의 한 귀퉁이가 열렸다.
혼탁한 눈동자가 그 좁은 틈새로 드러났다.
다시 살덩이 한 곳이 찢어지는 듯하며 새는 목소리가 나왔다.
“투란…… 기억…….”
“자세한 이야기는 낫고 나서 해요. 조금 아프더라도 참아 봐요.”
투란은 방긋 웃음을 띤 채로 또렷하게 속삭였다.
―조금……!
드라고니아가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마디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투란의 뇌리에 속삭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이 어떤 반응이든 상관없이 투란의 움직임은 신속하게 시작되었다.
두 팔이 동시에 굵어졌고, 검은 색채가 강해졌다.
꿈틀거리던 힘줄은 이제 불거져 나온 밧줄처럼, 넝쿨이 된 것처럼 굵어진 투란의 팔을 휘감은 몰골이었다.
사라락.
넝쿨이 팔에서 풀려나며 영민하게 움직였다.
수십 가닥으로 갈라져 나온 넝쿨이 침대 주변을 채우고, 침대 위의 저주를 포위하듯 둘러쳤다.
저주가 무럭무럭 배어 나오는 몸통 주변으로 검게 물든 넝쿨이 영민한 촉수처럼 감싸며 펼쳐진 채로 휘감아 들었다.
사락, 할짝, 할짝…….
수많은 입은 넝쿨, 촉수의 곳곳에서 시커먼 얼룩을 바탕으로 열렸다.
빠드득, 꽈드득.
넝쿨과 촉수는 금세 저주받은 몸을 파고들며 음산하고 흉악한 소리를 흘렸다.
몇 마디를 내뱉었던 살덩이의 입이 다시 열리며 비명을 지를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 입은 투란이 밀어 넣은 손가락에 막혔고, 뒷머리부터 굵직하게 휘감은 손아귀가 목을 조이듯이 감아 버린 탓에 숨이 막혀 아무 소리도 못 냈다.
간신히 열린 눈, 혼탁한 눈동자가 투란을 향했다.
그 혼탁한 눈동자를 마주하는 투란의 눈알 위로는 자잘한 점처럼 수많은 눈동자가 맺힌 채였다. 너무나 괴이한 그 현상에 살덩이가 저절로 찌푸려지며 혼탁한 눈동자를 감출 지경이었다.
그 짧은 깜박임 사이에 투란이 입을 막듯이 밀어 넣은 손가락은 살점을 헤집으며 그 목을 타고 내장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 손끝의 확장된 감각을 통해 투란은 진단했다.
‘역시 외모를 이루는 부분에 치중되었네. 살갗, 힘줄, 골격…… 이 정도면 그냥 단숨에 죽여도 될 텐데 그러질 않아. 체내 신경은 오히려 손상이 거의 없어. 자기 몸속에 가둔 셈인가! 이 정도면 한껏 오래 괴롭히려는 수작 맞겠지!’
―애초에 저주가 대부분 그렇지. 이건 확실하게 괴롭히려는 목적이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저주야. 하지만 죽이려는 의도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내장조직과 신경조직이 멀쩡해도 굶어 죽거나 길 가던 짐승에게 공격당해 죽는다고. 같은 인간이 봐도 이 정도 몰골이면 몬스터로 착각해서 해치려 할 지경이잖아.
드라고니아도 투란이 파악한 부분을 되짚으면서 공감하고 있었다.
투란은 천천히 살덩이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굵은 손아귀에서 슬그머니 기어 나온 촉수가 상냥하게 쓸어 내는 꼴이라서 문가에 기대고 지켜보는 시알라나 키유나는 흠칫하며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촉수가 부드럽게 쓸고 지나는 사이에도 촉수의 검은 얼룩에서 열린 입은 부지런히 살덩이를 핥았으니, 그 결과로 눈가와 입가가 제법 모양이 잡힌 얼굴의 형태가 드러났다.
그렇게 조금 나아진 눈꺼풀이 열렸지만, 그 눈동자는 여전히 혼탁했다.
그 눈동자를 향해 역시나 수많은 눈동자가 박힌 괴이한 눈알을 들이대면서 투란이 다독이듯 속삭인다.
“조금만 더 참으면 끝나요.”
혼탁한 눈동자에 묘한 이슬이 맺혔다.
투란은 찔끔해서 재빨리 덧붙여 말한다.
“정말 금방 끝나요!”
―야,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닌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착각했다고 짚었다.
그러나 투란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파서 우는 것 맞아. 소리도 못 내게 내가 조이고 있기도 하지만…… 지금 내장이랑 신경이랑 전부 악마의 심장으로 파먹는 중이잖아. 마비시켜서 못 느끼게는 했지만, 이 저주 때문에 알기는 알 테니까.’
드라고니아도 ‘안다’는 부분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뭐, 그것도 그렇기는 하다만.
이 저주는 몸을 뒤틀어 망가뜨리는 것을 아주 친절하게 저주받은 당사자가 인지(認知)하게 강요하고도 있었다. 자신이 망가진 것을 감상하며 더욱 절망하라는 악의(惡意)가 철저하게 배어 있는 셈…….
그러니 투란은 자신이 입을 통해 집어넣은 몬스터의 넝쿨 뿌리줄기가 라카샤의 속을 갉아 먹고 파먹는 중이란 점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비록 몬스터의 넝쿨이 그 파먹은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의태(擬態)하고 있기도 하지만, 새로 신경이 이어 붙고 저주받은 뼈와 살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아프지 않아도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풍경이니, 몸이 아프지 않더라도 마음이 놀라 아플 지경 아닌가!
―섀도우하트를 이런 식으로 응용하다니…… 언제 궁리한 거냐!
문득 놀랐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궁리! 아니, 그냥 떠올랐는데…… 이런 짓 언더섀도우에서 한 적 없었어!’
투란이 갸웃하며 되물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투란은 이것도 익숙해져 버릇이 된 것 아닌가 느낄 뿐이었으니까.
‘악마의 심장’이 도달한 섀도우하트…… 악마의 고유한 비전으로 그 몸을 언제라도 새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춘 몬스터 도구를 마침내 제대로 쓰고 왔나 싶었는데…….
―뱀파이어의 피를 치유에 많이 썼다. 섀도우하트는 언더섀도우에서 네 몸 밖으로 벗어난 일이 거의 없지.
드라고니아는 담담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카샤는 서서히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갔는데…….